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과 가장 먼 곳 : 김유진 <어쩌다 한달 모로코>
1.
여행다운 여행을 떠난지가 꽤 오래되었다. 고 느껴져서 돌이켜보니, 인도 여행을 다녀온지 채 2년이 되지 않았다. 2년도 안된 인도 여행은 전생의 일인 듯 기억 저편에서 까마득하다. 인도에서 보낸 시간들이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그런가.
그 도로가 고집스러워 보인 이유는 나이 스물 여섯에 졸업도 안하고 취업 생각도 없으며 심지어 대책도 없으면서 유럽은 가겠다는 고집의 내가 이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겨 우겨 간 유럽에서 기어코 꽉 찬 달을 두 번이나 만났다. 그리고 오게 된 모로코는 내 꿈의 나라였고, 환상의 나라였다. (p.67)
2.
기억 저편에 있는 인도에서의 시간을 꺼집어내어 활자로 옮겨야 진정한 나만의 기록이 될텐데, 여태 미루어두고 있다. 함께 같던 친구들도 여행기가 언제 나오냐고 성화다. 선뜻 손이 안가는 이유는 뭘까. 인도라는 엄청난 곳을 다녀왔기에 엄청난 여행기를 써야한다는 압박감일까, 아님 단순한 게으름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뒤틀리고 왜곡될 터인데. 하지만 여행의 시간을 재구성하면서 다시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재미가 있거니와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질 수도 있다. 여하간 일단 쓰자.
그 날, 사막은 고요함으로 말을 걸어왔다. 사막이 건넨 것은 내 존재의 사소함을 읽어주는 소리였고, 풍경으로의 초대였다. 설명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었다. 내게는 초월적인 존재에 대해 알아가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그 날은 마주했던 모든 것이 두려움과 경이로움으로 다가왔다. 적어도 그 날은 자연에 초대받은 손님처럼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엇으며, 준비해 놓은 것들을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전부였다. 겸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궁금증과 관심은 커졌고,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과 품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게 다가왔다. (p.139)
3.
여행다운 여행을 2년 동안 가지 못했음에도, 여행에 대한 욕구는 별로 샘솟지 않는다. 요르단에 갔을 때 내가 살아있다는 그 감흥에, 기필코 세계일주를 가겠노라고 했던 다짐도 요즘은 소 등에 붙은 파리같은 감각이다. 이런저런 핑계로 4년이 흘렀다. 현실은 쉽지 않고, 꿈은 여전히 멀리 있다. 내가 결정을 하는 주체임에도 말이다. 사막의 뜨거운 모래바람을 다시 맞아봐야 정신이 돌아오려나.
나는 종종 어떤 순간에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때가 있는데 라밧에서 뜨거운 해가 그랬고, 차가운 바람이 그랬다.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뜨거운 해 아래 차가운 바람이 온 몸을 스칠 때면, 그리고 그 바람이 내 코를 차갑게 만들 때면, 곧 죽음을 생각했던 사람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했다. (p.134)
4.
아부다비 막타브리지 앞의 현장에서 일할 때, 하도 일이 힘들어 이집션 무슬림 Staff를 따라 모스크에 갔더랬다. 손과 발, 얼굴, 콧 속까지 깨끗하게 씻고 사원으로 들어갔다. '알라 악바르'의 신호에 맞춰 절을 하고 기도를 했다. 이상하게도 맘이 편해졌다. 그렇게 몇 번을 모스크에서 알라신에게 나의 육신을 맡겼다. 이런 기억을 잊혀지지 않는다.
하루 다섯 번, 모스크에서 기도 소리가 울리고 그 때마다 신실한 무슬림들은 그 자리에서 자리를 펴고 기도를 했다. 오늘도 세 번 봤다. 정말 신실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기도문을 읊는건지, 아니면 아저씨의 개인적인 기도인지는 알 영문이 없지만, 그 기도 속에는 대부분의 종교를 가진 이들이 그렇듯 당신의 안위와 가족의 안위와 알라를 향한 그 어떤 것이 숨겨져 있을 거라 예상할 뿐이다. (p.119)
5.
왜 하필 모로코였을까? 모로코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책을 바로 사버렸다. 모로코에 대해 아는 거라곤 '잉그릿 버그만'이 나오는 그 옛날 영화 '카사블랑카'의 배경이었다는 사실 외엔 없는데 말이다. 아마도 가장 닿지 못할 곳이어서 그런게 아닐까. 현실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그 곳, 그래서 동경의 대상이 되는 그 곳..... 내가 지금 원하는 건, 나의 일상과 가장 먼 곳이다.
쉐프햐우엔은 세계 3대 블루시티라 부를 만큼 마을이 파랑파랑한 곳이었다. 벽도 하늘도 모두 희고 파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스머프가 사는 마을이라고 했다. 빈 공터는 아이들과 어머니들의 이야기 소리로 가득했고, 골목과 골목 사이의 빈 틈은 마을을 둘러싼 산이 메꿨다. 작은 마을이라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못해도 두 다리만 건너면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p.97)
6.
책을 읽고 모로코에 대해 검색하니, 그 먼곳을 다녀온 사람들이 꽤 있다. (항상 느끼지만 대단한 한국인!) 그들의 이야기를 읽고 그들이 다녀간 곳의 풍경을 본다. 그 모습들은 그들의 인생샷이라 불릴 만큼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들의 감정도 그러한 듯 하다. 아름다운 이야기와 풍경이 블로그 속에 있지만, 그걸 보고 있는 나의 감정은 그리 부럽거나 새롭지 않다. 경험이 풍부해진 건지 감각이 무뎌진 건지....
그 이야기에 자난 날의 내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일할 때, 진심을 담은 적이 있었나. 나는 진심을 담는 법을 알고는 있나. 여기에 와서는 스스로를 가난한 학생이라고 소개하면서도 매일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시장에서 엽서를 사서 한국으로 보내고 또 그의 이틀치 일급보다 비싼 낙타 인형을 세 개나 샀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지난 날의 나를 돌아봤을 때, 나는 나를 가난한 학생이라고 소개한 걸 후회했다. 그 말은 하지 말 걸 그랬다. (p.104)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간 김해의 작은 책방 <페브레로>. 독립출판물 전문 서점인데, 서점 겸 까페 겸 공부방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산 독립출판물 책이다. 이런 내용으로 이런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거에 왠지 나도 가능할 것 같다는 자신감이....ㅎㅎ
우리 동네에도 <달빛 책방>을 비롯한 작은 책방이 있다. 이 사진의 출처도 <페브레로> 서점의 블로그에서 퍼왔다.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febrero_&logNo=221143809101
한 달 모로코 한 줄 평.
솔직히 혼자 두 번은 못가겠다. (책 표지글 중에서)
위의 한 줄 평에서도 볼 수 있듯 솔직한 모로코 여행기를 만날 수 있다. 여행기의 문장에서 매 순간 그녀가 반짝인다. 어쩌면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일지도. 내가 이전의 여행에서 그랬듯 말이다. 여행에 전혀 목말라 있지 않는 지금, 역설적으로 나에겐 여행이 필요하다. 나의 일상에서 죽어가고 있는 감각, 내면의 노래를 충돌질하는 그 감각을 일깨우는 가장 효과적 방법은 바로 여행이다.
일단, 미뤄두었던 인도와 요르단 여행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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