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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국)

저녁이 되면 다들 집으로 돌아올 겁니다 : 윤대녕의 피에로들의 집

by Keaton Kim 2016. 3. 28.

 

 

 

저녁이 되면 다들 집으로 돌아올 겁니다 : 윤대녕의 피에로들의 집

 

 

 

수년 전부터 나는 도시 난민을 소재로 한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비롯해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실제적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타인과의 유대과 붕괴되면서 심각하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존재들이다. 나는 이 훼손된 존재들을 통해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 싶었다. 이는 삶의 생태 복원이라는 나의 문학적 지향과도 맞물리는 것이었다. - P 247. 작가의 말 중에서

 

  

  

윤대녕 아저씨의 소설은 예전부터 좋아해서 즐겨 읽었습니다. 대설주의보, 은어낚시통신, 도자기 박물관, 남쪽 계단을 보라.... 등. 즐겨 읽긴 했지만, 여태 내용이나 줄거리가 생각나는 소설은 하나도 없습니다. 안타깝습니다ㅠㅠ (그도 그럴것이 11년 만에 나온 장편소설이라는 군요. 좀 위로가 됩니다.ㅎㅎ) 그렇지만 소설을 읽고 나서의 아련함은 아직도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웬지 고독하고 쓸쓸하고 아련한...... 어떤 소설을 읽든, 읽고 나면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랑 코드가 딱 맞는..... ㅎㅎㅎ

 

 

 

성북동의 한적한 곳에 아몬드나무 하우스가 있습니다. 고흐가 동생 테오의 아이가 태어난 걸 축하하려 그린 '꽃이 활짝 핀 아몬드나무'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이 집에는 거침없는 수완가로 전 세대의 역사를 지나온 집주인인 마마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라 혼란스러운 그녀의 조카 현주, 경쟁에서 스스로 뛰쳐나와 홀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여행가이자 사진작가인 이혼녀 윤정, 사랑하는 여자를 충격적으로 잃어버려 세상과 담을 쌓아버린 대학생 윤태,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어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고등학생 정민, 그리고 마마의 권유로 가장 늦게 합류하여 집사의 역할을 하는 실패한 극작가이자 사라져버린 애인을 찾으려하는 명우가 함께 살아갑니다.

 

 

 

이 여섯명이 한 집에 삽니다. 그러나 각 개인은 정상적인 사람의 시각에서 보자면, 너무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역사를 보자면 어디 파란만장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만, 이들은 기본적으로 가족이라는 품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며,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작가는 이들을 '도시 난민'이라고 부르며 '심각하게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존재들'이라 묘사했습니다. 책은 이 사람들의 아픔과 회한과 위로와 사랑을 그렸습니다. 역시나 고독하고 쓸쓸하고 아련하게......

 

 

 

 

 

 

그건 우리가 오랜 세월을 피난민으로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을 포함해 한 사회의 성격이나 집단 무의식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니잖아.

 

 

피난민요?

 

 

가령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을 생각해봐. 그 당시에 백성들이 어떤 일을 겪어야만 했는지. 또 임금이란 사람이 백성을 버려두고 어디로 갔는지. 너무 먼 옛날 이야기인가? 그럼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떠올리면 되겠지. 부서진 철교에 매달여 서로 살겠다고 필사적으로 밀어내며 살아온 참혹한 세월 말이야. 해방이 되고 분단이 되는 과정에서도 이념 대립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어. 알다시피 오늘날까지 이념 논쟁은 되풀이되고 있고. 게다가 권력을 쥔 자들이 생존권을 담보로 늘 이를 악용하고 있지. 대립과 분열을 조장하면서까지 말이야. 그러니 삶의 다른 가지들은 돌아볼 겨를 없이 여전히 생존만이 목표일 수밖에 없는 거지. 때문에 타인에 대해 본능적으로 적대적이고 관용이라든가 선의는 개입할 여지가 없는 거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타인의 존재가 필요한데도 말이야. - P 149

 

 

 

집필중에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작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글을 쓸수도 없었습니다. 세월호 같은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발생한 이유가, 타인과의 연결고리가 점점 약해지는 이유가, 많은 사람들이 '도시 난민'의 대열에 들어서는 이유가 피난민으로서 오랜 시간 살았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가슴을 훅 찌릅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기대와 미련을 버리지 못하더라고.

 

 

저녁이 되면 다들 돌아올겁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시골의 집에서 저녁 짓는 연기가 나고, 밥 먹으러 오라는 엄니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래서 초라한 밥상이지만 식구들이 도란도란 모여 저녁을 먹는 풍경.....  상상만 해도 흐뭇하고 정겹습니다. 현실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사발면을 들고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먹습니다. 식구食口, 밥 식食자에 입 구口자.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이라는 말인데..... 현실의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위의 저 풍경은 더 그립습니다.

 

 

 

그런 난민같은 이들이 모여사는 삭막한 아몬드나무 하우스에도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하얀 꽃은 핍니다. 아주 조금이지만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그러면서 서로에게 가로막혀 있던 벽이 조금씩 헐립니다. 서로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마음의 문을 열어갑니다. 그러면서 각자가 가지고 있던 마음속의 상처가 자신도 모르게 점차 아물어가는 걸 느낍니다.

 

 

 

아직 세상에 대한 기대와 미련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게 마련입니다. 같이 밥을 먹는 식구는 그래서 필요합니다. 그게 집의 힘이자 가족의 힘입니다. 그런면에서 피에로들의 집인 아몬드나무 하우스는 이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입니다. 언젠가는 아몬드나무 하우스에도 저녁 짓는 연기가 날 겁니다. 이제는 난민에서 탈출한 이들이 도란도란 저녁을 먹는 모습을 기대하게 됩니다.

 

 

 

막내 아들녀석에게서 카톡이 옵니다.

 

"저녁 먹고 최싸모님은 참외를 깎고 있어요. 우리들은 딩굴딩굴하면서 테레비를 보며 참외를 묵어요....^^"

 

당장이라도 집으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역시 저에게도 최고의 위로는 집입니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집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