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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이야기

그래서 우리 사피엔스는 더 행복해졌는가?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by Keaton Kim 2018. 6. 9.

 

 

 

그래서 우리 사피엔스는 더 행복해졌는가?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 지구를 정복하다.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의 한구석에서 자기 앞가림에만 신경을 쓰는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이었다. 근데 이 사피엔스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자기가 살던 동네에서 벗어나 다른 동네로 가보기로 했다. 그곳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 골짜기에서 온 사람), 호모 에렉투스(똑바로 선 사람), 호모 솔로엔시스(솔로 계곡에서 온 사람), 호모 데니소바(데니소바인) 등 다른 종류의 인간들이 살고 있었다.

 

 

 

사피엔스는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인간을 드디어 조우했다. 처음 만났을때 "안녕하세요? 우리는 사피엔스라고 해요. 우리 사이좋게 잘 지내봅시다. 서로 도와가며요." 라고 했을까? 만일 그랬다면 요크셔테리어, 불독, 시츄, 진돗개가 어울려 사는 것처럼 우리 사피엔스 말고 여러 종류의 인간들이 함께 살고 있겠지.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마주친 결과는 학살이었다. 그리고 오직 호모 사피엔스만 남았다. 개들로 치면 진돗개가 다른 모든 종류의 개들은 다 죽이고 이 세상에 개란 개는 오로지 진돗개만 남은 것이다.

 

 

 

디프로토돈은 곰이랑 하마랑 섞어놓은 듯한 모습의 대형동물인데, 이 친구가 사피엔스를 첨 봤을 땐, "머야, 저 털도 없고 조그만 넘은? 근데 두발로 걷네. 신기한 동물이군." 이라고 흘깃 보고 지나쳤다. 자신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근데 아뿔싸. 그게 아니었다. 여럿이 우우 몰려 오더만 자신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왜, 대체 왜 그러는데?" 라고 물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기 종족도 멸종시킨 사피엔스는 다른 종류의 동물을 죽이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사피엔스가 가는 곳마다 그곳을 지배하고 있던 대형 동물들이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사피엔스는 이 지구의 진정한 포식자가 되었다.

 

 

 

 

사피엔스의 지구 정복기. 아프리카 아래쪽이 고향인 사피엔스는 점차 자신의 나와바리를 넓히면서 그 곳에 살고 있는 다른 인류들을 몰살시켰다.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돕고 지내면 더 행복하고 잘 지낼 수 있었을텐데. 사피엔스는 왜 그랬을까? 하긴 그 후손인 유럽인이 다른 대륙의 사람들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학살이었다. 이 사피엔스란 넘은 전혀 반성하지 않는 동물인 모양이다.

 

사진 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1272006155

 

 

 

사피엔스는 어떻게 최강의 포식자가 되었나? -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힘도 별로 안세고, 날카로운 부리나 발톱도 없고, 덩치도 별로 크지 않은 이 동물은 어떻게 먹이 사슬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을까? 이 과정에서 아주 획기적인 세 가지 혁명이 있었고, 혁명을 거치면서 아주 단시간에 피라미드의 최고 꼭대기를 점령했다. 그 혁명의 이름은 인지혁명 - 농업혁명 - 과학혁명이다.

 

 

 

일반적으로 사피엔스 외에 동물들도 그들끼리 말을 주고 받는다. '저기 호랭이여. 얼른 도망쳐!' 정도는 그들도 할 줄 안다. 이 정도의 언어로 서로 돕고 뭉칠 수 있는 건 수십 명이다. 코끼리도 침팬지도 그들의 무리는 많아야 50마리이다. 하지만 사피엔스는 달랐다. '저기엔 곰이 나타난대!' 뿐만 아니라 '철수네 아부지가 영희네 엄마와 그렇고 그런 사이래!' 같은 쑥덕쑥덕 정보도 나눌 정도로 언어가 발달했다. 이 언어로 사피엔스는 허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신도 만들고 전설도 만들고 종교도 신화도 만들었다. 이제 사람들은 상상하던 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믿기 시작했으며 목표를 위해 뭉칠 줄도 알았다.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까기 일어난 인지혁명이다.

 

 

 

열매나 따먹고 토끼 사냥이나 하던 사피엔스는 이상한 걸 발견했다. 토마토를 먹고 뒷마당에 버렸는데 거기에서 토마토가 다시 자라는게 아닌가. 띠용하고 뭔가 왔다. 씨를 뿌렸더니 뭔가가 자라기 시작했다. 야생동물들도 이게 잡아 가두고 기르기 시작했다. 사냥이나 열매를 따러 멀리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남은 식량은 저장하기도 했다. 농사 짓는 일은 수렵이나 채집 생활을 할 때보다 더 힘들게 그리고 많은 시간을 일해야 했지만,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사피엔스의 개체수는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1만 년 전부터 시작된 농업혁명이다. 

