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구분되는 인간의 본질은 무얼까 : 구본권 <로봇 시대, 인간의 일>
컴퓨터 1대와 인간 1명을 준비한다. 어느 쪽이 컴퓨터인지는 모른다. 그리고 질문을 한다. 둘 다 질문에 대답한다. 이 대답으로 어느 쪽이 컴퓨터인지 판별할 수 없다면 이 테스트는 통과다. 1950년 앨런 튜링이 제안한 '튜링 테스트'다. 인공지능이라는 것의 정의가 애매하지만, 튜링은 인간이 컴퓨터와 대화를 하는데 컴퓨터를 사람으로 착각한다면, 그 컴퓨터는 사고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인공지능이라고 했다.
2014년 영국 레딩대학교가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 '유진 구스트만'이 처음으로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 우크라이나 국적의 13세 소년으로 설정된 '유진'과 대화를 나눈 심사위원 25명 가운데 33%가 진짜 인간이라 판단하여 기준인 30%를 넘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입력 문장에 따라 무엇인가 생각해서 답을 하는게 아니라 규칙에 기반해 대답을 하는 알고리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옛날 전격제트작전에 나오는 '키트'나 아이언맨의 비서인 '자비스'는 아직 먼 이야기일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심심이는 별로 진화하지 못했지만, 심심이보다 훨씬 업그레이드 된 '시리'나 '누구'가 대꾸하는 걸 보면, 10년 후엔 진짜 농담 따먹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뭐, 새 애인이 생겼는데, 우짜지? 같은 고민 상담 같은 것도 가능할지도.
언제 오느냐의 문제이지만, 이런 시대가 오는 건 확실하다. 그럼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지? 저자는 10가지 질문을 하고 이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준다. 책의 의견을 참고하여 나도 나름의 답변을 해본다. 사실 이런 질문에 대한 정답은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정답이 없는 질문이다. 표준 답안은 저자가 책에 적어 놓았다.
Chapter 1. 무인 자동차의 등장, 사람이 운전하는 차가 더 위험하다?
응. 더 위험해.
친구가 차를 샀다. 새로 나온 그랜져. 운전이 너무 편하댄다. 크루저 기능을 세팅해 놓으면 앞차가 서면 나도 서고 앞차가 가면 세팅된 속도로 내 차도 간다. 운전대를 좀 놔도 된다. 부럽다. 쓰벌. 전문가들은 2040년 쯤 되면 실제 도로에서 달릴 것이고, 2050년에는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이 차를 탈 것이라고 예상했다.
손목에 찬 시곈지 뭔지에 대고 "가자! 키트!" 라고 간지나게 말하는 장면이 내가 죽기 전에 실현된다. 오오!! 근데, 난 이미 꼬부랑 할부지ㅠㅠ. 그 시대가 되면 당연히 키트가 운전하는 게 훨씬 안전할 것이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로 불리는 엘런 머스크는 그 쯤 되면 인간이 운전하는 것이 불법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무인 자동차의 시대가 되면 내가 아닌 키트가 운전하는 건 알겠는데, 그 외의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상상이 잘 안된다. 움직이는 차에서 난 뭘 할지, 무인 자동차가 나를 태워가는 일 외에 무얼 할지, 운전으로 먹고 살던 그 많던 사람은 다 뭘해서 먹고 살지.... 등등.
2018년 1월 라스베가스 소비가 가전 박람회에 선보인 로보마트. 이 넘은 이동식 무인슈퍼마켓이다. 스마트폰으로 야채와 과일 등의 식료품을 주문하면 신선하게 저장된 상태로 주문자의 집까지 배달해준다. 벌써 이 정도의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기술의 진보는 우리의 상상보다 빠르다.
사진 출처 : https://verticalplatform.kr/archives/9598
Chapter 2. 자동 번역 시대,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까?
응. 있어.
구글의 번역 솜씨는 정말 일취월장이다. 예전엔 참고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문장을 만들어낸다. 이대로 쭉 직진한다면 말한 것을 바로바로 번역해서 외국인 상대에게 알려주는 기계가 곧 나오지 않을까.
외국어 공부의 목적은 그 나라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지만, 언어를 배우면서 느끼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소리내어 말하는 재미, 뜻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기쁨, 영화에서 혹은 드라마에서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들릴 때의 짜릿함 등을 나는 아직 기억한다. 배우는 기쁨을 누리는 것에 외국어만한 것도 없다. 이건 나의 경험이다.
봉준호 감독의 2013년 영화 <설국열차>에서 송강호는 자동번역기를 사용해 꼬리칸 지도자와 대화한다. 저런 거 있으면 우린 바벨탑 이전 시기로 돌아갈 수 있다.
https://1boon.kakao.com/jdny/snowpiercer
Chapter 3. 지식이 공유되는 사회,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될까?
응, 가지 않아도 돼.
