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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레닌의 실패, 그리고 백년 후 : 슬라예보 지젝 <레닌의 유산 : 진리로 나아갈 권리>

by 개락당 대표 2018. 2. 10.

 

 

 

레닌의 실패, 그리고 백년 후 : 슬라예보 지젝 <레닌의 유산 : 진리로 나아갈 권리>

 

 

 

오늘날 자유주의적 합의는 150년에 걸친 좌익 노동자들의 투쟁과 국가에 대한 압력의 결과다. 여기에는 백 년 전, 아니 그 보다 가까운 과거에 자유주의자들이 겁에 질려 내팽개쳤던 요구들이 포함되어 있다. 증거가 필요하다면 <공산당 선언> 마지막에 나와 있는 요구 목록을 보기만 하면 된다. 그 가운데 두세 개만 빼면, 나머지는 오늘날의 합의에 포함되어 있다. 보통선거, 의무교육, 전 국민 건강보험, 노령자 보호, 아동 노동 제한 등. 간단히 말해서 오늘날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의 내재적 발전의 결과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의 결과인 것이다. (p.341)

 

 

 

노력하면 달라진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한는 노오력은 무엇일까요? 남보다 나아지려고 하는 초등학생들의 여러 과외들, 일류 대학에 들어가려는 중고등학생의 국영수 논술공부, 취직하려고 공부하는 토익, 봉사활동, 각종 자격증, 해외 어학연수, 직장을 가져서도 도태되지 않기 위해 하는 영어공부, 업무에 대한 여러 공부들, 주식투자, 심지어는 남보다 건강한 신체를 가지려는 목적으로 하는 운동까지... 우리는 어마어마한 노력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노력한 만큼 현실은 달라지고 나아졌을까요?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내가 하는 노력만큼 남들도 하고 내가 그들보다 더 열심히 하면 그들도 저만치 가 있습니다. 뭔가 잘못된 패러다임에 갖혔습니다.

 

 

 

노예 제도가 당연시 여겨지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에 노예들도 엄청난 노력을 했습니다. 그 처절한 노력 끝에 자유를 쟁취했습니다. 그들이 한 노력은, 주인에게 더 인정받는 노예, 주인이 시키는 일을 더 순종적으로 잘 하는 노예, 다른 노예보다 경쟁력 있는 노예가 되기 위한 노력이었을까요?

 

 

 

우리가 죽기살기로 하고 있는 지금의 이 노력이 어떤 방향이 되어야 할 지 생각하게 합니다.

 

 

 

구 소련에서 발행되었던 레닌 포스트카드

 

사진 출처 :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110710084929630

 

 

 

# 10월 혁명

 

 

 

1905년 1월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노동자들의 탄원 집회가 열립니다. 너무 힘들어서 몬살겠다. 러일전쟁 그만 하고 우리도 좀 살게 해주라~~ 이들은 니콜라이 2세에게 탄원을 하기 위해 겨울 궁전으로 평화적인 행진을 합니다. 하지만 감히 황제에게 대든다고 실권자 그레고리 라스푸틴(최순실이 감방에 막 가고 할 때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했다)은 발포를 감행합니다. 오백명이 넘는 사람이 죽고 수천명이 다치는 대규모 유혈사태로 번집니다. 피의 일요일이라 불리는 사건입니다. 러시아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됩니다.

 

 

 

그 즈음의 러시아 노동자들의 상황은 완전 시궁창이었습니다. 공업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노동자의 수는 엄청나게 늘었으나 그들의 처우는 비참하였습니다. 최저 임금도 없고 노동시간의 제한도 없을 시절이니까요. 1914년에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이 장기화 됨에 따라 민중의 생활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빵을 달라!!! 시위는 노동자에서 농민, 병사까지 가담하게 됩니다. 1917년 참고 참던 민중들은 폭발하고 맙니다. 시위가 혁명이 되는 순간입니다. 2월 혁명으로 황제 니콜라이 2세는 폐위되고 로마노프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케렌스키가 이끄는 멘세비키(공산당 소수파)가 2월 혁명을 주도하여 황제를 몰아내었지만 경제는 여전히 파탄 직전이었고 그들은 민중의 요구를 들어주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에 스위스에서 망명 중이던 블라디미르 레닌은 혁명의 도시 페트로그라드(1914년까지 샹트페테르부르크, 이후 페트로그라드,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다 현재는 원상복귀)로 돌아와 세계 공산주의 혁명을 부르짖습니다.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 그해 10월 마침내 볼세비키 군사혁명위원회(위원장 트로츠키)가 케렌스키의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혁명을 완성합니다. 소비에트(노동자 농민 병사들의 민주적 자치 기구) 정권의 수립이자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탄생이며 인류 최대의 실험이 시작된 겁니다.

