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야도리라는 일본말이 있습니다. 사다 마사시의 노래 제목이기도 합니다. 일본어로는 雨宿り라고 씁니다. 한자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비를 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처마 밑이나 그 비슷한 곳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것, 또는 그 행동을 말합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네, 어떡하지? 우산도 없는데. 소나기 같으니 일단 저 건물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잠깐 기다리자. 그래서 비를 잠깐 피하고 있는데, 예쁜 여자가 머리에 맞은 비를 훔쳐내며 이 처마 밑으로 들어오네. 눈이 마주쳤다. 어, 말을 걸어야 되나? 뭐라도 해야 하나? 손수건을 건내면 많이 오반가?
네, 그렇습니다. 잠깐 비를 피하는 것이라는 뜻의 아마야도리는 그 단어 자체로도 좋지만, 그 단어에서 파생되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야도리라는 단어에서 설레임을 느낍니다.
사다 마사시의 노래 가사도 '아마야도리'를 하는 중에 근사한 남자가 나타나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진짜 멋진 남자가 '스미마생' 하며 처마 밑으로 옵니다. 놀란 나는 똥그란 눈을 하고 스누피 손수건을 건냅니다. 시간이 지나 새해 기도를 드리러 갔는데 우연히 그 남자를 다시 마주치죠. 그렇게 연애가 시작되는 노랫말입니다.
노래 가사는 참으로 일상적인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가사를 음미하면 일본어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언어라는게 참 아름답다고 사다 마사시의 노랫말을 들으며 생각합니다. 그의 노래는 가사가 재미있습니다. 관백선언이라는 곡이 있는데. 관백이라는 말은 가부장적인 아버지, 꼰대 아빠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 여친에게 하는 말인데, 나보다 일찍 자서도, 늦게 일어나서도 안돼, 항상 예쁘게 있어야 돼, 고부간의 갈등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사랑하면 돼.... 뭐 이런 꼰대같은 말을 하면서 마지막엔 일생에 여자는 너 하나 뿐 이라는 간지작살의 멘트로 끝납니다.
아마야도리에서도 마지막은 あなたの腕に 雨やどり, 즉 당신의 팔 혹은 당신의 품에서 비를 피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조금 찾아보니 우리말도 이런 표현이 있네요. '비를 긋다'라고 합니다. 잠시 비를 피하여 그치기를 기다리다 라는 뜻으로 비를 긋다 라는 표현을 쓴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우리말인데, 듣고 보니 참 예쁩니다. '나비가 나무잎 밑에서 비를 긋는다.' 라고 예문이 나와 있네요. 참 정감이 있습니다.
사다 형님의 노래 '아마야도리'를 우리말로 한번 옮겨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힘듭니다. 그냥 의미만 전달한다면야 어려울 것이 없지만, 문장의 아름다움을 우리말로 표현하려니 금방 한계를 느낍니다. 일본어의 그 감성은 잘 알겠는데, 그런 감성을 나타내려고 하니 어려운 것이지요. 예를 들자면 でも爽やかさがとても素敵だったので, 이런 가사가 나오는데, 당신의 상쾌함이 멋져서, 라고 번역을 해보지만 성에 차지 않습니다. 사와야카사는 원래 뜻은 상쾌함인데, 여기서는 어울리지 않는군요. 당신의 신선함이 멋져서? 이것도 별루구. 잘 생긴 남자가 처마 밑으로 스윽 하고 들어와서 환해지는 게 사와야카사인데 어떻게 옮겨야 할지 어렵습니다. 아, 대학을 국문과로 갔더라면 좀 수월할래나요. 이래서 글 잘 쓰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혹시 번역한 것이 있나 찾아보니 의외로 많이 있네요. 아래 링크에 가시면 노래도 들을 수 있고 가사도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사다 형님의 '또하나의 아마야도리'라는 후속곡도 있는데, 원곡에서는 손수건이라도 건넸지, 여기서는 꿈같이 나타난 남자에게 말도 부치지 못하는 여자의 안타까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원곡의 가사가 재미있다면, 후속곡의 가사는 안타깝고 아련합니다.
https://blog.naver.com/love7green/222473823152
장오 : 이 할망구야, 어디 갔어? 손자며느리가 만두 사왔어. 나와서 좀 먹어봐. 맛있어.
고요하다.
정오 : 제길. 화가 나면 화를 내라더니, 화 좀 냈다구 이러기야? 하여간 제멋대루지, 제멋대루야. 이 망할 놈의 할망구. 정말 안 나올 거야? 가 버린거야?
사이.
