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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 서경식 <내 서재 속의 고전>

by Keaton Kim 2017. 8. 1.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 서경식 <내 서재 속의 고전> 

 

 

 

요즘은 이런 책이 흔하다. 소위 말하는 유명인이 자기가 일생의 책을 꼽으면서, 그 책과 자신과의 스토리와 책의 스토리를 소개하는 책 말이다. 나도 때론 그들의 일생의 책 리스트를 보며 나의 책 목록에 넣기도 하며 그들이 느낀 감동을 함께 공유하고자 했다. 하지만 같은 책이라도 그들이 받았던 감동을 오롯이 나의 것으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읽었던 시기, 장소, 관심사, 자신과 책과의 특별한 사연 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서경식 교수의 이 책도 그런 류의 책이다. 선생이 고전이라 꼽을 만한 책을 그 나름의 스토리를 담아 우리에게 전해준다. 근데 뭔가 다르다. 그 다른 점을 이해하려면 먼저 저자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저 유명한 유학생 형제 간첩단 사건의 주인공 서승 서준식 형제의 막내 동생이다. 서승 서준식 형제는 재일교포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오지만, 북한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 무려 19년과 17의 감방 생활을 하게 된다. 서준식은 7년 형을 언도받았지만.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향을 거부하여 10년을 더 복역했다. 자신의 사상과 10년을 맞바꾼 셈이다. 서경식 교수는 어머니와 그들을 돕는 사람들과 함께 구호 활동을 펴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선생의 인생에 형들과 어머니가 어느 정도로 영향을 끼쳤는지는 절로 상상이 된다.

 

 

 

내가 느끼는 서경식 선생은 '디아스포라'의 상징과도 같다. 아픈 가족사와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인이라는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한국의 디아스포라의 롤 모델이자 시대의 지식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런 선생이 꼽은 고전이란 어떤 책인지 흥미가 더해졌다. 더구나 부재가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이지 않은가. 서슬이 퍼른 시대에 자신의 무릎을 꿇리는 온갖 것들에 저항하고 견디면서 읽은 책들이다.

 

 

 

 

 

 

클래식의 감명, 그 심연의 뿌리를 캐는 즐거움

- 에드워드 사이드의 <사이드 음악평론>

 

 

 

살아남은 인간의 수치, 그럼에도 희망은 있는가

-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노예 노동의 고통조차 넘어서는 인간에 대한 탐구욕

-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망각의 절망 속 어렴풋한 희망의 가능성에 대하여

- 루쉰의 <망각을 위한 기념>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동시에 읽어내는 즐거움

-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

 

 

 

현대의 지식인들이여, 아마추어로 돌아가라

-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식인의 표상>

 

 

 

그대는 침묵으로 살인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아브라힘 수스의 <유대인 벗에게 보내는 편지>

 

 

 

비관적 현실을 냉철하게 응시하는 낙관주의자를 만나다

-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

 

 

 

관용은 연민이 아니라 생기발랄한 관심이다

- 미셸 드 몽테뉴의 <몽테뉴 여행 일기>

 

 

 

마감을 즐길 시간은 오렌지 향보다 길지 않다

- 케네스 클라크의 <그림을 본다는 것>

 

 

 

죽음을 금기시한다는 건 삶을 방기하는 것

-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

 

 

 

'인간'이라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 가토 슈이치의 <양의 노래>

 

 

 

'백장미'를 기억하던 이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풍화되는 투쟁, 하지만 정의의 실천을 게을리 말라

- 피에로 말베치 등이 엮은 <사랑과 저항의 유서>

-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가족어 사전>

 

 

 

참극의 유대인 거리에 남은 것과 변한 것

-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가족어 사전>

- 가와시마 히데아키의 <이탈리아 유대인의 풍경>

 

 

 

용기 있는 패배자, 식민주의 섬기던 이성을 구원하다

-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의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

 

 

 

인간해방을 실현하는 그릇으로서의 국가를 옹호하다

- 마르크 볼로크의 <이상한 패배>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 그 고뇌의 원형

- 빈센트 반 고흐의 <반 고흐 서간 전집>

 

 

 

만만치가 않다. 일견 봐도 엄청난 내공이 뿜겨져 나온다. 근데 선생이 소개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책들에게서 뭔가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 바로 '인간의 존엄'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가치를 위협하는 것들과 그것에 저항하며 사라져가거나 이겨내는 내용을 담은 책들이다. 인간의 보편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일반적인 고전이라 한다면 선생은 고전은 많이 다르다. 왜 저런 책들을 꼭 소개하고 싶었는지 선생이 처했던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솔직히 말해서 저 책 중에 몇 권이라도 읽어 볼 자신이 없다. 읽어본다 한들 그게 내 것으로 소화되기도 어려울 뿐더러 선생의 감상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이 젊은 독자들에게 한 번쯤 읽어주기를 고대하는 책 목록을 굳이 일일이 열거한 이유는, 나도 꼭 읽어보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방면의 훌륭한 책은 여전히 많다. 좋은 책을 만났을 때의 즐거움도 여전히 무궁무진한 셈이다. 세상은 넓고 읽어 볼 만한 책은 수없이 많다는 걸 선생의 책으로 새삼 깨닫는다. 나도 선생의 책들과 함께 지금의 시간을 견디겠다.

 

 

 

P.S. 1.

 

 

이 책은 서평집이다. 아, 이런 식의 서평도 좋구나. 이런 식이라는 건 "어떤 책이 '어느 순간' 내게 왔고, 다시 나는 '어떤 순간' 그 글을 상기했다.(p.217)" 라는 글쓰기 방법이다. 먼저 책을 요약하고 그 후 느낀 바와 비판적 해석을 덧붙이는 일반적인 서평과는 다르다. 어쩌면 그래서 이 어려운 책에 대한 저자의 서평이 어렵지 않게 읽히는 까닭일 것이다.

 

 

 

P.S. 2.

 

 

내일 서점에 가서 꼭 사리라 맘 먹은 책의 목록은 가토 슈이치의 <양의 노래>와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식인의 표상>이다. 가토 슈이치와 서경석은 둘다 올곧은 지식인의 표상이지만, 줄곧 엘리트 교육을 받은 가토와 개인의 역경을 함께 경계인으로 살아온 저자가 걸어온 길은 완연히 다르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이 지향하는 바는 '저항하는 휴머니즘'이다. 무엇이 가토 슈이치를 일본의 대표 지성으로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늘날 지식인의 본연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재의 교육 제도로는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은 그저 순종하는 존재가 된다.(p.79)"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지식인의 표상>에는 아마도 선생이 되고자 했던 지식인의 책임과 기준이 담겨있지 않을까.

 

 

 

P.S. 3.

 

 

서경석 교수의 다른 책 독후감 [시대를 건너는 법]

http://sandeulkang.tistory.com/22

 

 

서승 서준식 형제 이야기 [조국이 버린 사람들]

http://sandeulkang.tistory.com/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