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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이야기

28년 글쓰기 내공이 담긴 무공비급 : 강원국 <강원국의 글쓰기>

by Keaton Kim 2019. 4. 24.

 

 

 

28년 글쓰기 내공이 담긴 무공비급 : 강원국 <강원국의 글쓰기>

 

 

 

역시 읽기보다 쓰기가 어렵다.

 

 

 

읽기는 그냥 읽으면 된다. 근데 쓰기는 그냥 안된다. 일단 자세를 잡아야 한다. 누워서 읽는 건 가능하지만 쓰기는 불가능하다. 침대에서 책상까지는 이삼 미터도 채 되지 않지만 루비콘 강 너머에 있다. 온갖 유혹을 극복하고 루비콘 강을 건너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커서가 깜빡거린다. 자판 위에 손은 올려놓았지만 뭘 쓸지 머리 속에서 빙빙거린다. 에잇, 모르겠다. 인터넷 서핑을 한다. 시간이 후딱 간다. 정신을 차리고 깜빡거리는 커서를 바라본다. 책상에 앉은지 꽤 시간이 흘렀건만 하얀 화면은 여전히 그대로다.

 

 

 

포기하고 책상에서 내려와 다시 눕는다. 누우니까 편하다. 뜨뜻한 장판과 등이 하나가 된다. 하지만 마음은 불편하다. 글을 쓰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다. 요즘 계속 읽기만 하고 있다. 읽은 책은 쌓여만 가는데 읽은 책에 대한 쓰기는 여전히 도통 진도가 안나간다. '뭐 이럴 때도 있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영 맘이 편치 않다. 그래서 쓰기에 대한 책을 읽는다. 글쓰기는 하지 않고 쓰기에 대한 책을 읽는 건 웃기는 일이지만, 맘이 좀 편해지려는 약간의 노림과 함께 쓰기가 좀 잘되려나 하는 기대감도 있다.  

 

 

 

 

 

 

너만 그런 거 아냐. 뇌는 쓰는 거 싫어해.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책을 집필하면서 글이 써지지 않았다. 20여 일을 허송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글이 써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습관의 힘이었다. 글이 안 써지는 동안 뇌가 글쓰기를 거부하고 쓰려는 시도에 저항했다. 그럼에도 나는 시도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러 커피를 샀다. 그리고 집에 와서 샤워하고 거실 한구석에 있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썼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도 반복했다.

 

 

 

이렇게 일정 기간 되풀이하니 산책을 시작하면 뇌가 '글을 쓰려나보다' 생각한다. 그래도 쓰지 않기를 기대한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커피를 사면 뇌는 잠깐 고민한다. '이전처럼 버틸까? 버티는 것도 만만찮은데, 언제까지 이렇게 싸워야 하지? 이 사람은 계속 이럴 것 같은데? 내가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아, 너무 힘들다.' 그리고 이내 체념한다. '차라리 도와주고 끝내자. 그게 편하겠어.'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하면 뇌가 생각을 마구 던져준다. '이런 내용 어때? 이것 한번 써봐.' 빨리 끝내고 싶은 거다. 책상 앞에 앉으면 술술 써진다. (p.44)

 

 

 

강원국 작가가 직접 경험한 해답이다. 힘들더라도 쓰기 위해 자리에 앉는 습관을 들이기만 하면 글을 써진다고 작가는 말한다. 글쓰기가 직업이고, 게다가 전직이 대통령의 글쓰기 비서관이 아니던가. 이런 분이 내놓은 답이다. 역시 엉덩이로 쓰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이처럼 아직 쓰기가 힘든 사람들을 위해 고수 강원국 작가가 자신의 28년 글쓰기 내공이 담긴 무공비급을 공개했다. 이 책 <강원국의 글쓰기>다. 아아, 고마우셔라.

 

 

 

나도 이제 글쓰기 고수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중대한 문제가 생겼다. 일단 글을 써야 비급에 나온 초식들을 연마할 수 있는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힘들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거 원, 다람쥐 챗바퀴 도는 것도 아니고. 

