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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이야기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으로 가네 : 하종강 외 7인 <하고 싶은 일 해 굶지 않아>

by 개락당 대표 2024. 10. 1.

 

산이는 간디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대학을 안간다길래 "집구석에 빈둥빈둥 하는 꼴 못본다."라고 말해두었더니 졸업 후 3개월만에 군대에 갔습니다. 지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보기에는 수월하게 군대를 마쳤습니다. 제주도 한 달 살기를 두어 번 하더니 에버랜드에 알바를 하러 갔더랬습니다. 일 년 가까이 에버랜드의 식당에서 구르더니, 내려와서는 올해 그 더운 여름, 집 근처 워터파크에서 가이드로 두어 달 일하기도 했습니다. 

 

"아빠, 일본에 우프를 가려고 하는데 어느 지역이 좋겠어요?" 하고 얼마 전에 물어왔습니다. "도심보다는 시골이 낫지 않겠냐? 그리고 이왕 시골에 가려거든 동북지방이 깡시골인데." 라고 답을 해주었습니다. 호스트에게 메일을 보낸다 어쩐다 하더니 일본에서 가장 시골인 이와테현의 하치만타이라는 듣도보도 못한 동네로 간다고 했습니다. 지도에 찾아보니 혼슈 맨 끝 동네입니다. 

 

떠나기 전,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설레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산아, 하다가 정 힘들고 부조리하면 돌아와도 된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슥슥 짐을 꾸리더니 어제 아침에 공항으로 떠났고, 오늘 오후에 호스트에 잘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나도 딱 저 나이에 일본을 갔습니다. 하루에 열두 시간 알바를 했습니다. 알바를 하면서 일본 문화를 배우고 친구도 사귀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별을 보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젊은 날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과 자양분을 만들었고, 그 시절의 경험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불안한 행복이지만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20년째 컬러링으로 쓰고 있는 광석이 형 노래입니다. 산이가 느끼는 설렘과 불안이 전달되어 나도 기분 좋게 들뜹니다. 어떤 일이든 슥슥 추진하고 척척 실행하여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는 산이가 부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합니다. 부디 몸과 마음 다치지 않고 좋은 경험을 하고 오길 바랍니다.

 

 

그렇게 떠난 아들이 며칠 뒤 보내온 일본 이와테현 하치만타이의 사진

 

 

산이가 일하는 곳의 아피코우엔 기차역. 크~ 역사가 하나의 예술이다. 이 역 사진을 찍으러 1시간 40분을 걸어서 갔다왔다고.

 

 

같이 일하는 프랑스 친구랑 세 시간을 산책했다고 한다.

 

 

사진으로 보는 풍경은 스위스 알프스에 절대 못지 않다. 더 가보고 싶구나.

 

 

의사들은 자기 직업에 만족할까?

 

직업 만족도 관련 조사에서 상위권은 작가, 사진작가, 작곡가 등이다. 이들은 주로 창의적인 직종이다. 직업 만족도가 가장 낮은 직종은 모델이고 그 다음이 의사다. 의사가 되려면 전교 1등을 해야 한다. 늘 책만 보고, 어디 놀로도 안 가고 공부하는 게 취미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의사는 서비스 직종이기도 하다. 질병을 정확히 짚어내고 처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 얘기를 잘 들어주고 환대하며 친절하게 대하는 대인관계적 특성도 요구된다. 타고나길 연구원인데 서비스직은 맞지 않다. (248쪽 내용 인용)

 

 

사교육을 많이 시키면 아이가 좋은 일자리를 얻을까?

 

좋은 일자리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데, 울나라 공식 기관(한국개발연구원 등)들의 정의는 이렇다. 남들보다 월급을 20% 더 주고 고용이 안정적인 일자리이다. 30대 대기업 집단과 공기업, 금융업이 그렇다. 이런 '좋은 일자리'는 한 해에 2만 명을 고용한다. 2009년 고등학교 졸업자는 60만 명, 대학교 졸업자는 54만 명이다. 초등학교 한 반에 25명이라 치면 그 중 한 명만이 '좋은 일자리'에 들어간다. 1등만 위너고 나머지는 루저다. (242쪽 내용 인용)

 

 

기필코 좋은 사회를 만들고 죽는다?

 

저는 두 딸을 보면 전투의지가 막 생겨요. "기필코 좋은 사회를 만들고 죽는다." 지금 사회 그대로라면 제가 아무리 아이들의 행복을 바란다고 해도 아이들이 커서 행복할 수 있을까요? 지금 같은 사회에서는 제가 아무리 유산을 많이 남긴다고 해도 두 딸이 행복할 가능성은 희박하죠.

