리스트 예시: 게시물이 존재할 경우 3건을 노출합니다.
-
몽양과 무정의 꿈, 그리고 진옥출의 붉은 사랑 : 최산 <파란 나비>
4p 진옥출에 관한 사실史實은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1917년에 충주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후 서울로 올라와 숙명여고보를 졸업하고 이화여전을 거쳐 일본여대로 유학 갔다는 것, 거기서 몽양 여운형과의 사이에서 딸 여순구를 낳았으나 그 직후 항일 무장투쟁에 참여하겠다며 홀로 중국 타이항산으로 들어가 조선의용군 대원으로 활동했다는 것, 그리고 그 산에서 동료 대원 허갑과 결혼했으나 그가 밀정이란 사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그를 사살했다는 것 정도가 전부이다. 따라서 그러한 사실 외에 이 소설에 나오는 진옥출 관련 에피소드는 대부분 픽션이다. 1.작가는 진옥출에 관한 기록을 찾으려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하지만 성과가 없어 낙담하고 있을 무렵, 진옥출이 꿈에 나왔다. "그냥 써." 그리고 ..
2025.08.17
-
혁명의 시작은 사랑이다 : 류동민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류동민 교수는 알릴레오 북스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폴 크루그먼의 편에 나왔는데, 마르크스를 전공하고 충남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분입니다. 경제는 인간과 인간의 행위에 관한 학문이라고 하며 무엇보다 사람과 사회를 보는 따뜻한 시선이 좋았습니다. 헌쇠도서관에서 류동민 교수의 책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알릴레오 북스에서 경제학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보고 쉽게 풀어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 또한 그렇습니다. 책은 쉬운 문장으로 조근조근 설명하지만, 마르크스의 이론들이라 그 내용이 결코 만만치가 않습니다. 이 책으로 강의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개의 키워드로 인상적인 부분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인간의 본질은 그 인간이 사회적으로 맺고 있는 관계들의 총체이다. 35p그..
2025.08.11
-
리스본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3>
1. 악연의 시작과 끝, 벨기에와 콩고 19세기 중반 벨기에가 정신을 차리고 식민지를 찾으니 인기 있는 아시아는 모두 다른 열강들이 다 차지하고 남은 곳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아프리카의 콩고였다. 벨기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콩고를 식민 지배했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 학살과 착취는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었다. 중노동에 항의하는 콩고인들의 팔을 잘랐는데 그 수가 무려 천만이었다. 자료를 보면서 저자도 몇 번을 확인했다고. 181p샤를 지로는 세기의 건축가였던 모양이다. 브뤼셀이 자랑하는 생캉트네르 개선문 또한 그의 작품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거대함에 압도된다. 파리의 개선문보다 더 크지 않을까 싶다. 벨기에 건국 50주년을 기념하여 1880년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설된..
2025.08.08
-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을 아시나요? : 조갑상 <도항>
우키시마호 침몰 사건 개요1945년 8월 24일 한국인 피징용자를 태운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마루호가 원인 모를 폭발로 침몰한 사건이다. 일본어로는 浮島丸事件이라 부른다. 배경일제강점기 당시 많은 조선인들이 강제로 일본의 본토, 사할린, 쿠릴열도 등으로 끌려가 탄광, 군수공장, 토목공사 등의 중노동에 투입되었다. 이 강제 징용은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더욱 심했다. 송환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였으나 일본에 있던 조선인 노동자의 귀국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증거를 없애고자 조선인 노동자들을 집단학살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당시 고국 조선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재일 조선인은 약 2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출항과 침몰1945년 8월 22일 우키시마마..
2025.08.03
-
보경문총 발간 논문집 : 사준미 외 <중국항일전쟁과 한국독립운동>
이 책에는 중국의 역사학자들이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에서 일어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에 관해 쓴 논문 20여 편이 수록되어 있다. 펴낸 이는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 옛청사 관리처다. 중국 정부는 상해임시정부 옛청사를 문물보호 단위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옛청사 관리처는 한국독립운동사 연구실을 만들어 관련 학자를 초빙하여 한국의 독립운동사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물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편집한 이는 옛청사 관리처의 보경문총편집위원회인데, '보경'은 당시 임시정부가 있던 주소인 '보경리 4호'에서 따 온 것이다. 보경문총편집위원회 주임위원은 사준미 화동사법대학 역사학과 교수다. 27p광복군 성립 전에 한국독립운동 내부에는 오래 전부터 무장부대가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김약산의 의..
2025.08.02
-
독립운동가 허은 회고록 : 허은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저자인 허은(1907~1997) 선생은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자며느리입니다. 의병장 왕산 허위가 재종조부(할아버지의 사촌 형제)이고 이육사의 어머니 허길이 고모입니다. 친가와 시가 모두 엄청난 집안입니다. 아홉 살 되던 1915년 가족 모두 망명길에 오릅니다. 서간도 퉁화현를 거쳐 류허현에 정착합니다. 10살을 겨우 넘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짓고 가사를 돌봅니다. 1922년 헤이룽장성 닝안현으로 거처를 옮기고 그해 이상룡 선생의 손자 이병화와 혼인을 합니다. 혼인 후 간도의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만주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의 그림자가 됩니다. 농사를 지어 독립운동가들의 밥을 해먹이고 옷을 지어 입힙니다. 항상 먹거리가 모자라 부업을 해서 음식을 마련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서..
2025.07.29
-
뒷담화가 고픈 독자들에게 : 오쿠다 히데오 <소문의 여자>
저자의 글 - 친애하는 한국 독자 여러분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이 발휘되는 건 주로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에 한합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를 소중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때때로 타인을 비난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발동되곤 합니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인간의 해학성을 그려 보려고 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악녀 미유키가 아니라 지방의 작은도시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근본부터 악한 사람들은 아닌데도 우선 나를 챙기려는 마음에 거짓말도 하고 부정도 저지릅니다. 그들의 소행은 엄밀히 말하자면 죄지만 슬쩍 눈감아 줘도 그리 큰 영향은 없는 소소한 죄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그런 소소한 욕망을 그려 내면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자연스..
2025.07.28
-
최고의 개화사상서이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 : 유길준 <서유견문>
Q.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은 누구인가. A.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 박영효 등과 함께 공부했다.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가서 '조선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 되어 후쿠자와 유키치가 세운 게이오 대학에서 공부했다.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국내로 귀국했다. 보빙사의 일원으로 미국에 파견되었고, 미국에 남아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 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미국을 떠나 1년간 유럽 각국을 돌아다녔다. 20대 시절에 일본과 미국 유학을 했고 거의 세계일주 급의 여행을 했던 조선의 초 엘리트였다. 친일파 지식인들과 가깝게 지냈고, 본인도 일본에 우호적이었으나 일본의 조선 병합은 반대했다. 의친왕을 왕으로 세우려는 쿠데타에도 가담했으나 실패하여 일본 오가사와라 섬에 4년..
2025.07.23
-
까딱하면 파시즘으로 갈 뻔 했다 : 로버트 O. 팩스턴 <파시즘>
파시즘은 무엇인가? 487p파시즘은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성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정당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 법적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 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파시즘은 이념이나 사상이 아닌 정치적 행동이라고 저자는 정의했다. 책의 순서가 재미있는데, 파시즘의 특징과 발전 과정, 그리고 파시즘으로 알려진 여러 운동과 정당, 독재자들을 살펴보고 나서 파시즘이란 무엇인지 귀납적 방식으로 규명..
2025.07.21
-
히말라야에서 지중해까지 :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2>
1. 미얀마의 봄과 민주주의, 그리고 아웅산 수치 미얀마의 국부는 아웅산이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이기도 하다. 독립을 위해 중국 공산당의 힘을 빌리려 했고, 일본과 손을 잡고 영국에 대항했다. 영국이 잠깐 물러간 사이 일본이 통치하자 미얀마 군의 수장이 되어 일본에 대한 저항운동을 펼쳤다. 일본이 패망하고 영국이 재점령하자 다시 독립을 위해 싸웠다. 1947년 영국 식민정부에 의해 암살당했다. 향년 32세. 이 아웅산의 딸이 아웅산 수치다. 수치는 1988년 귀국하여 버마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고 이 공로로 1991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15년 마침내 미얀마의 국가원수가 된다. 29p'악의 축' 이라크 후세인의 운명을 지켜본 미얀마 군부는 2005년 양곤에서 네피도로 ..
2025.07.16
-
무스타파, 복어는 한국으로 보내줘 : 쥴피 리바넬리 <어부와 아들>
무스타파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에게해에서 고기를 잡는 튀르키예의 어부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여러 생각들을 무스타파에게 물어보았다. Q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죠, 무스타파. 당신이 '아빠'라고 이름 붙인 돌고래가 아기를 당신에게 데리고 왔는데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A그건 돌고래를 무시하는 발언입니다. 돌고래는 자기들끼리 활발한 의사 소통을 합니다. 심지어 뒷담화도 하는 녀석들이에요. 기쁨과 슬픔을 느낄 줄 알고 기억력도 뛰어나고 아주 영리합니다. 그들은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수성과 지능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같은 인격체입니다. 인간과 다른 점도 있는데, 우리보다 훨씬 선하고 순수하지요. 인간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Q아, 그렇군요...
2025.07.12
-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 :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9p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 동안 내 손으로족히 3통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이제 어는 것이 내 생각이고 어느 것이 책에서 읽은 건지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14p그런데 밀려드는 폐지 더미 속에서 희귀한 책의 등짝이 빛을 뿜어낼 때도 있다. 공장 지대를 흐르는 혼탁한 강물 속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물고기 같달까. 나는 부신 눈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그 책을 건져 앞치마로 닦는다. 그런 다..
2025.07.11
-
성매매 여성의 위대한 기록 : 봄날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
46p내가 가난하고 못 배웠다고 성매매로 유입되어야 했을까? 내가 강간당하고 버림받았다고 성매매를 해야 했을까? 나는왜 성매매를 했을까? 내가 잘못한 것일까? 끝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 이유를 찾아봤지만 나의 잘못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낸 것은 누구일까? 이 책은 18살 때부터 룸살롱, 성매매 집결지, 보도방, 티켓 다방 등을 전전하며 성매매 여성으로 20년을 살았던 여성의 위.대.한. 기록이다. 성매매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삶을 살기도 쉽지 않은데, 그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를 글로 썼다. 자신의 경험을 섬세하게 기록하여 기꺼이 독자들에게 나누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값지다. 작가는 동생의 학비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
2025.07.07
-
아름답고 강렬하고 묵직하고 매혹적인 역사 소설 : 정찬 <발 없는 새>
90p세상에 발 없는 새가 있다더군. 이 새는 나는 것 이외는 알지 못해. 날다가 지치면 바람 속에서 쉰대. 딱 한번 땅에 내려앉는데 그건 바로 죽을 때지. 책의 화자(나)는 베이징 특파원입니다. 어느 날 본사의 부장에게서 전화가 와서 대뜸 영화 를 보았냐고 묻습니다. '나'는 네 번 정도 보았다고 대답하며 왜 그러느냐고 하니, 에 나온 장궈룽(장국영)이 자살을 했다며 취재를 맏깁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워이커씽은 베이징에서 만난 '나'의 친구로 술과 담배를 좋아하는 노인입니다. 하지만 이 노인은 장궈룽, 첸카이거 뿐만 아니라 경극 에서 우희를 연기한 대배우 메이란팡(매란방)와 친분이 있고, 문화 전반에 조예가 깊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워이커씽이 난징대학살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2025.07.06
-
살아있는 동안 서두르자 : 폴 칼리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만약 내가 암 말기의 판정을 받는다면 남은 생은 어떻게 살아야할까. 36살의 외과의사 폴은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는 남은 시간이 석 달이라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일 년이라면 책을 쓸 것이며, 십 년이라면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삶으로 복귀하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죽는 날을 기다리는 대신 여태 살아온 것처럼 살자고 다짐한다. 치료를 받기 전에 아내 루시와 상의하여 아이를 갖기로 한다. 집중적인 치료로 폴의 상태가 나아져서 통증이 진정되자 병원으로 복귀하여 수술도 한다. 딸 케이디가 태어나고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과 느끼는 바를 글로 쓴다. 점차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듯 했으나 암은 재발하고, 폴..
