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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

나도 글을 쓰고 있긴 합니다만.... : 은유 <쓰기의 말들>

by Keaton Kim 2018. 4. 10.

 

 

 

나도 글을 쓰고 있긴 합니다만.... : 은유 <쓰기의 말들>

 

 

 

# 1.

 

나를 본다. 비교적 생활이 안정된 시기의 글쓰기 욕망은 순했다. 영화나 책 읽기 깉은 문화 생활 향유의 후기였다. 쓰면 좋지만 안 써도 무방한 글. 향유의 글쓰기. 내가 글을 부렸다. 생활의 기반이 흔들리고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면서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릴케의 표현을 빌리자면, "글을 쓰지 않으면 내가 소멸될 게 분명했다." 생존의 글쓰기. 글이 나를 쥐었다. (p.27)

 

 

 

# 2.

 

아침에 눈 뜨자마자 책상에 앉아 책을 뒤져 자료를 추려 놓는다. 또 버스에서 시집을 보다가 관련한 단어나 괜찮은 표현을 발견하면 메모한다. 틈틈히 생각의 단초를 풀어놓는다. 문장 단위로 사고하고 단락으로 정리하며 매만진다. 마치 나무를 잘라 놓고 대패질을 해 놓듯이 말이다. 그 단락들을 요리조리 배열해 놓고 잠든다. 꿈에서 사유를 불어넣는다.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다시 고친다. 어느새 글 한 편 완성된다. 큰마음 먹기가 아니라 짬짬이 해 나가기의 결과다. (p.31)

 

 

 

# 3.

 

"문학은 슬픔의 축적이지, 즐거움의 축적은 아니거든요. 세상이 따뜻하고 정상적으로 보이면 시를 못 쓰게 되지요. 그건 보통 사람들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시인의 이 말을 한동안 품고 살았다. 타락한 세상에 진저리 칠 때마다 그런 세상에 별일 없이 사는 나를 볼 때마다 한탄하지 아니하고 써 내려갈 이유를 찾았다.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더듬어 보았다. 다른 무엇이 보일까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몇 년 후 포항에 닿은 나는, 포항 바다는 왜 서해처럼 잿빛에 이토록 쓸쓸한가 의심만 했다. 포항을 떠나는 길에서야 가방에 넣은 시집을 꺼내고 그곳에 두고 온 시인을 만난다. "책상 앞에서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천국이었음을 깨닫는다."라는 포항의 최승자를. (p.105)

 

 

 

# 4.

 

나는 일부러 어두운 정조의 책을 고른다. 제목이 비장한 <어떻게 죽을 것인가>, 세월호 유가족 인터뷰집 <금요일엔 돌아오렴>, 최승자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같은 죽음, 상실, 고통, 허무를 말하는 책들. 이유가 있다. 사람이 살면서 기쁜 일은 말할 데가 많다. 친구에게 자랑하거나 페이스북이나 블로그에 공개하면 된다. 나 상 받았어. 나 합격했어. 나 책 나왔어. 나 여행 갔어.

 

그렇지만 슬픈 일은 터놓을 마땅한 장이 없다. 복잡한 서사와 감정이 중첩되어 몇 마디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말하고 나도 영 개운치가 않다. 자기 슬픔을 내보이면 약점이 되기도 한다. 이해 관계로 얽힌 경쟁 사회에서 슬픔 말하기는 금기다. 슬픔이 노폐물처럼 쌓여 갈 때 인간의 슬픔을 말하는 책은 좋은 자극제다. 슬픔을 '말하는 법'을 배우고 슬픔을 '말해도 좋다'는 용기를 준다.

 

슬픈 책을 읽고 슬픈 일을 꺼내 슬픈 글로 쓰면 슬픈 채로 산다. 살아갈 수 있다. 왜 슬픈 책을 읽느냐는 항의는, 나는 슬프다는 인정이고, 슬픈 사람은 할 말이 많게 마련이며, 거기서부터 글쓰기는 시작된다. (p.107)

 

 

 

# 5.

 

모국어 선용 사례인 시집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눈앞에 없는 사람", "온다던 사람은 오지 않고",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같은 제목들. 단어가 전부 일상 용어인데 조합이 남다르다. 배고픈 걸 간신히 참았다 정도의 용례로만 쓰던 말인데 '간신히'가 저렇게 아름답게 쓰이다니 놀라웠다.

 

근래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 문장은 진도 팽목항에 걸린 세월호 유가족의 표어다. "그동안 가난했어나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아무 군더더기 없는 입말인데 애절하고 정확하다. 그래서 더 눈물겹다. 표현'력'은 단어와 단어를 연결 짓는 힘이다. 어떻게 소박한 낱말을 잇대어 정확한 감정과 사실을 견인할 것인가.

