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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

세상에 어떤 글도 무의미하지 않다. 우리 어서 쓰자 :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by Keaton Kim 2018. 8. 26.

 

 

 

세상에 어떤 글도 무의미하지 않다. 우리 어서 쓰자 :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책 한 권을 읽는데 짧게는 4시간에서 길게는 10시간 정도 걸립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독후감을 쓰기 위해 읽다 메모한 부분이나 접어 놓은 부분을 다시 한번 추르륵 훑어봅니다. 발췌할 문장을 적고 나의 감상을 정리합니다.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이들은 어떻게 느꼈는지 검색도 해봅니다. 내가 생각치 못한 부분을 짚은 타인의 글을 만나면 반갑습니다. 어떤 형식으로 쓸지도 궁리합니다. 감상 위주의 글로 적을지, 발췌 위주로 적을지, 책 내용과 관련하여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그림은 어떻게 실을지, 뭐 그런 궁리 말이지요. 그렇게 독후감을 마무리하는데에도 책을 읽는 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는,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것들을 오래 남겨 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장을 덮는 순간 휘발되어 버리는 그 생각들 말이지요. 읽다 보면 내용과 연관지어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마지막 장을 덮으면 다 날아가고 거의 백지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 생각들을 좀 더 오래 붙잡기 위해 독후감을 씁니다. 하지만 이것도 잘 안됩니다. 말 그대로 다 읽는 순간 그 여태 떠올랐던 상념은 손에 쥔 모래처럼 다 빠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책 한 권 읽고 글 한 줄 쓴다고 인생이 달라지진 않더라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다'고 마음 먹고 실천한지 45개월이 되었습니다. 아직 포기하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이게 머시라꼬!' 하는 생각이 자주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읽고 쓰고 있습니다. 독후감이 200여 개가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쓴 글을 보고 있자면 좀 뿌듯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독후감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 뿌듯해진 것 빼고 뭔가 달라진게 있나요?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봅니다. 음~~ 이라는 대답이 먼저 나오는 군요.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굳이 답을 찾자면, 책을 읽는 즐거움이 이전보다 깊어졌습니다. 책을 읽으면 인생이 바뀐다 뭐 이런 거창한 거 따윈 없이, 오로지 책의 내용에 좀 더 집중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읽고 쓰는 소소한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책을 대하는 태도도 좀 더 의연해진 것 같습니다. 책 읽고 글 쓴다고 인생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아내와의 일상, 아이들과의 사소한 에피소드를 글로 남기고 싶습니다. 책을 읽고 내가 느낀 바를 글로 쓰고 싶습니다. 일상에서 벗어나 이방인의 눈으로 본 세상 속 풍경도 그려내고 싶습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인 건축에 관한 글도 쓰고 싶습니다. 의미가 있는 건축물에 담긴 사연과 그 건축물을 보고 내가 느낀 감정을 글로 붙잡고 싶습니다. 어떤 건물이 좋은 건물인지, 그런 건물은 어떻게 짓는지도 글로 남기고 싶습니다. 그런 주제에 대해 조금씩 쓰고는 있습니다. 좀 더 부지런히 쓰면 좋으련만, 성에 차지 않습니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집필 유예'의 핑계를 대보지만 시간이 많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글쓰기는 달아나는 삶에 말 걸고, 사물의 참 모습을 붙잡고, 살아 있는 것들을 살게 하고, 인간의 존엄을 사유하는 수단이라고 믿는다고 저자는 말했습니다. 이 정도의 소신이 생기려면 얼만큼의 내공이 필요할까요? 이런 믿음을 가지고 글을 써야 되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보지만, 그저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사라지는 상념을 붙들어 활자로 하기에도 벅찬 나에게는 아직 무리인 것 같습니다. 모든 글의 최종 목적은 '감동'이라고 했습니다. 아직 내 글이 읽는 이에게 감동을 주려면 까마득하지만, 열심히 쓰다 보면 저자가 말한 정도의 경지에 다다를 날이 오리라는 믿음, 지금은 그 정도의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뭐, 어떻게든 되겠죠. 난또데모나루몬요.  

 

 

 

책 말미에 은유 선생의 글쓰기에 참여한 학인의 글 세 편이 부록으로 실려있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엄마를 인터뷰한 내용과 가족과 멀어졌던 아빠를 인터뷰한 글입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그 오묘하고도 불편한 관계를 인터뷰를 통해 다시 바라보게 되었고 그들의 관계도 회복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나도 애증의 관계인 울 엄니를 인터뷰할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꼭 한 번 써보고 싶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요. 

 

 

 

 

인상적인 문장 발췌

 

 

 

# 1.

 

잘 쓴 글이든, 미완의 글이든, 숨겨둔 글이든, 파일로 저장하지 않고 날리는 글이든, 그런 과정 하나하나가 자기 생각을 정립하고 문체를 형성하는 노릇이며 '삶의 미학'을 실천하는 과정이라고, 못 써도 쓰려고 노력하는 동안 나를 붙들고 늘어진 시간은 글을 쓴 것이나 다름없다고, 자기 한계와 욕망을 마주하는 계기이자 내 삶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인과 인사하는 시간이라고, 이제는 나부터 안달과 자책을 내려놓고 빈 말이 아닌 채로 학인들에게 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세상에 어떤 글도 무의미하지 않다고, 우리 어서 쓰자고. (p.35)

 

 

 

# 2.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다. 하나는 기분이 삼삼해지는 일이고 하나는 몸이 축나는 일이다. (p.55)

 

 

 

# 3.

 

우리는 불행처럼 우리를 자극하는 책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아주 깊이 상처를 남기는 책이 필요하다. 이런 책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느껴지고,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숲으로 추방되는 것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자살처럼 느껴질 것이다. 책은 우리 내면에 얼어 있는 바다를 내려치는 도끼 같은 것이어야만 한다. 나는 이렇게 믿고 있다. (p.83 카프카의 말 인용)

 

 

 

# 4.

 

푸코가 <성의 역사 2> 서문에서 말한 호기심이 이것이구나 싶었다. "알아야만 하는 것을 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호기심"말이다. 푸코는 이어 "앎에 대한 열정이 지식의 획득한 보장할 뿐 어떤 식으로든, 그리고 되도록이면 아는 자의 일탈을 확실히 해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물었다. (p.105)

 

 

 

# 5.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어라'는 내러티브 제1원칙에 해당하는 말이다. 추상에서 구체로 갈 수 있는 좋은 팁이다. 전태일은 이렇게 썼다.

 

"아버지께서는 매일 폭음을 하시고, 방세를 못 준 어머니께서는 안타까워하시고, 동생은 방학책 값, 밀린 기성회비 때문에 학교에 안 가겠다고 아침마다 울면서 어머니의 지친 마음을 괴롭힐 땐, 나는 하루가 또 돌아온다는 것이 무서웠다."

 

기교를 부리지 않았지만 울림이 크다. 특히 마지막 문장으로 아름다워진다. 나는 고통스럽다거나 나는 살기 싫다고 쓰지 않고 하루가 또 돌아온다는 것이 무섭다고 썼다. 자기 몫의 고통 값을 정확하고 고유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미문이다. 그가 처한 암담한 상황을 아빠, 엄마, 동생 등 가족의 사례를 나열하여 공감의 지점을 만들어 주었다.

 

"가족들이 모두 나를 힘들게 했다"는 식으로 한 줄로 요약하는 건 설명하는 문장이다.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