2025.07.05
-
몽골 로드에서 할랄 스트리트까지 :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 1>
1. 유길준의 과 이병한의 책의 시작은 유길준의 이다. 저자는 '유라시아 견문'을 준비하면서 여러 책을 읽었는데 유길준의 책에 대해서는 각별하게 지면을 할애해서 소개하고 싶다고 썼다. 그 이유는 이 조선을 개혁하자는 제안서였기 때문이다. 32p막상 책을 펼치니 빠져들었다. 만만치 않았다. 간단치가 않았다. 과연 어설프게 아는 것은 모르는 것만 못한 법이다. 그가 궁리하는 개화開化의 개념과 방법이 발군이었다. 어떻게 조선의 근대를 자주적으로 이룰 것인가를 깊이 궁리하고 써내려간 국정개혁 제안서였다. 전혀 낯설지만은 않았다. 조선 사대부의 시무책을 잇고 있었다. 정치, 경제, 법률, 교육, 문화 등 다방면의 개혁안을 제시했던 연행록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었다. 저자는 현재를 서구적 근대의 종언이라 하며,..
2025.06.30
-
매력적인 도서관 엿보기 : 강예린 이지훈 <도서관 산책자>
도서관은 제가 좋아하는 공간입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주욱 잘 다니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지역엔 좋은 도서관이 많습니다. 학창 시절엔 김해도서관에 갔습니다. 라면 먹으러, 혹은 여학생 만나러 열심히 다녔더랬지요. 대학 다닐 땐 대학 도서관이 놀이터였습니다. 정기용 선생이 설계한 김해기적의도서관이 생기고는 나들이로 도서관 주위를 어슬렁거리도 했습니다. 일거리가 없어 거의 백수에 가까운 요즘 즐겨 찾는 곳은 와 입니다. 는 제가 나온 국민학교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도서관입니다. 그래서 은근히 정이 갑니다. 탁 트인 공간과 높은 층고가 보기에도 시원합니다. 에어컨도 빵빵하게 나와 더위를 피하기에도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은 헌쇠 박중기 선생이 소장하고 있던 책을 김해인물연구회에서 받아 만든 도서관입니다..
2025.06.28
-
지금 여기의 모습은 우리의 결과다 : 오찬호 <민낯들>
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기계에 끼어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를 비롯한 열두 사건을 드러내어 우리의 민낯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우리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사건들입니다. 1. 살고 싶다는데도 별수 없다.- 성 소수자는 여기에 있다, 故 변희수 2. 심장이 찢어져도 별수 없다.- 말이 칼이 될 때, 故 최진리 3. 맞아도 별수 없다.-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라는 이들에게, 故 최숙현 4. 떨어져도, 끼여도, 깔려도 별수 없다.- 너는 나다, 故 김용균 5. 일가족이 죽어도 별수 없다.- 가난이 죄책감이 되지 않기를, 故 성북 네 모녀 6. 국가를 믿어도 별수 없다.- 내 몸이 증거다. 故 가습기 사망자 OOOO명 7. 우리는 더 날카로워질 것이다.-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다, 코로나 팬데..
2025.06.18
-
소비에트의 붉은 장미 :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콜론타이의 붉은 사랑>
여자는 노동자다. 직업은 편집공. 하지만 직접 일을 한다기보다 조직을 관리하여 잘 돌아가게 만드는 일이 주된 업무다. 그는 소년처럼 보였고 예쁘지는 않았으나 아름다운 눈을 가졌다. 공산주이자이고 볼셰비키다. 노동자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소박하고 수수하다. 남자 역시 공산주의자이나 아나키스트다. 미국에서 회계를 배워 조직의 사업을 키워가고 있다. 잘 생겼으며 자유로운 영혼이다. 화려한 말솜씨를 가졌고 뛰어난 유머 감각으로 주위 사람을 즐겁게 한다. 조직 상부와 마찰은 있으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뛰어난 성과를 올린다. 둘은 어느 집회에서 만났고 데이트를 즐긴다. "내가 살던 고향 마을에는 시계가 없어서 우리는 별들에게 시간을 물어보았습니다." 남자는 이런 말로 여자를 유혹했고 여자도 금새 사랑에 빠진다...
2025.06.14
-
대장정 15,500킬로미터, 중국을 보다 : 손호철 <레드 로드>
대장정은 마우쩌둥과 저우언라이를 비롯한 중국 공산상 지도부가 장세스의 국민당군을 피해 노동자와 농민으로 구성된 홍군8만 5천명을 이끌고 중국 남부 장시성을 떠나 1934년 10월부터 이듬해 10월까지 약 1만 킬러미터를 이동한 사건을 말한다. 죽음의 늪과 초원 지대를 가로질렀고, 험악한 오지와 설산을 넘었고, 추위와 전염병을 견뎠다. 살아남은 이는 약 6,000명, 출발부터 끝까지 완주한 이는 3,000명에 불과할 정도로 죽음의 이동이었다. 저자인 손호철 교수는 이 붉은 길을 따라갔다. 사전에 준비하여 팀을 꾸려 2008년에 약 50일간 이 길을 따라 답사했다. 1차에 갈 수 없었던 곳을 추가하여 2011년에 다녀왔고, 2021년에 개정판을 내었다. 바로 이 책이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
2025.06.13
-
조선을 이렇게나 삐딱하게 본다고? : 강명관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조선의 책벌레들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책 좀 읽는다는, 혹은 글 좀 쓴다는 조선시대 위인들의 고리타분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나의 선입견이었다. 강명관 선생의 예리하고 통렬한 비판이 책 전체에 삐죽삐죽 솟아있었다. 그 통렬함이 무방비의 나를 찔렀다. 조광조는 개혁을 추진하다 부패한 훈구세력에게 희생당한,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하고 깨끗한 인물이었다. 이황은 조선을 대표하는 대성리학자였고, 정조는 조선시대 3대 왕으로, 학문으로나 무예로나 흠결없는 다재다능한 왕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강명관 선생이 이들을 어떻게 비판했는지 살펴보자. 먼저 조광조에 대한 비판이다. 79p조광조에게는 여러 전설이 전한다. 가장 압권인 것은 이웃집 청상과부와 있었던 이야기다. 조광조의 훤칠한 모습을 흠모한 이웃집..
2025.06.10
-
지도는 언제나 나에게 말을 건다 : 팀 마샬 <지리의 힘>
이 책은 지리라는 타이틀이 붙긴 했지만, 지리의 관점에서 본 국제 정세의 이야기다. 나라간의 싸움은 지리때문에 일어난다고 저자는 말한다. 여기서 지리라 함은 강이나 산맥, 바다 같은 물리적 지형뿐 아니라 기후, 천연자원, 인구, 문화, 민족, 종교 등도 포함한다. 어릴적 보던 사회과부도도 그랬던 것 같다. 책은 중국, 미국, 유럽, 러시아를 포함하여 한국과 일본을 거쳐 북극까지 총 10개의 지역으로 나눠 설명하는데, 책을 펴자마자 우리나라부터 읽었다. 첫 페이지에 우리의 상황을 두어 문장으로 짧게 정리했는데, 통찰력이 보통이 아니다. 161p중국은 북한의 행위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건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통일 한국의 국경, 즉 자신들의 코앞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미국도 남한..
2025.06.05
-
대한민국, 이제 다시 시작이다 : 염무웅 <지옥에 이르지 않기 위하여>
2025년 6월 3일,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으로 이재명이 선출되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7분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했다. 12월 4일 새벽 1시 1분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헌정 사상 최초로 통과시켰다. 12월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 표결에 부쳐졌으나 무산되었고, 12월 14일 두 번째 탄핵 소추안이 통과되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었다. 12월 16일 조국혁신당 대표 조국의 실형이 확정되어 수감되었다. 2025년 1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 체포되었고 구속되었다. 1월 19일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 집행에 반발하여 극우세력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침입하여 폭동을 일으켰다. 3월 10일 법원의 구속 취소로 윤석열 ..
2025.06.03
-
마키아벨리가 이재명에게 :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왜 이런 책을 썼나? 피렌체의 노련한 정치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의 군주인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바친 책이다. 여기서 로렌초 데 메디치는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그 '위대한 자' 로렌초가 아닌 그의 손자다. 이름이 같다.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를 통치하다시피 했는데 위대한 로렌초의 아들이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쫓겨났고, 이후 손자 로렌초가 햇병아리 군주가 된다. 이 어린 군주에게 바친 책이다. 당시 마키아벨리는 모략으로 감옥에 갔다가 풀려나 낙향해서 피렌체와 자신을 위해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이 책을 썼고 왕에게 올렸다. 하지만 왕은 슬쩍 보고 치웠다. 책의 내용은 '군주는 이러해야 합니다.'가 아닌, '군주는 이렇습디다.'이다. '내가 여러나라를 다녀보고 역사도 많이 공부했는데, ..
2025.06.02
-
호시우보(虎視牛步)의 마음으로 걷자 : 박창희 <걷기의 기쁨>
15p걸을 때 우리는 무언가를 하는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걷기만큼 쉬운 것이 없지만, 제대로 걷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걸으면 감각이 깨어나고 머리가 맑아진다. 노폐물에 전 오장육부도 서서히 초기화된다. 잊힐 건 잊히고, 지울 건 지워진다. 머리가 가벼워지면 새로운 생각이 채워질 공간이 넓어진다. 오래 전 친한 후배가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다녀왔다. 그보다 더 좋은 수는 없다면서 꼭 한번 가보라고 추천했다. 그가 보여준 사진을 보며 가고자 하는 의욕을 불태웠다. 하지만 안나푸르나가 뒷동산도 아니고 그리 쉽게 갈 수 있는 곳인가. 가끔 안나푸르나의 그 비경을 사진으로 찾아보기도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떤가. 걷는 이들의 로망아닌가. 다녀온 지인도 꽤 되고..
2025.05.31
-
문제는 분배야, 이 바보야! : 폴 크루그먼 <폴 크루그먼의 경제학의 향연>
규제를 풀고 세금을 줄이면 경제가 살아난다. 위의 명제는 참인가 거짓인가. 우리나라 보수 정치가들은 이 명제를 진리로 안다. 이명박, 박근혜, 심지어 문재인 정부도 이렇게 했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심하게 했다. 그래서 경제가 살아났는가?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시작은 레이건 시대로 본다. 레이건은 1980년부터 8년간 미국 대통령이었다. 이후 아버지 부시가 대권을 잡아 4년을 집권하여 12년 동안 보수인 공화당이 집권했다. 이 시기에 경제학에서 보수에 있던 사람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수 경제학자와 정부의 경제 기획가들은 이 정책이 미국의 경제를 살릴 것이라 판단했다. 145p보수주의 경제학이 약속하는 핵심은 단 한 마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성장이다. 주드 와니스키와 아더 래퍼 같은 강경한..
