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글같이 쉽게 읽히는 글이 이상적인 글이다 : 이오덕 <바른 말 바른 글>
이오덕 (1925 ~ 2003)
농업학교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것과 밥을 해서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을 배웠다. 1944년 교원시험에 합격하여 1986년까지 43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면서 동화와 동시를 쓰고, 우리 말과 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다듬는 일을 해서 우리말 지킴이로 불렸다.
선생의 가장 큰 업적은 일본어 잔재를 문학에서 쫓아내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잘 사용하자는 운동을 한 것이다. <우리 문장 쓰기> <우리글 바로 쓰기>는 지금도 문학에 뜻이 있는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문장을 다듬기 위해 읽는 유명한 책으로 꼽힌다. 말을 꾸며낸 듯한 글짓기라는 말 대신 글쓰기라는 단어를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국의 전교조 설립 운동에도 동참하기도 했다.
퇴임 이후 과천에서 살았으나, 1999년 지병인 신장염과 위염이 악화하자 충북 충주시 신니면 수월리 자택으로 거쳐을 옮겼으며 2003년 78세로 자택에서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집안 사람들 만으로 간소하게 장례를 치르고, 부고는 장례 후에 알리며, 일체의 부의금과 조화도 받지마라"고 유언했다.
글 출처 : 위키백과, 나무위키
별난 멋을 부리지 않고, 쉽고 정확하게, 누구나 읽어서 잘 알 수 있게 쓴 글이 좋은 글입니다. 만약 어른들이 잘못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누구나 다 이렇게 씁니다. 어른들의 글도 아이들의 글과 다름이 없습니다. 만약 다름이 있다면 흔히 가지고 있는, 아이들보다 더 복잡한 생각을 될 수 있는 대로 아이들의 글같이 쉽게 읽히도록 쓰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아이들의 글같이 쉽게 읽히는 글, 이것이 어른들이 목표로 하는 이상적인 글이라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일에서도 아이들은 어른들의 아버지입니다. (p.245)
우리말 바로 쓰기
처음 글 - 나의 초등학교 때를 다시 생각해 보면 특히 6학년 때가 기억에 남는다. 그 이유는 그때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바른 글 - 내가 초등학교 다녔을 때를 다시 생각해 보면 유달리 6학년 때가 잊혀지지 않는다. 그 까닭은 그때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때였기 때문이다.
치악산 자연 학습원에서의 극기 훈련, 체력 훈련, 추적 활동 등은.....
치악산 자연 학습원에서 있었던 극기 훈련, 체력 훈련, 추적 활동 등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은 공간적으로는 물론 시간적으로도 고립되어 형성될 수 없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고 혼자 살아갈 수는 없다.
우리말로 하면 이렇게 쉽습니다. 이렇게 쉬운 말을 공연히 어렵게 써서 알 수 없도록 하는 공부람면, 그런 공부를 무엇 때문에 해야 할까요? (p.55)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학교로 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나도 너처럼 우울하고 고독한 소년 시절을 보냈다.
나도 너처럼 답답하고 서글프고 외로운 소년 시절을 보냈다.
오늘은 어쩐지 피곤해 지는 것 같다.
오늘은 어쩐지 피곤하다.
3반에서의 일주일
3반에서 지낸 일주일
오늘 아침 예정이었던 새마을 대청소는 우천으로 중지하였으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 예정이었던 새마을 대청소는 비가 와서 그만두었으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그는 '사람답게 살자'라고 하였다.
그는 '사람답게 살자'고 하였다.
어떤 말이나 글을 인용할 때는 그 말 바로 다음에 '고'가 온다. 이것이 실제 쓰는 우리말이다. 그 아이도 간다고 말했다. (간다라고가 아니라) 이것 역시 입으로 하는 말보다 글에만 나오는 말, 학자들이 유식한 말을 인용할 때 쓰는 말투를 흉내 내고 싶어 하는 데 까닭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까지 어색한 이 말을 따라 쓰고 있다. (p.323)
좀더 신중하게 제작했어야 했다.
좀더 신중하게 제작해야 했다.
그냥 무턱대고 어른이 되어서 무엇을 하겠다고만 했었다. 그것에 대해서 '왜냐하면, 어떻게'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그냥 무턱대고 어른이 되어서 무엇을 하겠다고만 했다. 그것에 대해서 '왜냐하면, 어떻게'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뒤에 첨가한 교훈적 해설을 통해
뒤에 덧붙인, 교훈이 담긴 해설에서
어른들은 위압적이며 권위적이다.
어른들은 위압하기를 좋아하며 권위를 보이고 싶어한다.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께서'를 자꾸 붙이면 그 말과 글이 자연스럽지 못하게 되고, 어설프게 느껴집니다. 그 까닭은 우리가 보통 입으로 말할 때는 이런 말을 안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훌륭한 글을 많이 남긴 어른들도 '~께서'를 쓰지 않았습니다. (p.424)
나이 사십이 넘은 지금도 어머니가 옆에 계시면 좋고, 어머니가 손으로 내 머리를 슬슬 만져 주시면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낀다. (소설가 전영택 목사님의 글)
악법은 철폐되어야 한다.
악법은 철폐해야 한다.
일본말은 '나의 책'이라고 하지만 우리말은 '내 책'이다. "이거 누구 책인가요?" 하고 물었을 때 "나의 책입니다."라고 대답하는 한국사람은 없다. 누구든지 "내 책입니다."라고 한다. 그런데 글을 써 놓은 것을 보면 '나의 책' '나의 집'이 예사로 나온다. (p.471)
사람의 삶에 있어 가장 필요불가결한 것이 바로 노동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바로 노동이다.
