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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이야기

우연이라구?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야 : 데이비드 핸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by Keaton Kim 2019. 1. 17.

 

 

 

우연이라구?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야 : 데이비드 핸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 1.

 

2007년 7월 영국 헤일링 아일랜드에 사는 밥 굴드는 사다리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당연히 심한 통증을 느꼈겠지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굴드 씨가 다친 때로부터 한 시간 후 그의 아들 올리버도 담을 뛰어넘다가 다리가 부러졌다. 두 사람 다 왼쪽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다. 굴드 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몸놀림이 좀 어설퍼요."

 

 

 

# 2.

 

미국 일리노이 주 프리포트에 사는 매리 울퍼드는 네 딸의 생일을 기억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녀의 네 딸들은 모두 8월 3일에 태어났다. 태어난 해는 코니는 1949년, 산드라는 1951년, 앤은 1952년, 수잔은 1954년이다.

 

 

 

# 3.

 

당신이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영국 더들리에 사는 제이슨 케언스 로렌스와 제니 케언스 로렌스가 어디로 여행할 계획인지 알아보고 그곳을 피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은 2001년 9월 11일 테러범들이 납치한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와 충동할 때 뉴욕에 있었다. 2005년 7월 7일 런던 지하철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났을 때는 런던에 있었고, 2008년 11월 뭄바이에서 여러 목표물이 테러 공격을 당했을 때는 뭄바이에 있었다.

 

 

 

# 4.

 

스웨덴 모라에 사는 레나 팔손은 1996년에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 16년 후 그녀는 텃밭에서 당근 하나를 뽑았는데, 다이아몬드가 박힌 백금 반지가 당근 끄트머리에 끼워져 있었다. 바로 그녀의 결혼반지였다.

 

 

 

우찌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우연이라고 치부해 넘어가버리기엔 진짜 말도 안되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나는 암만 로또를 사도 5등 한번 안되는데, 그 어려운 로또 1등에 두 번씩이나 당첨되는 일이라던가, 벼락을 다섯 번 맞고도 끄떡없이 잘 살고 있는 사람이라던가 하는 기적같은 일들 말이에요. 하긴 이 드넓은 우주에서, 그것도 지구라는 행성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작은 도시에서, 그 시간대에 나의 아내를 만나 서로 반해서 결혼을 한 것도 기적과 같은 일이죠. 여태 함께 살고 있다는 건 더 기적.... 

 

 

 

세상에는 다양한 일이 일어나고, 그 중 일부는 정말 사실일까 싶을 정도로 희한한 일들도 있습니다. 그게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요? 데이비드 핸드는 '통계' 쪽에서는 알아주는 분인데요, 저자는 이 책에서 그 우연한 일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합니다. 정말 기적과 같은 우연한 일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충분히 일어날 일이어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확률적으로 있을만한 일이지요. 다만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났기 때문에 뭔가 신의 계시가 아닐까 하고 확대 해석하는 겁니다.

 

 

 

저자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우연을 '우연의 법칙'으로 설명합니다. 이 법칙은 다섯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 법칙을 알게 되면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들로 바뀝니다. 기적에 가까운 우연이 전혀 놀랍지 그럼 그 법칙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사진 출처 : https://tioom.tistory.com/1456

 

 

 

1. 필연성의 법칙 : 결국 그 중의 하나다.

 

 

주사위를 던지면 1에서 6까지의 수 중 하나가 나옵니다. 골프 공을 치면 OB가 되거나, 어느 잔디 위에 멈추거나, (내게는 절대 안 일어나지만)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갑니다. 가능한 모든 결과의 목록을 작성한다면 그 결과들 중 하나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필연성의 법칙입니다.

 

 

미국 버지니아 주 로또는 1부터 44까지 숫자 6개를 선택하는 방식인데 1등 당첨 확률이 약 700만분의 1정도 된다고 합니다. 복권 1장이 1달러니까 700만 달러어치만 사면 1등 당첨을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근데 몇 주 동안 1등이 안나와서 당첨금이 2700만 달러를 훌쩍 넘었다는 군요. 그래서 머리 좋은 한 냥반이 소액 투자자 2500명으로 구성된 로또펀드라는 집단을 만들어 정말 열심히 사서 다른 숫자의 로또를 500만 장 정도 구했다고 합니다. 확률은 7분의 5로 만들었군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네, 딩동댕입니다.

 

 

합리적인 사기꾼들도 이 법칙을 이용합니다. 순진한 잠재적 희생자 1024명을 골라 그들에게 특정 주식의 등락을 예측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절반에게는 오른다, 다른 절반에게는 떨어진다는 편지 말이죠. 다음날 틀린 쪽은 버리고 맞춘 512명 대상으로 절반에게는 오른다와 절반에게는 떨어진다는 편지를 또 보냅니다. 이걸 10번 반복하면 마지막 남은 1명에게 나는 10번 모두 맞춘 사람이 되는 거죠. 그 사람은 나를 주식의 귀재로 믿을 겁니다. 참 쉽죠 잉~~

 

 

 

2. 아주 큰 수의 법칙 : 아주 많이 반복되면 일어난다.