정오 : 원, 제기.... 그래, 가. 가야지. 가야구 말구..... 돌라보구 말 것도 없어. 아니라구는 허지마. 인저 다 끝났어. 끝은 끝이야. 세상에 좋은 끝은 없어. (49쪽)
이 책은 배삼식 선생의 희곡입니다. 희곡은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한 연극의 대본입니다. 하여, 희곡은 대화로 모든 것을 표현합니다. 상황을 묘사하거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모두 대사지요. 주고 받는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흠뻑 빠져 있습니다. 대화 속 문장들이 특별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읽다 보면 사람의 심금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습니다. 작가의 힘입니다.
<3월의 눈>에 나오는 주인공은 80대의 장오와 아내 이순입니다. 손자의 빚을 갚기 위해 집을 팔았고, 그 집은 마루부터 헐려나가고 있습니다. 읽다가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앞부분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네, 장오와 이순의 대화는 장오의 기억으로 복기된 것이었습니다. 이순은 이미 장오의 곁에는 없습니다. 손자며느리가 사온 만두를 좀 먹어보라고 큰 소리로 장오가 말하지만 고요만이 그 말을 받습니다.
노인들의 이야기에는 특히 약해집니다. 특히 나이듦의 쓸쓸함은 더욱 그러합니다. 장오는 자식과 아내의 부재로 인한 슬픔과 쓸쓸함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자신의 집도 떠납니다. 이런 정서는 견디기 힘들지만, 사실 익숙하기도 합니다. 내 어머니 아버지의 이야기이자 곧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니 말이죠. 부모는 늙고 병들어서 떠나가려 합니다. 자식들은 이제 다 자라서 떠납니다. 아내는 곁에 있으나 제대로 대화한지 오래되었습니다. 대화의 부재 속에서 나는 슬프고 쓸쓸합니다.
야마야도리의 노랫말이나 배삼식 선생의 희곡이나 내 마음 한켠에 있는 줄을 탱 하고 튕깁니다. 어렵지도 않고 일상적인 글인데 말이죠. 쉬운 단어로 사람을 반응하게 하는 글을 나도 쓰고 싶습니다. 내 감정에 솔직한 글, 나의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내는 글을 쓰면 되는데, 그게 어렵습니다.
그나저나 나도 아마야도리 할 곳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품에서 비를 그으면 하면 더없이 좋으련만.
PS. 가사 원본
9月のとある木曜日に雨が降りまして
こんな日に素敵な彼が現れないかと
思ったところへあなたが雨やどり
すいませんねと笑うあなたの笑顔
とても凛凛しくて
前歯から右に四本目に虫歯がありまして
しかたがないので買ったばかりの
スヌーピーのハンカチ
貸してあげたけど 傘の方が良かったかしら
でも爽やかさがとても素敵だったので
そこは苦しい時だけの神だのみ
もしも もしも 出来ることでしたれば
あの人にも一度逢わせて ちょうだいませませ
ところが実に偶然というのは
恐ろしいもので 今年の初詣でに
私の晴着の裾踏んづけて
あ こりゃまたすいませんねと笑う
口元から虫歯がキラリン
夢かと思って ほっぺつねったら 痛かった
そんな馬鹿げた話は
今まで聞いたことがないと
ママも兄貴も死ぬ程に笑いころげる 奴らでして
それでも私が突然 口紅などつけたものだから
おまえ大丈夫かと おでこに手をあてた
本当ならつれて来てみろという
リクエストにお応えして
5月のとある水曜日に彼を呼びまして
自信たっぷりに紹介したらば
彼の靴下に 穴がポカリ
あわてて おさえたけど しっかり見られた
でも爽やかさが とても素敵だわと
うけたので彼が気をよくして急に
もしも もしも 出来ることでしたれば
この人をお嫁さんにちょうだいませませ
その後 私 気を失ってたから
よくわからないけど
目が覚めたらそういう話が すっかり出来あがっていて
おめでとうって言われて も一度気を失って
気がついたら あなたの腕に 雨やどり
九月のとある木曜日に雨が降りまして
こんな日にすてきな彼が現れないかと
思った処へあなたが雨やどり
お友達になれたらどんなに楽しいだろうけれど
あなたの気を引ける程すてきな娘ではないし
風邪をひかないでと願うのがやっとだった
幸せの半分を手にしていると
誰か云った意地悪なお話
でもこっそりうなずいてる自分が悲しい
白いドレスや口紅や赤い靴が
似合うすてきな娘だったらもっと上手な笑顔を
あなたにあげられたのに
あなたが覚えているなんて夢にも思わなかったし
ましてやそれ以上の事なんて望みもしなかった
だからこそこんなに驚いています
おまけに心配症でそれに引っ込み思案で
自信なんてかけらもないしあなたに迷惑を
かけるのがきっと精一杯です
信じろというのが無理な事です
だってまさかあなたが選んだのが
こんなに小さな私の傘だなんて
呼び戻す為に少しだけ時間をください
涙をこっそり拭う間だけ時間をください
そした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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