 

 

 

1917년 10월 혁명은 성공했으나 단순히 페트로그라드와 대도시 중심의 쿠데타에 불과했고, 러시아 전역에는 아직 반볼세비키 세력들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황제를 지지한는 부르주아 세력의 백군과 혁명을 지지하는 적군 간의 치열한 다툼이 혁명 이후에 전개됩니다. 러시아 내전입니다.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후원하는 백군이 기선을 잡았으나 러시아 공산당의 끈질긴 저항과 러시아 인민들의 지지로 1922년 마침내 적군이 승리하여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하게 됩니다. 수도도 모스크바로. 하지만 이 내전으로 혁명을 지지했던 많은 노동자들이 희생당했으며 민중의 생활고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제정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의 가족들이다. 대부분의 마지막 황제가 그렇듯, 백성이 굶어 죽기 일보 직전임에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나라 살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간신배(수장은 라스푸틴)에게 조종당한 끝에 피의 일요일 사건 등으로 국가 경영을 말아 잡수셨다. 러시아 혁명으로 퇴위당한 후 1918년 볼세비키에 의해 일가족이 처형당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gmania65/785

 

 

 

빵을 달라!! 1917년 2월 수도 페트로그라드에서 배급을 기다리던 여성들이 배급량이 너무 적은 것에 분노해 항의를 시작했다. 혁명의 시초는 여자들이었다. 그것이 노동자들과 농민으로 번졌고 병사들까지 합세했다. 그래서 레닌은 여성 해방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다. 사회주의자는 모든 여성이 겪는 천대와 차별에 반대하고 여성의 항의와 저항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페트로그라드 거리를 행진하는 여성 노동자들이다.

 

사진 출처 : https://wspaper.org/article/18430

 

 

 

# 블라디미르 레닌 (1870~1924)

 

 

 

수많은 혁명가들의 본좌. 마르크스 이후 가장 위대한 혁명사상가인 동시에 역사상 가장 뛰어난 혁명지도자로 추앙받는 인물입니다. 뽄대 있는 집안에서 교육 수준이 높은 부모의 6명의 자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17살 되던 해 맏형이 알렉산드르 3세의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처형당하고부터 혁명의 기운으로 손을 내밀고 마르크스를 탐독합니다. 1895년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이라는 혁명 조직을 만들었으나 그 이유로 시베리아 슈센스코예로 유배됩니다. 이 때 같은 약혼녀 크루프스카야가 유형지까지 그를 따라왔고 두 사람은 그곳에서 혼인합니다.

 

 

 

유배 이후 여러 나라를 망명하며 마르크스주의 최초의 정치 신문을 발간하는 등 러시아 지식인을 혁명에 가담하도록 포섭하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모읍니다. 그의 최종 목표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었습니다. 기존의 카를 카우츠키가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따라 부르주아 혁명으로 봉건제를 타도한 후 정치권력과 경제적 주도권을 부르주아에게 이양하여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한 후에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에 비해 래닌은 부르주아에게 권력을 맡기면 노동자 계급에 대한 탄압이 격화되고 혁명의 원동력 자체가 소멸될 수도 있다고 보고 부르주아 혁명은 생략하고 바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가는 급진적 혁명을 주장했습니다.

