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세계에 뿌려진 한 움큼의 코카인 : 존 브록만 <위험한 생각들>
약 오백년 전에 폴란드 사람 코페르니쿠스는 아주 이상하고 위험한 생각을 합니다. "지구가 돈다" 라는 그의 생각은, "그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리를...." 이라고 여기지만 그 시절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천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구는 특별한 존재이고 사람들은 신이 만든 최고의 피조물이라는 자기 중심적인 발상이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아무도 생각지 않았던 "지구가 돈다" 라는 그의 생각은, 모두가 옳고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을 뒤집어 버리는 아주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발상인 것이죠. 오백년이 지난 지금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진리로 여깁니다.
지금은 그런게 없을까요?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생각들 말이지요. 스티븐 핑커라는 인지 과학자가 110명의 세계 석학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에게 사회적, 윤리적, 정서적으로 위험한 생각은 무엇인가? 과학적으로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에 위험한 생각은 어떤 것이 있는가?
1996년 존 브록만의 주도로 설립한 엣지 재단은 과학자와 사상가 등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담론의 장입니다. 스티븐 핑커가 던진 이 질문에 대한 여러 지식인들의 답을 갈무리하여 <위험한 생각들 What is Your Dangerous Idea>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살면서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생각들로 가득합니다.
# 지구 온난화에 대한 투쟁은 패배했다 - 폴 데이비스
사실은 이렇습니다. 세계가 온난화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러나 그것이 세계가 대재앙에 직면하는 것은 아니라고 폴 데이비스는 말합니다. 온난화가 되면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비옥한 몇몇 연안 지역이 물에 잠길 것이지만 그에 대한 보상으로 시베리아가 곡창지대가 될 수도 있으며 몇몇 사막은 지금보다 확대될지 모르지만 다른 사막은 더 줄어들 것이며, 따라서 세계의 사정이 전반적으로 더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은 설득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교토의정서'는 수십 년간 값싼 에너지에서 부를 얻은 부유한 국가들이 부의 사다리로 올라가려고 노력하는 개발도상국을 옭아매려는 얄팍한 꼼수라는 말입니다.
헐, 세계는 제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비정하고 음모가 가득한 곳인 것 같습니다.
# 부모 영향력 제로
유적적인 요인을 제외하고, 부모에게는 자식의 인격, 지능 또는 자식이 가정 밖에서 행동하는 방식을 형성할 힘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부모가 자식을 형성한다"는 그 어떤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하는 군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부모는 이 (잘못된) 믿음으로 아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무한한 노력과 희생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요?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 아니었던가요? 더 훌륭한 아이로 만들겠다는 나의 노력이 가치가 없다는 이 주장에 동의하긴 정말 힘드네요. 그런데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자식과의 관계가 차분해집니다.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고, 동등한 입장에서 더 나은 관계로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는 군요.
# 범죄자가 아닌 범죄자의 유전자를 벌하라 - 리처드 도킨스
차가 고장이 납니다. 운전자는 차에게 경고합니다. "셋 셀 때까지 기회를 주겠어." 그래도 차는 꼼짝하지 않습니다. 그는 한 번 더 기회를 주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좋아! 난 너에게 분명히 경고했어. 네가 네 무덤을 판거야!" 그는 자동차에 내려 차가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몽둥이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결함이 있는 인간, 즉 범죄를 저지른 인간을 처벌하는 방식이 위의 자동차를 줘 패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잘못을 한 사람의 생리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을 비난하고 바꿔야 한다는 말이죠. 감정적인 증오를 걷어내고 그들을 수리나 부품 교체가 필요한 결함이 있는 대상으로 봐야 된다는 말입니다.
"강도 사건의 피고 홍길동에게 CDC42 유전자와 VPA1370 유전자의 완전 교체를 명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이 실현되는 미래에는 이런 판결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 우리는 우리의 머릿속 일조차 알지 못한다 - 리처드 니스벳
사람들에게 그림 포스터 몇 장을 보여준 다음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단 한쪽 참가자들에게는 왜 그 그림이 좋고, 다른 그림이 싫은지 분석하도록 했고,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그런 분석을 하지 않은 채 선택을 해서, 모두 그 그림을 집에 가져가도록 합니다. 2주후에 전화를 걸어 자신이 고른 그림이 마음에 드는지 물었습니다. 그 결과, 분석을 하지 않고 그림을 고른 참가자들이 분석을 했던 사람들보다 자신이 고른 그림을 훨씬 더 좋아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사회심리학자들이 지난 50년 간 밝혀낸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자신이 왜 그런 식으로 행동했는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어떤 것을 왜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왜 이렇게 했지?" 라는 질문에 내 행동을 관찰한 사람보다 더 속 시원한 해답을 내리지 못한다고 합니다. 내 머리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나도 잘 모른다고 하니 좀 으스스하군요.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 완전해질 수 있다." 최근 몇 백년간 옳다고 믿었던 사실입니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이성은 종교를 대신하여 오랫동안 진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인간의 이성이 더 이상 완벽하지 않다고 판명된다면 우린 이제 무엇에 의지해야 할까요?
# 자유의지가 없다면 행위의 책임을 인간에게 물을 수 있는가 - 에릭 캔들
자유의지에 관한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벤자민 리베트의 실험인데요, 집게 손가락을 움직이고 싶을 때 움직이게 하고 그 때의 뇌 속 전기적 신호를 측정했습니다. 그랬더니 집게 손가락을 움직이기전에 뇌 속에서 전기 스파크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움직일 것을 나의 뇌가 먼저 알더라는 겁니다. 나의 행동이 의지와 상관없이 뇌에서 무의식적으로 결정해버린 것이죠.
우리가 하는 선택은 우리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환경이나 유전자, 혹은 의식 아래에 감추어진 무의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면, 나의 자유의지는 과연 무엇인가요? 나를 나로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생각의 세계에 뿌려진 한 움큼의 코카인이다."라고 극찬을 하였지만,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생각들은 몰라도 먹고 사는 데는 1도 지장이 없습니다. 알면 머리만 아플 뿐. 하지만 먹고 사는 일상에서 잠깐이라도 일탈을 꿈꾼다면 시간을 들일 만 합니다. 출근, 상사, 월급, 마누라, 자식, 몇 년후의 내 모습 같은 매일의 생각으로부터의 일탈 말입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영향력이 진짜 하나도 없는지 옆에 있는 막내에게 물어봅니다. "강아, 아부지하고 같이 있으니까 좋나? 머 배우는 거는 엄나?" 강이가 한마디 합니다. "허구한날 엄마랑 싸우고, 어, 자식이 뭘 배우겠어요? 어?" 아~ 그렇군요. 영향력이 전혀 없는 걸로 판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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