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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노인의 가난은 열심히 살지 않은 젊은 날의 결과인가 : 소준철 <가난의 문법>

by Keaton Kim 2021. 6. 15.

 

나는 가난하게 자라지 않았습니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자식에게 넉넉한 편인 부모의 혜택을 듬뿍 받았습니다. 좋은 학교를 나왔고 좋은 직장에도 들어갔습니다. 직장에서 주는 월급으로는 가족들을 부양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가난을 잘 알지 못합니다. 책에서 배운 가난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입니다.

 

이제 자영업자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자영업자란 말이 떠오릅니다. 자영업자의 생태가 부유한 사람도 가난하게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가난한 사람이 자영업자가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저축해놓은 돈은 이제 바닥이 나고 월급 걱정을 해야 하는 가난한 자영업자가 되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가난의 모습은 늘 변해왔다. 전쟁이 끝난 후 갈 곳 없는 고아의 모습에서, 텔레비전 드라마에 나온 달동네의 모습과 IMF 위기 이후 노숙인의 모습을 거쳐 리어카를 끄는 사람들(특히 노인들)의 모습으로, 가난의 모습은 늘 바뀔 것이다. 다음에 올 '가난'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p.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주인공은 1945년 생 윤영자 할머니입니다. 전라도 해남에서 국민학교를 나오고 열여덟 되는 해 부친을 따라 서울로 이사하여 서무일을 하게 됩니다. 스무살에 공무원인 남편을 만나 3남3녀를 낳았습니다. 남편은 인도네시아로 돈을 벌러 갔고, 다녀와서는 개인 택시를 몰았습니다. 윤영자 할머니도 50대에 옷가게 사장님으로 화려하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나라에서 하는 노인일자리인 주차장 청소와 폐지를 줍는 투잡으로 근근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책은 윤영자 할머니의 하루를 온전하게 보여줍니다. 할머니는 혼자 삽니다. 자식들은 다 떠났고 남편은 병들어 막내딸 집에 얹혀 있습니다. 할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폐지 줍는데 보냅니다. 사람들이 내놓은 폐지는 제한되어 있는데 줍는 노인은 많아, 경쟁이 치열합니다. 누구보다 일찍 나서야 하고, 좀 더 영리해야 많은 폐지를 모을 수 있습니다. 윤영자 할머니의 곁에 있는 대부분의 노인들이 영자 할머니와 비슷한 처지입니다.

 

우리 동네에서도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박스 주우시는 할머니의 하루를 아주 적나라하게 봤습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는 후~~ 하는 한숨이 나왔습니다. 할머니는 어쩌다가 저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가난한 자영업자가 된 내가 할머니와 같은 노년을 보낼게 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 될까요? 할머니는 젊었을 때도 부지런히 일했고 지금도 누구보다 부지런합니다. 할머니의 일생과 할머니의 하루를 들여다 본 지금, 할머니의 가난을 할머니 탓으로 돌리기엔 너무 부당합니다. 할머니가 잘못한 거라곤 할머니가 저축한 돈을 자식들에게 다 준 것 뿐입니다. 그 결과가 좋지 않았죠. 그래서 이 책의 교훈은 다 큰 자식에게 돈 주지 마라.... 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가난한 노인들에 대해 '열심히 살지 않은 젊은 날의 결과'라거나 '부양해줄 자녀와의 어떤 문제'가 있어 저렇게 사는 사람이라고 단언하고 만다. "역시 가난한 노인들은 가난한 이유가 있어." 라며 혀를 차기도 한다. 그렇지만 노인들의 삶이 순전히 개인의 잘못 때문에 생겨나는 걸까? 가난하고 싶어 가난해진 사람은 없다. (p.126)

 

 

소준철 저자의 강의도 함께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긴 하지만 선진국 중에서 가난한 사람이 비교적 많은 나라라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가난한 노인이 많다고 합니다. 한때 잘 나가던 윤영자 여사가 할머니가 된 지금 가난하게 살고 있는 건, 오직 성장 일변도로 달려온 국가 정책의 부작용이며, 가족만이 사회안전망이 되는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리고 나라의 제도는 잘 바뀌지 않아서 지금 노인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제도는 미래의 우리들에게도 적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가 노인이 되는 미래에도 지금과 별 다른 바가 없다는 얘기겠지요. 여전히 가족에게 의존하는 사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얼까요? 저자는 현재의 노인들에 대한 보호를 강력히 요구하는 것, 그리고 국가나 조직, 혹은 타인이 개인의 삶을 해치지 않는 건강한 '사회'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65세가 되면 노인입니다. 제도적으로 이 나이가 되면 거의 모든 산업에서 은퇴해야 합니다. 인간의 삶 전체를 봐서도 이 때부터는 이제 좀 편안히 쉬면서 인생을 즐기며 관조해야 할 나이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본 것 처럼 노인이 되면서 삶은 가난의 나락으로 빠져듭니다. 가난한 노인을 위해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는 '노인일자리사업', 국민연금, 나의 자식들, 그게 아니면 지금의 내 노력이 노후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아픈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은 불편합니다. 나는 예외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고 모두가 그 대상이 될 현실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젊은 날엔 자식들 잘 시키워보겠다고 열심히 살았고 지금은 제 한 몸 건사하려고 열심히 사는 영자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애처러움과 섬뜩함이 동시에 듭니다. 이런 현실을 바로 잡을 대안이 부재해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 아주 쉽게 읽히지만 조금은 공포스럽습니다. 뒷목이 땡기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