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 김민영 외 4인의 이젠, 함께 쓰기다
공부 모임을 몇개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좀 독특한 게 있는데요, '서평독토'라는 아주 그럴싸한 이름의 모임이 주인공입니다. 여느 독서 토론의 모임과 마찬가지로 책을 정하고 논제를 정해 책에 대해서 토론을 합니다. 1시간 가량의 토론이 끝나고 2부가 이어지는 데요, 일단 그 책에 대한 서평을 각자가 써 와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서평을 낭독합니다. 아이씨~~쪽팔리게.... 그러면 다른 이가 자신의 서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줍니다.
일단 책을 읽고 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쓰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이 없어서, 책이 이해가 잘 안되서, 읽을 땐 막 흥분했는데 그걸 표현하려니 막막해서.... 그래도 끙끙거리면서 겨우 써냅니다. 그것이 단순한 독후감일 수도 있도, 멋드러진 서평일 수도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자기가 쓴 글을 만인 앞에서 읽을 땐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그렇게 형벌의 시간이 끝나면 다른 이가 나의 글에 대해서 칭찬을 합니다. 이것은 이래서, 저것은 저래서 좋았다..... 인내의 시간에 대한 보상입니다.
'서평독토'에 첨 갔을 때를 선명히 기억합니다. 그것이 독후감이라고 할 지라도 꾸준히 써 온 저로서는 얼마간의 근자감?이 있었습니다. 근데, 다른 이가 써 온 서평을 듣는 순간, 몸이 싸늘해졌습니다. 고수들의 날 선 칼이 몸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허탈감과 만족감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물론 솔직히 말해 이런 발로 쓴 글을 봤나! 에서 무릎으로 쓴 글 등도 부지기수입니다. 나는 배꼽으로 썼다. 그러나 그런 글들도 솔직하고 개성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서로가 쓴 글에 대해 칭찬을 하는 것이 놀랍고 좋았습니다. 남의 글과 자신의 글이 비교되는 것은 적당히 긴장감이 있고,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무엇보다 장점입니다.
숭례문학당에서 주관하는 '서평독토' 모임. 자기의 서평을 참가자 수 만큼 가져온다. 그러면 나는 적어도 30명의 서평을 그 자리에서 볼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타인의 글에 대한 칭찬이다. 이게 아주 고난도를 요구하는 기술이다. 그저 뭉텅뭉텅하게 '좋았습니다.' 라는 말은 오히려 그 사람을 상처 줄 수도 있다. 어떤 부분이 어때서 좋았다 라고 해야 하고 너무 가식적이지 않게, 솔직하게 칭찬해야 한다. 서평모임에 칭찬의 기술까지 연마가 가능하다. 나의 글을 쓰고, 그것을 드러내고, 다른 이가 쓴 진심을 사려 깊게 읽고, 서로를 격려하는 모임. 고해와 즐거움이 동시에 존재한다.
독후감 블로그를 시작하고, 적어도 한 주에 한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자고 결심하고, 실행한지가 2년이 다 되어갑니다. 나름의 성과가 있었습니다. 성능이 떨어지는 나의 뇌를 대신할 기억 저장소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고, 글쓰기의 습관도 들고 있습니다. 남들에게 자랑도 가능하다. 그나저나 건축 블로그는 저렇게 내팽겨 둘거냐?!!
진정으로 쓰고 싶은 글은 역시 건축에 대한 글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는 많지만 건축물을 보거나 짓고 그것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건축은 제가 가장 잘 아는 분야입니다. 한 때 좀 열심히 하기도 했었는데, 요즘은 거의 폐쇄 직전입니다. 건축 글이 최종 목표라면 지금의 독후감 블로그는 글쓰기 근육을 단련하는 내공 단련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좀 더 부지런해져서 둘을 병행하고자 합니다. 올해 목표도 그거였다.!!
한창욱, 최진우, 김민영, 윤서윤, 김은영. 책의 저자들이시다. 물론 숭례문학당의 절대 고수들이다. 엄청난 내공을 가진 냥반들이시다. 나도 저런 날이 언젠가는 올거야!! 라고 꿈을 꾼다. 사진은 숭례문학당 당주의 홈페이지에서 퍼왔다.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aehok&logNo=220840939775
과연 글쓰기란 무엇인가, 글 쓰는 사람들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가 쓰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여러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신호, 그것이 바로 글쓰기다. 따라서 부정적인 독자 앞에서 글쓴이는 무시와 비판받는다는 감정을 느낀다. 반대로, 격려해주는 독자 앞에 서면 '나도 꽤 괜찮은 인간이구나' 라는 자신감이 든다. 글쓰기는 함부로 부정당해선 안되는 한 인간의 궤적인 것이다. - 책 표지글 중에서
책의 제목이 <이젠, 함께 쓰기다> 이지만, 글쓰기야 말로 극도로 혼자 하는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나의 내면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이므로 이것을 다른 이와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고 불편한 일입니다. 책에서 글쓰기는 여러 형태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신호라고 하였지만, 남에게 보여주려고 쓴 글이 있는 반면에 나 혼자 정리하기 위해 쓴 글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글을 광장으로 들고 나가 타인 앞에 내 보이는 것도 하나의 수행입니다. 용기가 필요하고 솔직하게 그럴 욕심도 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글을 글쓴이의 음성으로 듣는 것은 글에 대한 집중력 1000% 입니다. 타인의 블로그 글을 읽는 것과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입니다. 함께 쓰기는 자극과 즐거움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이렇게 쓰면 글쓰기가 늘어요~~" 라는 류의 책이 아니다. 함께 쓰기의 즐거움에 관한 글이며, 100일 글쓰기, 영화 리뷰 쓰기, 서평, 에세이 쓰기, 소설 쓰기 등의 다양한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들이 모임의 구체적인 활동과 방법, 그리고 모임 참여자의 여러 목소리를 담아냈다.
"내 몸에 글들이 이글이글거려. 그 넘들이 주체를 못해 이제 밖으로 나오려고 해. 아~~ 글을 쓰고 싶어 미치겠어!!" 매일 이런 감흥으로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가 글을 왜 쓰는지에 대한 소고나 갈등 없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거의 쾌락의 극치나 다름 없을 겁니다. 하지만 범인은 그렇질 못합니다. 왜 글을 쓰는지, 어떻게 쓸지, 무엇에 대해 쓸지, 왜 이렇게 안 써지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고 타인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대개 하나의 길로 갑니다.
내가 쓰는 것은 결국 나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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