 

 

 

<공짜로 즐기는 세상>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김민식 PD는 글쓰기가 즐겁다고 했다. 엥, 즐겁다고? 뻥 아냐? 자신도 처음에는 글쓰기가 힘들었지만 매일 한 편씩 글 올리는 걸 7년쯤 하다 보니 즐거워졌다고 했다. 강원국 작가도 글쓰는 게 재미있어 죽겠다고 한다. 블로그를 하고 자신의 글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충만감을 느끼고, 예전에 쓴 글을 보며 지금 성장한 걸 느끼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역시 경지에 다다르면 글쓰기도 즐거운 일이 되는 건가.

 

 

 

글쓰기가 어려운 건 자신감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다. 강원국 작가는 글쓰기 자신감을 높이기 위해 다음의 방법을 추천했다. 

 

 

1. 내글에 호의적인 사람을 곁에 두는 것.

2. 매일 글을 쓰는 것.

3. 글로써 꿈을 이루겠다고 마음먹는 것.

 

 

 

음, 셋 다 요원하다. 강원국 작가는 자신의 글의 가장 애독자는 아내라고 했는데, 내 글은 우리 마누라도 안 읽는다. 매일 쓰지 않고 주로 주말에 몰아 쓴다. 그리고 글로써 무슨 꿈을 이룬단 말인가. 이러니 글쓰기가 어려울 수 밖에.

 

 

 

 

사진 출처 :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83005.html

 

 

 

■ 글쓰기에 관한 잘못된 생각

 

 

글은 재능으로 쓴다?

땀과 노력으로 쓴다.

 

 

글쓰기는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다?

보통 사람, 힘없는 사람이 가져야 할 무기다.

 

 

아는 게 많아서 쓴다?

쓰면서 아는 것이다.

 

 

글은 첫 줄부터 쓴다?

아무 데서나 시작해도 상관없다.

 

 

글쓰기는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이다?

경우에 따라 함께 쓰면 더 잘 쓸 수 있다.

 

 

글은 머리로 쓴다?

글은 가슴과 발로 기획하고 엉덩이로 마무리한다.

 

 

글쓰기는 창조적 행위다?

어딘가에 있던 것의 재현이고 모방이다.

 

 

써야 할 때 쓰는 게 글쓰기다?

아니다. 평소에 써뒀다가 필요할 때 써먹는 게 더 나은 글쓰기다. (p.82)

 

 

 

이 책은 굉장히 단문이다. 부사도 거의 없다.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그래서 깔끔하지만 건조하다. 인기있는 SNS의 글과는 완전 딴판이다. 저자는 쪼갤 수 있는 데까지 쪼갠다고 한다. '나는 예쁜 그녀를 사랑한다'는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와 '그녀는 예쁘다'로 쪼개는 식이다. 실용적인 글에는 단연 단문이 좋다고. 이 책의 대부분의 문장이 이런 식이다. 사실 그래서 이 책이 좀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이 나오는데 4년 반이 걸렸다고 한다. 매일 글을 써서 무려 2800 꼭지의 글이 만들어졌고 그 글을 갈무리하여 엮었다. 역시 책의 바탕은 자신이 꾸준히 써놓은 글이다. 평소 써뒀다가 필요할 때 써먹는다는 작가의 신조가 잘 드러난다. 나도 목표를 세우자. 지금보다 더 꾸준히 쓰고 5년 후에는 책을 내자. 그리고 글을 써는 목적도 상기하자. 내가 사유하고 있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그 사유가 행동으로 이어져 변화하기 위해 쓴다. 그게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책에 나와 있는 내용 중에서 다른 모든 것은 까먹더라도, 글쓰기 습관이 들면 글쓰기가 즐거워진다는 말은 꼭 기억하고 실천해야 될 말이다. 목표를 좀 더 높게 잡자. 한달에 독후감 여덟 편, 건축에 관한 글쓰기,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 기록하기, 일상에 관한 글쓰기 등 쓸거리가 무지 많다. 엉덩이로 꾸준히 쓰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즐거운 글쓰기가 되는 날이 올거다. 아, 또 이렇게 다짐하게 되는 구나. 글쓰기 책을 읽는 효과다ㅋㅋ.

 

 

 

글쓰기에 대한 책을 세 권이나 내셨고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가 무지 재미있는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신의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고 잘라 말한다. 언젠가 더 멋진 글을 쓰겠다는 꿈을 여전히 꾸고 계신다. 아, 이 분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