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미래가 되도록 잘 해 : 케빈 켈리 <인에비터블 미래의 정체>
1989년의 영화 <백투더퓨처2>에서는 타임머신을 타고 2015년의 미래로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감독은 26년 후의 미래를 상상해서 구체적으로 묘사했는데요, 큰 화면을 통해 영상 통화를 하는 모습, 끈이 자동으로 조여지는 자동화 신발, 날아다니는 보드를 타고 다니는 모습, 손바닥만한 피자를 기계에 넣으면 커져서 나오는 마이크로웨이브 음식, 집집마다 팩스가 있어서 종이로 소식을 주고 받는 모습 등이 나옵니다. 상상한 것 중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습니다. 특히나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이렇게 발전할 줄은 몰랐던 것 같습니다. 겨우 25년 후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이었는데, 쉽지 않았나 봅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25년 후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인터넷의 괴물들이 무엇을 만들어낼지 궁금합니다. 알고리즘과 인터넷은 점점 영리해지고 있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생활 깊숙히 들어올지 상상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재미있기도 합니다. 30년 전 사람들이 인터넷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처럼 30년 후에 지금 시대를 돌이켜보며 이거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신기해 할텐데 '이거'가 뭔지 우리는 모릅니다. (나만 모르는게 아니고 세계의 석학들도 모른다고 한다). 그걸 알면 대박일텐데요.
저자 케빈 켈리는 과학기술 전문 잡지 '와이어드'의 공동 창간자이자 편집자이며 IT계의 위대한 사상가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그의 강의 영상(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어 보다 말았다)을 보니 완전 옆집 할배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책의 제목 '인에비터블 Inevitable'은 '불가피한' 이라는 뜻으로, 다가오는 피할 수 없는 모습을 12가지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그 미래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읽다보면 금방 저자의 말에 넘어가버리고 맙니다. 부정적인 모습은 거의 없고 아주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미래를 묘사했습니다. "이런 미래가 되도록 지금 우리가 잘 해야돼." 라고 토닥이는 할배의 모습을 잠깐 떠올렸습니다. 동사로 풀어낸 그 12가지의 방향성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제1장. 새로운 무언가로, 되어가다. Becoming
내가 어떤 기술을 배우면 그걸로 10년 혹은 20년을 써먹을 수 있습니다. 근데 그 기술은 계속해서 업그레이드 됩니다. 미래로 갈수록 그 주기는 빨라질 겁니다. 새로운 기술은 무진장 쏟아질테고 우리 모두는 그걸 다시 배워야 하므로 누구나 새내기가 됩니다.
또한 지금 현재는 새로운 무언가로 되어가는 과정의 시작이며,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그리니까 지금이 가장 많은 기회가 있고, 진입 장벽도 낮고 부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만 알면 위너가 되는 거죠. 모든 것을 다 가지는. 그걸 모르니 이리 살고 있지.
제2장.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인지화하다. Cognifying
2002년 저자는 구글의 비공식 모임에 참여하여 공동 창립자인 래리 페이지게 묻습니다. "래리. 나는 아직 이해가 안 가요. 검색 회사는 아주 많잖아요. 웹 검색을 무료로 해준다고요? 그래서 얻는 게 뭡니까?" 페이지는 충격적인 대답을 합니다. "아, 사실 우리는 AI를 만들고 있어요."
쿵!! 그렇습니다. 구글은 AI를 통해 검색 성능 높이려는게 아니라 검색을 통해 AI의 성능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무려 20년 동안이나요. 무서븐 넘들. 인공지능 로봇은 불.가.피.하고 그 시대가 오면 로봇과 나이스하게 협업하는 인간이 성공한다고 합니다. 당신이 농부라면 농사는 로봇이 짓게 하고 당신은 무엇을 심을지를 결정하는 것이죠. 로봇과 공생하는 시대는 곧 옵니다. 그게 언제냐구!
제3장. 고정된 것에서 유동적인 것으로, 흐르다. Flowing
예전에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의 연락은 주로 편지였습니다. 며칠이 걸렸죠. 지금은 이메일이나 문자로 바로 보냅니다. 카톡은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 DVD로 화질 좋은 영화를 보겠다고 이틀을 기다리기 보다는 화질이 좀 떨어지더라도 지금 바로 내려받아 봅니다. 현재는 실시간의 시대입니다. 동시성이 품질을 이깁니다.