 

(중략)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 제게는 또 큰 힘이 됩니다. 200년 전의 여성 인권과 지금의 여성 인권을 비교해보면 충분하지는 않을지라도 분명히 진보했잖아요.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습니다. (234쪽 강도현의 질의 응답 발췌)

 

 

한울님은 어디 계시나?

 

청년 : 한울님이 누군지 보여주세요.

장일순 : 너 한울님 저기 뒤에 있는데 안 보이니?

청년 : 저 뒤에 있는 건 우리집인데요.

장일순 : 저 집 골방 안에 계시다.

청년 : 마누라가 골방에서 베를 짜고 있는데, 씨발 장난해요?

장일순 : 이 무더운 날에 너를 먹여 살리려고 베를 짜는 사람이 너의 한울님이 아니면 도대체 누가 한울님이겠냐.

청년 : 아이고, 그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장일순 : 지금 가서 의관을 곱게 차려 입고 마눌님께 일곱 번 큰 절을 올린 다음에 '앞으로 한울님을 정성껏 모시고 살겠습니다' 하면 된다. (143쪽 내용 인용)

 

 

벽돌공과 대학교수가 임금이 같은 사회를 만들려면?

 

첫째는 공정이다. 핀란드 교육의 특징은 한마디로 극단적인 평준화다. 강남 8학군이나 시골 분교나 학교 시설, 교사 수준, 수업 내용 모두가 극단적으로 균일하다. 부잣집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남보다 유리할 수 있는 조건을 모두 없앴다. 둘째는 탈락자에게 계속 패자부활전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시험을 봐서 공부 1등을 뽑을 수도 있다. 그러면 나머지 학생들 중에서 노래 잘하는 학생, 운동 잘하는 학생, 마음이 따뜻한 학생, 이웃의 불행에 관심이 큰 학생들에게도 1등의 기회를 줘야 한다. 그래서 한 반 모두의 학생이 1등이 되는 학교와 사회가 되면..... 흠 어려울까. (80쪽 내용 인용)

 

 

유럽에서는 선행학습을 할까? 

 

독일에서 상사주재원으로 있던 한국 사람이 받은 아이들의 취학통지서에느 이런 글귀가 있었다. "귀댁의 자녀가 취학 전에 글자를 깨우치면 교육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그래도 걱정이 되어 알파벳과 덧셈 뺄셈을 가르쳐 학교에 보냈다. 담임이 "100미터 달리기에서 당신 아이만 50미터 앞에서 뛰게 하고 싶었냐?"며 질책을 당했다. 영국에서도 선행학습은 치팅보다 부도덕하다고 가르친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우리보다 창의력이나 경쟁력이 뛰어나다. (78쪽 내용 인용)

 

 

파업은 필수적 사회권리인가? 

 

엄마 : 기차가 9시 도착 아니었니?

딸 : 데모 때문에 차 막히고 난리 났어요?

엄마 : 불쌍한 노동자들이 파업도 못 하니? 여긴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야.

 

노동자의 파업으로 길이 막혔다고 딸이 불평을 하니까 엄마가 야단을 친다. 유럽의 사람들은 노동자가 파업을 해서 자신이 불편을 겪는다고 불평하는 건 천반한 자본주의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여론이 파업에 이해심을 보이는 편이다. 파업권은 필수적 사회권리이다. (58쪽 내용 인용)

 

 



 

부제가 <학벌 스펙 무시하고 즐거운 내 직업을 찾은 7인의 이야기>입니다. 만화가 윤태호, 노동운동가 하종강, 성장학교 별의 교장 김현수, 협동조합 운동의 최혁진, 아름다움 배움 대표 고원혁, 소셜 카페 기획자 강도현, 사교육없는세상 공동대표 송인수 선생 등 일곱 분의 생각을 담은 책입니다. 사교육 배제, 노동 운동, 연대와 협력, 사회 운동, 탈 자본주의 등 한 마디로 말하면 진보의 맨 앞에 선 분들 이야기입니다. 제 입맛에 딱인 책입니다. 무엇보다 내용이 쉽습니다. 아주 알기 쉽게 진보의 가치와 그 가치의 옮음을 이야기합니다. 

 

대학을 가지 않은 산이는 낯선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덩달아 신이 난 저는 산이가 간 곳을 구글 지도로 찾아보고, 지도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녔습니다. 근처의 맛집, 구경 거리, 그 동네가 나오는 유튜브 등 관련한 정보를 찾으며 마치 산이와 함께 간 듯한 기분을 냈습니다. 산이는 거기서 하는 일과 만난 사람들, 동네의 풍광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30년 전 핸드폰도 없는 시절에 아빠는 어떻게 가서 잘 생활했는지 진짜 대단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잠깐 으쓱 해졌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산이를 생각하니 더 으쓱 해졌습니다. 돌아오면 수고했다고 어깨를 토닥여 줄겁니다. 

 

그나저나 나도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가고 싶습니다. 이젠 늦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