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고등학교는 3학년이 되면 졸업작품을 만듭니다. 음악을 하는 강이는 자작곡으로 음악 앨범을 만든다고 합니다. 맛봬기만 조금 들려줘 라고 부탁했으나 단호히 거절당했습니다. 졸업 작품 발표회에 쇼케이스를 한다고 했습니다. 안가볼 수가 없습니다.
앨범은 3년 동안 만든 곡 중에서 9곡을 골라 다시 편집하여 비일상화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힘들거나 우울할 때, 누구보다 더 잘하고 싶을 때, 누군가를 떠나 보낼 때, 사랑을 느낄 때, 내 모습이 미묘하게 다를 때, 바닥 밑 지하를 보았을 때, 더러운 마음을 씻어낼 때, 지나쳐간 것을 성찰할 때 라는 테마를 담았다고 합니다. 만들면서 정신적으로, 기술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으며 성장했다고 합니다.
쇼케이스 콘서트는 훌륭했습니다. 절친들의 연주도 좋았고, 곡도 3년간의 학창 시절의 감정이 그대로 담겨서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그 어떤 콘서트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른 강이의 모습이 반짝반짝 빛났습니다. 마음을 담아 연주하는 강이는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빠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난 지금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은 노래를 만들고, 그 노래를 마음 맞는 친구들과 연주하는 것, 그것도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것보다 더 즐겁고 기쁜 일이 있을까요? 강이가 멋지고 부러웠습니다. 강이에게는 분명 지금이 영광의 시대가 맞습니다.
살면서 음악을 많이 들었다. 많이 듣다 보니 하고 싶어졌고, 그렇게 음악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염치없지만, 그래도 어디가서 '음악 좀 들었지요.'라고 말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나란 인간의 삶에는 음악이 있다. 이건 국적처럼 반박할 수 없는,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다.
또 뭐가 있을까? 옷 장사를 했고, 술을 많이 마셨고, 늦도록 잠을 잤고, 플레이 스테이션을 했고, 애들이랑 놀았다. 많이 놀았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어서 시간도 많았고 그 많은 시간에 혼자 영화도 보고 여기저기 쏘다녔다. 돈은 별로 없었다. 사실 돈 버는 일엔 별 관심이 없었다. 적게 벌어서 적게 쓰는 삶이었다. 운이 좋아서인지 그래도 살만했고 그렇게 서른을 넘겼다. 서른이 되던 해 첫 번째 앨범을 냈고, 이런저런 팀 활동을 하며 지금까지 8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그래도 음악으로 돈을 벌진 못했다. (233쪽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은 그룹 ADOY의 보컬 오주환의 에세이입니다. 언젠가 강이가 사달라고 해서 샀는데 정작 강이는 읽지 않고 내가 읽었습니다. 작가의 음악은 들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작가의 글은 매력이 있습니다. 솔직하면서 재미가 있고, 과장하지 않고 덤덤하면서도 재치가 있습니다. 사람 좋아하고 음악 좋아하는 사람의 일상이 느껴졌으며 음악으로 돈 버는 게 어렵다는 것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작가 말마따나 8장의 앨범을 내고 이렇게 책까지 나왔으니 꽤 성공한 삶이 아니가 싶습니다.
음악으로 인생을 살겠다고 한 막내의 앞으로의 삶이 궁금해집니다. 농담삼아 중식이 정도는 되어야 되지 않겠냐고 하니 그 정도면 아주 성공한 거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만든 노래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그로 인해 돈도 잔뜩 벌면 좋겠지만, 강이의 노래가 단 한 명에게라도 위로가 되고 보듬어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강이는 성공했습니다. 강이의 노래는 나에게 이미 큰 위로입니다.
그래, 바로 지금이 너의 영광의 시대다. 근데, 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인가? 있긴 했나? 아직 안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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