그리고 우리가 내려받는 노래나 영화, 그리고 필요한 정보의 값은 점점 낮아진다고 합니다. 지금도 거의 공짜인 시대입니다. 공짜이지만, 그들이 나의 취향에 맞는 영화를 추천하면 나는 기꺼이 돈을 낼 용의가 있습니다. 나는 넷플릭스에서 그들의 추천을 삽니다.
제4장. 현재는 읽지만 미래는, 화면보다. Screening
아침에 일어나 몇 시인지, 중요한 속보가 있는지, 날씨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손목의 화면을 봅니다. 침대 옆 작은 화면에는 친구들에게 온 메시지가 떠 있습니다. 옷장 거울은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비춰줍니다. 사무실에 가면 가상 회의장 화면이 뜨고 인도 동업자가 벵골어로 말합니다. 일이 끝나면 증강현실 안경을 쓰고 달리기를 하러 밖으로 나갑니다. 달리는 경로와 함께 내 심박수, 대사 통계 수치 등이 화면에 뜹니다. 자기 전에는 침대에 누워 천장에 있는 화면으로 소설을 읽습니다.
우리도 화면을 보겠지만, 화면도 우리를 볼 겁니다. 그리고 그 화면은 내 일상을 모두 기록하고 보여주고 저장합니다. 이 부분은 좀 으스스합니다.
제5장. 소유하지 않고, 접근하다. Accesing
세계 최대의 택시 회사인 우버에는 택시가 한 대도 없습니다. 세계 최대의 숙박업체인 에어비앤비는 부동산을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자산 가치가 높은 소매점인 알리바바에는 재고 목록이 아예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디어 회사인 페이스북은 콘텐츠를 전혀 만들지 않습니다. 아마존의 킨들을 이용하면 책을 소유하지 않고도 80만 권에 이르는 도서관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가장 부유하면서도 파괴적인 조직은 거의 모두 플랫폼입니다. 우리 플랫폼에 와서 놀아라고 합니다. 우리는 거기서 놉니다. 놀다보면 생산자가 되기도 하고 판매자가 되기도 합니다.
제6장. 나만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 공유하다. Sharing
위키디피아는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입니다. 누구든지 만들고 추가하고 편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사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울집 막내이가 나무 위키는 거짓말이 많다며 너무 믿지 마라고 충고했다).
2050년에 가장 크고 가장 빨리 성장하고 가장 이익이 나는 기업은 현재 눈에 띄지 않고 알지도 못하는 공유의 측면을 활용하는 법을 터득한 회사라고 합니다. 공유할 수 있는 모든 것, 즉 생각, 감정, 돈, 건강, 시간 등이 적절한 조건에서 공유될 것이고 적절한 혜택을 제공할 것입니다. 군중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지 아직 전혀 알지 못합니다. 위키디피아는 작은 예에 불과합니다. 이 분야는 노다지입니다.
제7장. 나를 나답게 만들기 위해, 걸러내다. Filtering
해마다 흥미롭고 새로운 것들이 산더미처럼 쏟아집니다. 1년에 새로운 노래 800만 곡, 새 책 200만 권, 새 영화 1만 6000 편, 블로그 포스트 3억 개, 트윗 1,800억 개, 신제품 40만 개가 나온다고 합니다.
이처럼 홍수같이 나오는 정보들 중에서 나는 어떻게 선택하나요? 가족이나 친구의 추천을 듣나요? 카카오가 추천해주나요? 정보의 풍요는 주위의 빈곤을 낳는다고 합니다. 누가 이 책, 혹은 이 영화가 너한테 딱 맞아. 너를 잘 아는데, 보면 실망 안 할거야! 라고 얘기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겠습니다. 이 분야도 노다지입니다. 근데 그걸 구글이 하고 있는 것 같군요. 조금 더 미래에는 서연이와 영희 중 어떤 여친이 나에게 더 잘 맞는지도 추천해줄겁니다. 좀 더 으스스하죠.
제8장. 섞일 수 없는 것을, 뒤섞다. Remixing
진정한 지속 가능한 성장은 새로운 자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자원을 재배치하여 더 가치 있게 만드는 데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애플의 아이폰이 그랬죠. 현재의 기술은 더 이전의 원시적인 기술을 재배치하고 뒤섞어서 조합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조합의 가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생각은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집을 당신에게 주면 당신은 집이 생기고 나의 집은 없어지지만, 내 아이디어를 당신에게 주면 당신도 나도 그 아이디어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 아이디어가 뒤섞여 또 새로운 기술이 나오겠죠.