2025.05.27
-
도자기집 개락당 김씨는 왜 가난한가? : 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자영업자가 가난한 이유 나는 자영업자다. 1999년부터 2019년까지 20년간 직장에 다녔고 임금근로자였다. 2019년에 과감히, 자발적으로, 심지어 다니던 회사의 반대도 무릅쓰고, 임금근로자를 때려치고 자영업자의 세계에 들어왔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하루 근로 시간은 9.8시간이고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약 52시간이다. 직장인과 별로 차이가 안난다고?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여기에는 프리랜서나 전문직(의사, 변호사 등)도 포함되어 있고, 이것의 평균을 따지니 그렇게 나왔다. 음식점이나 까페는 주당 60시간 이상, 편의점이나 소매점은 55시간 내외다. 직장인보다 평균 20%정도 더 일한다. 그래서 얼마를 버냐 하면, 평균 연소득이 4,040만원이다. 이것도 평균의 함정이다. 의..
2025.05.25
-
1899년 미국 특권 계층 관찰기 :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베블런 효과 : 가격이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가 떨어지고,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가 증가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요 공급의 원칙이다.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당연한 선택이다. 하지만 사치재라 불리는 것들은 다르다. 명품, 고가 자동차, 보석 등의 일부 비싼 물품은 가격이 오를수록 더 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당연하게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서다.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을 나는 가지고 있다. 너거는 이런 거 없지?" 이런 심리다. 그런데 이런 건 부자들에게서만 보이는 현상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자신의 SNS에 명품 브랜드를 아주 살짝 노출되게 하여 올린다. 혹은 남들 일하는 시간에 ..
2025.05.22
-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어른, 김장하 : 김주완 <줬으면 그만이지>
전국민이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긴장한 얼굴로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고 외치던 그 분. 그 분은 일약 대한민국의 스타가 되었고 국민들의 찬사가 더해졌다. 그 분이 행했던 과거의 미담들이 회자되었고, 그 중에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의 발언이 화재가 되었다. 저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독지가 김장하 선생을 만나 대학교 4학년까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사법시험에도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아라'고 하신 말씀을 저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 분은 김장하..
2025.05.20
-
박수근과 박완서의 인생을 엿보았다 : 김금숙 <나목>
작년에 불암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사람들과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마을 벽을 장식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그림의 주제는 불암이라는 동네를 상징하는 것으로, 불암에서 나온 부처바위와 불암의 풍경 등을 그렸다. 그 외에 우리의 옛 정서가 잘 드러나있는 박수근의 그림도 그려보자는 의견이 나와서 함께 그렸다. 박수근의 그림은, 그 이유는 모르지만 끌린다. 빨래하는 사람, 아이업은 여인, 시장, 골목, 나무 등 그가 그리는 것들은 우리 주변에서 늘 보던 것들이다. 그래서일까, 친숙하고도 따뜻하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먹먹함도 느껴진다. 그림을 그리는 공방의 선생님과 마을 사람들도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추천을 했을테고. 함께 힘을 모아 작품을 만들었다. 초상화부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을 ..
2025.05.17
-
우리는 자유롭게 자라나는 나무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사회는 어디까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나 밀이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는 하는 바는 뚜렷하다. 사회가 개인을 상대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답을 하려고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개인을 그냥 놔둬라, 이다. 밀은 이를 설명하면서 세 가지의 자유를 강조했다. 첫째가 생각하고 표현하는 자유, 둘째가 내 삶을 내가 꾸릴 자유, 세째는 모임을 만들 자유다. 이 결사의 자유를 사회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라고도 했다. 밀은 당연한 이야기를 어렵게 썼다. 옳지 않은 의견에 침묵을 강요해서는 안되는 이유 특히 표현의 자유에서,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침묵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소수의 의견이 진실이거나 일부..
2025.05.16
-
나는 울면서 읽었다 : 정소연 <발달은 느리고 마음은 바쁜 아이를 키웁니다>
내 아이가 어느 날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나는 어떨까? 여기 그런 진단을 받은 평범한 엄마가 있다. 그 순간에 "인생의 두꺼비집이 갑자기 탁 하고 내려간 것 같았다."라고 그 엄마는 말한다. 도대체 왜 내 아이한테? 내가 뭘 잘못했기에? 절망이 먼저 오고, 현실을 부정하고, 인생을 복기해 본다. 부정과 분노의 단계를 거쳐 현실을 직시한다. 아이에게 맞는 치료법을 찾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살핀다. 하지만 조금 나아지는가 싶으면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힘겹지만 다시 시작한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한다. 아이와 함께 웃고 아파하는 엄마의 이야기다. 온 마음을 다해 느린 다온이를 살피다, 미처 손길이 가지 못한 형 다준이의 상처를 발견하고 엄마가 무너지는 장면에서 나도 무너졌다. 둑..
2025.05.15
-
모르는 사람들의, 그러나 알아야 하는 이야기 : 이승우 <모르는 사람들>
11p아버지가 왜 떠났는지 오랫동안 궁금했다. 그 궁금증 속에는 아버지가 무엇으로부터 떠나려 했을까, 하는 질문이 숨어 있다. 무엇으로부터 떠났고 떠나려 했는지 안다면 왜 떠났고 떠나려 했는지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 것 같다. 그는 집을 떠나고, 일터를 떠나고, 나와 어머니를 떠나고, 나와 어머니가 포함되어 있는 가족을 떠나고, 그리고 여기, 이 세상을 떠났다. 이 세상은 견디는 것이다, 라고 말한 아버지가 11년 전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졌다. 러시아 국적의 보잉 747이 추락한 날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이름이 탑승자 명단에 없었음에도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고 믿었다. 아버지 회사의 광고 모델인 그 여배우의 이름이 탑승자의 명단에 있는 걸 보고서였다. 21p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
2025.05.12
-
시스티나 성당에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 로버트 해리스 <콘클라베>
오늘 새벽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추기경단의 비밀 회의인 콘클라베 둘째날에 제267대 교황이 선출되었다. 수석 추기경은 성 베드로 성당 발코니에서 하베무스 파팜 - 우리에게 교황이 탄생했다 - 을 외쳤다. 페루에서 오랫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새 교황이 되었다. 이름은 레오를 택했다. 열네 번째 레오 교황, 레오14세의 탄생을 모두가 축하했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善終,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죽음을 뜻하는 말)하셨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그 착하게 생기신 얼굴이 인상적이었고,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직접 오셔서 유족들을 위로하셔서 우리에게도 친근한 교황이었다. 늘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 편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
2025.05.09
-
이중섭의 꽃 같이 빛나던 시절 : 김탁환 <참 좋았더라>
이중섭 (1916 ~ 1956): 가장 따뜻한 그림을 남긴 가장 외로운 화가 사각의 링에선 복서래 달아날 곳이 없구, 사각의 원고지에선 문인이래 숨을 곳이 없구, 사각의 도화지에선 화가래 물러날 곳이 없다. (88쪽) 넷 중 혼자만 한국에 남은 뒤에도, 이중섭은 줄기차게 가족을 그렸다. 나랏법이 방해하고 바다가 가로막더라도,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당장 도쿄로 가진 못하지만, 그림은 얼마든지 보낼 수 있었다. 편지에 하나하나 정성껏 그렸다. 가족이 함께 끌어안고 노니는 그림으로 아내와 두 아들을 위로하고 응원했다. 문자보다 그림으로 생각과 감정을 더 많이 주고받아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35쪽) 가형께 배운 거이야. 골동을 알아보는 눈이 나보다 열 곱 탁월햇디. 딱딱한 이론이 아..
2025.05.08
-
봉하마을의 '부끄럼 타는 집' : 노무현재단 <노무현 대통령의 지붕 낮은 집>
시민 노무현을 만나는 충실하고 세심한 안내서 이 책은 봉하마을에 있는 '노무현대통령의집'에 관한 해설서입니다. 2018년 대통령의 집이 시민들에게 문을 열고, 이 집에 대해 시민들에게 안내하고 있지만, 집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다 들려드리기에는 부족하여 이 책을 발간했다고 서문에 나옵니다. 특히 뜻이 있어도 오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책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고향인 봉하마을로 내려오게 된 계기, 설계자인 정기용 선생과 함께 집을 설계하면서 요구한 것들, 정기용 선생의 초기 스케치, 퇴임 후 이 집에 거주하면서 했던 다양한 활동, 집의 세부 공간에 표현된 건축적 의도에 대한 설명,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기억과 사연 등이 담겨 있습니다.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에..
2025.05.07
-
봄날 저녁 옥상의 북콘서트 : 김종희 <슈만의 문장으로 오는 달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잡고 이별한 님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하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더라 - 매창 (1573~1610) 어느 겨울 매창 뜸을 찾았습니다. 겨울 햇살을 덮고 누워있는 그에게 '이화우 흩날릴 제' 한 잔 올렸습니다. 육신은 비쩍 마른 연 대궁처럼 버석거려도 이화우 흩날리듯 걸어올 정인을 기다리는 그의 어깨에 기대어 '이화우 흩날릴 제' 음복주를 오래도록 혀에 담았습니다. 문살에 부딪히는 달빛 같은 향기가 목을 넘어가다 되넘어 왔습니다. 사랑이 깊은 만큼 외로움도 깊었을 그의 마음이 주련처럼 걸렸습니다. (82쪽, '이화우 흩날릴 제' 중에서) 한뫼책방은 김해인물연구회 산하의 독서모임입니다. 김해 출신인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 한뫼 이윤재 선생의 호를 따서 모임 이름을 지었다고..
2025.05.02
-
쿠르츠게작트의 코리아 이즈 오버 : 조국 <가불 선진국>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0.72입니다. 지금 한국인이 100명 있다고 가정해보죠. 여자는 절반인 50명입니다. 그럼 50명이 0.72의 출산율로 아이를 낳으면 36명이 됩니다. 100명의 한국인이 한 세대가 지나면 36명이 됩니다. 같은 방법으로 한 세대가 더 지나면 13명이 됩니다. 한국인 100명이 있었는데, 손자 손녀들은 13명이 된 겁니다. 그 다음 세대까지 계산해보면 5명입니다. 한 세대가 약 30년이라고 잡으면, 90년 후는 현재 인구의 5%가 되는 겁니다. 무슨 안드로메다 숫자 같이 느껴지지만,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닙니다. 제가 출생한 1972년도에는 약 95만3천 명이 태어났습니다. 첫째인 산이가 세상에 나온 2002년엔 49만6천 명이 태어났구요, 2024년엔 24만8천 명입니다. 제 아이..
2025.04.28
-
나는 그레고르의 가족을 비난한다 : 프란츠 카프카 <변신>
내 친구 용석이의 어머니는 10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급하게 병원으로 옮겼으나 몸은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의식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는 그나마 부여잡고 있던 의식도 끊어졌고 음식도 관을 통해서 넣는, 말하자면 기본적인 생체 기능만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용석이는 그런 어머니를 뵈러 한 달에 한 두번은 꼭 내려온다. "이제 엄마 보내드려라. 할 만큼 했다." 어제 함께 저녁을 먹으며 내가 말했다. "어제 엄마한테 갔는데, 컨디션이 좋아서 웃으시는 같더라. 내나 누나나 별 한 것도 없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지 가늠할 수 없지만, 나는 안힘들다." 라며 석이는 웃었다. 당신이 스스로 생명을 내려놓지 않는 한 친구는 의도적으로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결정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
2025.04.26
-
방호산, 조선의용군 장군에서 북한군 최고 전략가로 : 배대균 <마산방어전투>
북한군의 정예부대는 항일 투쟁의 조선의용군 출신이다. 6.25 전쟁은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싸운 비극입니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전쟁 초기 북한군 주력 부대의 대부분이 조선의용군과 팔로군을 경험한, 항일 투쟁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연합군의 상대가 독립운동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되어버리는 기막힌 운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6.25전쟁은 당시 38선 최전선에 포진한 인민군 7개 사단, 21개 보병연대가 탱크와 중포의 엄호 하에 대남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다. 21개 보병연대 중에서 47%인 10개 연대가 만주에서 건너온 조선 의용군 부대이다. 이처럼 대남 공격의 제1진 병력에서 조선의용군 사단병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았다. 7개 사단 가운데 제4사단장 이권무..
