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전 영국 할머니가 본 조선 : 이사벨라 비숍의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파주에 이르는 길은 조그만 마을과 계단식 논이 있는 조그만 계곡으로 펼쳐 있었다. 길 위에는 말리기 위한 볏단이 깔려 있었으며 밭에는 밀, 조, 면화 등이 자라고 있었다. 참나무와 소나무를 빼놓고는 적막했다. 소나무가 어두운 숲에서 자라나고 있었으며 주홍색의 단풍나무와 새빨간 새머루로 더욱 돋보였다. 낮은 경사 지면이나 나무가 인접해 있는 곳에 많은 마을이 있었는데, 깊은 처마와 갈색 초가 지붕으로 덮여 있었다.
초가 지붕 위에는 고추를 말리기 위해 널어놓았는데 전체적으로 결핍된 생활을 충분히 보상할 만큼 그 모습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간 마을 사람들은 열심히 생활하고 있었다. 마을의 탈곡장으로 가는 길이 탈곡된 쌀과 조로 가득 찼으며 낯선 여행자들이 통과해도 그들에게는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모든 것들이 건조했으며 흰옷을 입은 백성들은 매우 청결해 보였다. (p.208)
120년 전쯤의 우리나라 기행문이라.... 그것도 외국인 할머니가 본 우리나라 모습.....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우리 할배의 할매 할배들은 어떻게 비춰졌으며, 도시와 시골은 또 어떻게 보여졌을까요? 이사벨라 할머니가 궁금했던 것 만큼 저도 궁금합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그 시대로 한번 돌아가 보고 싶습니다만, 그럴 순 없고, 대신 이 책으로 가능합니다.
책에 실려 있는 이사벨라 비숍 여사와 그 일행들이다. 말을 타고 계시는 분이 이사벨라 할머니인 것 같은데, 갓을 쓰고 썬글라스까지 쓰니 못 알아보겠다. 나름 변장이신가? 나귀를 타고 일행이 있다 하더라도 편한 여행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의 배낭 여행보다 훨씬 힘들었음에 틀림없다. 책에서도 그런 구절이 더러 보인다. 그러나 이 여행이 위험하지는 않았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사진 출처 : http://www7.plala.or.jp/juraian/ibirdkor.htm
일상적은 표정은 약간 당혹한 듯하면서도 활기에 차 있다. 좋은 의미에서 볼 때 그들의 외관은 힘이나 의지력보다는 재치 있는 지성의 모습을 보여 준다. 조선 사람들은 분명히 잘 생긴 인종이다. 체격도 좋다. 남자의 평균 키는 5피트 4.5인치이며 여성의 키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어울리지 않게 작다. 그들의 모습은 가장 추한 복식으로 과장되어 땅딸막하고 펑퍼짐하다. 양반이든 평민이든 그들은 매우 잘 걷는다.
가정은 대가족 제도이며 건전하다. 정부의 호구 조사가 맞는다면 가족수를 평균해 볼 때 인구는 1,200만~1,300만 명 정도 될 것이며 여자들의 수가 더 적은 편이다. 정신적으로 조선 사람들은 많은 재능을 타고 났는데 특히 스코틀랜드 말로 [영리하고 눈치빠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외국인 교사들은 그들이 정신적인 치밀성과 빠른 인식 능력, 빠른 외국어 습득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증언한다. 그들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은 억양으로 더 유창하게 말한다. 그들은 의심, 교활함, 비진실성 등의 통속적인 악덕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 간에 신뢰가 없다. 여성들은 격리되어 있으며 매우 열등한 위치에 있었다. (p.25)
전반적으로 아주 객관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는 인상이 듭니다. 책의 서문에서도 저자는 정확성이 가장 큰 목표였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단지 동양의 저 은둔의 나라를 한번 봐야겠다는 호기심만으로 쓰인 기행문은 아닙니다. 자신의 조국인 영국이 조선을 좀 더 잘 알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큰 목표였을 겁니다.
이사벨라 할머니는 저잣거리의 가장 하층민부터 고종과 민비까지 만납니다. 머, 이 정도면 그저 단순한 관광객의 차원은 아니겠죠. 그렇기에 조선의 사람과 산수의 관찰을 넘어서 사회 제도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기술한 내용이 방대합니다. 특히 관리들의 수탈, 여성의 문제, 교육에 대해서는 아주 찌르르~~ 하게 핵심을 찌르기도 합니다.
