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간이 올까 : 팀 던럽 <노동 없는 미래>
물고기를 주기 보단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라
탈무드에서 나왔다는 이 격언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물고기를 주면 며칠 정도는 배부르게 할 수 있지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면 그 기술로 평생을 먹고 살 수 있다는 말로 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자, 그런데 여기에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은 이렇습니다.
1. 내가 잡으려고 하는 저 강에는 물고기가 별로 없다.
2. 물고기를 잘 잡는 로봇들이 다른 곳에서 엄청나게 잡고 있다.
3. 나는 물고기 잡는 것보다 잡은 물고기로 요리하는 게 더 재미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물고기를 주는 것과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 중 어떤 게 더 나은 선택일까요? 여전히 물고기를 주기 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할까요?
"로봇이 내 일자리를 빼앗아갈까?"
"물론이지!"
18세기 영국은 손놀림이 좋은 사람들이 공장에 모여 함께 제품을 만드는 공장제 수공업의 시대였습니다. 수다도 떨어가며 재미나게 일을 했습니다. 근데 1765년 제임스 와트라는 넘이 증기기관을 만듭니다. 기계의 등장입니다. 증기기관을 이용한 방직기가 빠르게 보급됩니다. 20명이 일하던 공장에 방직기가 들어오면서 10명만 일해도 이전에 만들던 것 보다 더 많이 만들게 됩니다. 더우기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의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납니다. 자연스럽게 일할 사람은 많아집니다. 일할 사람은 많은데 일자리는 그넘의 방직기 때문에 점점 줄어들고.....
1811년 노동자들이 모여 웅성거립니다. '저넘의 방직기 때문에 우리 일자리가 줄었어. 방직기를 때려 부수면 우리 일자리도 이전과 같이 될거야.' 사람들은 공장이 가동되지 않는 밤에 몰래 망치로 기계를 부숩니다. 심지어는 방직기가 있는 공장을 불태웁니다. 19세기 초에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입니다. 결말은 뻔합니다. 정부는 노동자를 탄압하고 주동자를 처형하는 등 강경하게 진압했고 러다이트 운동은 수그러집니다. '저넘의 방직기'는 승승장구합니다.
로봇이 내 일자를 빼앗을까? 팀 던럽은 단호하게 그렇다고 답합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보고서의 수치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벌써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맥도널도에서 햄버거 주문도 키오스크라는 기계에 대고 합니다. 자동화 물류 창고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자동차가 생기면서 주유소, 정비소, 도로 포장 등의 일자리가 생겼듯이 로봇의 발명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구요? 그렇긴 하겠지만 로봇이 빼앗는 직업의 수가 훨씬 많습니다. 그럼 200년 전처럼 노동자들이 합심해서 로봇을 부수는 운동을 해야 하나요? 결과를 봐서 아시잖아요. 인간이 방직기를 없애지 못했듯이 로봇도 없애지 못할 겁니다. 이미 이넘들 없으면 안되는 세상입니다.
이 넘들이 곧 내 일을 대신할 것이다. 잠도 안자고 쉬지도 않고 불평도 안하고 일을 할거다. 그럼 나는 뭘하지?
사진 출처 : http://www.nvp.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2080
저자가 예측하는 세 가지 미래 모습
로봇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저자는 세 가지 정도로 예측합니다. 첫번째는 '평상시와 다름없는(business as Usual)' 두번째는 '미래로 돌아가는(Back to the Future)', 세번째는 '탈 노동(Postwork)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각각의 경우를 한번 살펴볼까요?
기술은 많은 일자리를 없애면서 또 동시에 그만큼 많은 일자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인간은 소비와 새로운 것에 대한 발명 욕구가 워낙 강해 미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일자리들이 생겨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믿는 미래가 '평상시와 다름없는' 미래입니다. 기존의 시장경제 속에서 신자유주의 체제 역시 계속 유지된다고 보는 거죠. 적당한 인재를 찾아 교육하고 대신 노동을 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월급과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안전망을 보완합니다. 즉 사람들에게 여전히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미래입니다.
두번째 '미래로 돌아가는' 입장은 지금 나타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을 아주 적극적으로 제거한 미래입니다. 지금보다 일을 훨씬 더 적게 하고, 모든 사람들이 일자리를 갖는 사회입니다. 일하는 모든 사람이 병가와 육아 휴직, 자유근무시간제, 유급 공휴일을 보장 받아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북유럽 국가의 사회가 지금보다 더 발전되면 그 사회의 모습이 아마 이럴겁니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고 잘 잡는 사람 못 잡는 사람 할 거 없이 일정한 물고기를 얻는 미래입니다.
탈 노동의 입장은 이보다 훨씬 급진적이고 이상적입니다. 사회의 생산적인 일은 거의 다 기술(로봇, 인공 지능 등)에 떠넘기고 인간은 자유롭게 다른 활동을 추구하는 겁니다. 우리의 재능을 소득을 올리거나 이익을 내는 데 더 이상 쏟지 않고 오로지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쓰는 세상입니다. 오래 전, 고대 그리스의 시민들이 그랬다죠. 모든 노동은 노예에게 맡기고 예술과 문화를 즐기며, 철학을 하며 정치에 참여하고, 뭔가를 배우는 데 자신의 능력을 쓰고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물고기를 더 이상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는 물고기로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합니다.
저자는 이 '탈 노동'의 미래를 떠받치는 세 기둥이 있는데, 첫째는 노동에 대한 개념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노동은 더 이상 분배의 한 방식이 아니며, 일종의 억압의 수단입니다. '일하지 않은 자, 와서 먹어라!'로 바뀌어야 합니다. 둘째는 로봇을 받아들이고 한때 인간들이 했던 일을 대신하게 허용하는 일입니다. 세번째 기둥은 바로 기본소득입니다.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매달 조건 없이 기본적인 생활을 하는 데 충분한 돈을 지급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게을러진다거나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저자는 기본소득제를 설명하는데 한 챕터를 할애했다).
"어이 불!" "네, 주인님." 미래엔 이 정도 집사는 하나씩 장만하고 살래나? 이 로봇들에게 모든 생산을 맡기고 인간은 인간다운 일을 하는 미래. 그래, 바로 이거야!
사진 출처 : https://kelascinta.com/news-and-events/apa-kamu-ingin-menjalin-asmara-dengan-robot
노동을 줄여주는 기술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기술을 바탕으로 사회를 체계화하면 지금보다 훨씬 적은 시간의 노동으로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며, 지금의 노동에 기초한 부의 분배 방식에 제동을 거는 신뢰할 만한 새로운 방식도 등장할 것이다. (책 표지글 중에서)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아니, 난 낚시대를 던져버릴거야.
자, 이제 서두에서 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차례입니다. 답이 명확해졌습니다. 물고기 잡는 법을 굳이 배울 필요도 없으며, 로봇들과 물고기를 누가 많이 낚나 경쟁할 필요도 없습니다. 낚시대를 휙 던져버리고 로봇들이 잡은 물고기로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하면 됩니다. 내 삶의 질은 아주 높아지며 이걸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양을 생산하는데 드는 노동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생산은 점점 늘어납니다. 그 줄어드는 노동을 잡으려고 아웅다웅하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저자는 그렸습니다. 경제는 이제 생산이 아니라 분배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고, 그건 기술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라고 합니다. 인류가 얼마나 현명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미래가 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근데 여태 하는 걸 봐서는 별루 기대가....ㅠㅠ)
진시황제도, 프랑스 혁명도, 동학운동도, 마르크스도 이루지 못했던 인류 역사상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옵니다. 그 시대를 만드는 혁명은 인간의 손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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