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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이야기

얼른 글 쓰고 유튜브 봐야지 : 김성우 엄기호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by Keaton Kim 2021. 8. 13.

 

하루의 모든 일을 마치고 방에 눕습니다. 그리곤 유튜브를 봅니다. 새로운 동영상이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긴벌레의 턱걸이 영상, 하하하의 고양이 영상, 곽튜브의 러시아 여행기, 믈브의 야구, 장삐쭈의 군대 이야기, 오늘 있었던 바둑 하이라이트, 새로운 영화 소개까지,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보면 두 시간은 후딱 가버립니다. 누워서 뒹굴거리며 유튜브 보는 시간이 가장 편안한 시간입니다. 

 

책을 읽으면 잠이 잘 오는데 동영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보기만 하면 됩니다. 유튜브가 다 결론까지 알아서 내줍니다. 하지만 단점이 있습니다. 볼 땐 재미있는데 다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건 거의 없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이면 십이분의 일을 사용하는데 좀 허망합니다. 그 시간에 책을 봤다면 남는 것도 있고, 스스로도 뿌듯할텐데요. 

 

저도 책을 보는 시간보다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앞으로는 격차가 더 벌어지겠지요. 우리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구요. 그렇다면 영상이 책의 기능을 대신할까요? 책 대신 영상만으로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다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책은 리터러시Literacy라 불리는, 읽고 쓰는 능력에 관한에 관한 대담집입니다. 제 질문에 대한 해답도 당연히 나와 있겠지요.  

 

 

 

 

1. 소설은 재미있는데 영화는 재미없다.

 

원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은 대부분이 소설의 감흥을 잘 전달하지 못합니다. 소설과 영화가 모두 훌륭했던 작품은 <더 리더>, <향수>, <언어의 정원> 정도가 떠오릅니다. 그 이유를 상상력의 차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책을 읽으면 머리속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훈련이 되어서 그런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영상이 문자만큼의 추상성이나 유연성이 있느냐 하면, 아직은 영상이 도저히 문자를 못 당한다고 봐요. 많은 사람이 소설을 읽고 나서 그걸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고 나면 실망하는 이유가, 소설을 읽으면서 내 머리속에서 상상되었던 그 스케일과 디테일이 영상으로는 잘 안 담기기 때문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문자와 읽기라는 것이 상상력의 스케일과 디테일함을 키워준다고 봅니다. 이게 구닥다리들의 얘기일지 모르겠지만요. (p.102)

 

 

2. 사유의 틀을 잡는데는 책이 낫다.

 

영상은 금방 소비되어 버립니다. 몇 시간을 봐도 1초 후면 아무 것도 머리 속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취미나 오락 관련 영상을 그렇다 치더라도 꽤 수준 있는 지식 채널이나 강연 영상도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중요한 부분을 두세 번 볼 수 있어서요? 그것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뇌가 열심히 할 일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상상하고, 정리하고, 기억하지요. 유튜브를 볼 땐 뇌도 그냥 손 놓고 있는가 봅니다. 

 

구체성에 있어서는 텍스트가 영상을 따라갈 수가 없어요. 멀티미디어가 세계를 그대로 복사하고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런 건 유튜브가 잘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실발 끈 묶는 법, 레이업슛 하는 법, 뜨게질 하는 법 같은 것들은 아무리 말로 해봤자 영상으로 보는 게 백배 낫습니다. 하지만 추상적 개념을 매개로 하는 사유, 예를 들어 존재라든가 과정, 관계, 사랑, 자유, 평등, 이런 것들을 개념화하고, 이를 체계화해서 사유의 틀, 나아가 이론을 만들고 소통하는 것은 영상으로 하기가 굉장히 힘들죠. (p.96)

 

 

3. 영화의 내용은 다 아는데 첨부터 끝까지 본 적은 없다.

 

울집 막내는 웬만한 만화나 영화의 내용은 다 압니다. 저랑 대화가 됩니다. 한창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다가 "그거 봤냐?" 라고 물어보면 유튜브로 봤답니다. 요약본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거의 없습니다. 저도 긴 영상은 거의 패스입니다. 영상을 보는 이는 도입부의 지루함을 견디기 힘듭니다. 이를 두고 책에서는 사유의 길이와 스케일이 짧아졌다고 했습니다. 

 

저는 글쓰기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결국 읽기의 문제와 결합돼 있다고 봐요. 예전보다 독서를 안 한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많은데, 읽는 양으로 보면 지금 훨씬 많이 읽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거든요. 양으로 보면 압도적으로 많이 읽는데, 한 이벤트의 길이라는 면에서 보면 굉장히 짧아졌어요. 길이가 짧아졌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가 볼 때는 사유의 길이와 스케일이 짧아지고 작아진 것입니다. (p.111)

 

 

4. 책 읽기는 훈련이 필요하다

 

누워서 영상을 보는 건 동작이 필요없습니다. 책을 읽으려면 책장도 넘겨야 자세도 불편합니다. 무엇보다 영상이 편한 건 그냥 보면 됩니다. 책은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을 해야 되고 상상도 해야 됩니다. 책을 읽으면서 머리속에 뭔가를 계속 그려야 됩니다. 그래서 피곤한 상태에서는 역시 영상에 손이 갑니다. 책 읽기는 뇌도 써야 하고 훈련도 해야 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이 좀 있습니다. 

