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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국)

진영 보도연맹 학살 사건의 재구성 : 조갑상 <밤의 눈>

by 개락당 대표 2025. 2. 27.

 

2024년 10월에 최대성 한림면장 추모사업 설명회가 열렸습니다. 보도연맹 학살이 일어났던 1950년 8월, 최대성 한림면장은 당시에 구금되어 있던 100여 명의 면민을 모두 석방하였습니다. 김해에서 보도연맹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은 모두 272명이었는데, 최대성 면장의 이런 현명한 판단과 노력으로 한림 지역의 피해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국민보도연맹(보도연맹, 보련)은 좌익에 몸 담았다가 전향은 사람들을 가입시켜 만든 단체입니다. 이승만 정권이 빨갱이 전력이 있는 사람들을 쉽게 관리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많았고, 일반인들도 있었습니다. 625가 발발하고, 보도연맹 사람들이 북한군에 협조하거나 입대한다는 보고를 받은 이승만은 이 빨간 놈들을 모두 처단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1950년 7월에서 8월에 학살을 최고점을 찍었고, 이후 중공군이 참여할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이 때 희생된 사람들은 약 10만 명에서 2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한국 현대사 제노사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례가 없는 엄청난 사람들이 희생된 최악의 전쟁 범죄에서도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이가 최대성 한림면장이었습니다. 당시 구금된 이들은 보도연맹이라 할지라도 한 동네에 사는 선량한 양민이었고, 최대성 면장은 경찰을 설득하면서 구금된 이들을 모두 빼냈습니다. 나중에 진실화해위원회가 김해지역 희생로 확인한 272명 중 한림 거주자는 4명이었는데, 모두 방첩부대에 직접 연행되어 처형된 사람이었습니다. 최대성 면장은 '영남의 쉰들러'라 불리며 한림의 의인으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생기면서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조사하였고, 2008년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권력이 행한 이 잔혹한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최대성 면장의 업적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보도연맹 사건 이후 74년 만의 일입니다.

 

추모사업회가 만들어지기까지 애써 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먼저 허수정 의원이 김해시의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발의하였고, 김해인물연구회 김지관 회장이 김해시의 거의 모든 의원들을 만나서 이 건에 대해 알리고 서명을 받았습니다. 설명회에는 연세대 한성훈 교수가 오셔서 김해지역의 보도연맹에 대해 발표를 하였습니다. 한교수는 이것이 단순하게 100여 명의 양민을 구했다는 사실을 뛰어넘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후손들이 받을 억울함과 불평등, 그리고 사회적인 혼란은 없앤 일이기에 그렇다고 했습니다.

 

김해의 훌륭한 인물을 알고, 기억하고, 기념할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 지역에 사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 추모사업이 더 특별한 건, 최대성 면장이 개락당 당주님의 큰할아버지입니다. 결혼 후 당주님으로부터 최대성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책에 나올 정도로 훌륭한 분인데, 기념비도 하나 없는 게 많이 아쉽다고 했는데, 이렇게 추모회가 결성되어 일이 추진이 되니 당주님은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저 역시 어깨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이 날 참석하신 분들 한 분 한 분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추모사업이 열린 한림면사무소. 사진 출처 :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001010000047

 

 

추모사업이 열릴 수 있게 한 핵심 인물인 김지관 김해인물연구회 회장. 당주님이 요즘 인물연구회에 열심히 나가시는 이유 중의 하나.

 

 

최면장님 후손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오셨다.

 

 

한성훈 교수의 고향은 바로 여기 한림면이다. 고향에 와서 이런 강의를 할 줄은 몰랐다고 하며 긴장된다고 했다.

 

 

주인공 최대성 면장님 등장하심.

 

 

1945년부터 1956년까지, 그 혼돈의 시대에 한림면장을 역임하셨다.

 

 

최대성 면장이 구금된 보도연맹원들을 어떻게 구했는지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다.

 

 

당시 김해지역의 보도연맹원 명부다. 한성훈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김해경찰서의 오래된 캐비넷을 다 뒤져서 찾았다고 했다. 연구자의 집념이란 이런 거라고 보여주는 사례다.

 

 

역시 기록의 민족답게 처형자들의 인적 사항도 다 기록해 놓았다. 그래서 억울하게 생을 마감했던 이들이 누군지 다 알수 있었다고.

 

 

용공혁신분자조사서. 이름이 무시무시하다. 실제로는 처형자 명부. 이걸 다 조사했다.

 

 

김해시민언론에서 상세하게 다룬 기사가 있다. 참조하시면 좋겠다. 이 사진은 여기서 퍼왔다. https://blog.naver.com/brilliant_gh/223616521494

 

 

설명회를 다 마치고 추모회의 한완희 사무국장을 비롯하여 김지관 회장님, 그리고 한성훈 교수님를 모시고 개락당에 왔습니다. 한교수님과는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교수님은 심지어 고등학교 선배였습니다. 김해가 고향이라 더욱 뜻 깊은 행사였다고 하셨습니다. 추모회의 일이 제대로 잘 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을 상세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교수님이 지은 <이산, 분단과 월남민의 서사>라는 책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만, 조갑상 작가의 <밤의 눈>은 위에서 이야기한 보도연맹 학살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책의 무대는 대진읍이라는 가상의 공간입니다만, 책을 읽자마자 단박에 김해의 진영읍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챘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진영과 한림은 같은 생활 권역입니다. 최대성 면장님의 이야기와 이어져 있습니다. 소설이라 일부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긴 했겠지만, 실제의 사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입니다. 

