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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야기

시한부 인생의 기자가 어린 아들에게 남긴 책 : 이용마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by Keaton Kim 2020. 2. 6.

 

 

 

시한부 인생의 기자가 어린 아들에게 남긴 책 : 이용마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 열전의 서문을 보면 천도시비론天道是非論이 나온다. 예전에 도척이라는 산적이 있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아 부를 축적했다. 그런데도 그는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천수를 다한 뒤에 죽었다. 이에 비해 <사기> 열전의 첫번째 주인공인 백이와 숙제는 절개와 의리가 있는 선비들로, 부정하게 승계한 왕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고 벼슬을 박차고 나가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 죽었다. 사마천은 이를 비교하며 과연 천도, 즉 하늘의 도가 있느냐 없는냐, 도가 있다면 그 도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져 물었다.

 

 

 

나는 <사기>를 읽으면서 2000여 년 전 사마천이 했던 고민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을 했다. 독립운동가 자손은 삼대를 빌어먹고, 친일파 자손은 삼대를 떵떵거리고 산다는 말이 현실이라는 것이 너무 참담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는지.... 2000년이 넘게 흘렀는데, 왜 인간 사회는 변하지 않았을까? 왜 인간 사회는 좀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나는 이런 고민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다.

 

 

 

이후 나의 모든 삶은 주어진 조건에서 이 꿈을 실현하는 데 맞춰졌다.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고, 한 번도 잊지 않았다. 하루빨리 이 꿈이 실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이상 이런 꿈이 필요 없는 사회를 앙망仰望한다. (p.111)

 

 

 

한 기자가 있습니다. 어릴 적 사진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아주 가난하게 자랐지만, 그래도 공부는 곧잘 해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하기도 했습니다. 대학 시절엔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을 온몸으로 경험했습니다. 관료가 꿈이었지만, 썩은 정부를 위해 일을 하는 것보다 기자를 선택합니다. 학교 시절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로 그게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자가 되고 한국 사회를 정면으로 맞닥드립니다. 경제와 사회문제, 통일외교, 정치, 검찰, 문화 등 전방위로 부딪혔습니다. 실제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여러 문제들을 취재합니다. 타협하지 않고 말이죠. 아닌 건 아니라고 똑부러지게 말합니다. 언론의 자유가 꽉 막혀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그 기자는..... 결국 해고됩니다. 그 후에도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살던 어느날, 복막암 말기 판정을 받고 시한부 선고를 받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일년 남짓. 가장 걱정이 되는 건 아직 코찔찔이 쌍둥이 아이들입니다. 아내 혼자 남자아이 둘을 키워야 됩니다. 아이들이 자라 인생에서 중요한 판단이 내려할 시점에 대화를 나눌 아빠가 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책으로 써서 아이들한테 남겨주기로 말이죠. 시한부의 기자가 어린 아들에게 남긴 책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요?

 

 

 

마지막으로 너희들에게 부탁이 하나 있다. 나의 꿈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너희들이 앞으로 무엇을 하든 우리는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다. 그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나의 인생도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우리 모두 하늘로 돌아간 뒤에 천상병 시인처럼 '소풍이' 즐거웠다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한국 현대사 교과서.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입니다. 한 기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이자 80년대 민주화 운동부터 촛불 혁명에 이르는 30여년을 관통하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글이 베일 듯이 날카롭습니다. 과거 군사 정권이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물론, 심지어 노무현 정부의 개혁 실패에 대해서도 과감없이 썼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신자본주의 경제로 바뀌었으며,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 외교의 실상은 어떠했는지, 정권의 요구에 맞게 권력을 행사한 검찰의 실태와 자신이 속해 있던 언론의 진짜 얼굴을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사회적 적폐의 청산은 검찰과 언론을 바로 세우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시대에 뒤떨어진 엘리트는 국민이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용마 기자의 삶은 정의로웠다. 젊은 기자 시절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기득권의 부정과 부패에 치열하게 맞서 싸웠고, 국민에게 공영방송을 돌려주기 위해 가장 험난한 길을 앞서 걸었다. - 문재인 대통령

 

 

 

나쁜 넘은 잘 살고, 제대로 된 이들은 아주 힘들게 사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사마천의 천도시비론으로 인용했습니다만, 저자처럼 올곧게 사는 사람을 왜 이리 일찍 데리고 가는지 하늘에 따져 묻고 싶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손석희는 그를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책에 비친 그의 모습입니다. 말이 쉬워서 그렇지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의 나이가 된 나는 이제 조금 압니다. 저자의 생애에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당신이 바란 꿈은 나의 꿈이자 우리 모두의 꿈이기도 합니다. 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어린 두 아들이 자라서 읽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습니다. 나의 자식은 이미 이 책을 읽을 만큼 자랐습니다. 마침 두달 있으면 있을 총선에 생애 처음으로 투표를 합니다. 아이를 불렀습니다. 이 책의 스토리를 말해주고 투표하기 전에 한반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네가 어디에 표를 찍어야 할지 알게 될거라고. 몇 시간이 지나 살짝 보니 책을 베고 자고 있습니다. 역시 현실은 녹록치가 않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