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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국)

절망의 시대에 부끄럼 없이 산다는 것 : 안소영의 시인 동주

by 개락당 대표 2015. 9. 30.

 

 

절망의 시대에 부끄럼 없이 산다는 것 : 안소영의 시인 동주

 

 

 

슬픈 족속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연희전문학교 솔숲 산책길에 내가 있습니다. 산책을 하는 윤동주를 만납니다. 동주를 따라 야트막한 고개도 넘고 초가지붕이 옹기종기 엎드린 마을도 만납니다. 동주는 학교를 벗어나 서강의 해 지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저물어 가는 햇살이 강물에 비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련합니다.

 

 

동주를 따라 일본으로 갑니다. 6첩의 다다미가 깔린 하숙방입니다.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시린 냉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허리를 꼿꼿히 펴고 글을 쓰고 있는 동주가 있습니다. 전쟁과 죽음의 이 삭막한 시대에 시를 쓰는 것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인듯 보입니다.

 

 

산책을 나갑니다. 교토에서 동주가 즐겨 거니는 곳은 가모가와鴨川 강변입니다. 해 질 무렵에는 더욱 아릅답습니다. 노을과 물새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한편의 수채화 같습니다. 십오륙년 전에 정지용 시인이 이 강변을 거닐며 '압천鴨川'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같은 공간을 거닐고 있다는 것만으로 동주는 감격스러워 합니다.

 

 

후쿠오카의 독방입니다. 빡빡 깍아 맨살이 드러난 동주의 머리가 애잔합니다. 얇은 옷 사이로 불어오는 칼 바람이 살을 베고 갑니다. 동주의 눈동자가 몽롱합니다. 손 하나 움직일 힘도 없어 보입니다. 작은 철창 밖으로 보이는 별빛 가득한 밤하늘이 시리도록 맑습니다.

 

 

 

 

 

이런~~ 생겼다. 사진 출처 : 나무위키

 

 

 

사진 출처 : 국가 보훈처

 

 

 

동주는 말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쉽게 쓰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그러나 <쉽게 씌어진 시> 가 나오기까지, 낯선 나라에서 얼굴 붉어지는 감정을 삭이며 지낸 날들이 얼마나 될까. 관 속 같기도 한 6첩 다다미방에서 홀로 웅크려 보낸 시간들은 또 얼마나 될까. 그렇게 쓴 시를, 과연 쉽게 쓰인 시라 할 수 있을까. - P 227

 

 

 

절망의 시대에 희망없는 시간을 꾹꾹 눌러가며 윤동주는 시를 썼습니다. 그의 시가 명징한 것은 아픈 시대에 걸러지고 걸러진 결과물입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창씨 개명을 하고 그것이 너무 부끄러워 쓴 <참회록>, 일본 유학 시절 자기의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뇌해서 쓴 <쉽게 씌어진 시> 등에서 잘 보여집니다. 그는 그런 시대에 숨을 쉬고 먹고 사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느꼈을 것 같습니다.

 

 

동주가 자란 북간도 용정과 명동촌에도 인터넷으로 다녀왔습니다. 그의 사촌이자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인 송몽규도 알게 되었습니다. 소학교 친구 문익환, 연희 전문학교 후배 정병욱, 대학 친구 강처중, 허웅, 유영 등 그의 벗들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최현배, 정인보, 정지용, 조지훈, 이광수, 그리고 시인 백석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윤동주 문학관. 북소문이라 불리는 창의문 바로 밑에 있다. 이소진 건축가가 설계했다. 35년동안 동네 물을 공급하던 청운가압장이 용도 폐기되고, 2011년, 30평 남짓한 이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리모델링하여 문학관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문학관은 아주 예전부터 그 자리에 있어왔다는 느낌을 준다

 

 

 

실제로 문학관은 아담하다. 내부 전시실은 한번 휙 돌아보면 끝나버릴 정도로 작다. 들어가는 입구에 '새로운 길' 이라는 그의 시가 반겨준다.

 

 

 

"물 떼 자국이나 빛 물림 이런 것들이 너무 훌륭해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었고, 일정의 실내도 실외도 아닌 공간으로 활용하면서 기존에 있던 것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향으로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건축가 이소진씨의 말이다. 사진은 제2전시실인데, 물탱크 지붕을 뜯어 개방했다. 제3전시실로 가기 위한 전이공간으로, 또 때로는 전시공간으로 쓰일 수 있다.

 

 

 

문학관의 마지막 공간이다. 거대한 철문으로 공간을 막고 물탱크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였는데, 여기서 그의 일생을 담은 동영상을 상영하는데 그 효과가 엄청나다. 오래된 콘크리트의 노출과 거대한 철문, 그리고 그것이 주는 눅눅하고 음침한 느낌이 그가 살았던 시대를 표현하는 것 같다. 잠깐 머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압박을 주는 공간이다. 건축가의 발상이 놀랍고도 놀랍다. 

 

 

 

윤동주의 시에 대해서, 또 그의 생애에 대해서 읽었습니다. 그가 살아내었던 그 아픈 시대에 대해서 읽었습니다. 절정기에 달했던 일제 강점기의 광기와 절망속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끄럼없이 살려고 노력한 한 청년 지식인의 삶을 읽었습니다.

 

 

 

시인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슬픔과 절망에 잠긴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는 잔혹한 말들도 여전합니다. 이 책에서 다시 그려 본 시인의 삶과 시가,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는 작가의 말처럼 여전히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그의 삶과 시를 통해 어떤 자세로 삶을 마주봐야 되는 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