대학은 동일한 관심을 가진 집단 속에서 호기심을 키우고 단련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아주 동의한다. 대학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나 선후배와 만나 인생을 토론하고 즐기며 봉사하는 과정은 그 시기 아니면 하기 힘든 경험이다. 대학이 단순히 지식을 배우고 졸업장을 따기 위해서 가는 것은 반대지만, 이런 점 때문에 답변을 좀 망설였다.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는 좋은 강의들이 어마어마하다. 대학이나 단체에서 올리는 영상이 아니라 개인이 만든 강의 영상도 꽤 쓸만한 것들이 있다. 지식이 목적이라면 이젠 거의 손 안에서 해결된다. 대학이라는 자격증이 필요하다면 방통대나 사이버대학에 가면 된다. 동일한 관심을 가진 집단에서 호기심을 키우는 것도 굳이 대학이 아니라도 다양한 모임들을 발품만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개인의 요구에 부합하는 다양한 집단들이 지금은 존재한다. 단지 내가 잘 모르고 있을 뿐.
우리 아이가 대학 4년 대신에 세계일주 여행을 4년 동안 간다고 하면 나는 무조건 찬성이다.
Chapter 4. 제2의 기계 시대, 내 직업은 10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을 수 없어.
2014년 기준 세계 최대의 일자리 창출 기업은 220만 명을 고용한 미국의 유통업체 월마트라고 한다. 두 번째는 110만 명을 고용한 대만의 전자부품 제조사인 홍하이이고 그 뒤를 61만명을 고용한 G4S라는 글로벌 보안업체와 57만명을 고용한 독일의 폴크스바겐이다. 일자리 창출만 보자면 이 회사들에게 나라가 상을 줘야 된다.
생산량은 늘지만 그에 필요한 사람의 수는 점점 줄어든다. 위에서 언급한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못하는 젊은이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기술이 어떻게 내 일자리를 빼앗을지 모른다. 방직기계를 때려부셔도 없어지지 않았듯이 기계를 부수거나 회피한다고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없어진 직업만큼 새로운 직업이 생길거라 얘기하는 사람들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 가치 있는 일자리를 찾아 타인과 즐겁게 어울리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능력이기도 하고.
Chapter 5. 노동은 로봇이, 우리에겐 저녁 있는 삶이 열릴까?
아니, 열리지 않아.
사람들은 자유시간을 즐기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별다른 기술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자유시간은 일보다도 즐기기가 어렵다. 여가를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여가가 아무리 생겨도 삶의 질은 높아지지 않는다. 여가를 효과적으로 쓰는 것은 자동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p.177 칙센트미하이의 말 중에서)
로봇이 우리 대신에 노동을 해준다해도 남은 시간에 대해 어떻게 보낼지 궁리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태 '일하는 법'을 가르쳐왔던 대학은 앞으로는 '자유로워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책에 나와 있다. 노동을 로봇이 대신 한다고 저녁 있는 삶이 펼쳐질지 않는다. 저녁 있는 삶은 로봇과 상관이 없다. 일요일 저녁에 우울해지지 않으려면 내 시간을 내 의지대로 쓰는 능력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가 시간이 많아지고 풍요가 커질수록 절제와 정의, 그리고 지혜가 더 많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의 몰리로보틱스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자동 요리 로봇. 이름은 '로보틱 키친'이랜다. 특기는 냉장고 처박아 둔 오래된 재료로 맛나는 요리를 하는 것. 냉장고를 부탁해 저리 가라다. 하하 농담이다. 원하는 시간에 먹고 싶은 요리를 미리 설정해 놓으면 로봇이 그 시간에 맞춰 음식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가격은 1600만원 정도라고. 역시 흙수저에겐 저녁도 없다. 내 노동을 대신할 로봇은 많지만 나는 그 로봇을 고용할 경제적 여유가 없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http://www.bizion.com/bbs/board.php?bo_table=tech&wr_id=157&sca=Science%2CLife%2Cetc
Chapter 6. 감정을 지닌 휴머노이드, 로봇과의 연애 시대가 온다?
응. 온다.
인공지능 전문가 데이비드 레비는 2050년이면 로봇과 섹스가 일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좀 더 일찍은 안되나. 호기심이 생겨 좀 찾아보니 지금도 나온다. 아직은 인형 수준이다. 사람과 꼭 닮은 인형. 근데 궁금하긴 하다. 로봇과 붕가를 하면 기분이 어떨지. 썩 좋은 기분은 아닐 것 같다. 근데 기술이 더 발전되어 내 말과 행동에 완전히 반응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거다. 분명 그런 로봇은 만들어진다. 수요가 무궁무진하니까. 나중엔 이 로봇을 이용한 포주도 생길 거다.
근데 이거야 말로 돈 있는 넘이 누릴 사치다.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쁘고 힘든데, 저런 거 구입은 언감생심이다. 있는 넘들만 좋다고 사겠지. 금수저는 애인도 있고 섹스 로봇도 있고. 좋겠다. 없는 넘은 역시 집에서 혼자 해결해야 한다.
굳이 섹스 로봇이 아니더라도 말벗이 되어 주는 상냥한 로봇은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HER>의 사만다처럼.
