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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이야기

고전의 지혜는 나를 현명하게 만들어 줄까? 전호근 <사람의 씨앗>

by Keaton Kim 2021. 8. 28.

 

1. 사람이 다쳤느냐?

 

<논어>에 기록된 내용을 읽어보면 참으로 이상하다. 난생 처음 듣는 신기한 이야기도 아니고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칠 만큼 재미난 이야기도 아니고 가슴 불타는 정의감을 불러일으키는 말도 아니기 때문이다. <논어>에 나오는 이야기는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다. 

 

마구간에 불이 났다. 공자가 퇴근하여 그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물었다. "사람이 다쳤느냐?" 그러고는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p.17)

 

즐겨보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겨울이가 정원이에게 자기 집안의 개판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아빠는 가정 폭행범이고 엄마는 아빠한테 맞아서 반병신이 되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고. 정원이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니 탓이 아니야. 니가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라고 위로한다. <논어>의 저 구절이 생각났다. 논어는 이천오백 년 전의 아주 헌책인데, 아직도 그걸 공부하는 사람이 많다. 생명력이 이어지는 이유는 지금도 통하는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진리는 역시 사람이다. 공자가 갑자기 어마어마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2. 뜻을 지니고 있어도

 

학이 외딴곳에서 울면 그 소리가 하늘에까지 들린다.

 

<시경>의 학명편에 보이는 이 말은 선비가 수양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반드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는 뜻으로 자주 쓰인다. 하지만 선비가 수양을 하는 이유는 세상에 드러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p.41)

 

고전에서는 초야에 묻힌 실력있는 인재가 주군의 부름을 받아 세상에 나가 활약하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이런 이야기의 끝엔 실력을 쌓으면 언젠가는 드러난다는 결론이 따라오고. 지금도 통할까. 현대는 인터넷이란 요물 덕에 인재가 세상에 더 쉽게 나올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드러나기까지는 세상에 자신을 알리는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예전에도 지금도 실력이 엄청 났으나 세상을 부름을 받지 못해 묻혀간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그래서 책은 수양의 가장 큰 이유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세상이 쓰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으로 해석하자면 나를 위해서, 내가 재미있으니까, 나에게 의미가 있으니까 정도로 해석된다. 나도 수양을 열심히 해서 실력이 높아지면 세상에 드러날까. 궁금하다.

 

 

3. 글 읽은 자 되기의 어려움

 

내가 죽어야 할 의리는 없지만 국가에서 번비를 길러온 지 500년이 되었는데, 나라가 망한 날 한 사람도 국난에 죽는 자가 없다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겠느냐. 내가 평소에 읽은 글을 저버리지 않고 영원히 잠든다면 참으로 통쾌함을 깨달을 것이니, 너의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황현은 나라를 책임진 자가 아니었건만 단지 글을 읽은 자라는 이유로 나라가 망하자 목숨을 끊었다. 그가 말한 것처럼 '평소에 글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글을 읽기는 쉬우나 글 읽은 자가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p.87)

 

매천 황현을 소개하는 글이 나온다. 과거제의 부패에 실망하여 낙향해서 재야 인사가 되었다. 말 그대로 대쪽같은 선비의 이미지다. 좀 삐딱한 시각으로 보자면 구한말의 꼰대 유생으로 볼 수도 있다. 그가 위대한 건 글 솜씨가 빼어나고 책을 많이 읽어 식견이 탁월하다는 점이 아니다. 읽은 글대로 삶을 살았다. 글 읽은 자는 요즘 말로 바꾸면 지식인이고 실천하는 자다. 

 

 

4. 교양 교육의 의미와 목적

 

1) 교양 교육은 인간의 이해가 우선이다. 그런데 이것이 대학 교육에서 사라졌다. 그 때문에 한국 교육이, 한국 사회가 위기에 빠졌다.

 

2) 전공 교육의 목적은 전문 시직을 학습함으로써 특정 학문, 특정 직업 분야의 탁월성을 심화하는 데 있다. 그러나 교양 교육의 목적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전 생애에 걸쳐 살아가는 데 지원할 수 있는 사고의 힘을 길러주는 데 있다.

 

3) 교양을 왜 공부하는지 모르는 학생들에게 이유를 알게 해야 한다. 교양은 한 인간의 삶을 안내하기 위해 적어도 다음 세 가지의 지표를 알려주어야 한다.

 

하나, 의미다. 현재의 대학에서는 삶의 의미에 대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학생들이 왜 사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인도해야 한다.

둘, 가치다. 현재 한국 사회는 가치의 문제를 던져버렸다. 학생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해햐 한다.

셋, 목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목적을 말하면 대학 교육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 행복해야 할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바라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따르게 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바랄 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스스로 찾을 수 있게 안내해야 한다. 한 개인의 삶을 의미있게 하고 목표와 이상을 세워 나가갈 수 있게 안내하지 못한다면 대학이 왜 필요한가.