 

 

 

혁명가 이전에 사상가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보인 그는 1917년 4월 혁명의 불꽃이 타오르는 페트로그라드로 돌아와 대중을 휘어 잡습니다.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임시정부에 대항하며 노동자 농민 병사들의 지지를 이끌어냅니다. 임시정부가 힘을 잃어가자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기가 왔음을 직감한 그는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인 레온 트로츠키의 협력을 이끌어내어 적위대를 조직하고 10월 혁명으로 임시정부 타도에 성공하여 모든 권력이 소비에트에 넘어왔음을 선포합니다. 혁명직후 열린 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새로운 정부인 인민위원 소비에트의 의장으로 선출됩니다.

 

 

 

레닌은 이렇게 최초의 공산중의 국가를 건설하였으나 이후 여러 질병으로 통치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됩니다. 후계자 자리를 놓고 트로츠키와 스탈린이 붙었는데 이미 권력은 발빠른 스탈린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레닌은 스탈린의 융폭한 성격을 경계해야 하며 서기장에서 해임시키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레닌은 죽은 권력이었고 스탈린은 살아있는 권력이었습니다. 러시아 혁명과 적백내전을 치룬 트로츠키가 그를 견제하려 했으나 1927년 국외로 추방되고, 반소련 반혁명 운동을 벌이며 스탈린 뒷다리를 잡다 결국 1970년 멕시코에서 암살당합니다.

 

 

 

 

본명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그가 태어난 곳은 그의 이름을 따서 울리야놉스키가 되었다. 레닌그라드도 마찬가지. 러시아 공산당을 창설하여 혁명을 완성시키고 소련 최초의 국가원수가 되었다. 제3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창설했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혁명이론에 충실한 국가를 건설하려 했고, 국영화 및 국유화를 통해 사상적 단결을 이루어 국론통일을 지향했다. 이오시프 스탈린, 호치민, 마오쩌둥, 요시프 브로즈 티토, 피델 카스트로, 김일성 등이 그의 공산주의 국가 모델의 영향을 받았다. (글 인용 : 나무위키, 위키백과, 다음백과 등)

 

사진 출처 :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06r0351b

 

 

 

"전쟁은 이제 그만! 임시정부 타도! 농민에게 토지를!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로!" 볼세비키를 이끄는 그가 외친 것은 평화와 토지와 빵이었다. 오빠 멋져!! 그에게는 대중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논객이라 불릴 정도로 연설과 토론을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혁명에 대한 열정이 그 누구보다 강했다 "온종일 혁명만 생각하고, 혁명에 대한 글만 쓰고, 혁명에 관한 글만 읽는 사람이 어찌 집권할 수 없었겠소." 라고 말하기도. (글 일부 인용 : 나무위키)

 

사진 출처 : http://liberationschool.org/milestones-in-communist-history-the-october-revolution/

 

 

 

# 스탈린주의

 

 

 

1926년~53년 소련에서 실시된 통치방법입니다. 레닌 사후 집권한 이오시프 스탈린 특유의 독재 정치를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러시아 혁명은 마르크스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만, 정작 마르크스 본인은 사회주의 국가 성립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주장한 바가 전혀 없다고 합니다.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경제체제가 새로운 정치체제를 불러올 것이라는 주장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일지에 대한 질문에 '미래에 도래할 새로운 체제는 지금보다 더 나은 체제일 것'이라고 기대했을 뿐입니다. 아, 정녕 그렇하단 말이냐? 이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하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계급 없는 사회에서 '국가의 소멸'을 예언하고 있음에도 스탈린은 국가는 더욱 강력해져야 한다고 역설했고, 그래서 권력은 점점 스탈린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국가 주도하의 산업개발과 재화의 분배도 독재의 강화에 한 몫을 했구요. 레닌은 각 지역에 소비에트(노동자 농민 등으로 이루어진 자치구)를 건설하고 그들의 의견을 모아모아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최고 평의회를 건설한다는 주장이었는데요, 그래서 당은 항상 옳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최고 권력자의 독재로 변질되어 버린 것입니다.