이런 로봇 하나쯤 있어서 가끔 응응을 하면 참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와 동시에 그럼 우리 마누라가 잘생긴 남자 로봇과 응응을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잠깐! 이건 아니잖아!
http://soxak.com/articles/1969#direct
Chapter 7. 인공지능의 특이점, 로봇은 과연 인간을 위협하게 될까?
아니. 그렇지 않아.
AI를 크게 3가지로 구분하면 약인공지능, 강인공지능, 초인공지능으로 나눈다고 한다. (AI 혁명이라는 Article을 설명한 연지의 북리뷰 영상을 보면 자세히 나온다.) 약인공지능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공지능이다. 시리나 알파고가 그렇다. 강인공지능은 인간과 거의 다름없는 인공지능이고 초인공지능은 신급에 준하는 인공지능이다. 근데 약인공지능에서 강인공지능으로 가는 것이 무척 어렵다고 한다.
이런 인공지능에 대해서 아주 똑똑한 분들도 입장이 분분하다. 스티븐 호킹이다 빌게이츠, 엘런 머스크는 이 인공지능의 개발이 아주 심각한 문제이며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아주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이나 <인에비터블>의 저자 케빈 켈리가 대표적이다. 여튼 인간과 동급인 인공지능은 인간의 마지막 발명품이 될 거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껏 읽은 책이나 영상을 종합해보면, 인간을 위협할 정도의 수준을 가진 로봇은 언젠가는 만들어지겠지만, 그게 언제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다. 내 생애에서는 불가능하고, 우리 아이 세대에서는 가능할지....
로봇이 인간을 뛰어넘어 자기들의 세상을 만들려고 인류를 멸망시키려 하는데, "우리 이러면 안돼. 우리를 창조한 인간에게 이러면 안돼!" 라고 외치는 각성한 로봇이 나와서 인간을 도와 평화로운 세상을 유지한다는 유치 뽕짝인 스토리는 이미 익숙하다. 너무 많이 봐서 실제 그런 로봇이 나온다면 "너 터미네이터? 나 용엄마야!" 이럴지도.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013480
Chapter 8. 생각하는 기계에 대해 인간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응, 아니, 으응? 이번엔 주관식이야?
이 질문에 저자는 질문하는 능력이라고 답했다. 질문은 호기심에서 나온다고 했다. 컴퓨터가 호기심을 가지면 그것은 더 이상 기계가 아니라 인간일 것이다. 호기심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생겨나는 궁금증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사이에서 설명되지 않는 빈틈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이라고 했다.
나도 호기심이 점점 줄어가고 있다. 여자에 대한 호기심이. 아, 슬프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퍼드 대학의 졸업식 연설에서 자신의 생애를 요약하면서 마지막으로 졸업생에게 남긴 말 'Stay Hungry, Stay Foolish' 그가 좋아하던 잡지 <홀 어스 카탈로그> 폐간호 뒤표지에 적혀 있던 것이다.
암만 똑똑한 인공지능이 나오더라도 그에게 없는 것은 'Stay Hungry, Stay Foolish'일 것이다. 짭스는 있고 나에겐 없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줄어들어 늙어가고 있다고 느낄 때, 나는 이 말을 곱씹는다. 짭스 아저씬 우찌 이리 멋들어진 말을 했을꼬.
사진 출처 : http://www.venturesquare.net/40047
Chapter 9. 망각 없는 세상,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또 주관식이야?
호소다 마모르의 영화 <늑대 아이>를 자막 없이 보고 알아들었을 때의 즐거움, 아내가 여자친구였을 때 일본에 와서 놀다가 히로시마 공항에서 이별할 때의 눈물,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의 슬픔, 수건을 악물고 스쿼트를 하던 시절의 뜨거움, 딸과 함께 촛불 혁명에 동참했을 때의 뿌듯함과 감동. 50도가 넘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무슬림들과 함께 집을 짓던 열정.
하루에 14시간씩 알바하던 시절의 치열함, 영랑 생가 툇마루에 앉아 햇볕을 쬐던 나른함, 식구들과 설거지 내기 가위바위보를 할 때의 짜릿함, 우리 딸 들이가 간디학교에 가려고 함께 자소서를 쓰던 때의 떨림, 매번 노통의 산소에서 느끼는 먹먹함,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지난함, 항상 환하게 밝은 우리 아이들의 얼굴을 볼 때의 기쁨.....
적고 보니 꽤 되네.
Chapter 10. 우리가 로봇의 언어를 배워야 하는가?
아니, 안 배워도 돼. 하지만 배워두면 더 좋지.
내가 할 일을 대신 해주고, 내 판단을 도와주고, 내 곁에 있는 로봇이 있다면, 그와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가끔 싸울 때도 있겠지만, 친절하게 대하고 아껴주며 존중해야 한다. 그게 사람의 할 일이다. 먼저 당신 아내한테나 잘 하세요.
메리 올리버의 문장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로봇이 가장 갖기 어려운 능력이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질이기도 하다. 사람이 만든 기술의 혜택을 온전히 누리려면, 로봇의 시대일수록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이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고 질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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