제9장. 사람들에게 하듯 사물과, 상호작용하다. Interacting
드론 경주를 합니다. 근데 기존과는 좀 다릅니다. 다들 고글 같은 걸 착용하고 있습니다. 드론 앞쪽에는 작은 카메라가 있고 그게 내 VR 고글과 연결되어 조종석에 앉아 조종사가 보는 광경과 똑같이 봅니다. 드론은 이리저리 급격히 방향을 바꾸며 장애물을 돌기도 하고, 서로의 꽁무니를 추격하고 다른 드론과 부딪힙니다. 한 젊은이는 드론 속으로 몰입하여 안에서 비행하는 것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이 비행 경험은 진짜입니다.
영화 <아이언 맨>의 토니 스타크가 양팔로 컴퓨터가 투영한 3D 디스플레이에서 손꾸락으로 필요한 자료를 불러오고 필요 없는 것들은 막 날리고 하는 장면은 이제 영화가 아닙니다. 곧 옵니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냐구!
제10장. 측정하고 기록해 흐름을, 추적하다. Tracking
미국 국가안보국이 은밀하게 시민을 추적한다는 사실을 폭로한 내부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스노든>(헤이즐이 스노든의 아내로 나왔다)을 보셨나요? 모든 개인을 실시간으로 다 추적한다는 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실종된 딸의 흔적을 SNS에서 검색해서 추적하는 영화 <서치>는 어떤가요?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모든 일상 생활이 기록되고 추적되는 시대가 올겁니다. 2020년이 되면 한 해에 540억 개의 감지기를 만들고 그 감지기는 내 휴대폰과 컴퓨터, 내 집과 차, 그리고 내가 다니는 거리에 탑재되고 내장될 겁니다. 그리고 엄청난 데이터를 생성하겠죠.
나의 거의 모든 것이 다 담긴 이 데이터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내 건강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나의 선택을 도와주는 등 긍정적인 면을 주로 썼는데, 나는 왠지 좀 섬뜩했다. 될 수 있으면 저 감지기로부터 달아나야 한다고 내 안의 무언가가 얘기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제11장. 가치를 만들어 낼 무언가를, 질문하다. Questioning
과학이 발달할수록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이 뭔지 알게 됩니다. 과학은 해답을 주는 동시에 더 많은 질문을 만들어냅니다.
좋은 질문은 정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고, 좋은 질문은 즉시 답할 수 없는 것이고, 좋은 질문은 듣기 전에는 아예 생각도 못한 것이고, 좋은 질문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좋은 질문은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의 가장자리에 걸쳐 있는, 어리석지도 명백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좋은 질문은 교양 있음을 보여주는 표지가 될 것이며, 좋은 질문은 더 많은 좋은 질문을 낳을 것이며, 좋은 질문은 기계가 마지막으로 배우는 것이 될 수도 있으며, 좋은 질문은 인간의 존재 의미를 묻는 것입니다.
질문하기는 답하기보다 강력합니다.
제12장. 오늘과 다른 미래를, 시작하다. Beginning
30년 전에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상품이나 기업(구글, 카카오, 페이스북, 아마존 등등)을 예측할 수 없었듯이, 30년 후에 어떤 상품, 상표, 기업이 우리를 에워쌀지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방향성을 분명합니다. 흐르기, 공유하기, 추적하기, 접근하기, 상호작용하기, 화면보기, 뒤섞기, 걸러내기, 인지화하기, 질문하기, 되어가기를 증가시키는 방향입니다.
모든 인간과 모든 기계가 하나의 매트릭스로 연결되는 방향으로 거침없이 행군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이제 시작입니다.
'과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류 역사상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이 올까 : 팀 던럽 <노동 없는 미래> (0) | 2019.01.24 |
---|---|
우연이라구?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야 : 데이비드 핸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0) | 2019.01.17 |
섹스 로봇을 갖고 싶은데 돈이 없어 : 마틴 포드 <로봇의 부상> (2) | 2019.01.10 |
이제 나보다 나를 더 잘아는 알고리즘에게 물어라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0) | 2018.12.16 |
내가 알든 모르든 세계는 진보하고 있다 : 정재승 <열두 발자국> (4) | 2018.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