2025.04.24
-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 : 제시카 브루더 <노마드랜드>
평생 쉼 없이 노동하는그러나 집 한 채 가질 수 없는 삶에 대하여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구매한 금융 기관들이 대출금 회수 불능 사태에 빠지기 시작했다. 은행들과 은행에 투자했던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그리고 피해는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은행에 자산을 맡기고 주택 할부금을 내고 있던 사람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미국에서만 5조 달러 가량의 연금, 퇴직금, 저축이 증발했다. 2008년 기준으로 미국 내 주택 중 압류된 주택의 비율은 87%퍼센트에 달했고, 사태가 진정되었을 무렵에는 미국인 약 800만 명이 일자리를, 600만 명이 집을 잃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에 등장하는 노마드들 대부분은 이 시기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이다. (415쪽) 린다는 두 개의 건축공학 학위..
2025.04.23
-
보수는 폭력이다 : 제임스 길리건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위험한가>
공화당이 정권을 잡으면 살인과 자살이 늘더라 미국에서 폭력의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한 정신의학자가 있습니다. 그가 분석한 자료는 지난 100여 년 동안 미국 정부가 발표한 살인율과 자살율의 통계였습니다. 그는 자살율과 살인율이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즉, 자살율이 올라가는 시기엔 살인율도 함께 올라갔습니다. 또 있습니다. 사실 이게 훨씬 중요한 사실인데요, 살인율과 자살율이 급증하는 세번의 시기가 모두 공화당 소속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와 겹친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당연하게 급감하는 시기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였습니다. 아니, 이런 무지막지한 우연이 있나? 하고 통계가 정확한지 여러각도로 꼼꼼하게 검토를 해보았으나 숫자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불평등이 커지면 살인과 자..
2025.04.22
-
사회적 아픔 너머 희망의 다크 투어리즘 : 김명식 <공간, 시대를 기억하다>
김명식 작가의 전작 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 제목처럼 역사의 아픔을 기억하려는 건축물들이 책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유럽 건축 여행, 특히 베를린에서는 이 책이 답사의 길잡이가 되어주었습니다. 4년 전쯤 동네 책방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장에게 부탁하여 작가를 모시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더랬습니다. 그리고 이번 책 는 전작과 이어지고 있습니다. 부제가 입니다. 다크 투어리즘은 '흑역사 탐방'쯤으로 직역할 수 있으나, 아픈 기억을 품고 있는 공간에서 희망을 읽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손쉽게 다가갈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일상적인 공간으로 바꾸어 보려고 하는 작가의 바램도 담겨 있습니다. 책은 2022년에 나왔습니다. 꽤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의 건축책들..
2025.04.21
-
두려워 마세요, 꼭 버티세요. : 마이라 칼만 <우리가 인생에서 가진 것들>
여자들은 무엇을 가지고 있나? 집과 가족.그리고 아이들고 음식.친구관계.일.세상의 일.그리고 인간다워지는 일.기억들.근심거리들과슬픔들과환희.그리고 사랑. 남자들도 그렇긴 하지만,그닥 비슷한 방식은 아니다. 때로,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특별히 행복하거나 만족스러운.그럴 땐 수많은 사람을 내가 다 먹여 살릴 수 있을 것만 같다.온 세상을 품에 안을 수 있을 것만 같고. 하지만 어떨 땐, 작은 방조하 겨우 가로지른다.나는 두 팔을 축 늘어뜨린다. 얼어버린다. 그럴 땐다시금 돌아간다.나의 할머니,내 어머니, 내 이모들,나의 자매, 나의 딸,내 손녀들,내 사촌들에게로.내 친구인여자들에게로. 우린 숱한 시간 동안서로 이야기해왔다. 가질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그리고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그리고 정말이..
2025.04.20
-
최초로 공개된 지리산 빨치산 수기 : 이태 <남부군>
대장 동무는 꼭 살아서 돌아가주세요.그리고 역사의 수레바뀌에 깔려 죽어간 우리들의 삶을 기록해주세요. 작가는 1950년 6월 29일 조선중앙통신사의 기자로 전주 지사에 내려갑니다. 9월에 조선노동당 전북 도당의 명령으로 엽운산 골짜기에 들어가 '조선노동당 전북도당 유격사령부' 대원, 즉 빨치산이 됩니다. 그의 나이 28살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산 속 생활이 시작되어 1952년 3월 지리산 기슭 덕선에서 체포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는 빨치산의 체험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으나 정상적인 사회 생활의 어려움, 그리고 그 악몽같았던 기억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잠재적인 본능으로 쉽게 시작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20여 년의 시간이 흘러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긴 그는 '내가 ..
2025.04.14
-
1가구 1주택의 대안은 공동체의 공간 : 야마모토 리켄, 나카 도시하루 <탈 주택>
아이들 셋 모두 집을 떠나 산다. 강이는 회사 사장님의 집 한 칸을 빌려 살고, 산이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 살며, 들이는 자취방을 월세로 구해 살고 있다. 언젠가 들이와 서울 데이트 때 "아빤 뭐했어요? 대기업을 20년이나 다니면서 서울에 집도 하나 없고." 이렇게 물었다. "그러게, 뭘 했을까. 심지어 집 짓는 회사를 다녔는데." 사실 좀 쪽팔렸다. 특히 딸내미 집은 좀 좋은 걸 구해주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막내가 사는 화곡동, 딸이 사는 보광동은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간 언덕배기에 조그만 집들이 꽉꽉 들어찬 모양새다. 근사한 거리에 깔끔하고 모던한 집들이 그렇게 많은데.... 이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자기들이 사는 집에 만족한다. 서촌이나 삼청동 어디쯤에 마당이..
2025.04.09
-
관식이와 애순이, 윤이상과 이수자 : 윤이상 <여보, 나의 마누라, 나의 애인>
엄마는 아빠가 절대적으로 내 편인 것 같지.아니야.엄마랑 나랑 붙잖아, 아빠 100% 엄마 편이야.내가 1번이면 엄마는 0번, 0번.아빠한테 엄마는 절대 반지라고 본다.건들면 죽어. 관식이에겐 애지중지 키운 딸 금명이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애순이다. 나이가 들어도 그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래, 그렇지, 그래야지. 딸이 아무리 예뻐도 마누라 다음이지. 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다르다. 신혼 혹은 아이가 자랄 땐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이 다 커서도 아내가 0순위인 남편이 몇이나 될까. 넷플릭스 드라마는 잘 안보는 편인데, 요즘 를 안보면 사람들이랑 대화가 되질 않아 나도 봤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었다. 애순이와 관식이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나와 나의 아내, 우리 엄마와 아부지, 그리고 우리 ..
2025.04.08
-
나는 이랑의 노래로 위로를 받는다 : 초록담쟁이 <그 날들이 참 좋았습니다>
삶과 잠과 언니와 나 언니난 언니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좋았어나와 다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 모습을언제까지라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내가 부끄러워하는 옷을 입고내가 부끄러워하는 소리로 웃고커다란 개와 커다란 차를 타고내가 어려워하는 길을 앞서 걸으며언니가 해주려 했을 말들이 난 궁금해쓰려 했을 일기와 주려고 했을 다음 생일 선물이 난 궁금해추려 했던 춤과 들으려 했던 음악읽으려던 책과 미처 열어보지 못한 중국에서 온 택배 언니사람들은 언니의 삶이 아깝다고들 말을 해10년, 20년 뒤였다면 모두 고개를 끄덕였을까언젠가 내 시간도 그리 귀하지 않은 때가 올까그때가 되면 무엇도 아까워하지 않고 우린 잠이 들까 삶과 잠과 언니와 언니의 자랑 들이야 무슨 노래 틀까?이랑이요. 이랑은 ..
2025.04.02
-
환한 빛을 품은 새벽이 나에게도 찾아오려나 : 세오 마이코 <새벽의 모든>
생리증후군의 그녀 후지사와 생리는 병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사람이 많다. 생리를 이유로 쉬면, 같은 여자인데도 염치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PMS가 병의 범주 안에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고, 동정이나 걱정도 원치 않는다. 그래도 기분 문제는 절대 아니다. 몸이 도저히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 공황장애의 그 야마조에 간혹 고독이 밀려오는 순간이 있다. 얘기하고 싶다. 생각은 그렇지만, 상대가 없다. 나는 이렇게 혼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앞으로도 내내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없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 우울했다. 벌써 몇 번이나 경험했지만, 발작은 여전히 무섭다. 생리증후군을 앓고 있는 그녀, 한 달에 한 번 짜증과 분노를 제어하지 ..
2025.04.01
-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현상이다 : 에밀 뒤르켐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1. 우리나라 인구 10만 명 당 자살율은 얼마인가? (2023년 정부 통계 자료 기준) 그리스 : 3.9코스타리카 : 7.1오스트리아 : 11.0뉴질랜드 : 12.1미국 : 14.7일본 : 15.6울나라 : 27.3 (남자 38.3, 여자 16.5) 독보적 일등 2. 그래서 몇 명이나 자살하는데? 2023년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 : 13,978명매일 하루에 38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3. 10대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무엇일까? 1위 : 자살 46%2위 : 암 13%3위 : 교통사고 8% 참고 : 미국은? 1위 : 사고 36%2위 : 살인 21%3위 : 자살 18% 남에게 죽는 미국 청소년, 스스로 죽는 한국 청소년심지어 10대, 20대, 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 4. 일하다가 죽는 사람..
2025.03.28
-
시골 공방의 컨텐츠를 먼저 보여주는 AI가 필요해 : 유발 하라리 <넥서스>
지난 주말 좀 멀리 있는 식당에 핸드폰을 두고 오는 바람에 꼬박 하루를 핸드폰 없이 생활하는 경험을 했다. 평소 잠자리에 들면 누워서 쇼츠를 본다. 뒤척거리며 보다 보면 한 시간은 훌쩍 지난다. 핸드폰이 없으니 불 끄고 바로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알람도 없이, 평소 핸드폰 알람을 맞춘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잠에서 깼다. 평소보다 개운한 느낌이 분명히 들었다. 책을 읽었다. 읽은 분량이 핸드폰이 옆에 있을 때와 비교해서 두 배 이상이었다. 독서의 집중력도 훨씬 좋았다. 산책을 했다. 평소에도 산책을 하지만, 보통은 귀에 이어폰을 꼽고 뭔가를 들으면서 산책을 한다. 핸드폰 없이 산책을 하니 하늘이며, 나무며, 꽃이며, 전봇대의 전선이며, 사람들의 모습 등이 훨씬 선명하게 보였다. 겨우 하루 동안..
2025.03.24
-
국외독립운동가 이야기 -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 김동우 <뭉우리돌의 바다>
1.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활동지 : 인도 델리 레드 포트 델리 레드 포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주인도 영국군 총사령부 주둔지로 사용된 곳이다.우리에겐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활동지로 의미가 크다. 인면은 인도와 버마를 뜻하고 전구는 전투 지역을 말한다. 이를 이어 붙이면 인도 버마 전투 지역에 파견된 공작대가 된다. 인도에 간 광복군, 좀 생소한 이야기이지 않나. 그들은 누구였고 어떻게 인도까지 가게 된 걸까. (30쪽) 생소한 이야기 맞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1943년 8월에 공작대 대장 한지성을 포함해 9명의 광복군이 해방될 때까지 인도에서 활약했다. 이들은 영국군과 연합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임시정부가 광복군을 인도까지 보낸 까닭은 2차 세계대전의 참전국 지위를 확보하기..
