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예 책방지기가 되려는가 : 백창화, 김병록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기어이 책방을 열겠다고?
며칠 전 장유 까페 거리에 있는 동네 책방에 들렀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숲으로 된 성벽.' 기형도 시인의 시에서 땄다고 한다. 주인장의 내공이 드러난다. 하천을 따라 이어지는 까페 거리 모퉁이에 책방이 있었다. 내부는 심플하고 모던하게 꾸몄다. 차는 팔지 않고 오로지 책만 파는 책방이다. 도시 속의 오아시스다. 내가 꿈꾸던 공간이 거기에 있었다.
"꿈을 이루셔서 얼마나 좋습니까?"
"이거 다 빚이에요. 허허"
책방은 사모님의 꿈이라는데, 아직 직장에 다니셔서 사장님이 먼저 은퇴하고 책방지기를 하고 계신다고. 나도 책방을 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한가할 때 와서 여러 이야기를 하자고 하신다. 책방이 아직 돈은 안된다고 하시며 웃으셨다.
사진 출처 : https://deskgram.net/explore/tags/%EA%B9%80%EC%94%A8%ED%99%94%EB%8D%95
내가 살고 있는 김해는 은근히 동네 책방이 많다. 지내동에 가면 독립 서적을 다루는 북까페 '페브레로'가 있고 불암동 장어 거리에는 '달빛 책방'도 있다. 연지공원에서 주택가로 올라가면 인문 책방 '생의 한가운데'도 있다. 다들 서점의 기능뿐만 아니라 독서 모임을 비롯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동네 사랑방이다.
제대로 된 인문학 공간인 '생의 한가운데'. 이름부터 인문학스럽다ㅎㅎ.
인문학에 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원래는 강연과 공부를 위주로 하는 인문학 교실로 운영되었는데, 그렇게만 하기엔 문턱이 너무 높아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찾아오게 하려고 인문 책방을 겸하고 있다. 책방을 오픈했다는 소식에 들렀더만 책방지기님이 운영하고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책을 두어권 샀는데 자신이 읽었던 중고책이라고 하시면서 싸게 주셨다.
계층별 관심사별로 독서 모임 10개를 만든다고 한다. 이건 나의 목표이기도 한데ㅋ. 여기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니 꽤 유명한 분들도 강의를 하러 오신다. 책방지기의 섭외 능력이 놀랍다.
지내동의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까페 겸 서점인 '페브레로'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오직 독립출판물만 판매하는 서점 겸 까페다. 내부는 빈티지 스타일로 꾸몄는데 꽤 아늑하다. 서점이 있는 저 동네는 사실 볼거리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더 대단하다. 오래 전에 아이들과 한번 갔더랬다. 나는 책을 고르고 아이들은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밝게 하고 품격을 높이는 이런 공간이 나는 참 좋다. 망하지 않고 오랫동안 동네 책방의 자리를 지켰으면 하는 바램이다.
사진 출처 : https://deskgram.net/explore/tags/%EC%95%84%EC%B8%A0%EB%A6%AC%ED%8D%BC%EB%B8%94%EB%A6%AD
책방 바로 앞에는 낙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이름도 예쁜 달빛책방이다.
불암동 장어거리에 있다. 음식점과 까페가 즐비한 한켠에 고즈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런 곳에 책방이? 라는 위치다. 하지만 책방에서 조금만 걸으면 바람처럼 흘러가는 낙동강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차 한잔 마시고 낙동강을 따라 걸으면 여유가 절로 느껴진다. 동네 책방치고는 꽤 넓다. 1층은 책을 전시한 공간이고 2층은 차를 마시며 공부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이곳 역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출처 : https://kr.tasteem.io/post/25704
위의 네 군데 서점은 서점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기 개성이 있다. 숲으로 된 성벽은 책을 파는 공간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서점이고, 생의 한가운데는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모여서 공부하는 곳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페브레로는 독립출판물을 소개하며 북까페에 좀 더 가까운 공간이고, 달빛책방은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것도 위의 우리 동네 책방과 그리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모이고, 만나서 관계를 형성하고, 취미를 공유하고, 책을 읽고 팔며, 공부하고 토론하는 공간, 내가 만들고자 하는 공간이다.
근데, 나는 이미 그런 공간이 있다. 아내의 공방 개락당이다. 멋진 테라스와 마당까지 딸린 소박하지만 우아한 곳이다. 남들이 보면 아주 부러워할 공간. 하지만 아주 시골 동네에 있어 지나는 사람은 아얘 없다. 작업실이라면 몰라도 책방의 위치는 아니다. 책방을 열게 되면 공방을 활용한 것인지 새로운 공간을 임대해야 할지 고민이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가 아닌 '우리는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사립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책과 관련한 여러 활동을 해오던 백창화 김병록 부부는 새로운 책공간을 꿈꾸며 충북 괴산의 한 시골마을로 내려온다. 거기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작은 책방을 연다. 가정식 서점 '숲속 작은 책방'이다. 이무것도 없는 시골에다 책방을 연 것도 놀라운데, 그들은 전국의 작은 책방을 직접 방문하여 책방지기를 만나고 그들의 삶을 조명하여 드러낸다.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는 자신이 책방을 운영하면서 좌충우돌하는 에피소드를 포함하여 울나라 골목골목 피어나고 있는 작은 책방을 소개한 책이다.
이 책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많이 읽힌 까닭을 저자는 '실천'이라고 설명했다. 사회를 향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외치는 책은 많지만 '우리는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라고 속삭이는 책은 많지 않다고. 책에 소개된 많은 이들이 저마다 허용된 상황안에서 자신의 꿈을 실천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랬다. 책에 나오는 작은 책방들은 저마다 나름의 컨셉으로 자신만의 세상을 열어가고 있었고 고군분투하는 책방지기의 노력이 있었다.
저자가 운영하고 있는 숲속 작은 책방 전경이다. 꼭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 아직이다. 자신의 집 한켠을 내어 북스테이도 운영하고 있다. 천천히 흐르는 시간과 책 외에 다른 것은 없는 곳. 우리 아이와 함께 꼭 한번 머무르고픈 곳이다.
사진 출처 : https://zepero.com/1334
여러 책방지기의 모델이 되는 곳,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프랑스 파리의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다. 여기를 검색하면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맞다. 영화 <비포 선셋>에서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9년 만에 재회를 하는 곳으로 나왔다.
사진 출처 : https://hhyeryun.tistory.com/46
내가 읽은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평소의 나였다면 저자와 책에 나온 여러 책방지기의 무공에 박수를 보내며 응원했겠지만, 책방을 내겠다고 마음을 먹은 지금은 전혀 다르게 읽혔다. 책에 나온 여러 동네 책방의 스토리를 읽으면 읽을 수록 자신감이 사라져갔다. 그 사람들은 너무 높은 곳에 있었다. 책에 나온 고수들의 내공에 지레 겁을 먹었다. 나는 아직 수련의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강호의 고수들을 일찍 봐버린 것이다. 얼마나 노력하면 저 정도의 경지에 이를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더구나 그것이 밥벌이가 된다면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버뜨, 내가 읽은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진리다. 시작은 거기서부터다.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읽은 책을 함께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나누는 곳, 그곳이 서점이면 더 없이 좋지 않겠나. 나의 로망이다.
과연 나의 로망을 실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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