 

 

 

지난 5백 년간 인간의 힘은 엄청나게 커졌다. 인구는 5억 명에서 70억 명으로, 생산량은 2500억 달러에서 60조 달러로, 소비하는 에너지는 13조 칼로리에서 1500조 칼로리가 되었다. 인구는 열네 배로, 생산은 240배로, 소비는 115배가 늘어난 것이다. 내 노트북이면 중세 모든 도서관의 책들을 저장할 수 있고, 천안함 정도의 배만 있으면 5백년 전의 세계 모든 전함을 격침시킬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을 그린 만화도 있다. 21세기 최신 이지스함이 과거로 타임스립하는 내용이다. 만화 '지팡구'의 스토리다).

 

 

 

이전의 인류는 "내가 필요한 건 다 알어. 모르는 건 알 필요도 없고!"의 상태였다. 자연의 여러 현상은 신의 섭리였다. '신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라고 믿으면 더 이상 궁금해지는 것도 없었다. 그러던 인류가 갑자기 각성하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하는 본질적이고도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 인간이 세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과학혁명의 핵심은 '무지의 인정'이었다.

 

 

 

 

1459년 유럽에서 제작한 세계지도. 유럽은 왼쪽 맨 위에 있다. 세부사항이 가득 그려져 있는데, 유럽인들이 전혀 모르는 남아프리카 같은 곳조차 그렇다. (사진 및 글 인용 : p.406)

 

사피엔스들은 같은 종의 인간을 멸종시키고, 다른 종류의 대형 동물들은 모두 죽였다. 그런 사피엔스가 15세기에서 16세기에 다른 대륙에 사는 같은 종을 만났다. 스페인이 아즈텍 제국과 잉카제국을 만난 것이다. 어땠을까? 함께 어울려 잘 살았을까? 이쯤 되면 답은 뻔하다.

 

하지만 다른 결과도 있다. 콜럼버스보다 몇십 년 앞선 중국의 정화 제독은 유럽의 선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대선단을 이끌고 항해를 나갔다.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인도, 페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홍해, 동아프리카까지 방문했다. 제독은 방문한 나라를 정복하거나 식민지로 삼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의 방식대로 살게 내버려뒀다. 이런 걸 보면 꼭 사피엔스가 모두 그렇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도 같다. 저자는 근대 초기 유럽인들이 걸린 정복의 욕구와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 출처 : http://www.tongilnews.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103028

 

 

 

자, 그러면 사피엔스는 미래는?

 

 

 

최근 5백년의 시간은 사피엔스가 생겨나고 발전한 7만년의 시간에 버금갈 정도로 변화의 속도는 아찔하며, 매일이 혁명이다. 이제 사피엔스는 지구 최강의 포식자를 넘어 신이 되고자 한다. 녹색 형광 토끼를 만들고, 고대에 멸종한 맘모스를 부활시키고, 생각만으로 움직이는 팔을 만들고, 인류 최강 바둑기사 이세돌을 꺼꾸러뜨리는 인공지능 AI를 만들어냈다. 인간의 수명을 한없이 늘이는 '길가메시 프로젝트'도 한창 진행중이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어 100년 전의 수명보다 3배 이상 길어졌다. (1905년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25세가 채 되지 않았다).

 

 

 

사피엔스가 어떻게 변화하고 진보해갈지는 사피엔스조차도 알지 못한다. 어떤 방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매일 사용하고 있는, 없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인터넷은 몇십 년 전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기술이었다. 돌이켜보면 이 종이 걸어왔던 발자취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었다. 오직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는 추구하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않는 종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무책임한 신들, 사피엔스는 아주 위험한 존재이며 어떤 식으로 종말을 고할지도 전혀 알수 없다.

 

 

 

 

이 넘이 세돌이를 이기리라고는 정말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다섯 판을 두어 알파고가 네 판을, 세돌이는 한 판을 이겼다. 아아~ 그 충격이란. "인간이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것이다." 라고 세돌이는 우리에게 위로를 던졌지만, 냉정하게 말해 인간이 진 것이 맞다. 그 후 세계랭킹 1위인 커제가 알파고에게 도전했으나 세판 모두 졌다. 지고 나서 커제는 울었다. 알파고는 은퇴했고, 이제 어떤 인간도 바둑으로 AI를 이길 수는 없다. 직관과 분석, 그리고 전체적인 조화까지 바라봐야 하는, 한판의 바둑이 한판의 우주라는 바둑까지 이겨버렸으니, 이제 기계가 나서지 못할 분야는 없어 보인다.

 

사진 출처 : 헤럴드 신문

 

 

 

사피엔스는 이전보다 행복해졌을까?

 

 

 

울 할아버지는 농부였다. 해뜨기 전에 논에 가시고 해가 지면 들어오셨다. 한창 바쁜 농번기에는 집안 식구 모두가 나섰다. 그 시절의 일들을 고모들은 가끔 추억하며 생생하게 증언한다. 농사일이 숭악했다고. 지금의 나는 어떤가? 울 할배보다 일의 양은 줄었나? 스트레스는 덜 받나? 할배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나? 두 세대 차이라 시간이 너무 짧다고 한다면, 7만년 전의 사피엔스와 비교하면 어떤가? 저자의 의견을 잠시 들어보자.