 

4) 학생들이 큰 질문을 던질 수 있게 자극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학생들에게 생각할 만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서 격발되게 해야 한다.

둘, 교수자의 역할은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안내하는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을 교수자가 되면 안된다. 질문에 대한 답은 학생들의 몫이다. 자신들의 생각으로 응답하게 유도해야 한다.

셋, 현자의 견해는 그저 참고할 뿐이다. '간디처럼 살자'가 아니라 간디의 선택을 보여줄 뿐이다. (p.112)

 

전호근 선생이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대학장인 도정일 선생의 주도하는 워크샵에서 교양 교육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적은 글이다. 대학은 이미 취업의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에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교양 교육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긴 글을 여기 옮긴 이유다. 

 

책과 강의에서 전호근 선생은 맹자의 알묘조장(싹을 뽑아 자라는 것을 도와주다)의 예를 들며 지금 우리 학생들을 가르키는 교육이 곡식을 조금씩 뽑아 올려주는 조장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결국은 다 말라 죽는다. 싹이 잘 자라게 하는 교육, 왜 사는지 어떻게 살지에 대한 교육, 그래서 살아가는 지혜과 사유를 길러주는 교육은 어디서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그게 안되면 그냥 가만히 두자. 굳이 뽑아 올리지 말고.

 

 

5. 꼴찌 이야기

 

세상 사람들은 일등 이야기를 열심히 퍼 나르지만 일등의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뻔하다. 에우제비오, 히딩크, 김연아나 이상화 등 그렇게 모든 것을 던져 일등상을 따냈으니 영광을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해도 별로 재미는 없다. 꼴찌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는 사연이 다 달라서이다. 프로야구 원년 팀 중 만년 꼴찌였던 '삼미 슈퍼스타즈' 이야기만이 유일하게 소설로 쓰인 까닭도 다르지 않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p.129)

 

내 인생도 별로 재미 없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좋은 학교를 나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사는 데 어려움 없이 여태 살았다. 무탈하게 잘 살고 있고, 얼마간은 힘든 경험도 하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재미없는 인생이다. 그런 주류 인생에서 자발적으로 나와 험난한 가시밭길의 자영업자를 택했다. 그러니까 내 인생의 재미있는 부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6. 동학농민군의 불살생 원칙

 

내가 전쟁이라고 생각했던 전봉준의 무장투쟁이 실제로는 한쪽의 일방적인 학살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박 교수가 발굴한 자료에 따르면 전봉준의 지휘에 따른 농민군은 전쟁 내내 철저하게 불살생의 원칙을 지켰다. 전봉준이 내린 군령의 첫째 조항에는 적을 마주할 때 병기의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기는 것을 으뜸 공훈으로 삼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p.143)

 

녹두 장군이 농민군을 제대로 훈련시켜서, 혹은 한신이나 장량과 같은 참모를 얻어 관군을 굴복시키고 왕의 모가지를 땄어야 제대로 된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역사적 사실은 위와 같다.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라고. 의병도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고 나온다. 몽둥이와 낫을 든 농민과 백성이 두려워서 정부는 외국의 군대까지 끌어들였다. 이렇게까지 몰아무친 원동력은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불꽃으로 살다 가겠다. 이게 나의 세계다."라고 말한 한명한명의 기세였다. 그래서 동학농민들이 더 존경스럽다.

 

 

7. 태국 사람들의 셈법

 

도정일 선생의 제자 중에 태국에 갔다가 태국 사람들의 독특한 셈법때문에 그 나라에 푹 빠져버린 이가 있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태국 사람들은 오징어를 팔 때, 한 마리를 사면 30바트를 받고 세 마리를 사면 100바트를 받는다. 한꺼번에 많이 사면 깎아줄 법한테 도리어 10바트를 더 내야 한다. 적게 사면 싸게, 많이 사면 비싸게 파는 것이다. (p.167)

 

전호근 선생의 <한국철학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함께 파는 헝가리 사과 장수 할머니 이야기다. 먼저 온 사람이 좋은 것만 사 가면 뒤에 오는 사람은 나쁜 것만 가져가게 된다. 이를 두고 사회주의적 분배 방식이라 했다. 태국의 오징어도 딱 그렇다. 오징어를 한 마리씩만 사가면 모두 오징어를 먹을 수 있어서 먹은 넘과 안 먹은 넘이 싸울 일도 없다. 오징어를 많이 팔기 위해 무분별하게 남획하지도 않은 거고, 그러면 후손들까지 오징어를 먹을 수 있다. 태국의 경제는 성장하지 않을지 몰라도 공동체가 무너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본주의 방식보다 사회주의 방식이 현명한데, 똑똑한 인류는 왜 자본주의를 택했을까?

 

 

8. 행복했던 시절에는 배운 게 없다.