 

 

 

스탈린의 말은 절대적 진리가 되어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는 닥치고 숙청이 되었습니다. 약 2천만 명 가량의 사람이 노동수용소, 강제집단화, 숙청의 결과로 사망했으며 또다른 2천만 명의 사람들이 투옥, 추방, 이주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하니 애초에 러시아 혁명의 이상과 스탈린주의 아래에서의 소련 현실과의 차이는 뭐,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혁명은 성공했으나 그 혁명의 실행 첫 발에서 아주 어긋나버리고 만 것입니다. 실제로 냉전 시절 반공 자본주의 진영에서 공산주의를 디스할 때 가장 잘 써먹은게 바로 이 스탈린주의의 폐해였습니다. (글 인용 : 다음백과, 나무위키, 위키백과 등)

 

 

 

레닌과 스탈린. 스탈린은 레닌 휘하에서 러시아 혁명에 동참하는 등 소비에트 연방을 건국하는데 일조하였고, 레닌 사후 교묘하게 권력을 장악하여 최고의 오른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잔혹하게 휘둘렀던 독재자가 된다. 인류 최대의 실험을 완전히 시궁창으로 몰고간 장본인이다. 떠그럴.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gmania65/556

 

 

 

# 계급투쟁

 

 

 

"인간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1848)>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인류는 고대 원시 사회에서부터 노예제, 중세의 봉건제를 거쳐 현대의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계급간의 투쟁을 통해 발전해 왔습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몸뚱이 하나로 노동을 해서 생계유지를 하는 계급, 즉 노동력 외에는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하는 계급인 프롤레타리아와 자본가와의 투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마침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노동자 대중이 사회의 전부가 되어 계급 투쟁이 소멸되는 새로운 역사가 펼쳐진다고 예언했습니다. 그렇다. 계급 투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새로운 세상은 아직 오직 않았다.

 

 

 

이 이상적인 체제(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노동자 대중이 사회의 주인이 되고, 노동자는 누구나 생산수단을 갖추어 착취당하지 않고 개인이 노동한 만큼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계급 투쟁이 없어진 세상이죠.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세상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계급 투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것도 아주 치열하게.

 

사진 출처 : http://www.redian.org/archive/98172

 

 

 

 

 

 

하지만 레닌은 뭔가? 마르크스주의를 실현에 옮기려는 노력의 '실패'이자 '현실 사회주의' 실험이라는 커다란 '재앙'의 상징적 인물이 아닌가? 하지만 지젝이 다시 건져내고자 하는 레닌은 그러한 '낡은 교조적 확실성'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 재앙에 가까운 상황에 내던져진 근본적인 경험을 한 레닌이며 그런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만들어야 했던 레닌이다. (p.8 로쟈 이현우의 해제 -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중에서)

 

 

 

러시아 혁명 딱 100주년 기념으로 산 이 책은 아주 어렵습니다. 레닌을 읽고 싶다는 욕구만으로 읽어지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꼭 이렇게 유식하게 쓰야 돼? 이 참에 다시 공부를 해봅니다. 10월 혁명의 배경, 혁명의 주역인 레닌과 붉은 군대의 건설자이자 이론가인 레프 트로츠키, 독재자 스탈린, 그리고 러시아 혁명은 유럽 혁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과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 전 세계 공산당 조직 코민테른, 역사적 유물론, 그리고 혁명가 레닌의 생애도 살펴봅니다. 한학기 내내 공부해야 할 분량인데 몇 시간에 하려고 하니 대충 겉핥기가 되어버립니다.

 

 

 

레닌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이 책을 꾸역꾸역 읽으면서 레닌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습니다. 레닌이 품은 인간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얼핏 봐버렸습니다. 절망의 시대에 그것을 희망으로 바꾸려고 노력했고 잠깐 성공했지만 다시 야만의 시대로 가려는 역사의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는 혁명가의 인간적인 모습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 라고 독일 사람들에게 외친 로자 룩셈부르크가 떠올랐다.)

 

 

 

인류 최대의 실험은 결국 대실패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레닌의 혁명도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가 꿈꾸던 이상적인 사회는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서두에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 노오력에 대해 적었습니다만, 진정으로 우리가 해야 할 노력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해야 합니다. 100년 전에 한 혁명가가 꿈꾸던 사회를 생각해보면 알 것도 같습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가 아주 지 세상인 양 활개를 치고 있는 바로 지금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