2025.03.19
-
국외독립운동가 이야기 - 러시아 네덜란드 : 김동우 <뭉우리돌의 들녘>
1. 최재형 고택 : 러시아 우수리스크 이범윤은 최재형과의 첫 대면에서 고종이 하사한 마패를 내보이며 지위로 상대를 억누르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장면은 이범윤의 성품을 대략 추측케 하는데, 처음부터 조선 황실의 피가 흐르는 자신과 최재형을 동격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불행하게도 이범윤과 최재형의 미묘한 신경전은 봉합될 기미 없이 악화일로를 겪게 된다. (75쪽) 연해주의 독립운동사에서 어딜 가나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페치카'라 불리는 최재형이다. 페치카는 러시아어로 난로라는 말인데, 연해주의 거의 모든 한인과 독립운동 뒤에는 최재형이 있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저격에 총을 구해준 이도 최재형이다. 이범윤은 러시아 공사인 이범진의 동생이며 당시 간도관리사였다. 소설 에서 ..
2025.03.18
-
인간의 이성은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을 수 없나? : 유시민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세상은 점점 더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무역을 하면 기본적으로 좋은 물건을 싼 값에 얻을 수 있음에도 트럼프는 관세라는 채찍을 무기로 여러나라를 협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게 나라를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자원을 뺏을라고 굴욕적인 조약을 강요하고 있다. 이에 유럽은 앞다투어 무기를 만드는데 더 많은 돈을 쓰겠다고 한다. 나라 간의 전쟁은 더 잔혹지고 있고, 더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아프리카는 이전보다 많은 쿠데타가 일어나서 백성들이 잘 살기는 더 어렵다. 중국의 독재는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한때 기후 위기를 걱정해서 세계가 힘을 모아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으나 이젠 나만 잘 살면 된다고 외친다. 미국은 이미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했으며 더 많은 석유를 캐려 하고 있다. 유럽도 에너지..
2025.03.17
-
너희가 노인력을 아느냐 : 아카세가와 겐페이 <노인력>
그런데 그걸(라이카 M6 카메라) 잃어버렸다고 했다. 뭐라고? 어디에서 잃어버렸는데? 이렇게 묻자 그걸 알면 안 잃어버렸을 거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상황을 떠올려보면 술집이나 택시에서 잃어버린 듯 한데 술집이라면 다카나시 씨는 늘 가는 단골집이 있는데다가 사진 쪽에서는 유명하니 M6을 놓고 와도 잃어버릴 일은 없다. 그렇다면 역시 택시 아닐까. 노인력 덕분이다. 그럴 만했다. 이제 환갑도 지났으니 착착 진행된다. 기억은 꽤 날아갔고, 시력도 꽤 날아갔고, 다리와 허리도 꽤 날아갔으며, 수면 시간도 날아가 아침 일찍 눈이 떠지니 라이카 M6도 날아갔다. 그런데 너무 속상하다. 상당히 심각하다. 아니 노인력이 상당히 많이 강해졌다는 증거다."당신 실력이 꽤 늘었군." 이런 말을 듣는다면 기분이 나..
2025.03.11
-
사랑한다고 말하라 : 조너선 샤프란 모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그날 아빠가 빌딩에서 나한테 전화를 했단다.뭐라고요?아빠가 빌딩에서 전화를 걸었어.엄마 핸드폰으로요? 아빠가 뭐라고 했어요?거리에 있다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고 했어. 집으로 걸어가는 중이라고 그랬어.하지만 아니었죠.그래.엄마가 걱정할까 봐 거짓말을 한 거군요.맞아.하지만 아빠도 엄마가 안다는 걸 알고 있었죠.그래. 엄마가 다시 사랑을 해도 전 괜찮아요.다시 사랑을 하지는 않을 거야.엄마가 다시 사랑을 했으면 좋겠어요.절대로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을 거야.제가 걱정할까 봐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돼요.널 사랑한단다. (452쪽) 2001년 9월 11일, 나는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날은 휴일이었는데, 무슨 영화를 찍나 싶었다. 두 번째 비행기가 무역센터 빌딩에 부딪히는 장면은 실시간으로..
2025.03.09
-
드라미틱한 삶을 살아가는 탈북민 이야기 : 주성하 <북에서 온 이웃>
1961년 8월, 당시 19세의 동독 병사 한스 콘라트 슈만은 철조망을 뛰어넘어 서베를린으로 넘어왔습니다. 베를린 장벽 건설 3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서독의 사진 작가가 찍었고, 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사진은 그 다음 날 신문 1면에 기재되었고, 분단 독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2011년 베를린 장벽 붕괴에 관한 문서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가 되었습니다. 서독으로 넘어온 슈만의 삶은 어땠을까요? 하루 아침에 영웅으로 취급을 받았고, 바이에른에 정착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습니다. 아우디 자동차 공장에서 오래 일을 했습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그는 진정한 해방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후 그는 동독에 가서 가족을 만났으나 냉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슈만..
2025.03.01
-
진영 보도연맹 학살 사건의 재구성 : 조갑상 <밤의 눈>
2024년 10월에 최대성 한림면장 추모사업 설명회가 열렸습니다. 보도연맹 학살이 일어났던 1950년 8월, 최대성 한림면장은 당시에 구금되어 있던 100여 명의 면민을 모두 석방하였습니다. 김해에서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은 모두 272명이었는데, 최대성 면장의 이런 현명한 판단과 노력으로 한림 지역의 피해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국민보도연맹(보도연맹, 보련)은 좌익에 몸 담았다가 전향은 사람들을 가입시켜 만든 단체입니다. 이승만 정권이 빨갱이 전력이 있는 사람들을 쉽게 관리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많았고, 일반인들도 있었습니다. 625가 발발하고, 보도연맹 사람들이 북한군에 협조하거나 입대한다는 보고를 받은 이승만은 이 빨간 놈들을 모두 처단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2025.02.27
-
비트라 캠퍼스에 다녀왔습니다 : 이용수 이정은 <자전거를 유럽 도시 읽기>
요즘 책장에 꽂힌 지난 책들을 다시 보는 재미에 빠졌습니다. 이 책은 6년 전(벌써 6년이 되었네요) 유럽 여행 가기 전에 참고로 한 책입니다.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한 책인데 저자가 건축가이다보니 주로 건축물을 보고 감상을 적었습니다. 다시 읽으니 이 책을 참고로 해서 많이 다녔네요. 이 책에 비트라캠퍼스가 나옵니다. 나도 갔더랫습니다. 유럽 여행 일정에 바젤을 넣은 건 순전히 비트라 캠퍼스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비트라 캠퍼스는 스위스의 가구 브랜드인 비트라의 공장이 있는 곳입니다. 1981년 불이 나서 비트라 공장 대부분이 소실되었습니다. 이후 비트라의 사장인 롤프 펠바움이라는 양반이 공장 부지의 건축물들을 세계적인 건축가들에게 맡겼습니다. 프랭크 게리, 알바로 시자, 안도 다다오, 자하 하디드, 헤..
2025.02.27
-
카토 토키코의 명곡, 가끔은 옛날 이야기를 : 미야자키 하야오 <붉은 돼지>
친구 : 이거 해석 쫌 해도고.나 : 야~~ 이거 언제적 편지냐? 친구 : 2000년도 다이어리에 낑기가 있는 거 주섰다.나 : 이걸 아직 가지고 있는 게 용타. 아직 해석 안한 거는 더 용하고. 친구 : 번역해가 올리라.나 : 안 알랴줌. 니가 직접 해보시게. 오래된 친구에게서 카톡이 날라왔습니다. 아주 오래 전 히로시마 대학교를 지을 때 친구에게 쓴 편지입니다. 그 편지를 친구가 뜬금없이 보내온 겁니다. 편지가 반가왔고, 그걸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친구가 더 반가왔습니다. 어릴 때 부터 함께 자란 친구입니다. 세상에서 친구가 가장 중하다고 여길 때 함께 놀던 친구입니다. 다들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고 이젠 예전처럼 자주 볼 수 없습니다. 명절이나 친구들 부모님의 부고가 있을 때 얼굴을 봅니다. 편지..
2025.02.25
-
달마가 되는 비법서 : 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무한>
2003년에 닉 보스트롬이 라는 논문을 냈다. 이 논문은 '인류 문명이 발달하다보면 언젠가는 컴퓨터로 인간의 의식을 재현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라는 전제를 제시했다. 물론 현재는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밀리초당 10의 17승 정도의 연산이 가능한 컴퓨터가 나오면 인간의 뇌를 재현할 수 있으리라고 추측했다. 이 전제를 받아들일 경우 아래 세 가지 명제 중에서는 하나는 분명히 참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1. 인류는 의식 재현 수준의 기술력에 도달하기 전에 멸망할 것이다.2. 기술력에는 도달하지만, 의식을 재현해내는 대규모 시뮬레이션을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3. 기술력에 도달하고 시뮬레이션을 만든다. 일단 2번은 거짓이다. 인간이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 있다면, 내가 주인공인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만들지 않..
2025.02.20
-
한국의 아이히만들 : 유시민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윤석열 탄핵 심판이 한창 진행중이다. 계엄령 부역자들에 대한 재판 및 청문회도 진행하고 있다. 계엄과 관련하여 명령을 한 자들, 명령을 받아 수행한 자들, 그리고 그 명령을 거부한 자들이 증인으로 나왔다. 주무 장관들, 장관 밑에 있던 차장들, 국정원의 요원들, 그리고 군인들이 나와서 계엄 상황을 설명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헌법을 위반한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으면서도 그럴 작정이 전혀 아니었다고 변명했다. 계엄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으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옮고 그름을 판단한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공통된 말들이었다. 이 책에서 유시민 작가도 언급했지만, 나치의 핵심 권력자이며 홀로코스트 기획회의에도 참가했고 유대인 학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아이..
2025.02.19
-
사형을 구형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 김현서 <김병곤 평전>
영광입니다! 검찰관님, 재판관님. 영광입니다. 사실 저는 유신 치하에서 생명을 잃고 삶의 길을 빼앗긴 민중들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걱정하던 차에 이 젊은 목숨을 기꺼이 바칠 기회를 주시니 고마운 마음 이를 데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213쪽) 오래전에 이 책을 데리고 와서 두었는데, 읽지 못했습니다. 나는 와 안읽는데? 하고 책이 자꾸 쳐다봤습니다. 쉬이 읽을 책이 아니라서 손이 안갔을까요? 책이 보내는 눈길이 심상치 않아 책을 끼고 도서관에 갔습니다. 김병곤 열사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습니다. 우리 고장 출신에,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는 것, 그리고 그 법정에서 현대사에 길이 남을 최후 진술(위의 글)을 했다는 것 정도입니다. 이 사실을 안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
2025.02.18
-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 김주혜 <작은 땅의 야수들>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603쪽) 역동의 시대에 다양한 인물들이 자기 삶을 치열하게 살아간다. 어떤 이는 세상과 타협하며 살고 어떤 이는 어려운 시대임에도 자신의 길을 꿋꿋이 찾아간다. 삶의 갈림길에서 한쪽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결과 어떤 삶이 더 나았다고 할 수 있는지, 소설을 읽으면서 각 인물들의 선택을 이해하고 그 결과를 볼 수 있으며, 그래서 누구의 삶이 더 나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옥희의 지원을 받아 성공한 한철은 성공을 위해 옥희를 버리고 성수의 딸을 선택한다. 이 결정을 납득할 수 없다. 욕을 한바가지 먹어도 싸다. 옥희는 왜..
