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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국)

만그이가 머라고 했길래?? :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by Keaton Kim 2016. 1. 31.

 

 

 

만그이가 머라고 했길래?? :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울 할매가 우리집을 짓고 이탠가 후에 그 집에서 울 아부지를 낳았습니다. 물론 그 집에서 저도 태어났습니다. 아직 울 엄니 뱃속에 있을 때, 여느 시골이 그렇듯 의사선생님이 왕진을 왔었는데, 엄니 자궁의 따뜻함에서 나오기 싫어하는 저를 억지로 꺼내려고 의사가 참 힘들어 했다는 말씀을 아직도 하십니다. 전기가 들어왔으면 좀 수월하게 나왔을텐데 하시면서....

 

 

 

그런 시골이었지만, 그래도 50호가 넘는 큰 동네였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대학생 형들이 농활이다 머다 해서 자주 왔었습니다. 그 형들이 가끔은 축구공도 주고 가고 했더랬습니다. 연도 날리고, 미꾸라지도 잡아 팔고, 칙 캐러 다니고.... 그 중에서도 꽤 재미있는 놀이는 자치기였습니다. 명절에는 웃각단 아랫각단으로 나누어 어른들이 자치기 시합도 했습니다. 내 기억에 삼천자 내기 정도. (내가 자라서 그 시합에 낄 정도의 자치기 실력이 되었을 땐 시합이 없어져 버렸다.) 설이면 동네 노래자랑도 했습니다. 지금은 선생님을 은퇴하신 울 세째 고모가 그 노래자랑에 나가서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하는 노래를 불렀던 것은 지금도 기억합니다.

 

 

요게 하도 치니 자가 잘 부러진다. 그래서 자치기의 자는 탱자나무로 만들어야 된다. 동네 형들이랑 하루종일 탱자나무를 삐져서 자를 만들던 기억이 선하다. 지금의 아이들은 아무도 안하겠지..... 해 보면 무지 재미있는데....ㅎㅎㅎ 그림은 정가네 소사 작가인 정용연 선생의 홈페이지 (이글루스에서 모두루라는 필명을 쓴다)에서 퍼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동네에 공장이 하나 둘 생겼습니다. 울 마당 옆의 함박꽃밭에도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조금씩 동네가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릴적 한창 헤엄을 치던 고속도로 밑 개울에는 물이 말라갔고, 사람들은 하나둘씩 동네를 떠나갔습니다. 나도 읍내로, 큰 도시로 공부를 하러 갔고, 졸업을 하고 외국에 돈벌러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마을로 돌아와서 할매와 아내와 할매의 증손자와 증손녀랑 같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할매는 돌아가시고 울 아버지를 낳고, 나를 낳고, 내가 낳은 아이들과 한 때를 지냈던 그 집은 영욕의 세월을 뒤로 하고 사라졌습니다. 동네 전체가 공단으로 편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지금 가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감탄하지 않는 삶이었지만,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했다. -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중에서

 

 

 

먼저 주인공 신대리의 황만그이를 소개하겠습니다.

 

 

 

"황만근은 책에 나오는 예는 몰라도 염습과 산역같이 남이 꺼리는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을 섰고 동네 사람들도 서슴없이 그에게 그런 일을 맡겼다. 똥구덩이를 파고 우리를 짓고 벽돌 찍는 일 또한 황만근이 동네 사람 누구보다 많이 했다. 마을길 풀깎기, 도랑 청소, 공동우물 청소, 용왕제에 쓸 돼지를 산 채로 묶어서 내다가 싫다고 요동질하는 돼지에게 때때옷을 입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일에는 그가 최고의 전문가였다. 동네의 일, 남의 일, 궂은 일에는 언제나 그가 있었다. 그런 일에 댓가는 없거나(동네 일인 경우), 반값이거나(다른 사람의 농사일을 하는 경우), 제값이면(경운기와 함께 하는 경우) 공치사가 따랐다."

 

 

 

황만근은 그야말로 좀 모자라는 농부입니다. 소리없이 마을의 대소사와 궂은 일을 다 해내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이지만, 그래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동화속에 나오는 선녀같은 어머닐 모시고 삽니다. 언젠가 고개를 넘다 무시무시한 토끼를 만나 한바탕의 실랑이 끝에 여우같은 마눌과 두꺼비같은 아들도 얻게 됩니다. 호랭이랑 한판 붙었으면 첩도 얻었을 수도...ㅋ

 

 

 

그런데 만그이가 사라집니다. 말도 안되는 이장인지 구장인지 카는 인간 말을 듣다 변을 당하게 됩니다. 만그이가 돌아오지 않자 동네 사람들은 모두 만그이의 '부재'를 느낍니다. 만그이는 있으면 전혀 표시가 나지 않지만, 없으면 주위 사람들이 불편해지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지난 시절 내가 살았던 동네가 생각이 났습니다. 내 기억속의 마을이 만근이가 사는 동네와 비슷하기도 하고,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라는 제목에서 '이렇게'에 해당되는 "농사꾼은 빚을 지마 안된다 카이" 라는 일갈과 함께 내뱉는 농가부채에 대한 그의 탁월한 견해가 그 시절의 기억을 꺼낸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만그이 같은 이는 이제 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만그이 같은 이를 바보로 몰아가는 이는 점점 많아졌습니다. 만그이 동네에서 그나마 객관적인 민씨가 '비루하지 않고 홀로 할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했다.' 라고 한 황만근을 평가한 말이 되세겨집니다. 만근이도 몰랐고, 동네 사람도 몰랐지만, 만근이는 어쩌면 도통한 사람일지도.....

 

 

 

 

P.S.

 

이웃은 실금실금 웃었다. 나는 그에게 혹시 집에 찜질을 할 수 있는 뭐라도 있는지, 몽둥이는 빼고, 찾아달라고 했다. 이웃은 "아, 파스?" 하더니 돌아서서 갔다. 누워 있던 당숙은 그 와중에도 "아이고오, 그게 파스가 아니라 패친데...... 파스란 말은 바바리나 호치키스같이 제품 이름에서 나온 잘못된 이름이거든" 하고 중얼거렸다. 이웃이 금방 파스인지 바바리인지를 찾아왔고 거실로 당숙을 부축해 들어와 누인 뒤에 오른쪽 발목에 패친지 호치키스인지를 붙였다. - P 135 단편 <책> 중에서

 

 

 

그야말로 성석제의 문장이다. 언제가 김훈의 문장을 무참하다고 표현했는데, 그런 김훈의 문장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문장이다. 글을 씹었다가 목에 넘겼다가 다시 뱉어 씹는 그런 능청스러움이 보인다. 시대의 이야기꾼이라고 불리는 이유에는, 이야기 소재의 자유로움 뿐만 아니라, 자유자재의 능청과 유머의 이런 문장때문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