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로봇을 갖고 싶은데 돈이 없어 : 마틴 포드 <로봇의 부상>
2016년에 등장한 알파고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설마 바둑에서 사람을 이기는 로봇이 나올라구? 아직 멀었어 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나도 그랬다. 바둑의 경우의 수는 우주의 원자 갯수보다 훨씬 많아서 그걸 다 계산하는 건 아무리 성능 좋은 컴퓨터라 하더라도 불가능하고, 그래서 인간의 경험과 직관이 더 나은 판단을 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사람들의 기대를 배신했다. 알파고는 승리했고, 알파고의 기보를 연구한 전문기사들은 이제 사람이 인공지능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음만 먹으면 현재 인류 최고의 기사 이세돌을 능가하는 바둑의 신도 만들어내는 시대다. 로봇의 등장은 이제 먼 미래의 일이 아닌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컴퓨터 설계와 소프트웨어 일을 하고 있는 엔지니어 마틴 포드가 쓴 <로봇의 부상>은 로봇들이 가까운 미래에 어떤 활약을 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힘든 일은 내가 하지 않고 로봇들이 하니까 생활이 좀 편해질까? 외로울 때 대화가 되는 로봇이 있으면 외로가 될까? 로봇들이 활보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어이, 친구. 기름기 없이 뽀독뽀독. 알겠지?" 청소도 하고 안마도 해주고 시골에 계신 어머님 댁에 한 대 놔드리면 농사도 같이 짓고. 아이 탐나는 걸. 근데 가격이 뭐 얼마라구?
사진 출처 : http://www.earlyadopter.co.kr/14050
요즘 맥도날드나 롯데리아에 가면 주문을 받는 사람이 없다. 별로 친절하지 않게 보이는 키오스크(터치 스크린)에 대고 주문을 해야 한다. 처음엔 좀 생경했지만 이젠 그러려니 한다. 저자는 로봇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며 이 사례를 든다. 일본 초밥집인 체인 쿠라는 로봇이 초밥을 만들고 있으며 지점장 없이 운영된다. 아마존은 로봇으로 운영되는 물류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폭스콘은 100만 노동자를 대체하는 로봇 도입 프로젝트를 이미 시작했다.
괜찮아. 로봇이 하는 일은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육체 노동일뿐이야. 로봇이 그런 일을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린 좀 더 우아한 일을 하면 돼. 정말 그럴까? 책에서 인용한 다음의 예를 보자.
2009년 10월 LA 에인절스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물리치고 리그 챔피언십 출전권을 얻어 뉴욕 양키즈를 상대하게 되었다. 한 스포츠 기자가 이 경기를 보도한 기사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다.
일요일 펜웨이 파크에서 열린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9회까지 2점차로 끌려가던 에인절스는 패색이 짙었으나,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안타로 회생하여 결국 보스턴을 7대6으로 눌렀다. 이날 4타수 2안타를 기록한 게레로는 이 안타로 두 명의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지난 4월에 에너하임에서 있었던 끔찍한 사고로 닉 에이든하트를 잃은 지금 때려낸 이 안타는 아마 내 평생의 안타 중 가장 값진 것이 될 것이다. 이를 세상을 떠난 우리 팀 선수에게 바친다." 게레로의 말이다. 게레로는 시즌 내내 성적이 좋았으며 특히 주간 경기에 강세를 보여왔다. 주간 경기에서 게레로는 0.794의 OPS를 기록했는데, 5개의 홈런을 비롯해 26개 경기에서 13타점을 올렸다."
잘 쓴 글인가? 위의 기사는 '스탯 멍키'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쓴 글이다. (p.140)
2004에 나온 영화 <아이 로봇>에서 윌 스미스가 연기한 주인공은 로봇에게 이렇게 묻는다. "로봇이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나? 로봇이 빈 화폭을 걸작품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나?" 로봇은 이렇게 대꾸한다. "니는 할 수 있나?" 이 말은 압도적 다수의 인간도 이렇게 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2015년의 현실 세계에서 윌 스미스가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로봇은 좀 더 단호하게 이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예스!"
2012년 7월에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심연 속으로>라는 곡을 연주했다. 어떤 비평가는 이 작품이 "예술적이고 듣기 좋았다."고 평했다. 이 일은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가 순전히 기계가 만든 곡을 연주한 첫 번째 사례가 되었다. 이 곡의 작곡자는 야머스로, 야머스는 음악적으로 특화된 알고리즘을 구동하는 컴퓨터 집단이다. (p.178)
역시! 로봇이 바둑의 신이 되는 시댄데, 기자나 작곡가가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논술 채점을 하는 로봇이 등장해서 교수들이 반대하는 데모를 했다는 사례도 보여주었고, 스마트 폰으로 차를 불러 타는 공유 택시 우버의 진통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당장 우리나라에서도 겨우 카풀 앱의 등장으로도 사네 못사네 난리다. 이럴진대, 무인으로 운전하는 차들이 나오면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거다.
