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무적자라는 게 나의 죄일까? 나는 무적자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만이 아는 일이었고, 그 책임도 두 사람에게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학교는 나에게 그 문을 닫아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경멸해 마지않았다. 육친인 할머니마저도 내가 무적자라는 이유로 멸시하고 협박했다. (<자서전 106쪽>, 본문 44쪽)
가네코 후미코는 1903년 1월 25일 요코하마시에서 장녀로 태어난다. 어릴 때는 호적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아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1912년 충청북도 청주군 부용면 부강리에 있는 고모 집안에서 성장한다. 7년 동안 조선에서 살면서 학대를 받은 그는, 비슷한 처지에 있던 조선인들에게 깊은 이해와 공감을 가지게 된다.
2.
지금까지 얇은 베일에 싸여 있던 세상의 모습이 점차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처럼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공부를 해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부자는 점점 부유해지고 권력을 가진 자가 뭐든지 할 수 있는 이유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사회주의가 설명하는 바에도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서전 394쪽>, 본문 91쪽)
3.1 운동이 일어나고 이를 본 그는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감동을 받는다. 이 해에 도쿄로 돌아온다.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여 그 의미를 깨닫는다. 나는 위의 저 말을 대학교 들어가고도 한참 있다가 깨달았는데, 가네코는 일찍 철들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시대였다.
3.
소위 훌륭하다는 인간들만큼 하찮은 자는 없다는 것을 나는 명확히 알았다. 사람들에게서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 게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의 참된 만족과 자유를 얻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아닌가. 나는 바로 나 자신이지 않으면 안된다. (<자서전 393쪽>, 본문 92쪽)
정우영이 박열의 시 <개새끼>를 그에게 보여준다. 그 시를 다 읽었을 때 그는 가슴의 피가 뛰었고 황홀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우영의 하숙집에서 박열을 만난다. 자신이 여태 찾고 있던 사람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얼마 후 고백한다. "당신은 혹시 배우자 있나요?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난 혼자입니다." "나는 일본인인데 괜찮나요?" "편견이 없는 당신같은 사람에게 친밀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썸도 없이 바로 사귀기 시작한다.
4.
나는 인간으로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나는 이러한 이유에 기초하여 '연약한' 여성으로 간주되는 걸 거부한다. 이와 동시에 그런 전제 위에 서 있는 모든 은혜를 단호히 거절한다. 상대를 주인으로 섬기는 노예. 상대를 노예로 보고 가엾게 여기는 주인, 나는 이 둘 모두를 배척한다. (<옥중 편지>, 118쪽)
1922년 2월에 박열을 만나고 5월에 함께 살기로 한다. 완전 MZ인데. 동거에 즈음하여 박열과 약속을 한다. 첫째, 동지로 함께 살 것, 둘째, 내가 여성이라는 관념을 반드시 제거할 것, 세째, 둘 중 하나가 사상적으로 타락하여 권력자와 악수하는 일이 생길 경우에는 즉시 공동생활을 그만 둘 것. 철저하게 자립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5.
산다는 것은 단지 움직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에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즉 행동은 살아가는 일의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그저 살아간다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행위가 있고서야 비로소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을 때, 그 행위가 비록 육체의 파멸을 초래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생명의 부정이 아니다. 긍정이다. (<재판기록 589쪽>, 본문 219쪽)
1923년 9월 1일 간토 대지진이 발행한다. 9월 3일 요주의 인물이던 박열과 가네코는 체포된다. 심문 도중 일본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려 했다는 계획이 탄로난다. (계획은 했으나 김상옥 의사의 폭탄 의거로 일제의 경계망이 삼엄해지면서, 폭탄 공수가 어려워져 계획을 접는다.) 이 일로 길고 긴 재판을 받는다. 재판 도중 판사는 전향하면 사형은 면해주겠다고 설득하지만, 가네코는 위와 같이 말하며 전향을 거부한다. 진정한 아나키스트다.
6.