 

다음은 자칭 전미 최고의 프루스트 학자인 외삼촌 프랭크가 파일럿의 꿈이 좌절된 조카 드웨인을 위로하며 하는 말. "프루스트는 완벽한 루저였어. 한 번도 진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고 짝사랑만 하던 동성애자였어. 20년에 걸쳐 책을 썼지만 아무도 읽지 않았어. 하지만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작가라 할 만 하지. 그는 말년에 이렇게 회고했어. '힘겨웠던 시절이 가장 좋았다. 행복했던 시절에는 배운 게 없다.'"

 

할아버지 에드윈이 대회 출전을 두려워하는 손녀 올리버에게 해주는 말. "진짜 패배자는 질까 무서워서 시도도 안 하는 사람이란다." (p.255)

 

"행복하세요" 라는 말이 가장 좋은 인사말이 된 시대다. 인생 최대의 목적이 행복이다. 나는 이 말에 반대한다. 불행보단 행복이 낫겠지만,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행복은 좋은 삶을 사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것에 불과하다. 이덕무의 아름다운 문장도 가난했기에 나올 수 있었다고 나온다. 돌이켜보면 나도 프루스트가 했던 말을 경험했다. 힘들 때 배운 게 훨씬 많다. 

 

 

9. 호우부지시절

 

고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재난은 일상이었다. 때마다 가뭄과 홍수가 일어나고 전염병이 창궐하여 삶을 위협하고 급기야 메뚜기 떼가 날아와 수확을 앞둔 농작물을 억어 치운다. 유학의 경전 <예기>의 기록에 따르면 재난은 3년에 한 번, 큰 재난은 10년에 한 번꼴로 찾아왔다. 그 때문에 나라가 9년 치의 곡식을 비축하지 못하면 부족하다 했고 6년 치의 곡식이 없으면 위급하다 했고 3년 치의 곡직조차 없다면 심지어 나라도 아니라고 했다. 국가가 부를 축적하는 이유는 재난이 닥쳤을 때 백성의 삶을 보살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재난이 닥치면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늙어서 아내 없는 홀아비, 늙어서 남편이 없는 과부, 늙어서 자식 없는 홀로 사는 사람, 어려서 부모를 잃은 고아)이다. 유학의 이상 정치를 가리키는 말인 왕도는 바로 이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을 보살피는 통치 원리였다. (p.256)

 

선생의 강의에서 지금과 같은 재난의 시기엔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다 퍼주어야 한다, 그게 나라가 할일이라고 하면서 위 글을 예시로 들었다. 누구에게 얼마를 주니 논의도 좋지만 그러다가 어려운 사람이 다 죽는다며 나라가 거덜이 날 정도로 퍼주어야 한다며, 지금 캐나다 같은 나라가 그렇게 한다고 했다. IMF, 금융위기, 그리고 지금 코로나까지 진짜 10년에 한 번꼴로 재난이 오고 있다. 이 때 나라가 할 일을 이천 년도 더 된 책이 말하고 있다. 선생의 의견에 백퍼센트 찬성한다.

 

 

10.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부처가 말하는 고집멸도 네 가지 가르침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고苦다. 왜냐하면 나머지 세 가지 가르침은 모두 첫째 깨달음에 따른 처방이기 때문이다. 만약 삶이 아픔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 나머지 가르침은 붙을 곳이 없어지고 만다. 그러니까 석가모니의 설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삶이 고苦임을 깨치는 일이다. 삶의 본질이 고苦라는 말은 달리 보면 아픔이야말로 삶을 확인해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라는 뜻이기도 하다. (p.332)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황정민이 연기한 백사장은 진짜 나쁜 넘이다. 우리가 상상하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넘을 데려다 놓았다.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백사장이 주인공 이병헌에게 날리는 대사다. 그는 이미 부처가 말하는 가장 큰 가르침을 깨달은 자다. 이병헌보다 훨씬 고수다. 나도 오십이 되어서야 겨우 인생이 고통이라는 걸 깨닫는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들었다. 맹자는 인을 측은지심이라 했다. 측은이라는 말은 상대방의 아픔을 헤아리는다는 뜻이니 인은 상대방의 아픔을 헤아리는 마음이다. 이 구절을 두고 선생은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설명했다. 영국의 러스킨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헤아리는 게 예술의 목적이라 했다. 측은지심은 인이고 예술이다. 

 

전호근 선생은 고전에 도통하신 분이다. 그 많은 고전을 다 읽고 의미를 부여하신다. 인류가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과 지혜를 모두 섭렵하고 통했으니 내공이 얼마쯤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삼라만상의 이치를 모두 깨친 경지에 이른 것이 아닐까. 이 정도가 되면 아무리 어려운 선택이라도 아주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삶이 물 흐르듯 그렇게 평온하지 않을까?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물리치고 유유자적하게 살지 않을까? 이런 게 궁금해서 선생께 여쭤보고 싶었으나 겨우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