2018년 1월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 한복을 입으니 더 예쁘네. 실시간으로 인간과 대화하며 62가지 감정을 미세한 얼굴 표현으로 나타낼 줄 안다고 한다. 이 로봇을 만든 핸슨 박사는 소피아가 20년 안에 인류와 공존할 것이며 인류를 돕는 진정한 친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사진 출처 : http://www.daehannews.kr/news/article.html?no=453164
로봇이 점점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일어나는 일 중에서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하게 되고 부자는 엄청난 부자가 된다는 점이다. 이미 지난 60년간 미국의 국민소득 중에서 근로자에게 가는 부분은 점점 줄고 있으며 기업 이윤은 점점 늘고 있는 사실은 수치로 보여주며 증명했다. 특히 노동집약적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이 더욱 살기 어려워지는 현실은 굳이 그래프가 아니더라도 피부로 알 수 있다. 근데 가난해지기만 하는가? 일자리를 아얘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난다.
디지털 시대의 4개 깡패라 불리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의 시가 총액은 이미 우리나라의 총생산액을 넘어선지 오래다. 근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은 삼성에서 일하는 사람의 수보다 작다. 미국은 그렇다쳐도, 중국 같은 나라는 어떻게 되려나? 제조업이나 단순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이 대부분일텐데, 그 사람들이 다 기계에 일자리를 뺏기게 되어 폭동 같은게 일어나면 공산당 정부가 어떻게 대처할런지도 무척 궁금하다.
전설적인 미국 자동차 노조 지도자 월터 류터와 헨리 포드 2세가 자동화된 자동차 공장을 둘러보며 나눴다고 전해지는 대화는 유명하다. 포드는 류터에게 조롱하듯 이렇게 물었다. "위원장님, 저 로봇들로부터 노조회비을 어떻게 받으실 건가요?" 류터는 곧장 이렇게 맞받아쳤다. "회장님, 저 로봇들에게 어떻게 차를 팔 생각이십니까?" (p.201)
근로자는 소비자다. 내가 월급을 받아야 기업에서 만든 물건을 살 거 아니냐. 저자는 재미있는 예를 들고 있다. 해괴한 외계인이 지구에 왔는데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여기에 도착했다. 임금을 요구하지도 데모도 안한다. 일만 하게 해주면 행복한 친구들이다. 지구인들은 이들을 고용해서 일을 시켰고 사람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실업률이 사정없이 높아졌고, 정부의 실업 수당도 바닥났다. 정부는 외계인 고용을 제한하려 했으나 이미 그들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버렸다. 기업은 인건비 삭감으로 처음엔 이익을 올렸으나 사람들은 아주 필요한 물품 외에는 사지 않게 되어버렸다. 물건을 만들어도 살 사람이 없게 되어 기업도 망하게 된다. 이 외계인들은 인간에게 이로운 존재인가 해로운 존재인가?
2018년 어비스 크리에이션 머시기라는 회사에서 실제 섹스가 가능한 로봇 엑스 모드를 출시한다고 보도했다. 얘는 인공지능이 깔려 있어서 대화나 터치에 반응하고 사람이랑 촉감이 아주 유사하다고 한다. 출시 가격은 약 2천만원 이랜다.
저런게 대중화 되면 좋겠다고? 물론 좋지. 좋구 말구. 근데 조금 생각해보면, 저런 것도 돈이 있어야 사지. 로봇들에게 일자리를 다 뺏겨 먹고 살기도 힘든데 저 정도의 가격을 지불하고 살 넘이 누가 있을까? 있는 넘들만 좋다고 사겠지. 아니 있는 넘들은 굳이 살 필요가 없나? 여튼 그림의 떡이 될게 분명하다.
사진 출처 : http://www.nocutnews.co.kr/news/5022011
이런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건 '기본소득 보장제도'다. 북유럽의 어느 사회학자나 경제학자가 아니라 미국의 엔지니어인 저자가 이렇게 주장하는게 더 놀랍다. 이 양반 정체가 뭘까? 모든 국민에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 주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급진적 좌파가 아니고서야 꺼내기도 힘든 그 제도를 이렇게 쉽게 말하다니. 근데 읽어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어쩌면 유일한 해결책일지도.
일정 수준의 기본소득을 모든 사람에게 보장하는 일, 달리 말해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을 잃어도 일정한 선 이하로 생활수준이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일, 이는 단순히 모든 사람을 위한 보호 차원을 떠나 위대한 사회의 한 요소로서 반드시 필요하다. 위대한 사회는 자신이 태어난 특정 집단에 대해 개인이 스스로의 문제 해결을 위해 이것저것 요구할 필요가 없는 사회이다. (p.396)
엔지니어가 로봇에 대해 쓴 책인데, 오히려 경제에 관한 책으로 읽혀졌다. 다 읽고 나면, 옮긴이가 말하기도 했지만, "이제 로봇이 힘든 일을 다 할거니까 살기 편해지겠구나" 라기보다는 "큰일났네.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그럼 기본소득에 의지해서 살아야되나?" 하는 쪽의 생각이 훨씬 많이 든다. 사람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지만 그 혜택을 사람들이 제대로 누리지는 못할 것 같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로 말이다. 근데 뭔가 다른게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저자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니 그걸 피하면서 함께 잘 사는 길을 만들수도 있지 않을까? 너무 희망적이라고?
그게 안된다면, 기계에 밀린 쓸모없는 인간들이 일으킬 '백수의 혁명'에 동참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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