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 : 아누 파르타넨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은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하고,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명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세상이 좀 지나친 욕심이라면 적어도 살기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없는 세상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1988년 노무현 초선의원 첫 대정부 질문에서 발췌
그렇습니다. 사는 곳 먹는 것 입는 것 걱정 좀 덜하고, 아플 때 병원비 별로 걱정 안하고 치료받을 수 있고, 배우고 싶을 때 충분히 배울 수 있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특히나 더.러.븐.꼬.라.지 안보는 것을 이상적인 사회의 필요조건으로 꼽았습니다. 여기서 더러운 꼬라지라 함은, 똑같은 일을 하면서 나는 만원 받는데 남은 만오천원 받는 것, 잘못을 해도 돈 많고 권력 있는 넘은 무죄, 나라를 이끌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 주머니 채우기, 부모 잘 만난 아이들은 아주 양질의 교육을 받는데 비해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학교 공부만 하는 것 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저렇게 외친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더러운 꼬라지는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서, 혹은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현실은 여전합니다. 우리 사회는 전혀 발전하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지난 인간들이 살아온 역사를 쭉 살펴보면 여러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흐름은 이상적인 사회로 가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집단 지성의 위대한 결론이든 프롤레타리아의 치열한 계급 투쟁의 결과든 말이죠.
핀란드에서 잘 나가는 언론사 기자였던 저자는 훈남 미국 남자와 사랑에 빠져서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퐌타스틱한 나라에서 살게 된 거죠. 근데 막상 미국에서 살아보니 자신이 여태 살았던 나라 핀란드가 그렇게 살기 좋은 나라였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여태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얼마나 자신이 있었으면 책 제목마저도 우리(노르딕이라 불리는 북유럽의 여러 나라)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다고 장담합니다.
20세기 내내 그리고 21세기까지 이러져온 노르딕 사회의 원대한 야망은 경제를 사회화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목표는 개인을 가족 및 시민사회 내 모든 형태의 의존에서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었다. 가난한 자들을 자선으로부터, 아내를 남편으로부터, 성인 자녀를 부모로부터, 노년기의 부모를 성인 자녀로부터. 이런 자유의 명시적인 목적은, 숨은 동기와 필요에서 벗어나 모든 인간관계가 완전히 자유롭고 진실해지도록 그리고 오직 사랑으로만 빚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p.67)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
애 하나 낳기가 그렇게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키울 엄두가 안납니다. 직장을 관두고 애를 보든가 아니면 제일 만만한 부모님에게 의지를 합니다. 그도저도 안되면 애 봐주는 아줌마를 고용하던가요. 당장 가족에 의존하든지 돈에 의존하게 됩니다. 사랑에 관한 노르딕 이론에 따르면 이런 의존적인 고리가 독립적인 개인을 만드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불평등한 관계로 서로 묶여 있거나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가족보다 독립적인 개인들이 더 강하고 든든한 가족을 이룰 수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더 나아가 진정한 사랑은 독립적이고 동등한 개인들 사이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구절인가!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 사회는 그래서 백성 한명 한명을 독립적인 개인으로 만드는 가장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아이를 낳으면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도록 나라에서 돌봐 줍니다. 늙은 부모가 병들어 아플 때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되도록 만듭니다. 자식이 학비 때문에, 취직이 안되어 부모에게 의존하는 일이 없도록 나라에서 도와줍니다. 돈을 벌지 않는 전업주부가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는 처지에 놓이지 않도록 합니다. (어떻게? 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책을 읽어 보시도록!) 나라가 운영하는 모든 시스템이 오로지 독립적인 개인을 만들기 위해 애초부터 설계되어 있습니다.