2025.02.07
-
아마야도리, 당신의 품에서 비를 긋다 : 배삼식 <3월의 눈>
아마야도리라는 일본말이 있습니다. 사다 마사시의 노래 제목이기도 합니다. 일본어로는 雨宿り라고 씁니다. 한자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비를 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처마 밑이나 그 비슷한 곳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것, 또는 그 행동을 말합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네, 어떡하지? 우산도 없는데. 소나기 같으니 일단 저 건물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잠깐 기다리자. 그래서 비를 잠깐 피하고 있는데, 예쁜 여자가 머리에 맞은 비를 훔쳐내며 이 처마 밑으로 들어오네. 눈이 마주쳤다. 어, 말을 걸어야 되나? 뭐라도 해야 하나? 손수건을 건내면 많이 오반가? 네, 그렇습니다. 잠깐 비를 피하는 것이라는 뜻의 아마야도리는 그 단어 자체로도 좋지만, 그 단어에서 파생되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기대감이 있습..
2025.02.06
-
빨치산의 딸이 아버지를 보내며 :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1.인물은 박색이었으나 방물장수의 목소리는 갓 지은 찰밥처럼 좌르르 윤기가 흘렀다. 사회주의자고 뭐고 남자란 죄 야들야들한 암컷 앞에서 흐물흐물 녹아나는 모양이었다. 안방에서 귀를 세운 나는, 그렇다면 사회주의보다 더 강력한 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지금 생각해봐도 지극히 현실적인 결론을 뇌세포에 각인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콩 심은 데 반드시 콩이 나는 것은 아닌 법이다.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인 아버지의 피를 받고 그런 아버지의 교육을 받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현실주의자다. 남들에게는 빼도 박도 못하는 빨치산의 딸이겠지만. (11쪽) 2.어머니는 몇시간 전 세상 떠난 아버지가 북한을 비판하면 파르르 날을 세우던, 누가 보면 천생 사회주의자였다. 그런데 기실 어머니의 사회주의란 첫사랑, 좀 더 풀어..
2025.02.04
-
쇼츠를 끊고 싶습니다 : 요한 하리 <도둑맞은 집중력>
화장실에 가면 30분은 기본이고 한 시간도 앉아 있습니다. 일 하다가 잠깐 핸드폰을 봤는데 한 시간이 넘게 지났습니다. 밤에 잘 때는 두어 시간은 그냥 가버립니다. 쇼츠 이야기입니다.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이 쇼츠를 비롯한 유튜브입니다. 쇼츠를 보는 시간도 아까울 뿐더러, 더 중요한 것은 이넘에게 질질 끌려다닌다는 겁니다.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뭐도 하고 뭐도 하고 해야지 하며 계획을 세웠지만 이넘 때문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또 후회하고, 이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서 에잇, 될대로 되라며 대충 삽니다. 핸드폰을 없애버릴까요? 아님 어르신 폴드폰으로 바꿀까요? 이런 극단적인 선택 외에는 방법이 없을까요? '쇼츠를 끊어버리자'는 결심만으로는 잘..
2025.01.29
-
장애는 가치가 있는가? :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
싱어 : 당신이나 당신 아이의 장애를 치유할 수 있고, 그 비용도 겨우 2달러에 부작용도 전혀 없는 알약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 알약을 사용할 겁니까? 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알약을 사용할 거라고 생각해요. 테일러 : 글쎄요, 제가 볼 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 약을 사용하려고 하겠지만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싱어 : 그럼 당신은 사용하지 않겠다고요? 테일러 : 절대 사용하지 않을 거예요! 싱어 : 정말요? 테일러 : 장애인들은 항상 그런 질문을 받아왔어요. 장애인들이 그런 질문에 '아니요'라고 답할 수도 있다는 걸 비장애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이해하기란 정말 어려울 겁니다. 싱어 : 그럼 왜 당신이 그 알약을 쓰지 않겠다는 것인지 좀 더 이야기해주세요. 테일러 : 저는 예술..
2025.01.25
-
걷기 좋은 도시가 가장 살기 좋은 도시다 : 데이비드 심 <소프트 시티>
유럽은 자전거의 천국입니다. 자전거가 취미나 동호회 수준이 아니라 정말 하나의 교통 수단입니다. 자전거는 아주 효율적인 이동 수단으로, 어딜 가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북유럽 국가, 그리고 독일과 네덜란드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지난 유럽 여행때 암스테르담에서 4일 정도 머물렀는데, 자전거를 빌려 다녔습니다. 하루는 자전거로 한적한 길을 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쓩~~ 하고 추월하길래 보니 할머니였습니다. 무슨 자전거 축지법을 쓰는지 편안하게, 하지만 무지 빠르게 자전거를 타고 계셨습니다. 젊은 여자들도 치마 자락을 휘날리며 페달을 밟고 있었습니다. 아, 네덜란드는 이런 나라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구도심과 신도시, 시외,그리고 잘 정비된 ..
2025.01.23
-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의 아니키스트 : 야마다 쇼지 <가네코 후미코>
1. 내가 무적자라는 게 나의 죄일까? 나는 무적자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만이 아는 일이었고, 그 책임도 두 사람에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학교는 나에게 그 문을 닫아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경멸해 마지않았다. 육친인 할머니마저도 내가 무적자라는 이유로 멸시하고 협박했다. (, 본문 44쪽) 가네코 후미코는 1903년 1월 25일 요코하마시에서 장녀로 태어난다. 어릴 때는 호적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아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1912년 충청북도 청주군 부용면 부강리에 있는 고모 집안에서 성장한다. 7년 동안 조선에서 살면서 학대를 받은 그는, 비슷한 처지에 있던 조선인들에게 깊은 이해와 공감을 가지게 된다. 2.지금까지 얇은 베일에 싸여 있던 세상의 모습이 점..
2025.01.23
-
노벨문학상 작품을 원어로 읽었다 : 한강 <희랍어 시간>
한강 작가 2024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여덟 살 때의 어느 날을 기억합니다. 주산학원의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오자마자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맹렬한 기세여서, 이십여 명의 아이들이 현관 처마 아래 모여 서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습니다. 도로 맞은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보는 듯 그 처마 아래에서도 수십 명의 사람이 나오지 못하고 서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발을 보며,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느끼며 기다리던 찰나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나와 어깨를 맞대고 선 사람들과 건너편의 저 모든 사람이 '나'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저 비를 보듯 저 사람들 하나하나가 비를 보고 있다. 내가 얼굴에 느끼는 습기를 저들도 감각하고 있다. 그건 수많은 일인칭들을 경험한 경이..
2025.01.17
-
윤씨가 독방에 갔다 내 그럴 줄 알았다 : 강만길 <20세기 우리 역사>
계엄령 발표 이후 온 나라의 관심은 대통령 탄핵이었다. 결국 오늘 대통령은 체포되었다. 이제 대통령은 햇볕을 보는 일이 없을 것이다. 곧 구속이 되고, 파면이 되고, 감옥에 갈 것이다. 돌이켜보면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빨리 계엄 해제를 하지 않았다면, 시민들이 국회로 모이지 않았다면, 양심 있는 군인이 없었다면,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런 멍청한 인간들로부터 위협 받을 정도로 얇았던가? 아니면 이렇게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의 힘이 대단한가? 물론 후자긴 하지만 그래도 반성할 여지는 충분하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우리 시민들이 힘겹게 쌓아올린 이 민주주의를 무자비하게 밀어버릴 시도를 했던 주도자를 철저하게 심판해야 한다. 다시는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
2025.01.16
-
춥고 어두운 겨울밤에 따스한 슬픔의 불빛이 켜진다 : 클레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11쪽, 소설의 첫 문장) 1985년 겨울, 아일랜드의 작은 도시 뉴로스, 여기에 사는 펄롱은 땔감과 석탄을 팔면서 살아간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가 없었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많은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바르게 성장했고, 지금은 아내와 다섯 딸을 돌보며 지역에서도 신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좋은 남자이자 남편이고 아버지다. 그런 펄롱 덕에 그의 가족은 물질적인 어려움 없이 단란하고 행복하다. 어느 날 땔감을 배달하러 간 수녀원..
2025.01.12
-
우당 이회영의 아내 이은숙 회고록 : 이은숙 <서간도시종기>
들이가 서울에서 미처 가지고 오지 못한 짐이 있어 차를 몰고 서울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하루에 갔다오기는 부실한 허리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아 오후쯤 출발해서 하루 자고 다음날 짐을 찾아 오기로 했습니다. 모처럼의 서울 나들이에, 딸과 함께 하는 일정이라 신났습니다. 반나절 정도의 데이트 코스를 알아보았습니다. 먼저 떠오른 건 이회영 기념관입니다. 몇 달 전 새로 개관했다는 소식을 얼핏 보았는데,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그래, 우당 선생이면 당연히 가서 뵈어야지. 지도를 찾아보니 경희궁 뒷쪽입니다. 근처에 딜쿠샤가 있습니다. 복원하기 전의 황량한 딜쿠샤를 간 적이 있었는데, 이젠 깨끗이 단장한 딜쿠샤도 만날 수 있겠군요. 주차는 서울역사박물관에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서울역사박물관 - 경희궁 - 홍난파..
2025.01.11
-
위대한 교육실천가 강성갑 : 홍성표 <한얼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대학을 나오고 서울 바닥에 눌러 앉아 월급쟁이나 할 생각은 버리고 농촌으로 오시오. 농촌을 움직이는 사람이 결국은 조국을 움직이게 됩니다. 한 5년이나 10년, 딴 생각말고 농촌에 묻혀 농민들을 도우며 그들와 더불어 사는 사람만이 대한민국의 주인이 될 겁니다.” 1949년 여름, 연희대학교의 강당에서 강성갑 선생이 했던 말이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은 농업이었고, 국민들의 대다수가 농업에 종사하였기에 농촌의 문제가 곧 나라 전체의 문제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부터 소수의 지주와 다수의 소작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신분상의 문제, 빈부격차, 차별 등은 해방이 되어서도 가장 심각한 사회 경제적 문제였다. 선생은 이것을 해결해야 모두가 행복한 새로운 나라가 될 것이라 믿었다. 강성갑 선생은 1912..
2025.01.08
-
김해의 인물을 도심 한복판에서 만나다 : 박용규 <우리말 우리역사 보급의 거목 이윤재>
김해인물열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2015년에 김해뉴스에서 발행한 것으로 우리 고장 출신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인물로는 임진왜란 김해를 지킨 사충신, 조선 사기장의 대모 백파선, 김해 부사 성재 허전, 조선말 문인화의 대가 차산 배전, 차산의 여인이자 시인 지재당 강담운 등이 있습니다. 근대에 와서는 독립운동가 배치문, 배동석 의사, 소눌 노상직 선생과 대눌 노상익 선생, 교육자인 강성갑 선생, 그리고 한글학자인 눈뫼 허웅, 한뫼 이윤재 선생 등이 나와있습니다. 현대까지 넓히면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고장 출신입니다. 생가와 묘소, 그리고 기념관은 김해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 지역 출신의 인물은 많지만 그들을 기념하는 공간은 봉화마을을 제외하고는 그리 ..
