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 박웅현 <여덟 단어>
1.
스님도 도를 닦고 있습니까?
닦고 있지.
어떻게 하시는데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에이, 그거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까? 도 닦는 게 그런 거라면, 아무나 도를 닦고 있다고 하겠군요.
그렇지 않아. 그들은 밥 먹을 때 밥은 안 먹고 이런저런 잡 생각을 하고 있고, 잠 잘 때는 안 자고 이런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입니다. 밥 먹을 때 걱정하지 말고 밥만 먹고, 잠 잘 때 계획 세우지 말고 잠만 자라는 거죠. 마치 개들처럼요. 이 삶의 지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마찬가지입니다. 순간을 산다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p.135)
밥 먹을 때 밥만 먹는 게 무지 어려운 시대다. 나도 잘 안된다. 우리 아이들도 안된다. 폰을 보지 않고 밥을 먹을 땐 허겁지겁 배만 불리기 위해 먹는 거다. 어떤 철학자는 그렇게 먹는 건 사료라고 했다던데. 밥 먹을 때 밥 먹고, 잘 때 자고, 사랑할 때 사랑하는 걸 제일 잘하는 이는 조르반데..... 스님은 카르페 디엠을 저렇게 단순하게 가르친다. 박웅현도 그게 무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먹을 때 먹고 잘 때 자자.
2.
見의 중요성을 딸한테 이야기했더니 제 이야기가 이제 지겹다고 해요. 딸아이에게는 새로운 게 없어서 그래요. 'Be yourself'도 20년 들었으면 됐다고 하고 말입니다. 딸아이의 반응에 앙드레 지드처럼 강하게 대답하고 싶었습니다. "온 세상이 태어나는 것처럼 일출을 보고 온 세상이 무너지듯 일몰을 봐라!"라고. 하지만 이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했다가 괜히 핀잔만 더 들을 것 같아서 말을 바꿨습니다. "여행을 생활처럼 하고 생활을 여행처럼 해봐."라고요. 다행히 이 이야기에는 눈을 빛내고 궁금해했어요. 그래서 설명했습니다.
"여행지에서 랜드마크만 찾아가서 보지 말고 내키면 동네 카페에서 동네 사람들과 사는 이야기도 하고 벼룩시장에 가서 구경도 하면서 거기 사는 사람처럼 여행하는 거야. 그게 더 멋져. 그리고 생활은 여행처럼 해. 이 도시를 네가 3일만 있다가 떠날 곳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갔다가 다신 안 돌아온다고 생각해봐.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서 3일밖에 못 머물기 때문이댜. 마음의 문제야. 그러니까 생활할 때 여행처럼 해." (p.125)
개락당 테라스의 그네 앉아 담배를 문다.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파랗고 시원한 바람이 볼을 스친다. 집 뒤 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어디서 지껄이는 지 모를 새 소리가 들린다. 평온한 일요일 오후. 나는 글을 쓰고 아내는 그림을 그린다.
파리가 멋진 이유는 3일밖에 못 머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마주하는 일상을 파리를 보듯 그렇게 살긴 힘들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일상의 소소함과 평온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까? 조르바의 눈을 사야 하나? 내가 찾은 해답은 연습이다. 머리 속의 온갖 잡다한 생각들을 비우는 연습, 눈과 코와 피부가, 그리고 몸이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는 연습.
3.
어쨌든 강의와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을 모두 극복했어요. 어떻게 극복했을까? 광고계에서 먹고 사는 이상 프레젠테이션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죠.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하고 제 자신을 돌아봤더니 너무 잘하려고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남들한데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죠.
하지만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할 말을 하는 것'이었어요. 열 명의 스태프들이 오랜 시간 동안 피와 땀을 흘려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잘 정리해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내 역할이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의 본질은 내가 멋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잘 전달하는 것에 있더라는 거죠. 그 이후로 덜 떨렸어요.
...... 저는 딸에게도 인생을 제대로 살고 싶으면 스펙 관리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시간에 네 본질을 쌓아놓으려고 하죠. "기준점을 밖에서 찍지 말고 안에 찍어. 실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별을 만들어낼 수 있어. 강판권을 봐, 언젠가 기회가 온다니까. 그러니 본질적인 것을 열심히 쌓아둬."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다 본질이냐? 고스톱이나 애니팡 같은 게임을 진짜 잘하는데 그럼 이게 내 본질일까?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 5년 후의 나에게 긍정적인 체력이 될 것이냐 아니야가 기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하절에서 휴대폰으로 치는 고스톱이, 애니팡이 당장의 내 스트레스는 풀어주겠지만 5년 후에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요? 본질은 결국 자기 판단입니다. 나한테 진짜 무엇이 도움이 될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봐야 합니다. (p.59)
회사에 다닐 땐 할 일이 분명히 정해지고 그 일을 해결하고 월말이면 돈을 받았다. 그럭저럭 직장 생활을 이어가면서 내 삶도 나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지금 좀 혼란스러운 건 (경제적 어려움으로 겪는 위태함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자신이 없다. 이것에 대해 대화를 나눌 상대도 마땅찮고.
직장을 그만둘 때의 그 해방감과 함께 어떻게 살겠다고 마음 먹었던 초심, 내게 주어진 어마어마한 양의 시간에 눌려 잊고 살았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본질. 나, 지금, 여기. 기억하고 살자.