헤겔 역사 철학에 있어서의 자유와 필연의 변증법
헤겔 역사 철학에 나타난 자유와 필연의 변증법
"나로부터의 변화" (어느 주간 신문 칼럼의 글 제목)
이게 무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칠십 평생을 책만 읽어온 나 같은 사람이 모른다면 다른 사람들도 모를 것이다. 부디 요즘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이런 글을 보고 기가 죽고 열등감을 가지게 되거나, 아니면 글이란 이렇게 써야 알아주고 신문이고 잡지에도 실어 주는구나 하고 생각하지는 말기를 빌고 또 빌 뿐이다. (p.499)
보기글 1
유아들의 역할놀이를 통해 실생활의 역할을 연장하고 다양한 역할을 해 봄으로써 내면적 욕구를 표현한다. 또한 이러한 역할 수행을 통해서 그 역할에 관한 정보를 자신의 인지구조 속에 동화시키고 견고화시키며 자기중심적인 사고나 행동에서 벗어나 타인의 눈으로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이와 같은 역할놀이는 유아의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창의적 발달을 돕는 교육적 가치가 높은 활동이다.
처음 이 글을 읽었을 때 와아! 하고 내 입이 저절로 딱 벌어져 다물지 못할 만큼 놀랬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읽어 봐도 또 놀래겠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책만 읽고 살아온 나같은 사람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이런 글을 쓰는 유치원 선생님들은 얼마나 유식한 사람들일까?
나 같으면 아마도 이렇게 썼겠다 싶은 우리말로 대강 바꾸어 다음과 같이 써 본다. 앞의 글과 이 글을 견주어서 어느 쪽이 우리가 써야 할 글로 바람직한가를 판단해 주기 바란다.
아기들은 소꿉놀이에서 실제 생활을 흉내 내어 여러 가지 노릇을 해 보는 데서 제 마음을 나타낸다. 또 이런 노릇을 하면서 자기가 맡은 일에 관해서 알아 둘 만한 일들을 제 것으로 삼는다. 그래서 자기중심의 생각과 행동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소꿉놀이는 아기들이 남을 인정하고, 정서를 피어나게 하고, 사회성과 창조성을 가꾸는, 가치가 높은 교육 활동이다. (p.262~266)
보기글 2
잎사귀를 다 떨군 가로수들은 여름철의 풍요로움과 너그러움 대신, 곧게 뻗은 직선의 차가움과 에누리 없는 단호함으로 밀려오는 어둠 속에 박혀 있었다. (ㄷ신문 당선작)
보기글 3
막연한 기다림, 어쩌면 불안이었을 그런 과민함이 선연하게 밝아오는 아침의 빛 속에서 나를 주저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누운 채로 창문의 빛을 바라보았다. 마당으로부터 유리창을 넘어오는 형수의 과장된 흥분과 단절된 마디마디의 외침이 눈부신 빛의 입자처럼 선명하게 나의 주저함 위로 쏟아져 내렸다. (ㅈ신문 당선작)
이런 글을 읽으면 흡사 어떤 남의 나라의 글을 대하는 느낌인데, 이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그러나 소설이라면 초등학교 졸업생이 누구든지 읽을 수 있게 써야 할 터인데, 이런 문장은 대학을 나와도 쉽게 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이런 문장을 읽고 쓰는 취미를 가르치는 것이 대학 문과의 교육이라면, 그런 교육은 백해무익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 자신의 이야기를, 삶을 글을 쓰게 해야 합니다. 글을 책에서 읽은 문장의 말로 쓰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입으로 하는 말로 쓰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글쓰기로 아이들을 지키고 키워 가는 길은 이 길뿐입니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이 훌륭한 문장을 쓰는 길도 오직 살이 있는 우리말이 되도록 글을 쓰는 것뿐입니다. 그 살이 있는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아이들이 쓴 소박하고 솔직한 글을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p.248~250)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쓰라
일상의 삶에서 입으로 하는 말을 쓰라.
아,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는 여태 보기글처럼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그 글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써야 멋이 있고 남들이 알아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선생의 책은 두어권 읽었습니다. 오래전에 글쓰기에 관한 책들도 읽었고,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 라는 책도 읽었더랬는데, 지금처럼 따끔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나름의 글쓰기 공부를 하면서 어쩌면 나는 다른 사람들의 잘 쓴 글을 흉내내거나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며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이 글쓰기 공부라고 생각했으니...... 쯧쯧. 선생의 글이 회초리로 느껴지는 까닭입니다. 아이고, 아파라.
이오덕 선생은 아이의 글같이 쉽게 읽히는 글이 이상적인 글이라고 합니다. 일상의 삶에서 입으로 하는 말을 쓰라고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쓰라고 합니다. 선생님 말씀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꼭 그렇게 쓰겠습니다.
PS
"우리가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요긴한 삶의 태도는 사람다운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사람다운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글쓰기는 그런 삶을 가꾸는 참으로 귀한 수단입니다."
ebs 지식채널 이오덕 선생의 영상 (아래 링크) 중에서
글쓰기에 관해 선생이 아이들한테 하시는 말씀을 옮겼다. 아래의 글이다. 물론 나한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첫째,
자신이 평소에 하던 말
그대로 써도 괜찮아요.
더러 서투른 말이 나와도 상관없어요.
둘째,
착한 어린이가 된 것처럼 쓰지 마세요
칭찬을 받기 위해서
잘 보이기 위해서 꾸미지 마세요.
셋째,
슬프로 괴로운 일, 부끄러운 일도 괜찮아요.
얼마든지 좋은 글이 될 수 있어요.
넷째,
잘 쓴 글이라고 해도
그것을 흉내내지 마세요.
다만 그 글의 정직함만 배우세요.
만들어내는 '글짓기'는 하지 마세요.
있는 그대로 '글쓰기'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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