농촌 여성들에게는 즐거움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고된 일을 며느리에게 전가할 때까지 꾸준히 일만 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서른 살에 이미 쉰 살로 보이며 마흔 살에 이가 거의 빠진다. 개인적인 몸치장마저도 인생의 초반에 사라져 버린다. 삶의 일상적인 생활을 벗어나면 그는 땅과 공기를 사람들에게 예측하게 하는 귀신을 생각하는 일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다. 조선에서는 여성의 지위를 한마디로 평가하기란 정말로 어렵다. (p.331)
지금까지의 조선의 교육은 애국자나 사상가나 정직한 사람을 산출하는 데는 실패했다. 교육은 그렇게 수행되어 왔다. 흔히 서당에서 학생들은 방바닥에 앉아 그들 앞에 한문책을 펴놓고 몸을 좌우와 앞뒤로 흔들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중국의 고전에서 선정된 과목을 가장 크고 가장 시끄러운 소리로 읽고 암송한다. 이러한 교육은 사고력을 발전시키거나 그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도록 하지는 못한다. (p.371)
조선에서 나는 그들이 열등 민족이었고 삶의 희망이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으나 프리모르스크에서 나는 나의 이런 의견을 수정해야 할 이유들을 발견했다. 그들 자신을 부유한 농민층으로 끌어올리고 러시아 경찰이나 러시아 정착민들, 군인들과 똑같이 근면하고 좋은 품행을 가진 우수한 성격을 얻은 이 조선 사람만이 예외적으로 근면하고 검소한 사람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들은 대개 기근으로부터 피난 온 굶주린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재산과 일반적인 태도는 조선에 있는 그들의 동포들이 정직한 행정과 수입에 대한 정당한 방어가 있다면 천천히 인간으로 발전해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나에게 안겨 주었다. (p.229)
조선 주재 영국 총영사를 지낸 힐리어는 비숍의 여행기를 "치밀한 관찰, 정확한 사실, 올바른 추론"으로 이루어 졌다고 했다. 비숍 여사는 더러운 것은 더럽다고, 미개한 것은 미개하다고 꼭 집어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도 꼭 집어 아름답다고 한다. 기행문이지만, 기행문을 넘어서는 글이다.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wnthfmf/79
이사벨라가 조선에 첫 발을 디딘 것은 1894년입니다. 1894년 하면 딱 떠오른 건?? 그렇습니다. 바로 동학농민운동입니다. 동학운동이 다른 나라의 세력으로 실패하고 이 땅에 남은 그 다른 나라들은 지들끼리 싸움을 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 이긴 넘은 그 세력의 과시로 조선의 황후를 살해합니다. 왕은 궁을 버리고 이웃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합니다.
조선 역사에 가장 격동기라 할 만한 그 시기에 저자가 보고 들은 역사적 사건들을 우리에게 생생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마치 책 속의 또 다른 별책 부록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끝나기까지에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세자는 어머니가 무장한 일본인들에게 추격당하는 것을 보았다. 무장한 병사가 민비의 침소로 달려갔다. 처소 2층에 몇 명의 시녀들과 함께 있던 왕비는 머리채를 집힌 채, 칼을 맞고 쓰러졌다. 궁내부 대신인 이경직은 왕후가 옷을 입고 피하도록 왕후를 보호하려 함으로써 오히려 그가 왕비인 것을 그들에게 알려준 셈이 되었다. 그는 두 팔을 잃는 등 부상을 입고도 베란다까지 기어가 왕비를 바라보는 가운데 장렬하게 죽었다. 왕후는 침입자들을 피해 달아나다 넘어져 칼에 찔려 상처를 입었다. 그는 죽은 듯이 쓰러져 있다가 잠시 정신을 차려 그의 우상인 세자의 생사를 물었다. 그때 한 일본인이 그에게 덤벼들어 가슴을 마구 찔렀다. (p.271)
저 사진 속의 광화문을 저리도 늠름한데, 헐리고 조선총독부 건물이 들어서고, 그 총독부 건물이 다시 헐리고 광화문이 들어선다. 그리고 저 사람들이 서 있는 어디쯤에 지금의 세종대왕이 서 있다. 같은 공간이지만 같은 공간이 아니다.
사진 출처 : http://bomida.khan.kr/319
이사벨라 버드 비숍 (1831~1904) 여사. 영국의 요크셔에서 태어났으며 병약했으나 7살에 <프랑스혁명사>를 읽을 정도로 총명했다고 책에 나온다. 정규 학교는 다니지 않았고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여행과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미국과 캐나다, 하와이, 일본, 중국을 여행하고 글을 썼다. 여사는 1894년에 처음 조선에 왔으며 그녀의 나이 63세의 노령이었다.
사진 출처 : 한국역사연구회 홈페이지
마지막 장에 나오는 조선에 대한 그녀의 평가입니다. 이사벨라 할머니는 기본적으로 조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환갑이 넘어서 여기까지 올 리가 만무합니다. 그렇기에 위의 저 평가는 객관적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주관적입니다. 그래도 100년이 훨씬 지나 이사벨라 할머니의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은 기분이 퍽 좋습니다. ㅎㅎㅎ
만화가인 정용연 형님은 청정 그 자체였을 아름다운 산하를 여행한 저자가 부럽고, 무엇보다 백여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저자와 같은 장소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된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이사벨라 할머니가 보았던 그 공간은 이제 변하고 또 변해서 지금의 나는 할머니가 보았던 흔적을 찾기란 그리 쉬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상황 자체가 변해버려 할머니가 그토록 감명받았던 금강산의 부처 조각상을 제가 가볼 수 있지도 못합니다.
그런 상황임에도, 아니 그런 상황이라서 오히려 더 애틋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접 만날 수도 없고 대화도 불가능한 100여 년 전 조상들의 모습에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많이 달라보이지만, 또 그리 달라보이지도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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