빌 클린턴이 이 아줌마한테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냐고 진지하게 묻는 장면으로 책은 시작한다. 그 아줌마가 2000년~2012년까지 유럽의 북동쪽 구석에 자리한 무척 얌전한 나라인 핀란드 대통령을 지낸 타르야 할로넨이다. 소박하고 친근하고 옆집 아줌마랑 딱 어울리는 이미지지만 평등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그의 의지만큼은 단호했다.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seonghun6869/12043
또 하나 이 책에서 의미심장한 핀란드의 정책은 교육입니다. 그들은 뛰어난 학생을 목표로 하지 않습니다. 탁월함이 아니라 '평등'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특별하지 않다." 라는 개념입니다. 언젠가 삼성 이건희 회장이 '천재 한 명이 만 명을 먹여살린다.'고 말해 회자된 적이 있습니다만, 우리는 그 천재 한 명을 만들기 위한 교육입니다. 이 방식은 틀렸다고 책은 강하게 주장합니다. 한두 명의 뛰어난 사고를 가진 학생보다 모두가 깊이 있는 사고를 하게 만들고, 저 혼자 잘난 사람보다 다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경쟁력 있는 교육이라고 여깁니다.
실제로 '아이의 일은 노는 것'이라는 핀란드 속담을 그들은 굳건히 믿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놀게 합니다. 어린이집에서의 학습은 무조건 적을 수록 좋다는 게 부모들의 생각입니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경쟁없는 교육입니다. 자, 그러면 선생님은 어떨까요? 핀란드에서 가르치는 일은 쉽게 익힐 수 있는 기술 중의 하나라는 인식은 아예 없습니다. 모든 교사가 석사학위 소지자여야 하고 교사 양성 프로그램은 가장 엄격하고도 전문적인 과정입니다. 핀란드에서 교사는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의사가 되는 것 못지 않게 빡세다고 합니다.
책은 교육 뿐만 아니라 의료, 세금, 복지, 중산층 나아가 국가의 역할 등 사회 전반에 대해 설명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살았던 핀란드와 지금 살고 있는 미국을 콕 집어서 비교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핀란드의 우수함에 감탄했고, 미국의 열악함에 더 감탄했습니다. 핀란드와 비교해서 우리가 뒤떨어진다는 느낌보단 미국에 비하면 우린 아주 살기 좋은 나라라는 느낌이 훨씬 강할 정도였으니까요.
핀란드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조금 먼저 미래에 도착한 사람들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저자가 핀란드 사람이니 책 내용에 얼마간의 뻥을 감안하더라도, 역시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의 사회 모습이다.
사진 출처 : http://www.nordikhus.com/category/edu-society/%EC%82%AC%ED%9A%8C/
역사를 돌이켜보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우리의 롤모델은 중국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근대에 와서는 러시아를 포함한 여러 열강으로, 그리고 일본으로 바뀌었고 가장 최근은 미국이 우리의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나라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사람, 국가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결정하는 사람, 기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 등이 모두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사람들이며 그들의 눈높이는 거기에 맞춰져 있습니다.
서두에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한 이상적인 사회를 적었습니다. 비단 당신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 무두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이며 그것이 어느 곳에서 구현되고 있는가는 이제 누구나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롤모델도 이제는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마르크스와 레닌이 꿈꾸던 사회주의 혁명이 대실패로 끝난 지금에 와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이기도 합니다.
부탄을 여행하고 온 친구에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맞더냐고 물었더니 나도 가난하고 옆집도 가난하고 온 동네가 다 같이 가난해서 행복하더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먹고 살기 좀 힘들어도 더러운 꼴을 안봐서 행복하다는 이야깁니다. 꽤 그럴듯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한 나라는 아닙니다. 행복이 오롯이 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치부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나는 행복하다고 주문을 외는 것도 좋지만 살기 좋은 여건을 만들고 그 안에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자 우리의 미래입니다. 그리고 그 미래를 오늘 살짝 엿보았습니다.
'사회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말해지지 않을 것들 : 이문영 <웅크린 말들> (2) | 2018.03.11 |
---|---|
레닌의 실패, 그리고 백년 후 : 슬라예보 지젝 <레닌의 유산 : 진리로 나아갈 권리> (0) | 2018.02.10 |
온몸이 귀어 되어야 겨우 들리는 아득한 말들 : 은유 <폭력과 존엄 사이> (0) | 2017.12.23 |
자발적 경계인이 몸의 언어로 쓴 책 : 김민섭 <대리사회> (0) | 2017.12.11 |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 박노자 <주식회사 대한민국> (2) | 2017.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