 

읽기가 혁명적인 것은 틀림없지만 진입장벽이 높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 진입장벽의 핵심은 추상성이에요. 텍스트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인 추상성 때문에, 읽는 사람은 보는 사람과 달리 자기 머릿속에서 그 추상적인 개념들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텍스트는 읽어봤자 시각화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계속 읽어낼 수가 없죠. 그에 반해 영화는 보이는 게 있으니까 보려고만 하면 계속 갈 수 있는 거죠. 이게 무얼 의미하냐면, 이 추상적인 글을 시각화하기 위해서는 나한테 개념, 명제, 배경지식, 이런 자원들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영상과 비교하면 현격하게 높은 자원이 필요한 거예요. (p.130)

 

 

5. 이제는 스토리를 이해하고, 지어내고, 들려주는 능력이 필요하다

 

국어 시간에 시에 대해 공부할 때 무슨 비유법 같은 것은 많이 배웠어도 시에 대한 각자의 감흥을 말하는 것은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암기하여 정답을 찾는 훈련을 했습니다. 그것도 훌륭한 배움의 방법이지만, 이제는 다른 능력을 요구합니다. 스토리텔링입니다. 같은 행위라고 스토리가 입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책과 영상 중 어느 쪽이 스토리텔링의 능력을 잘 키워줄까요?

 

변환 능력을 키워야 하는 영역이 또 하나 있어요. 심리학자이자 초기 인지혁명을 이끈 학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제롬 브루너는 세계를 구성하는 앎의 방식에는 두 가지 모드가 있다고 했어요. 하나는 세계를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분류해서 그들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지식을 갖는다고 했을 때의 앎, 분석하고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지식을 이해하고 다루는 법으로서의 앎이에요. 다른 하나는 내러티브적인 앎이에요. 이야기로서의 앎, 스토리를 이해하고, 지어내고, 들려줄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두 가지는 상보적이고 서로를 풍성하게 만드는 관계에 있죠. 저는 이 두 갖지 방식의 앎이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211)

 

 

6. 유튜브만 보는 학생들을 비난하지 마라 

 

막내는 손에 핸드폰을 늘 쥐고 다닙니다. 밥 먹을 때도 보고, 심지어 잘 때도 쥐고 잡니다. 가끔은 그 모습이 보기 싫어서 싫은 소리를 합니다. 근데, 제가 밤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있으면 막내가 와서 그런 시덥지 않은 유튜브 그만 보라고 하기도 합니다. 서로 갈굽니다. 다음 세대를 비난만 해서는 얻을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기성세대의 할 일을 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요즘 학생들이 영상에 찌들려 있다고 마냥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텍스트와 더불어 다양한 장르의 미디어를 경험했을 때 거기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분명히 생기거든요. '글 읽기와 쓰기는 무시하고 영상만 본다'면서 학생들을 비난할 게 아니라, 앞서서 리터러시를 경험했고 현재의 미디어 생태계를 주도해서 만들어낸 기성세대가 책임을 지고 텍스트와 영상 등 미디어의 가교를 만들어야 해요. 그 과정에서 영상에 능한 세대로부터 적극적으로 배운다는 자세를 견지해야 하고요. 텍스트와 영상이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나름의 방법이라는 점을 깨닫게 하는 거죠. (p.228)

 

 

7. 리터러시는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역량이다

 

지식을 얻기엔 책보다 영상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 시대임에도 읽고 쓰기에 대해 열망하는 사람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사람들은 영상의 일방적인 전달보다 읽고 쓰면서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과 소통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현명합니다. 결국 읽고 쓰기는 사람을 좀 더 사람답게 만들어줍니다. 

 

선생님과 제가 말하는 '리터러시'는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역량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마무리의 시작을 리터러시 앞의 '삶'에 대해 감히 이야기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삶의 리터러시, 삶을 위한 리터러시란 '좋은 삶'을 위한 리터러시입니다. '옳음'이라는 이름으로 타자의 삶을 억압하는 리터러시가 아니에요. '좋은 삶'을 생각하도록 모두를 초대하는 것이 삶의 리터러시입니다. 이런 점에서 리터러시는 모두를 해방하고 자유롭게 하며, 그 자유로운 사람들이 서로서로 다리를 놓으면서 그것이 바로 '좋은 삶'이라는 것을 까달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p.277)

 

 

모든 서점의 로망 : 파리의 세익스피어앤컴퍼니

 

 

딱딱한 주제인데 생각보다 흥미로운 내용이 가득합니다. 영상의 시대가 되었다 하더라고 텍스트는 쉽게 몰락하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난 이천 년 동안 지구상에 살았던 가장 현명했던 사람들이 그들의 지식과 지혜를 책에 남겼습니다. 인류의 보물은 쉽사리 그 가치가 훼손되지 않을 겁니다. 

 

네, 맞습니다. 저도 유튜브 보는 시간을 줄이고 대신에 읽기와 쓰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근데, 여기까지 쓰고 나니 얼른 마무리하고 누워서 유튜브 볼 생각이 꿀떡 같습니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