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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이야기

4,700년을 살아온 불멸의 소년 이야기 : 교육공동체 다나, 송동근 <피터 히스토리아>

by Keaton Kim 2020. 12. 30.

 

 

 

4,700년을 살아온 불멸의 소년 이야기 : 교육공동체 다나, 송동근 <피터 히스토리아> 

 

 

 

대학 교수가 종신교수직도 거절하고 이사를 하려 합니다. 동료들은 자그마한 환송회를 열어줍니다. 환송회 자리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가던 중 교수는 폭탄 선언을 합니다. 자신이 14,000년 전부터 살아온 사람이라구요. 동료 교수들은 웬 농담을 진짜 같이 하냐고 웃었지만 이야기를 나눌수록 논리 정연한 교수의 답변에 놀라기 시작합니다.

 

 

 

영화 <맨프럼어스>의 줄거리인데요, 오래 전에 봤음에도 꽤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영화는 주인공의 집에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그걸로 끝납니다. 인물들이 오두막에 모여 앉아 말만 하는 영화인데도 몰입감이 상당했습니다. 주인공이 부처의 가르침을 중동에 전하려다 졸지에 예수가 되어버렸다는 장면에서는 정말 '허걱'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즈음엔 그 남자가 그토록 오래 살았다는 걸 믿게 되어버렸습니다.

 

 

 

이 남자가 그 남자다. 만사천 년을 산 남자, 부처의 제자였다가 예수가 된 남자다. 나도 모르게 이 남자의 말빨에 끌려들어갔다. 강추다.

 

 

 

<피터 히스토리아>에 나오는 주인공은 소년입니다. 근데 이 친구가 자리지도 죽지도 않습니다. 13살 소년으로 4,700년의 역사를 묵묵히 견디어냅니다. 이 불멸의 소년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위의 저 영화가 생각이 났습니다. (이 책과 위의 영화는 불멸이라는 걸 제외하면 별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푹 빠져든다는 공통점은 있습니다.) 

 

 

 

 

 

 

소년의 이름은 피터입니다. 기나긴 시간 동안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보니 피터 말고도 피에트로, 페트로스, 피에르 등 많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메소포타미아입니다. 옛날에 4대 문명이라 해서 배운 적이 있던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그 동네입니다. 지금은 이란, 이라크가 있는 동네지요. 자기의 동네를 쳐들어온 길가메시와 싸우기도 합니다. 가장 오래된 이야기라 불리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그 길가메시입니다.

 

 

 

소년은 그리스로 넘어가 아이소포프(이솝이야기의 그 이솝)를 만나 노예 생활을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수를 만나기도 하구요, 남아프리카에서는 아라와크족의 아리따운 소녀 쿨리미나를 만납니다. 유럽에서 온 하얀사람들로보터 아라와크족을 구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갈릴레이의 지인을 만나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가 1부의 이야기입니다.

 

 

 

2부에서는 프랑스 혁명, 그 격동의 한가운데에서 변화의 소용돌이를 제대로 겪었으며, 산업혁명 시기에 열악한 노동 시장으로 내몰린 소년들과 함께 살기도 했습니다. 나치의 치하에서는 반란군들 가족과 산에서 살았고, 베트남 전쟁의 반전 시위가 한창이던 1968년에는 미국에서 히피들과 함께 살며 여러 차별에 저항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인 현대에 와서는 자신의 고향인 이라크로 돌아가 전쟁의 공포를 몸소 겪습니다. 

 

 

 

아라와크족의 쿨리미나. 피터를 좋아하는 소녀다. 순수하고 발랄한 모습이 예뻐서 올려봤다. 백인들의 아라와크 인디언 학살을 증언할 아라와크족은 이제 아무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피터가 그토록 구하려고 했던 이 소녀는 어찌 되었을까. 작가의 말처럼 아마존 깊숙한 곳에서 그들의 후손이 남아 있다면 좋으련만.

 

 

 

'페스트보다 무서운 병은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도록 세뇌하는 권력의 어리석음이야.' 요런 의미심장한 말도 나온다. 유럽 전역을 공포로 떨게 했던 페스트가 창궐하던 시대에 나온 말이다. 코로나가 맹위를 떨치는 요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저 대사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길가메시에게 학살당하는 백성, 그리스인의 노예, 백인들에게 살육당하는 아메리카 인디언, 프랑스 혁명의 성난 민중, 산업혁명 이후 강제 노동을 당하는 소년들, 나치 반란군, 히피, 그리고 이라크의 이름 없는 소년. 오랜 역사의 소용돌이를 겪으면서 소년 피터가 서 있는 자리를 나열했습니다. 이쯤 되면 책이 서두에서 한 이 질문에 답변할 수 있겠지요. "누가 역사를 이끌어왔을까?"

 

 

 

뭐, 이런 거창한 명제를 생각하지 않고 아무 생각없이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그저 주인공 피터를 따라만 다녀도 흥미진진합니다. 다 읽고 나면 오랜만에 역사 공부 좀 했다는 만족감이 나도 모르게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