2025.01.07
-
간디를 졸업하며 : 이철국 <아이는 당신과 함께 자란다>
막내가 졸업을 합니다. 2018년에 산이가 간디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이어 들이가 입학을 하고 하나씩 졸업을 하더니 이제 막내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 말은 7년 동안 문턱이 닳아 없어질 만큼 학교를 들락거렸던 나도 졸업이라는 겁니다. 졸업 전날은 축제라 일찌감치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올해 새롭게 시작한 도 한꼭지 맡아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대안 학교에 다니면서 제가 배운 걸 요약하면 '아이를 내버려둬라. 믿고 지지하면서 기다리면 아이는 성장한다.' 입니다. '그래, 잘 알겠어. 근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뿐만 아니라 졸업생인 산이와 들이, 그리고 준휘가 함께 있어서 졸업생들의 이야기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는데, "청춘은 지니의 마법같은 환상이 아니다...
2024.12.31
-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겠다 : 이수은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20년을 다니던 회사를 뛰쳐 나온 건 이렇게 살려고 했던 게 아니다. 늘 바쁘다. 휴일도 없이 일하는데, 아침에 출근을 해서 적어도 12시간 이상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데,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책 읽을 시간, 글을 쓸 시간, 사색을 할 시간, 나의 미래를 생각할 시간이 없다. 그저 앞에 닥친 일만 해내기 급급했다. 5년 전 회사를 나올 때 상상했던 모습은 아닐터. 차분하게 지난 일과를 둘러본다. 어떤 것들이 나의 여유를 빼앗아가고 있는지, 나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지. 나쁜 습관, 나쁜 생각을 추려내 과감히 쓰레기통에 버리기로 한다. 실천 가능한 것부터 실행한다. 첫 번째는 바둑이다. 적게는 하루 삼십 분, 많게는 두 시간을 쓴다. 바로 끊는다. 두 번째는 쇼츠다. 다른 영상..
2024.12.24
-
제 영광의 시대는 지금입니다 : 오주환 <잘 살고 싶은 마음>
간디고등학교는 3학년이 되면 졸업작품을 만듭니다. 음악을 하는 강이는 자작곡으로 음악 앨범을 만든다고 합니다. 맛봬기만 조금 들려줘 라고 부탁했으나 단호히 거절당했습니다. 졸업 작품 발표회에 쇼케이스를 한다고 했습니다. 안가볼 수가 없습니다. 앨범은 3년 동안 만든 곡 중에서 9곡을 골라 다시 편집하여 비일상화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힘들거나 우울할 때, 누구보다 더 잘하고 싶을 때, 누군가를 떠나 보낼 때, 사랑을 느낄 때, 내 모습이 미묘하게 다를 때, 바닥 밑 지하를 보았을 때, 더러운 마음을 씻어낼 때, 지나쳐간 것을 성찰할 때 라는 테마를 담았다고 합니다. 만들면서 정신적으로, 기술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으며 성장했다고 합니다. 쇼케이스 콘서트는 훌륭했습니다. 절친들의 연주도 좋았고, 곡..
2024.12.22
-
그깟 살 조각 받아서 뭐하게 : 윌리엄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라는 주택이 있다. 현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 할배의 작품이다. 잘 날게 설계된 비행기가 좋은 비행기이듯 잘 살게 설계된 집이 좋은 집이라는 그의 생각이 그대로 담겼다. 할배는 극단적으로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까지 표현했다. 건축과에 들어가서 '현대 건축의 5원칙'이라는 걸 이 집으로 배웠다. 모더니즘의 시초라 불리며 역사적으로 유명한 이 주택은,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면 그냥 심드렁하다. 온 세상의 주위에 널린 게 이런 집이다. 현대의 시점에서 보면 빌라 사보아는 지극히 평범하다. (이 집은 1930년에 지었다. 고전주의 건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시점이다. 그런 상황을 상상한다면 이 집은 혁명 그 자체다. 사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빌라 사보아의 흉내만 내는 건축물들이 수두룩하다...
2024.12.21
-
간디고등학교 학생들의 시국선언 : 김준철 <역사의 하늘에 뜬 별 김오랑>
이왕 대통령 한 거, 가진 아이템이나 다 써보자 싶어 한 계엄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나름 치밀하게 준비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진짜 국회를 장악하고, 언론을 장악하고, 그래서 대통령한테 조금이라도 반기를 드는 종북 반국가 세력을 처단할 계획이었습니다. 만일 시민들이 그렇게 빨리 국회에 모이지 않았더라면, 하늘길이 안 막혀서 계엄군이 좀 더 빨리 국회에 왔더라면, 국회위원들이 좀 지체해서 늦게 모였더라면 정말 아찔한 상황이 연출될 뻔 했습니다. 여태 무능하게 나라를 다스리더만, 비상 계엄도 역시 무능했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습니다. 이제 이 미친 놈이 무슨 짓거리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나쁜 마음 먹고 정은이 형아한테 미사일도 쏠 놈입니다. 계엄도 했는데 미사..
2024.12.06
-
근데, 종북 반국가세력은 누구예요? 조국 <디케의 눈물>
요즘 되는 일도 별로 없고, 주식 시장도 꽝이고, 그래서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라고 누워서 뒹굴거리는 저 같은 백성들을 위해 대통령께서 지난 밤 깜짝 이벤트를 선물해주셨습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방에서 쇼츠를 뒤적거리고 있던 나에게 딸이 뛰어와서 급박하게 말했습니다. "아빠, 대통령이 나와서 계엄인가 머시긴가를 한대요." 카톡이 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마이티비를 여니 실시간 생중계를 합니다. 말로 한 비상계엄 선포가 믿기지 않아, 그래서 이게 뭔 일이냐 하며 어리둥절한 저같은 백성을 위해 대통령께서는 좀 더 실감나라고 탱크와 헬기도 보내셨습니다. 여의도 국회에는 총까지 든 무장한 계엄군을 보내어 박진감 있게 연출을 하셨습니다. 아주 스펙타클합니다. 국회의원들은 신속하게 국회에 모여 계엄을 발표..
2024.12.04
-
헌쇠 박중기 선생을 기리는 헌쇠도서관을 개관하며 : 박건웅 <그해 봄>
김해인물연구회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김해의 인물을 연구합니다. 역사 속에 숨어 있었던 우리 고장의 인물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합니다. 영화 에서 정해인이 멋진 뿜뿜을 연기했던 김오랑 중령의 흉상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고,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김병곤 열사의 추모 조형물 건립을 주도했습니다. 보도연맹 학살 당시 무고한 사람들을 구하여 '영남의 쉰들러'라 불리는 최대성 한림 면장의 기념물을 세우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대성 면장은 아내의 큰할아버지입니다. 그 인연으로 아내는 김해인물연구회의 회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헌쇠 박중기 선생은 인혁당 사건의 생존자입니다. 인혁당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동료들의 가족을 보살피면서 살아오셨고, 그동안 읽고 소장해 온 1,200여 권의 도서를 ..
2024.12.02
-
의친왕 이강, 역사 속에서 잊힌 이들 : 다니엘 튜더 <마지막 왕국>
고종의 첫째 아들은 이척입니다. 우리나라 마지막 왕인 순종입니다. 명성황후가 낳았습니다. 유일한 적출입니다. 둘째 아들은 의친왕 이강입니다. 순종과 세 살 터울입니다. 귀인 장씨가 낳았습니다. 세째 아들은 영친왕 이은입니다. 고종 나이 마흔 여섯 살 되던 해 귀비 엄씨가 낳았습니다. 작은 형인 이강과 스무 살 터울입니다. 황태자로 책봉되어 조선이 망하지 않았다면 왕에 올랐을 겁니다. 막내는 덕혜옹주입니다. 고종이 예순 하나 되던 해 귀인 양씨가 낳았습니다. 영친왕과는 열 다섯 살, 의친왕과는 서른 다섯 살 터울입니다. 순종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고, 게다가 독살 미수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제대로 된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영친왕은 조선인이라는 의식이 싹트기 전 일본에 볼모로 가서 일본 여..
2024.11.29
-
빌리지 스와라지 : 마하트마 간디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마을교육공동체 조례가 폐지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난 10월에 법안 폐지가 통과되었고, 교육감의 재의 요구로 엊그제 다시 표결하였으나 결국 폐지되었다.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의견서를 내고 힘을 모아 목소리를 내었다. 98%가 폐지 반대 의견이었다. 하지만 62명의 경남도의회 의원들의 표결하여 최종 폐지로 결정이 났다. 62명의 의원 분포는 국민의 힘 58명, 더불어민주당 4명이다. 폐지 반대 의견을 낸 국민의 힘 의원은 딱 1명이었는데 창원의 정재욱 의원이다. 국힘 의원 수가 저렇게 많다는 거 처음 알았다. 사람 잘 못 뽑으면 나라 꼴이 엉망이 된다.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마을학교를 반대하는 이유는 이렇다. - 마을 강사는 정치적으로 편향되었다. 좌로..
2024.11.22
-
스위스 시골 마을의 작은 벤치가 생각납니다 : 나희덕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
이 산문집에 바람의 이야기와 텅 빈 벤치 사진이 나옵니다. 그 사진을 본 순간 스위스 여행이 떠올랐습니다. 5년 동안 한번도 기억에 올린 적이 없던 장면이 머리 속에 나타난 겁니다. 참 이상하지요, 어떤 메카니즘이 기억 저 편에 있던 그 장면을 불러왔을까요? 그래서 유럽 여행의 사진을 오랜만에 다시 찾아봤습니다. 위의 사진입니다. 숨비츠라는 작은 마을에 여행자를 위한 벤치와 그 벤치에서 앉아 본 풍경입니다. 페터 춤토르의 성 베네틱트 교회는 스위스의 숨비츠에 있습니다. 거의 숨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전 건축 공부를 할 때 사진을 보고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 맘 먹었더랬습니다. 밀라노에서 새벽에 출발해서 기차를 다섯 번이나 갈아타고 무인역인 숨비츠에 내려 한참을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2024.11.16
-
붕어빵 장사를 시작한 아들을 응원하며 : 이병곤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치기>
- 아빠, 나 붕어빵 장사 해볼까요?- 응? 웬 붕어빵? 산이가 붕어빵 얘길 하길래 뒤통수로 들었습니다. 붕어빵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뭐 이런 거였죠. 근데 지 나름대로 뭔가 사부작사부작 준비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 뒤통수에 대고 "아빠, 오늘부터 장사 시작해요." 하고 한마디를 날리는 거였습니다. 진짜 한다고? 오후 두 시에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일하는 내내 신경이 쓰였습니다. 밤 열 시쯤 퇴근하면서 가보았습니다. 붕어빵을 굽는 아들을 보니 하~ 진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좁디 좁은 공간에서 여덟 시간을 내내 서서 일을 했을 아들을 생각하니 맘이 아팠습니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재미있댑니다. 하! 그제서야..
2024.11.12
-
경근쌤, 부디 잘 가셔요 : 엄경근 <산복도로 오딧세이아>
엄경근 2024 엄경근 2024 엄경근 2024 엄경근 2024 (이 그림과 함께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가 게시됨) 엄경근 2023 엄경근 2023 그림을 그리는 아이에게 미술실 뒷통수를 자처한 아이.미술 교사인 나보다 더 오래 미술실을 지키는 아이.뭘 그렇게 열심히 만들고 그리는지,한번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을 일어설 줄 모른다. 강제가 아닌 스스로 만들어낸 집중의 시간임을 알기에혹여 내가 그 흐름을 깨진 않을까, 발걸음도 조심스러웠다. 무엇을 그렸나, 얼마나 잘 그렸나 하는 궁금증보다,집중하는 그 모습 자체가 예뻐서훔쳐보는 내내 뿌듯하고 가슴 벅차기도,때로는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보다'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오늘의 미술 교육 현주소를 고민하..