 

 

2009년 9월 불가리아 로또에서 무작위로 추첨된 당첨번호는 4, 15, 23, 24, 35, 42였습니다. 뭐 특별할 것도 없군요. 근데 놀라운 일이 발생합니다. 그 다음 번의 당첨번호가 글쎄 4, 15, 23, 24, 35, 42였습니다. 연속으로 똑같은 번호가 나온 것이죠. 이 사건은 미디어를 들끓게 했습니다. "52년 로또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 기괴한 우연의 법칙 앞에 말문이 막힌다. 근데 실제 일어났다!" 엄청난 사기극이 벌어진 걸까요? 누군가 조작했을까요?

 

 

불가리아 로또는 6/49 로또이므로 임의의 숫자 6개가 당첨될 확률은 13,983,816분의 1입니다. 그러니까 추첨을 두번 했을 때 같은 번호가 나올 확률이죠. 추첨을 세 번 하면 어떨까요? 50회 하면요? 같은 쌍의 조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그래서 추첨을 4,404회 하면 같은 쌍의 조합이 나올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높아진다고 합니다. 주 2회 추첨을 하니 43년 걸리는 군요. 결국 로또가 43년 넘게 운영되었다면 똑같은 당첨번호가 두 번 나왔을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더 높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23명만 모이면, 생일이 같은 사람이 있을 확률이 없을 확률보다 높습니다. 나와 같은 생일이라고 365분의 1이라고 생각할기 쉬운데, 내가 아닌 다른 두 명을 조합하는 확률을 포함하면 훌쩍 커집니다. 네 잎 클로버를 찾은 건 우연이 아닙니다. 만분의 일의 확률에서 그렇게 찾는데 못찾으면 더 이상한 거죠.

 

 

어떤 사건이 일어날 기회가 충분히 많다면 아주 낮은 확률의 사건도 일어나리라고 예측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것이 아주 큰 수의 법칙입니다. 오늘은 꽝이라도 내일 또 로또를 사는 사람들은 이 법칙을 알고 있는 걸까요?

 

 

 

3. 선택의 법칙 : 내가 관심있는 것만 선택한다.

 

 

성기 크기에 열등감을 가진 친구 성겸이가 남성 확대 수술을 권하는 스펨 메일을 받고선 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 자식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그냥 무작위로 200만 통 쏜겁니다. 그 친구는 자신이 관심이 있으니 그게 눈에 띈 겁니다.

 

 

신 앞에 신앙을 고백한 덕에 바다에서 난파를 당하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그림을 보여주며 신의 능력을 인정하겠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럼요, 당연합죠." 라고 답하면서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백하고도 빠져 죽은 사람들은 어디에 그려져 있나요?" 오직 난파를 당하고 살아남은 자들만이 자기네가 신 앞에 신앙을 고백했다고 증언할 수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퇴사를 하고 나니 정말 사람답게 살게 돼. 나는 내 안의 나를 찾았어." 라고 많은 사람들은 책에 고백을 합니다. 정말 혹~~ 하고 빠져듭니다. 근데 말이죠, 퇴사를 하고 거지같이 살며 후회하는 사람들은 글을 쓰지 않습니다. 책에 나온 사람들은 퇴사를 하고 나름 성공해서 책까지 쓸 정도인 사람들만 그렇게 했습니다. 실제로 퇴사를 하고 성공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궁금합니다.

 

 

 

4. 확률 지렛대의 법칙 : 나비의 날개짓이 태풍을 일으킨다.

 

 

1997년 젊은 법률가 샐리 클라크의 생후 11주 된 아들 크리스토퍼가 잠자던 중에 사망했습니다. 영아돌연사증후군 때문이었는데요, 이 끔찍한 비극은 아기에게 아무리 정성을 쏟아도 발생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1년 뒤에 샐리의 둘째 아기도 생후 8주 만에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영아돌연사증후근에 의한 사망이 한 가정에서 두 번이나 일어날 확률은 7300분의 1이며 이것은 아주 낮은 확률이고, 예상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는 건 무언가 다른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런저런 이유로 아기의 엄마 클라크는 유아 살해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근데 이 확률 계산은 잘못되었습니다. 단순히 한 아기가 영아돌연사증후군에 의해 죽을 확률을 두 번 곱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첫째 아이가 그 이유로 죽을 경우 유전 혹은 환경적인 요인으로 둘째는 그 확률이 쑥 올라갑니다. 그리고 남자 아이가 여자에 비해 이 병에 걸릴 위험이 높고 이 두 아이도 남자였습니다.

