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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이야기

내가 알든 모르든 세계는 진보하고 있다 : 정재승 <열두 발자국>

by Keaton Kim 2018. 10. 27.

 

 

 

내가 알든 모르든 세계는 진보하고 있다 : 정재승 <열두 발자국>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사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한국의 프로기사인 이세돌 9단이 세기의 대결이 벌어졌다. 시합 전 승패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바둑계에서는 대부분 이세돌의 승리를 점쳤으며 이세돌 자신도 패할거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다만 과학계에서는 이세돌이 완패할 거라는 조심스런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알파고 측 데미스 허사비스 CEO는 이세돌의 자신감을 보고 조금 놀랐다고 하기도.

 

 

 

이세돌의 승리를 예상하는 근거는, 5개월 전 판후이와 둔 바둑의 기보에서 나타난 알파고의 실력이 이세돌과는 꽤 격차가 난다는 점이고, 그래서 불과 5개월만에 비약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바둑의 경우의 수는 1에 0이 170개 정도 붙어있는 무한대에 가까운 수(우주에 있는 원자의 갯수가 10^78이라고 한다. 뭐 이 정도니...)이므로 컴퓨터가 계산하기는 불가능하고, 그 계산보다는 인간의 직관이 더 뛰어나다고 믿었다.

 

 

 

다른 편에서는, 그 5개월 동안 고수들의 대국 16만개를 익혔으며 이 기보를 모방한 뒤 딥러닝을 통해 최선의 수를 찾게 했고 한달에 백만 번의 시합을 했다고 한다. 따라서 인공지능 프로그램에게 이 5개월은 인간의 시간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고 주장했다. 구글 딥마인드의 과학자들이 여러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쳤을테고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그래서 이세돌에게 도전하는 거라고 했다.

 

 

 

 

1 Human Brain, 1 Coffee VS 1202 CPUs, 176 GPUs, 100+ Scientists

 

이세돌이 커피 한잔을 들고 반상에 들어선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이렇게 평했다. 알파고가 두는 수가 전성기 시절의 이창호를 보는 듯 해서 알파고 두껑을 열면 이창호가 들어있다, 혹은 구글 회장이 와서 알파고가 더 열심히 두었다는 드립이 유행하기도.

 

개인적으로 이세돌이 진다는 생각은 전혀 안했다. 이세돌이 누군가. 전혀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바늘만한 구멍을 내어 판을 흔들어버리는 의지와 투혼의 상징이 아니던가. 아직은 기계 따위가 바둑의 신을 이기는 것은, 물론 언젠가는 그렇게 되긴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믿었다.

 

사진 출처 : http://www.hani.co.kr/arti/sports/baduk/734666.html

 

 

 

드디어 대국이 시작되었다. 손이 없는 알파고를 대신해서 알파고 개발팀 팀원인 아자 황 아마 6단이 컴퓨터에 수를 입력하고 알파고가 다음 수를 띄우면 바둑판에 돌을 놓았다. 이세돌의 도발적인 포석에 알파고는 정직한 대응으로 두텁고 단단하게 맞섰다. 이세돌이 기분 좋게 판이 흘러가던 찰나 인공지능이 두었다고 하기엔 너무나 인간적인 수가 나왔다. 계산적이고 확실한 수를 둘거라도 생각했던 이세돌은 당황했고, 그 수가 승착이 되어 1국을 알파고가 가져갔다. 2, 3국도 내리 알파고가 승리. 4국에서 이세돌은 혼신의 투혼으로 승리했고 5국은 알파고가 이겼다.

 

 

 

바둑이라는 게임은 복기라는 게 있다. 바둑이 끝나고 그 바둑을 처음부터 다시 놓아보는 것이다. 왜 그 자리에 놓았는지, 그 보다 좋은 수는 없었는지, 다르게 두었다면 바둑은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검토한다. 그런데 희한한 건, 알파고와의 바둑에서는 복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복기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알파고는 말이 없었다. 복기는 인간들이 했다. 알파고가 이런 뜻으로 여기 놓지 않았을까. 이런 추측으로 인간들이 모여서 알파고의 수들을 해석하느라 진땀을 뺐다.