2024.11.09
-
평범함의 매력을 연기한 배우 : 고레에다 히로카즈 <키키 키린의 말>
이 할매를 좋아하게 된 영화는 입니다. 팥의 장인인 할매가 도라야키 가게 알바로 일을 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벗나무 가득한 도라야키 가게 풍경이 예전에 살던 도쿄 신밤바와 똑 닮았더랬습니다. 스토리도 좋았고, 할매의 웅얼웅얼 연기는 일품이었지요. 원래도 좋아했던 도라야키를, 영화를 보고 난 후 애써 파는 곳을 찾아 사 먹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몇 해 전 할매가 암으로 세상을 뜨고, 아~ 했는데,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책 표지에 웃고 있는 할매의 모습이 너무 반가와서 후다닥 사버렸습니다. 책은 영화 감독인 코레에다 히로카즈가 키키 키린과 나눈 대화를 엮었습니다. 두 사람은 를 시작으로 , , , , 등 총 6편의 작품을 함께 했습니다. 감독이 할매를 처음 만난 건 영화 의 초고가 완성되..
2024.11.07
-
도보 다리에서 과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 문재인 <변방에서 중심으로>
카멀라 해리스 VS 도널드 트럼프 1. 경제 중산층 세금 감면 VS 부자와 대기업 세금 감면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세율 인상 VS 중국에 세금 폭탄 2. 기후변화 및 환경 탄소 배출량 감소 VS 화석 연료 산업 지지재생 에너지 투자 확대 VS 석탄과 석유 산업을 통한 에너지 자급자족파리 기후 협약 복귀 VS 파리 기후 협약 탈퇴 3. 보건 더 많은 사람들이 건강 보험 혜택 VS 민간 보험 중심의 시스템약값 인하 정책 VS 의료 선택권 확대 4. 이민 이민자 보호 VS 국경 장벽 건설과 무관용 정책 5. 평등 성 평등, 인종 차별 철폐 VS 전통적인 보수적 가치 중점형사 사법 개혁 VS 특정 단체의 목소리에 비판적인 입장 6. 외교 동맹 관계 VS 무조건 미국 우선주의 어딜 봐도 앞에 것이 호모 사피엔스가 ..
2024.11.06
-
북한이 참전을? 아, 안돼 : 이혜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우리 위에 있는 정은이 엉아가 드디어 러시아에 군대를 보냈습니다. 카더라 통신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정원에서 보도자료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북한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한 겁니다. 일단 선발대로 1,500명이 갔댑니다. 그리고 4개 여단 12,000명이 그 뒤를 곧 따라가려고 준비중에 있다고 합니다. 파병된 북한군은 11군단 특수 작전군 예하 최정예부대라고 합니다. 우는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치는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폭풍군단'이라고 하는 분들입니다. 젤렌스키, 떨고 있나? 북한의 특수부대가 완전 무장을 하고 우크라이나를 휩쓰는 모습이 곧 현실로 될 듯한 분위기입니다. 아, 유럽을 침공하는 아시아의 노스코리아, 몽골이 유럽을 휩쓴 이후로 처음일 겁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씨발. 젤렌스키는 똥..
2024.10.24
-
국방부 놈들아, 너희들은 이 책을 읽었느냐? : 방현석 <범도>
1. 김알렉산드라 알렉산드라는 우리와 얘기를 나누는 중간에 몇 차례나 걸려온 전화를 받고 유창한 러시아어와 중국어, 조선어로 지시를 내렸다. 그녀는 그때마나 우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서는 진심이 묻어났다. 달라지지 않는 그녀의 태도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알려주었다. 로씨아혁명의 지도자 레닌이 왜 그녀를 신뢰하고 칭송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권 389쪽) 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 김, 책에서는 김수라라고 홍범도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하바롭스크에 들어선 극동 소비에트 인민정부의 외무장관으로 나온다. 소왕령(우수리스크)의 흰파 문창범과 하바롭스크의 붉은파 김알렉산드라가 홍범도에게 초대장을 보냈고, 홍범도는 알렉산드라를 택했다. 독일 첩자로 몰린 이동휘가 일본군의 손에 넘어가기 직전 ..
2024.10.22
-
어른이 되어서야 이해할 수 있는 어른들의 만화 : 다니구치 지로 <아버지>
내가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어떤 법칙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따뜻한 봄 햇살의 온기가 한가득 머문 마루.돌아보면 거기에 아버지가 있었다. 그리고 빅코믹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담당기자 사토 씨의 '이번 작품은 만화 = 오락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그릴 수 없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인기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일에만 신경 써달라'는 든든한 조언은 연재를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278쪽 저자 후기 중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리는 작가.만화로 표현하는 깊은 여운.아버지가 되고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알게 되는 아버지의 모습.그리고 나의 아야기. 어른이 되어서야 이해할 수 있는 어른들의 만화
2024.10.21
-
나는 왜 이 소설이 불편한가 : 과탈루페 네텔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
# 라우라 나는 주말 내내 침묵을 지켰다. 월요일에는 예약도 없이 산부인과 진찰실에 찾아가 나팔관을 묶어달라고 요청했다. 내가 얼마나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연거푸 질문을 던진 후 의사는 스케줄을 확인했다. 바로 그 주에 나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인생 최고의 결정이라고 확신했다. (25쪽) 아기를 갖고 싶어하는 남친의 유혹에 넘어가 뜨밤을 보내고 난 뒤 후 라우라의 행동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고국 멕시코로 돌아온, 말하자면 상류층의 많이 배운 여성인 주인공은 자유분방한 삶을 살지만, 결혼과 출산에 있어서는 신념이 확고하다. 행복한 삶에 결혼과 출산은 절대적인 장애물이라는 신념. # 알리나 "저를 재우지 말아주세요." 알리나는 분명히 말했다. "저는 이네를 만나고 싶어요. 얼굴을 보고, 가능한 한 모든..
2024.10.16
-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는 찌질이가 아니다 : 남문희 <전쟁의 역사>
"This Is Spartaaa!" 제랄드 버틀러 형님이 빤쭈에 빨간 망토만 걸치고 세상 가오는 혼자 다 잡는 영화에 나오는 명대사다. 스파르타의 최정예 300명이 테르모필레에서 크세르크세스가 이끄는 100만 대군과의 싸움이 주된 내용이다. 주인공은 그리스를 대표하는 영웅 중의 한 명인 스파르타의 레오디나스 왕이다. 조국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300명의 스파르탄과 함께 페르시아 100만 대군과 제대로 한타를 뜨는 장면은 압권이다. 근데, 영화에서 페르시아의 군대는 미개한 괴물 집단으로 묘사된다. 더우기 왕인 크세르크세스는 완전 열폭 찌질이로 망가진다. 문득 궁금했다. 진짜 저랬을까? 아케메네스 왕조, 일명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550년부터 330년까지 220년 동안 실제한 이란의 고대 왕조다. 오리엔..
2024.10.14
-
호모 사피엔스는 곧 사라진다 : 유시민 <거꾸로 읽는 세계사>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약 7000발의 미사일이 이스라엘로 향했고, 하마스의 지상군이 이스라엘을 침투해서 민간인과 군인 360여 명을 죽였고 인질로 삼았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으로 사실상 이스라엘의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단체다. 가자지구는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의 지역이다. 이스라엘은 즉각 전쟁을 선포했고, 네타냐후는 가자지구에 하마스가 있는 장소를 폐허로 만들거라고 대대적으로 공표했다. 그리고 실행에 옮겼다. 가자지구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하마스를 잡기 위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죽였다. 이스라엘은 민간인 포함 천여 명이 죽었고, 팔레스타인인 사망자는 사만 명이 넘었다. 전쟁은 끝나지 않고 1년째 계속되고 있다. 레바논의 정치 집단이자 군대..
2024.10.08
-
아는 만큼 들린다 몰라도 잘 들린다 : 남문성
막내가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밴드 경연대회에 나간댑니다. 기타 유민제, 베이스 변재현, 드럼 한바다, 기타 겸 보컬 김강으로 구성된 입니다. 공연과는 달리 순위를 매기는 경연이라 긴장하는 눈치였습니다. 무슨 곡을 할거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처음엔 비밀이라더니 나중에 김광석의 와 산울림의 로 정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경연 3일 전에 아이들이 모두 우리집에 모였습니다. 친구한테서 드럼도 빌려오더니 합숙 훈련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의견도 많이 나누고, 장난기도 쏙 빼고 제대로 연습을 했습니다. 살짝 들여다보니 편곡 실력이 상당합니다. 두 노래 모두 매력적으로 변했습니다. 경연은 훌륭했습니다. 무대의 퍼포먼스도 좋았고 무엇보다 연주의 수준이 높았습니다. 다른 팀도 잘했지만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
2024.10.04
-
클랩함 정션으로 가는 길 : 림태주 <관계의 물리학>
문명을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진화하고 있지만, 나는 이것이 세상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본다. 공부가 배움을 잃고, 만남이 사귐을 잃고, 노동이 땀을 잃고, 삶이 쓸모를 잃어가는 세상이 결코 진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53쪽)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싶다면, 내 성격이 어떤가를 남들에게 묻기보다 내 혀가 어떤 말을 주로 내뱉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봐야 한다.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기를 원하다면, 성격이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고 말하는 태도를 바꾸면 된다. 성격은 바꾸기 힘들지만 말의 색채는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선택하고 바꿀 수 있다. (80쪽) 누구나 삶을 견디며 산다. 동정할 까닭도 값싼 위로를 건낼 이유도 없다. 오래 견디면 견디고 산다는 걸 잊게 된다. 견디..
2024.10.03
-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으로 가네 : 하종강 외 7인 <하고 싶은 일 해 굶지 않아>
산이는 간디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대학을 안간다길래 "집구석에 빈둥빈둥 하는 꼴 못본다."라고 말해두었더니 졸업 후 3개월만에 군대에 갔습니다. 지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보기에는 수월하게 군대를 마쳤습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두어 번 하더니 에버랜드에 알바를 하러 갔더랬습니다. 일 년 가까이 에버랜드의 식당에서 구르더니, 내려와서는 올해 그 더운 여름, 집 근처 워터파크에서 가이드로 두어 달 일하기도 했습니다. "아빠, 일본에 우프를 가려고 하는데 어느 지역이 좋겠어요?" 하고 얼마 전에 물어왔습니다. "도심보다는 시골이 낫지 않겠냐? 그리고 이왕 시골에 가려거든 동북지방이 깡시골인데." 라고 답을 해주었습니다. 호스트에게 메일을 보낸다 어쩐다 하더니 일본에서 가장 시골인 이와테현의 하치만타이라는..
2024.10.01
-
한국의 다니구치 지로 : 정용연 권숯돌 <1592 진주성>
진주대첩 김시민 장군을 주축으로 조선군 3,800명이 일본군 30,000명을 막아낸 전투(1차 진주성 전투). 이 책의 배경이며 임진왜란 발발 후 조선이 수성전에서 일본군을 완벽하게 물리친 첫 전투라고 책에 나온다. 책의 부제가 '전라도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이는 전라도의 곡창지대를 온전히 보호하고 이순신의 수군 전력을 유지시킨 대단히 중요한 전투라 행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불린다. 개빡친 일본군이 이듬해 6월 10만 대군으로 다시 진주성을 공격한다. 2차 진주성 전투라 불리며 임진왜란 중에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온 처절한 전투다. (결국 진주성을 함락한 일본군의 피로연에 19살의 논개가 일본군 장수를 안고 강에 뛰어들었다.) 책의 주인공은 김시민 장군과 진주성의 민초들이..
2024.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