 

 

확률 지렛대의 법칙은 전제 조건이 미세하게 바뀜으로 해서 결론이 아주 달라질 수 있다는 법칙입니다. 임의의 한 해에 벼락을 맞을 확률은 30만분의 1입니다. 아주 낮은 확률이죠. 그런데 버지니아 공원 경비원 설리반은 무려 7번 벼락을 맞았다고 합니다. 벼락을 일곱 번이나 맞는 것은 아주 아주 드문 일이지만, 폭풍우 속에서 국립공원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훨씬 높아지겠죠.

 

 

이 법칙을 거꾸로 보면, 아주 희귀한 일이 계속 발생하면 그건 무언가 전제 조건이 잘못되었다는 얘기입니다. 백원짜리 동전을 10번 던졌는데 모두 이순신 장군이 나왔다면 그건 앞뒷면 다 이순신 장군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5. 충분함의 법칙 : 그것도 그냥 맞다고 치자.

 

 

로또에 당첨되셨다구요? 축하드립니다. 울나라 로또 1등 당첨은 약 800만분의 1입니다. 이 확률에 당첨되었다면 아주 축하할 일입죠. 근데 2등은요? 3등은? 6개 중에서 3개만 맞히면 되는 5등의 확률은 얼마일까요? (45분의 1이며 당첨금은 5000원이다. 인터넷에 찾아봤다). 이 모든 경우를 로또에 당첨되었다고 말하면 그 확률은 아주 높아집니다.

 

 

"어? 니 생일이 내 생일 바로 뒷날이네. 신기해." "어젯밤에 딱정벌레가 내 품으로 들어오는 꿈을 꿨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딱정벌레 비슷한 곤충이 바깥에서 창유리에 부딪히고 있었어. 뭔가 계시 같지 않아?" "점을 봤는데 올해 죽을 위기를 넘길 거래. 근데 저번주에 하마터면 사고가 날뻔했어."

 

 

내가 베를린을 방문하고 있을 당시 친구도 베를린을 여행하고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면 틀림없이 이 일은 기묘한 우연이라고 여길 겁니다. 근데 친구가 베를린이 아니라 독일, 혹은 유럽이라면 어떨까요? 혹은 그냥 세계를 여행 중이었다면? 그것도 우연의 일치일까요? 일치의 기준을 완화시키면 우연의 일치가 일어날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1927년 아인슈타인은 닐 보어와 양자역학에 대해 날선 토론을 합니다. 기존 물리학은 전제 조건을 대입하면 딱 정답이 나오는데 반해, 양자역학은 이거도 아니고 저거도 아닌 애매모호한 학문입니다. 정답이 확률로 표현되죠. 이게 맘에 안든 아인슈타인이 한 마디 합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신은 전능하기에 예측 불가능한 이런 거를 안한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헛소리 그만 하라는 거죠. (시간이 흘러 닐 보어가 맞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신도 주사위 놀이를 합니다. 심심하면요.)

 

 

 

이 책의 원제는 <The Improbability Principle>입니다. Improbability를 찾아보니 일어날 성 싶지 않은 일들이라고 나와 있네요. 이 원제에 아인슈타인이 했던 저 멋진 문장을 붙여 제목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센스 작렬 같으니라구!

 

 

 

지구는 넓고 사람은 많아서 이상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사실 지구는 넓고 사람이 무지 많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는 거죠. 하지만 일어날 법 하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보렐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건데요, 원숭이가 타자를 쳤는데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나왔다던가, 고물상에 폭풍이 불었는데 그치고 나니 보잉 747이 되어있더라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지요. 진짜 확률이 낮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합리적 의심을 해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책에서 소개한 여러 예시가 참 재미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원리는 단순히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의미를 넘어, 지구가 태양계에서 그리고 우주에서 그리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전까지 모든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고 인간이었는데 코페르니쿠스가 인류를 평범한 존재로 강등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물리학의 법칙도 우연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독 우리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규칙은 없습니다. 책에 나오는 여러 우연의 법칙을 읽다 보면 그건 일어날 만 해서 일어난 일이죠. 내가 이 지구에서 특별해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나에게만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구요? 설마요. 열심히 뛰었지만 지하철을 타지 못한 확률은 열심히 뛰어서 지하철을 탔을 확률과 같습니다. 자연의 법칙입니다. 저자가 이를 증명했습니다.

 

 

 

이 광할한 우주에서 그보다 더 광활한 시간대에서, 지금 여기 나의 아내를 만난 건 기적입니다. 진짜요? 그저 우연히 만날 사람을 만난 것 뿐 아닌가요? 이것도 저것도 자연의 법칙입니다. 내가 선택하기 나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