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다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돼여 : 홍성수 <말이 칼이 될 때>
아빠, 여자애들한테 '예쁘다'는 말을 하면 안돼여.
얌마, 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왜 안돼?
외모를 평가하는 말이라서요.
야, 이쁜 걸 이쁘다고 하지, 그럼 머라고 하냐?
'매력적이다' 머, 이런 말로 해야지요.
그건 평가하는 말이 아냐?
우기지 마세여. 암튼 안돼여.
야 참, 학교가 별나다.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 녀석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나온 말입니다. 학교에선 여학생들한테 '예쁘다'는 말도 못하는 군요. 물론 남학생들한테도 '잘생겼다'는 말을 하면, 옆에 있는 '못생긴' 친구가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기에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될 겁니다. 애들이 너무 민감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라 생각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는 딸과 아내가 학교 생활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니 친구 A는 참 못생겼다."고 농담 한 번 했다가 딸에게 훈계를 들었습니다. "야, 그건 우리끼리 하는 뒷담화잖아."라고 아내가 항변을 했으나 "앞에서 못하는 얘기는 뒤에서도 하면 안돼."라고 일침을 놓습니다. 역시 교육의 힘은 무섭습니다. 딸이 대견하기도 하고 좀 무섭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여대생들은 매일 스마트폰으로 에쁜 옷이나 구경한다. 그래서 불행한 거다." 한 대학 교수가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한 말이다. 요즘은 이런 말들도 여성'혐오'로 간주된다. 설사 여학생들이 걱정되어 한 말이라고 해도 여전히 문제다. 이 말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여대생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착화시키고 여성을 무시하거나 열등한 존재로 차별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p.25)
저 교수님, 큰일 났습니다. 아마도 여학생들에게 항의를 크게 받고 나중에 공식적인 사과도 했을 겁니다. 요즘은 이런 시대입니다. 조금 민감한 사안은 여러번 생각하고 나서 발언해야 합니다.
그런데 "남학생들은 매일 스마트폰으로 스포츠카나 구경한다. 그래서 불행한 거다."라는 발언은 어떨까요? 이건 남자들에게 위협이나 차별을 조장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엉? 무슨 차이가 있지? 그렇습니다. 같은 표현이라도 힘이 있는 대상, 혹은 다수자에게 하는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약자이거나 소수자에게 하면 이건 문제가 됩니다.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홍성수 교수가 하는 말입니다. 힘 있는 넘들에겐 대놓고 욕을 해도 괜찮지만 힘 없는 사람들에겐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혐오표현은 소수자들에게 해당됩니다. 그 표현으로 고통을 받으면 곧 혐오표현이 됩니다. (우리 집안에서는 남자들이 소수자다.ㅠㅠ)
사진 출처 : https://news.v.daum.net/v/20190110044442485?f=m
종북좌파들이 판을 치면서 5·18 유공자란 이상한 괴물집단을 만들어내 우리 세금을 축내고 있다
올 초에 자유한국당 김순례 국회의원이 했던 발언입니다. 참, 해도 너무 합니다. 백번 천번 양보해서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저런 망말을 하다니요. 표현도 나쁘고 생각 자체도 나쁩니다. 저런 말을 한 사람들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벌을 줄 수는 없다네요. 안타깝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역사를 왜곡하거나 부정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이 없답니다. 국회에 제출은 꾸준히 된다고 하는데 통과는 못했다는군요. 근데 유럽은 이런 법이 있습니다. 제노사이드에 대한 법인데요, 제노사이드는 인종이나 이념을 이유로 특정 집단을 대량으로 죽이는 것을 뜻합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인 홀로코스트가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독일이나 폴란드, 프랑스, 체코 등의 여러 나라들은 이 문제에 아주 민감하겠지요. 이 문제에 대해서 왜곡이나 부정하면 처벌을 받습니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 아주 확고합니다. 비록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 할지라도 과거의 사실에 대해 모두 공감대를 가지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특히나 우리같이 굴곡의 역사를 가진 나라는 더욱 그렇습니다. 518도 그렇고 약산 김원봉에 대한 평가도 그렇고 모두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2012년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정책 제안 보고서>의 집필에 참여하면서 혐오표현과 인연을 맺게 된 숙명여대 법학부 홍성수 교수가 쓴 이 책은, 나의 의견이나 비판이 우리나라의 차별과 편견이라는 현실과 만나 그것이 진짜 표현의 자유가 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고 혐오표현이 단순히 표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에게 어떤 고통을 주며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증오와 범죄에 이르게 되는지를 파헤칩니다.
518의 비하 발언이 나쁜 표현이며 나쁜 생각이듯 '나는 동성애에 반대한다. 그것은 옳지 않다.' 라는 말은 나쁜 표현이며 나쁜 생각입니다. 이전에는 표현의 자유라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책에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여자애들에게 '예쁘다'는 말도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해서는 안됩니다. 아들한테 배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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