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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국)

지금을 사는 유목민의 몽환적 사랑 : 박범신의 소소한 풍경

by Keaton Kim 2015. 3. 11.

 

 

지금을 사는 유목민의 몽환적 사랑 : 박범신의 소소한 풍경

 

 

 

이 책을 왜 골랐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추측컨대, 작가의 전작 <소금>이 준 임팩트가 너무 강렬해서 아마도 후속작도 읽어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한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소설은 정말 소설입니다. 있을 법 하지도 않을 뿐더러 소설을 읽다 보면 꿈속의 저편을 거닐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상상력 너머에 있는 아련하고 어렴풋한, 그러면서도 왠지 피부를 찌르는 이야기입니다. 작가 스스로도 '깊은 우물에서 솟아올라온 작은 물방울들을 짜집기했더니 이 소설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억압당하지 않고 쓸 수 있어 매 순간 당황스럽고 매 순간 행복했다고 고백합니다.

 

 

 

 

 

책 표지의 그림을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몰랐습니다. 책을 읽고 난 다음에 "아하~~~" 라고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습니다. 네, 맞습니다. 남자 하나와 여자, 그리고 다른 여자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당신이 상상하는 그 쓰리섬이 아니닷!!  그러나 보통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사랑의 결정체 - 소설에서는 덩어리라고 표현했다 - 와 같은 아주 몽환적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나누는 주인공들은 모두 삶의 가장자리에서 살아왔습니다. 오빠의 자살, 부모의 죽음과 결혼의 폭력성을 겪은 ㄱ, 광주사태에서 형과 아버지를 잃고 그 일로 인해 다른 세계로 간 어머니를 둔 ㄴ, 탈북자이면서 중국의 의붓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아온 ㄷ. 해설에서는 이 주인공을 '유목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삶에 대한 애착이 없어서가 아니라, 애착의 대상과 홀연히 이별할 수 있었으므로 유목민이라 부릅니다.

 

 

'애착의 대상과 홀연히 이별할 수 있는 용기' 요즘 제 사고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게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주인공들은 생애 그 자체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줄타기 하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책은 읽는 이의 이해를 구하는 내용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공감도 바라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저 이런 사랑도 있구나..... 그냥 따라 느끼는, 책이 이끄는 대로 상념 저 편으로 그저 따라 넘실거리기만 하면 되는 이야기입니다. 나도 이런 사랑 이야기를 읽으며 잠깐 동안이지만 유체이탈을 느꼈습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잉여를 만들기 위해 아둥바둥 사는 것, 모든 고통은 그것에서 시작된다.

 

 

사십 중반에 다가서면서, 나의 위치라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직장에서도 그렇고 특히나 가정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아이들은 이제 부모의 곁을 떠나는 연습을 하기 시작합니다. 책에서도 그 나이가 되면 부모 보다는 친구들과 훨씬 더 가까이 지낸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부모의 손길을 더 이상 필요로 하게 되지 않을 즈음 부터 아내는 아이에게 쏟는 열정을 자신에게 쏟기 시작합니다. 자기만의 생활이 생기게 됩니다.

 

 

이제 아버지란 존재는 가정에서의 위치가 애매해지기 시작합니다. 사실 직장에서도 애매한 위치긴 합니다. 어느 행복학 강사는 남자들의 이 시기가 인생에서 가장 불행한 시기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가 딱 그런 시기인 것 같습니다.

 

 

박범신의 <소금> 이라는 소설을 아버지의 눈으로 읽었습니다.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보는 눈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아버지를 보는 눈으로......

 

 

 

 

 

 

소설은 가족과 직장에 헌신한 우리네 평범한 아버지가 어떤 계기로 가출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이들과 다시 가족을 맺고 염전의 어느 고단한 노동자로 삶을 마감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우연한 계기로 가출을 시도합니다. 그 우연한 계기로 깨달은 바는, '가족과 회사가 아주 완전히, 탯줄이 떨어지는 것처럼, 깨끗하게 떨어져 나간 해방감' 입니다. 가출 이후로 원래의 가족들이 겪은 여러가지 일들과, 가출 이후에 아버지의 행적으로 소설은 전개가 됩니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그 아버지가 자기의 생활을 찾아간 이후에 그가 과연 행복했는가?? 에 대한 대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게 젤 궁금한데 말이죠......

 

 

아버지의 입장에서 이 책의 주인공 아버지를 보는 주된 관점은, 그가 떠나고 난 다음에 가족이 겪는 고통을 모두 무시하고 떠날 만큼, 새로운 삶은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가치가 있어서 떠난 건지, 떠나서 가치 있는 삶을 만든 건지.... 여하간 중요한 것은 주인공 선명우는 여태껏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 입니다.

 

 

 

 

 

 

이런 이야기의 책이 물론 많이 있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또 다른 책은 다니구치 지로의 <열네살>이라는 책입니다. 주인공은 역시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애매한 위치의 중년 남자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지금 딱 그의 나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의 어머니는 고생만 하다 죽게 되고 그도 그닥 즐겁지 않은 청년을 거쳐 지금의 나이에 이릅니다.

 

 

그리고 어떤 일로 그는 과거로 돌아가 그의 아버지가 가출할 시기의 그 나이가 되어 아버지의 가출을 막아보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아버지의 가출 사유(?)가 비교적 명확이 나오는데요.... 바로 다시 살 수 있을 것 같다! 입니다.

 

 

바로 그 가출 장면이다. 가출하는 십대가 아니라 가출하는 아버지를 그린 만화.... 지금 읽어봐도 꽤 괜찮은 만화다.

 

 

 

그러나 아쉽게도 가출 이후의 아버지의 삶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가 없습니다. 단지 가출하는 아버지의 나이가 된 주인공이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고, 좀 더 가정에 충실하고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 지는 결말은 있습니다.

 

 

<소금> 과 <열네살>은 읽은 지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강렬했던 이미지가 아직 맘 한켠에 똬리를 치고 있는 소설입니다. 아마도 모든 것을 버리고 뛰쳐나간 두 소설의 주인공인 아버지와, 아직 떨쳐 버리지 못해 매달려 갈등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에 대한 비교, 그리고 가족이 바라는 아버지상과 내가 바라는 나의 상에 대한 가장 적절한 교차점에 대한 갈등....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