 

책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충격이었습니다. 보도연맹 학살도 여러 매체를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그 실상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 그리고 다른 책에서 나온 사실들이 얽혀서 그 모든 전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김해 진영에서 보도연맹으로 총살을 당했지만 살아남은 김영봉과 몹쓸 짓을 당하고 사살당한 여동생 김영명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한용범과 한시명으로 아주 입체적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강성갑 선생의 일대기 <한얼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에서는 선생의 죽음이 그리 실감나지 않았는데, 이 책에서는 무척 생생하게 묘사되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최대성 면장의 그 의로운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 줄 깨달았습니다. 그 서슬 퍼른 시대 상황에서 올바른 일을 한다는 게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기개가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시대의 어른이라 부를 만 합니다.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거의 모두 실제 인물입니다. 옥구열의 실제 인물인 김영욱은 인터넷을 뒤져 찾아보았습니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한용범 : 이 책의 주인공. 어려운 시대를 정면으로 맞선 사람.

김영봉 전 진영읍장, 메이지 대학교 출신. 남로당 가입 경력.

 

한시명 : 한용범의 여동생. 가장 통탄할 죽음.

김영봉의 여동생 김영명

 

옥구열 : 힘든 시대에 사람 구실을 하려고 노력한 사람. 

김영욱 금창장의위원회 위원장, 전국유족협의회 상임고문

참고 읽을 거리 :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96570

 

옥수한 : 옥구열의 부친. 

김정태(김영욱 부친) 독립운동가. 보도연맹 희생자

 

이주호 : 이 책의 최대 빌런. 

김병희 한림지서장. 

 

남상택 : 공산주의자로 몰려 처단됨

강성갑 목사. 

 

성시천 : 남상택과 함께 처형될 뻔 했으나 극적으로 탈출.

최갑시. 강성갑 목사의 최후에 함께 한 사람. 

 

 

소설 속에서 보도연맹원들의 구금시설로 나온 미곡창고. 실제로는 진영금융조합 창고. 아직도 있다고 한다. 사진은 https://blog.naver.com/maengint/223076182806 여기서 퍼왔는데, 당시 학살 장소를 비롯하여 보도연맹에 관한 어마무시한 자료가 있다. 보도연맹에 관한 모든 자료가 다 있는 것 같다.

 

 

단정 전후로 올라갈 사람 다 올라가고 남을 만한 사람들이니께 남은 기고, 보안법도 모지레 보련 맹근 건 이 박사 반대하는 사람들 옭아맬라꼬 그런 거 아이가. 아, 임정을 지지할 수도 있고 몽양 선생 지지할 수 있는 긴데 그 꼴을 못 보는 기라. 미국서 민주주의 배았으몬 뭐해?

 

그라고, 와 이박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생겼노? 하다가 흐지부지 때리치운 토지개혁도 그렇지만 뭣보다도 친일파는 안 된다는 거 아이가. 어제꺼정 조선 사람 잡아가던 순사가 해방이 됐는데도 다시 순사복을 입을 수 있나? 어불성설도 유만부득이지. (51쪽, 옥구열의 부친 옥친의 일갈)

 

 

 

 

일제강점기, 광복, 그러나 분열, 이승만 정부 수립, 625 전쟁, 419, 박정희 군사쿠데타.... 주인공들이 살아낸 시간입니다. 그 시절을 어떻게 살았을까요? 책에 나오는 시대보다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입니다. 박정희 이후 광주항쟁, 전두환의 시대, 6월 혁명, 그리고 문민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대한민국은 시궁창이었습니다. 더 과거로 가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제강점기, 을사조약, 아관파천, 명성황후 시해, 신미양요, 병인 양요, 강화도 조약 등. 정조 이후 조선 말기도 엉망진창이었지만 그건 놔둔다 치고, 일제가 처들어온 강화도 조약(1876년)부터 시작하면 문민정부가 시작한 1993년까지 약 120년 간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광란과 치욕, 독재와 저항의 역사입니다. 그 아수라를 지나 지금을 살고 있는 나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요. 참 복잡합니다. 

 

책을 읽고 처음 드는 생각은 그 암울하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 대한 존경입니다. 특히 시대의 파도에 정면으로 맞서는 분들께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 책에 나온 한용범, 옥구열, 남상택 같은 인물입니다. 존경심과 함께 온몸을 감사는 감정은 분노입니다. 이승만이라는 절대 악에 대한 감정입니다.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이렇게 격한 감정을 느끼는데, 실제 피해자들과 그 가족이 느끼는 감정은 어떨지 상상조차 힘듭니다. 

 

책의 주인공인 한용범은 보도연맹이라는 이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습니다. 겨우 탈출하여 목숨은 건졌지만 여동생은 죽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자 빨갱이라는 이유로 또 감옥에 갔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 끝날 때까지 쉬쉬 해야 했고, 감시를 받았으며 살았습니다. 이는 분명한 국가의 잘못입니다. 수십 년의 억울함, 정신적 고통에 대해 어떻게 보상해야 할까요? 그래서 찾아보니, 2024년 고령지역 보도연맹 희생자 유족 81명에게 약 32억원을 배상하라는 법원 판결이 있었습니다. 유족 1명 당 약 4천만 원 정도입니다. 국가가 이제라도 보상을 하는 것은 참 다행이지만, 그 금액이 참으로 작습니다. 더 많이 줘도 되는데, 그러라고 세금 내는데 말이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한성훈 교수의 말이 다시 다가옵니다. "최대성 면장이 한 일은 단순히 100여 명의 목숨을 살린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네, 정말 그렇습니다. 

 

이런 사실은 널리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힘이 생깁니다. 하여 이 책도 널리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부지런히 알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