 

 

 

 

수렵채집인이 삶을 영휘하는 방식은 지역마다 계절마다 크게 달랐지만, 대체로 이들은 그 후손인 농부, 양치기, 노동자, 사무원 대부분에 비해서 훨씬 더 안락하고 보람 있는 생활을 영위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풍요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평균 40~45시간 일하며 개발도상국에선 평균 60시간, 심지어 80시간씩 일한다.

 

이에 비해, 지구상의 가장 척박한 곳에서 살아가는 수렵채집인, 예컨대 칼라하리 사막 사람들은 주 평균 35~45시간밖에 일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흘에 한 번밖에 사냥에 나서지 않으며 채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 3~6시간에 불과하다. 평상시에 이 정도 일해도 무리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다.

 

칼라하리보다 더욱 풍요로운 지역에 살았던 고대 수렵채집인들은 식량과 자원을 획득하는 데 이보다 더 적은 시간을 썼을 것이다. 이에 더해 이들에게는 가사노동의 부담이 적었다. 접시를 씻고 진공청소리로 카펫을 밀고 마루를 닦고 기저귀를 갈고 청구서를 납부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p.84)

 

사진은 기원전 1200년경 이집트 무덤의 벽화다. 마음껏 돌아다니던 야생소는 인간에 의해 가축화되어 채찍질을 당하거나 좁은 우리에 갖혀서 삶을 낭비한다. 쟁기를 끌지 못하게 되면 소는 도살되어 먹혔다. 저자는 농부의 굽은 허리에도 주목했다. 그는 농부도 소와 마찬가지로 고된 노동을 하며 평생을 보냈을 것이라고 했다. 나도 벽화의 저 농부와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사진 및 글 인용 : p.144)

 

사진 출처 : http://sojoong.joins.com/archives/802

 

 

 

수렵 생활이 농업 생활보다 더 행복했다면 왜 사피엔스들은 수렵 생활을 관두고 농업 생활로 바꿨을까? 사피엔스는 그토록 짧은 시간에 지구 최강자가 된 똑똑한 넘들이 아닌가. (호모 사피엔스는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정답은 이렇다. 유전자가 시켰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진 유전자의 명령이었다. 사피엔스가 수렵생활보다 더 많이 노동하고 더 많은 병에 걸린다 하더라도 그것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에 유전자는 그렇게 명령했다. 무서운 놈. 그 덕에 사피엔스의 개체는 졸라 많아졌지만 행복도는 그 전에 비해 훨씬 덜했다.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는 천재다.

 

 

 

유전자가 그렇게 명령하더라도 거부했을 방법은 없었을까? 당시에 살았던 대형동물을 멸종 시킬 만큼 뛰어난 지적 수준을 가졌던 사피엔스인데. 그런 고민 없이 그저 유전자의 명령에 따랐다는 사실이 의심쩍다. 근데, 그걸 현대에 가져오면 전혀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산업혁명에 대입해보면 명확해진다. 산업혁명으로 물질적인 것이 풍요해졌지만, 인간은 그 전에 농사를 짓는 시대보다 더 불행해졌다. 더 많이 일하고 계급은 더 나눠지고 상대적 박탈감은 더 심해지고....

 

 

 

인간은 몰랐을까? 산업혁명이 가져올 우리의 미래를? 자신의 행복에 대해 전혀 생각해보지 않고 농업혁명을 일으킨 것처럼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산업혁명' 이후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농업혁명에 그렇게 사기를 당해놓고서도 말이다. 사피엔스 얘, 이름과는 달리 굉장히 멍청하다. 4차혁명도 마찬가지다.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 할 수 있다고? 그러면 인간은 일도 좀 덜하고 스트레스도 덜 받고 더 많이 행복해질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과거 혁명의 결과를 보면 답이 저절로 보인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간은 개체수는 더 많아졌지만 더 불행해졌다고 유발하라리는 단언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사피엔스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도 상상이 가능하다.

 

 

 

 

 

 

인간은 새로운 힘을 얻는 데는 극단적으로 유능하지만 이 같은 힘을 더 큰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는 매우 미숙하다. 우리가 전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지녔는데도 더 행복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p.593)

 

 

 

사피엔스의 미래에 대해 저자의 의견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사피엔스는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지만, 이 힘을 도대체 어디에 쓰야 할지 모른다. 그걸 알지 못하는 이상, 사피엔스는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경고는 서늘하며 섬뜩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사피엔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설명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길고도 긴 지구의 역사에서 우리는 잠시 최상위의 포식자가 되었고, 그 포식자들의 결말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하면 말이다.

 

 

 

농사를 지었던 우리 할배와 내가 누가 더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 비교하는 것은 사실 힘들다. 하지만 몇만 년전 수렵 생활을 하던 우리 선조와 비교해서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이건 쪽팔리는 일이다. 더 좋은 음악을 듣고, 많은 종류의 책을 읽고,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다. 그럼에도 덜 행복하다면 저자의 말처럼 뭔가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역사를 거슬러 농사를 짓거나 산 속으로 들어가 수렵 생활을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알 것도 같다. 사피엔스의 빅히스토리가 나에게 주는 그 메세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