다음으로 판사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내가 감옥에 들어온 지 햇수로 4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나의 사상에 관하여 어디서든 강연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재판정에 나와 그 강연을 한 듯한 기분입니다. (<재판기록 773쪽>, 본문 263쪽)
4년을 이어온 재판에서 가네코의 마지막 변론이다. 그는 하얀 비단저고리와 검은 조선식 두루마기를 입고 법정에 나온다. 불령사 인원은 모두 16명이 기소되었고, 천황에 폭탄을 던진다는 '대역사건'은 계획에 불과했으므로 박열, 가네코, 김중한을 제외한 사람들은 무죄로 방면된다. 하지만 1929년 3월 일본 법정은 박열과 가네코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10일 후 황실의 은사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다. 가네코는 감형장을 찢는다.
7.
일찍이 이런 불령스런 한 인간이, 여성답지 못한 인간이 존재했다, 그리고 잠깐 살다간 이 인간이 당신과 오랫동안, 그리고 꽤 깊은 관계를 맺어왔다 - 는 사실을 가끔씩 생각해주십시오. 만약 당신이 나를 추억속에서 그리다가 혹시 적막한 나의 마음을 채워주고 싶은 생각이 들거든, 새싹을 피워 올리고 있는 상록수 한 가지를 내 묘석 앞에 산뜻하게 놓아주세요. 방랑자 - 당신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 그럼 정말 안녕히. (<옥중서신 중에서> 본문 387쪽)
1926년 7월 23일, 우쓰노미야 형무소 도치기 지소에서 가네코 후미코는 자살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살한 이유를 여러 각도에서 살펴본다. 가장 설득력 있는 이유는 야마자키의 견해인데 다음과 같다.
앞서 인용한 재판신문조서에서 볼 수 있는 반천황제사상을 갖고 있던 후미코로서는 천황의 이름으로 내린 결정에 복종하는 것 자체가 굴욕이었으며, 그런 까닭에 국가 권력에 대한 최후의 범죄로서 '자살'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력으로부터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받은 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반항의 길은 집행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죽는 것 이외는 다른 방법이 없다. (298쪽)
아주 오래 전 박열을 공부하다 위의 사진을 만났습니다. 순간 흠칫했습니다. 사형을 앞에 두고 법정에서 저런 사진을 남기다니. 이후 사진은 오랫동안 머리 속에 남았습니다. 박열도 보통 사람이 아니지만 가네코 후미코도 그에 못지 않다는 걸 이 사진 한 장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습니다.
저자인 야마다 쇼지는 일본의 역사학자입니다. 일본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조선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관한 연구를 했습니다. 한국을 고가면서 서승, 서준식 형재를 만나 구원운동을 했습니다. 그들의 용기에 감명했기도 했지만, 일본이 지원하고 있는 한국의 독재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라 책임감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저자 후기에 썼습니다. 그러다 가네코 후미코를 만납니다. 조신인의 고통과 해방을 위한 그의 투쟁이 형식적이지 않고 마음 속 깊이 공감해서 나온 행동이어서 더욱 끌렸다고 합니다.
가네코 후미코에게 조선은 확대된 자아였다.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가네코 후미코는 지금보다 훨씬 혹독한 상황 속에서 황민화를 강요하는 천황제에 조선인과 함께 저항하면서 자기를 관철했던 것이다. 그녀의 행동은 미래를 향한 일본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439쪽 역자 후기 중에서)
가네코 후미코의 묘는 박열의 고향인 경북 문경 팔령산 기슭에 묻혔다가 2003년에 박열의사기념공원이 조성된 후 기념관 앞으로 이장하였다고 합니다. 언젠가는 한번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아는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의 여친이자 동지이자 아내였는데, 이 책에서는 당당한 한 여성으로서, 그리고 아나키스트로서 존재했습니다. 그에게서 박열의 존재를 지울 수는 없겠지만, 그랬더라도 고개가 숙여지는 삶을 살았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박열의 동지이자 아나키스트로서 치열하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했습니다.
저자는 가네코 후미코가 일본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며, 이제부터라도 일본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일본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일본인과 한국인이 화해를 이룰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러길 진정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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