4.
제가 뉴욕에서 공부할 때 느낀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집어 넣으려 하지 않고 뽑아내려고 애썼습니다. 서른여섯에 사회생활을 하던 아저씨가 책상에 앉아 처름으로 디자인을 배우는데 주뼛댈 틈도 없이 교수들의 칭찬이 쏟아졌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해온 숙제를 벽에 쭉 붙여놓고 좋은 점을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교수는 마치 칭찬을 하지 못해 안달 난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그 뒤에는 왜 좋았는지 제출한 작품에 대해 해석해주고 자세히 설명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학생이 부연 설명을 하면 그 말을 북돋워주더군요. 그러니 학생들은 과제를 하면서도 늘 신이 났고, 서로 앞자리에 앉으려고 할 수밖에요. (p.26)
숭례문학당에서의 한 공부 모임이 있었는데, 한 편의 글을 써온다. 어떤 주제든 상관없다. 그리고 자신의 글을 읽는다. 모임의 다른 사람들은 다 듣고 나서 그 글에 대해 칭찬을 한다. 마구마구. 근데 여기서가 중요하다. 칭찬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아, 글이 멋져요.' 이런 성의 없는 칭찬은 대번에 표가 난다. 어째서 멋이 있는지 이런 부분은 이래서 좋았다 뭐 이렇게 칭찬해야 한다.
사실 발로 썼다고 해도 될 정도의 글도 있다. 그런 글도 칭찬해 줄 부분을 끝내 찾고야 만다. 자신의 글에 대해 다른 이가 칭찬을 해주니 당연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또 나가고 싶고,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하고 마음을 담아 쓴다. 숭례문 학당의 여러 공부 모임 중에서 단연 손에 꼽는다.
근데 이게 공부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일상의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아이들을, 친구를, 함께 일하는 동료를, 그리고 아내를 계속 칭찬만 하면 분명 좋은 쪽으로 바뀔 것이다. 생활도 즐거워질테고. 잘 알면서도 실천은 참 어렵다. 특히 20년을 함께 산 아내에게는. 이거만 잘해도 무지 좋은 남편이 될텐데.
5.
얼마 전에 경기 지역의 교수 4백 분에게 강연을 했습니다. 선생님들이 어떻게 하면 창의력이 있는 아이들로 기를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저는 느끼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느끼게 해주면 됩니다. 강요하지 말고 느끼게 해주면 되는데, 저 또한 한 번도 느끼는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비발디의 <사계>를 외워라, 봄 여름 가을 겨울 4악장이고 한 악장에 세 곡씩 들어가 있다, 들어보고 악장 별로 특징 외워, 시험 본다. 반 고흐도 외워, <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 다 이 사람 작품이니까 이것도 외워, 폴 고갱이랑 친구야 외워. 이렇게 강요된 권위로 예술을 접했어요.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이런 것도 마찬가지에요. <파리대왕> <일리아드> <카라마조프 형제들> 이런 작품들을 무조건 외워라고 하죠.
그러니 뭘 봤겠어요? 요약을 봤죠. 그건 마치 캔 속에 들어간 음식, 가공 식품을 먹는 것과 같아요. 그걸 먹고 감동을 느끼겠어요? 맛이 있을 리 없어요. 그 좋은 작품들이 재미가 없는 거예요. 좋아도 좋은 걸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어린 시절 제가 받은 교육을 생각하면서 선생님들게 부탁이니 딱 한 번만 효율을 포기하고,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스피커를 가져다 놓고 아이들에게 비발디의 음악을 들려주라고 했습니다. (p.82)
"강아, 한 번 갈 때마다 5천원씩 줄게, 어때?"
"싫어요. 안가요"
동네에 '생의 한 가운데'라는 인문학 공간이 있다. 이번에 학생들을 상대로 13주 동안 '청소년, 마을에서 문학하다'라는 주제로 책도 읽고 토론도 하고 강연도 듣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더 좋은 건 무려 공짜. 선착순 모집이다. 이런 건 놓칠 수 없지. 막내를 꼬신다. 저항이 세다. 돈으로 매수를 시도한다. 결국 실패했다.
막내와 영화나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 모르는 게 없다. 밥 먹을 땐 물론이고 심지어 잘 때도 폰을 손에 들고 잘 정도니, 유선생과 교류 시간이 엄청나지. 그렇게 강이는 실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지 않고도 내용을 잘 안다. 하지만 그 내용이라는 게 뻔하다. 요약 혹은 장면이다. 아이에게 책 한 권, 영화 한 편을 제대로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아이를 탓할 것만은 아니나 매우 아쉽다.
여러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강조하는 건 역시 Carpe Diem, Seize the Day다. 나도 사람들도 박웅현이 하는 이야기에 물개 박수를 치며 공감하는 건 그렇게 하려고는 하나 잘 안되기 때문이다. 키팅 선생도, 조르바도, 스트릭랜드도, 뫼르소도, 책사장도, 대주 혜해 선사도, 박웅현도 모두 지금을 살아라고 얘기하는데 말이다.
암튼 이 책, 예전에도 좋았지만 백수가 된 지금 읽으니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 같구나. 백수의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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