 

 

 

# 6.

 

내 삶을 찬찬히 돌아보고 글로 적어 두기. 이 세계의 무자비한 힘에 끌려가지 않기 위한, 태어난 것을 덜 후회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p.121)

 

 

 

# 7.

 

삼사십 대 여성 저자군의 면면은 이렇다. 정신과 의사, 아나운서, 변호사, 예술가, 정치인 등 전문 영역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 아니면 요리나 패션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유명 블로거나 사림왕 주부이거나 아이를 '특목고'나 명문대에 진학시킨 교육왕 엄마다. 이도 저도 아니고 살림하고 밥벌이하며 자아 찾기 하느라 용쓰는 나같이 평범한 여자의 글은 별로 없다.

 

그럼 해 볼까 싶었다. 사회적 성취나 인정 없이 살아가기도 쉽지 않다는 것, 매일매일 시곗바늘처럼 돌아오는 일상을 어떻게 허덕거리며 건너가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면 내가 말하고 이왕이면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겁도 없이 첫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p.149)

 

 

 

# 8.

 

"많이 팔기 위해 속이고 속고 하면서 가면을 써야 했다. 이 년쯤 일을 하고 나니 새벽 퇴근길에 누군가에게 욕을 퍼붓고 속 시원하게 무언가 때려 부숴야 하겠다는 충동이 일었다. 이대로는 내가 미쳐버리겠구나 싶어서 그 일을 그만두고 쉬었다."

 

이 문장은 자기 정리로써 글쓰기가 왜 필요한지 보여 주는 좋은 사례다. '장사할 때 안 좋았다',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다', 같은 느낌의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실'의 옷을 입은 기억. 이런 기억 복구 작업인 글쓰기는 과거의 회상이면서 현재의 보호막이 되어 준다. 스스로 가치 판단을 내려 본 일이므로, 나쁜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삶의 자리에 다시 찾아 가는 일은 피할 수 있을 테니까. (p.185)

 

 

 

# 9.

 

나는 나를 '글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글쓰기는 나를 내 자리로 돌려놓는 최면 효과가 있다. 마른 김 굽고 하얀 밥 지어 먹고 커피 내려서 글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을 때 가장 생이 평화롭다. (p.191) 

 

 

 

 

 

 

글쓰기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그냥 쓰지 않고 잘 쓰고 싶었다. 내가 모은 빛나는 문장들처럼 '놀랄 만한' 문장이 내 글에도 한두 개쯤 박혀 있길 욕망했다. 아니, 그래야 글이었다. (p.11 프롤로그)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 잠깐 한 꼭지, 점심 밥 먹고 낮잠 자기 전에 한두 꼭지씩 읽었습니다. 밑줄 칠 문장이 우글우글했습니다.

 

 

 

같이 공부하는 학인들이 은유쌤 수업에 간다고 할 때 작가 '은유'란 이름을 처음 들었습니다.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 인터뷰집인 <폭력과 존엄 사이>란 책으로 처음 만났고, 이 책도 우연하게 손에 들어왔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별 탈 없이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갖게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중년이 되어 아내랑 서먹해지고, 여전히 상사 눈치보는 부장이 되어 어떡하면 직장을 때려치울까 고민하는, 흔히 볼 수 있는 40대 후반 남자가 쓰는 글은 고만고만합니다. 글 쓸 시간도 여의치 않고 쓴 글도 그저 예사롭습니다.

 

 

 

그런 나에게 밥하고 아이 키우고 살림하던 평범한 여자가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그의 말은 꽤 위로가 됩니다.

 

 

 

그가 꼭꼭 모아 놓았던 밑줄 친 문장과 그 문장들로 인해 그의 몸에서 나온 글들의 모음이 이 책입니다. 베껴 쓰고 싶은 말들이 수두룩합니다. 글쓰기는 큰마음 먹고 하는 게 아니라 짬짬히 해나가는 거라는, 즐거울 때보다는 힘들 때 글이 몸에서 더 나오려고 한다는, 내 삶을 가만히 보고 글로 남겨두라는 그의 글은 반짝반짝 빛납니다.

 

 

 

하지만 그건 그의 글이고 나의 글은 아닙니다. 나의 일상과 감정과 생각을 담은 나의 문장을 쓰고 싶습니다. 그가 처음 바랬던 것처럼. 버뜨,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나도 알고 있다규~~~

 

 

 

인간을 부품화한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은 존재의 확인에 대한 욕망이라고 했습니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주 많아졌고 글쓰기 책도 덩달아 우후죽순입니다. 많은 글쓰기 책 중에서 솔직하고 담백하고 평범한 경험이 녹아있는 이 책은, 글쓰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위안과 다독거림입니다. 뒤에서 부는 바람입니다.

 

 

 

글 쓰는 사람 은유가 어떻게 글 쓰는 사람이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글 속에 녹아 있는 그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글 쓰는 사람' 은유, 좀 친해진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