 

 

 

우주 내 원자 수 이상의 거대한 탐색 공간에서 직관, 상상력, 지적 깊이를 요구하는 바둑이야말로 인공지능이 인간을 따라잡기 가장 힘든 분야라고 했다. 그 바둑에서 알파고는 가뿐이 이겼고 자신이 더 우수한 것을 증명했다. 하지만, 자신이 내린 판단해 대해 어떤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아주 불친절했다. 이제부터는, 어쩌면 모든 의사 결정은 인공지능이 하고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인간은 그의 결정을 따라야 하는 그런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 인간은 알파고의 수를 계속해서 의심하고 분석했고, 알파고가 둔 수들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기존에 알고 있던 바둑의 수들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우리가 옳다고 의심하지 않았던 수들이 과연 옳았던가. 처음부터 다시 하나씩 놓아보며 검증하기 시작했다. 알파고의 등장으로 인간이 여태 두던 바둑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인간들은 겸손해졌다. (글 일부 인용 : 나무위키 및 이 책 p.271)

 

 

 

 

 

 

책은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의 광고판에서 시작한다. 광고판에 하얀 문장만 달랑 있다. 오직 몇 명만이 이해할 수 있는 문장. 오일러수의 숫자 나열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10자리 소수(한글로 적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호기심 충만한 사람들은 직접 프로그램을 짜서 이 문제를 풀어본다. 그랬더니 이 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나왔다. 아이씨, 바쁜데.... 하지만 궁금하다. 자신의 짜투리 시간을 쪼개어 이 문제에 달려든다. 그리고 풀었다. 그랬더니 구글 입사 화면이 나왔다.

 

 

 

이 문제를 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순전히 호기심으로 자신의 열정과 노력과 에너지를 쓰는 사람, 그런 창의적인 젊은이를 채용하기 위한 구글의 방법을 소개하는 것으로 책은 시작했다. 강렬한 프롤로그다.  

 

 

 

이제 우리나라도 정답을 찾는 교육이 아니라, 좋은 문제를 정의하는 교육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정해진 답을 남들보다 먼저 찾는 교육이 아니라 나만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해답을 제시하는 능력이 더 존중받아야 합니다. 높은 수준의 수학적 추론을 가르치고, 틀에 박힌 언어 교육을 하는 게 아니라 언어교육이 곧 사고와 철학 교육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p.242)

 

 

 

읽을 거리가 무척 풍부하다. 스파게티면과 실과 접착테이프만으로 마시멜로의 무게를 지탱하는 탑을 쌓는 실험에서 유치원 아이들이 쟁쟁한 어른 그룹을 제치고 2등을 했다(물론 1등은 건축가 그룹이다)는 사실에서 계획보다는 다양한 시도가 우선이라고 강조하고, 실패한 것이 곧 훌륭한 스펙이 되는 실리콘밸리의 모습을 보여주며 패자부활전이 없는 울나라의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엔 경쟁보단 서로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며 인공지능과 공생하면서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미래의 할 일이라고 규정했다.

 

 

 

이것인지 저것인지 결정이 쉽게 되지 않을 때의 팁으로 정재승 교수는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를 조언했다. 내일 죽는다고 한다면 결정은 쉬워진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것처럼 매 순간을 선택한다면 진짜 가치있는 일이 무엇인지 내게 소중한 일이 무엇인지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당장 회사부터 때려치워야.

 

 

 

특히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곱씹을 만하다. 블록체인은 관리가 필요한 기록을 수정이나 변경 없이 데이터 저장 환경에 저장하는 기술이며 블록체인의 거래에 쓰이는 암호화폐가 비트코인이다. 근데 이 기술이 앞으로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지금은 저자조차도 예측할 수 없다고 한다. 컴퓨터를 처음 만들고나서 만든 이들이 이 컴퓨터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예측하지 못했고, 인터넷이 세상에 나왔을때도 이 기술이 가져올 변화를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듯이. 분명한 건,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은 사용자가 더 쉽고 간편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이며 그래서 어느 집단이나 개인이 가치를 독점하는 것이 아닌 수평적으로 나눌 수 있는 혁명이라고 강조하며 지금은 그 혁명의 태동기라고 말했다.

 

 

 

역시 세상은 부지런하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내가 알든 모르든 혁명은 진행되고 있다. 세계은 어떻든 좀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혁명의 끝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그런 결말이 있을까? 자유의지를 가진 로봇이 가능할까? 나, 외롭고 힘들어 하고 말하면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혹은 안아주는 인공지능은 언제쯤 나올까? 굉장히 궁금하지만 그걸 보기에는 우리네 인생은 너무 짧다. 우리가 죽을 때까진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안심해도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