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오백년을 한달음에 읽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 1.
조선 왕조의 전성기는 태.정.태.세.문.단.세.예.성. 까지이다. 연산군이야 말할 필요가 없는 또라이 시키이고, 중종에서 바로 잡아야 했다. 그러나 조광조의 개혁에 중종이 배신한다. 다들 조광조 하고 떠 받드니 중종이 쫄았다. 조광조 이후 조선은 추락 일변도다.
믿는 도끼에 발등 제대로 찍힌 정암 조광조. 역대 제대로 된 선비 랭킹 1위를 다툽니다. 조광조와 겨룰 만한 이는 율곡 이이 정도가 아닐까요.... 짧은 소견이었습니다.
# 2.
조선의 기반을 만든 것은 정도전이고 다진 것은 태종이다. 새술은 새부대에!! 라는 의기도 투합했다. 똑똑한 것도 서로 비슷하다. 정도전은 태조의 핵심 브레인이자 조선의 브레인이었다. 새나라의 마스터 플래너였다. 태종은 똑똑하기로 따지면 조선 왕들 중에 No.3 안에 든다. 이 둘이 손을 잡을 수는 없었을까.
정도전이 이방원과 함께 할 수 없었던 이유는 태조 이성계와의 의리가 가장 크게 작용을 했을 테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서로의 지향점이 달랐다. 이방원의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 비해 정도전은 재상이 다스리는 나라를 꿈꿨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닌 서로 다른 것이다. 책에서는 이 두 영웅의 싸움이 참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태조 이성계와 환상의 궁합으로 조선을 세운 삼봉 정도전. 약간의 방심으로 태종 이방원에게 제대로 찍혔습니다. 그 후 500년 동안이나 계속 찍혔습니다. 현대에 와서야 그의 노력과 인물됨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 3.
조선 왕이 가장 겁내했던 건 왜넘의 침략이나 중국의 간섭, 혹은 북쪽 오랑캐의 침입이 아니라 바로 쿠데타다. 실제로 쿠데타의 성공 확률은 꽤 높아보인다. 신하들이 아예 왕을 확 바꿔버리는 중종반정과 인조반정 뿐만 아니라, 동생으로 넘어가는 왕권을 빼앗은 태종이나, 임금인 조카를 내쫒고 왕이 된 세조도 쿠데타의 승자다. 이런 떠거럴 쿠데타의 나라.
실제로 왕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왕이 되면 백성을 돌보는 일이 첫번째가 아니라 왕위를 수성하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세조의 왼팔 신숙주와 사육신인 성삼문. 예전에는 성삼문 우리편, 신숙주 나쁜 시키였는데,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습니다. 태종이나 세조 모두 스스로의 힘으로 왕이 되었으나, 태종은 좀 멋있게 보이는데, 세조는 그렇지 못합니다. 작가가 세조를 쫌생이처럼 그려서 그런가요???
# 4.
사도세자의 비극은 영조의 이기심에서 시작되었다. 그도 처음부터 그럴 계획은 아니었겠지만, 사도세자 하는 꼬라지를 보고, 지 아들을 건너뛰고 손주에게 왕을 물려주는게 훨씬 낫다는 판단으로, 그 비극을 실행한다. 미친 아부지. 사도세자가 못났다기 보다 그 만큼 세손인 정조가 뛰어난거겠지.
이준익 감독이 사도라는 영화를 만들었다던데..... 유아인이 뒤주에 갖혀 죽는 사도세자를, 송강호가 그렇게 명하는 영조를 연기한다던데...... 아~~ 무지 기대됩니다.
걱정이 넘 많은 영조입니다. 비극의 시작은 영조가 너무 오래 살았다는 겁니다. 무수리의 자식이라는 컴플렉스도 한몫 한 듯하고....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 5.
조선 역대왕중에 가장 못난 왕은 바로 선조다. 왜넘한테 쫒겨 도망만 다니다 못해 나라를 버리고 중국으로 망명할라고 했으며, 총명한 아들 광해군의 인기에 질투의 화신이 되어 그 아들을 진짜 미워한 왕이다. 이승만하고 누가 누가 못난나~~ 하고 내기하면 비슷한 점수가 나올거다. 사실 선조시절에 조선은 망했어야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때부터 새로운 왕조가 들어섰으면 오히려 우리가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그러기엔 지배이념인 유교가 너무 강했나?
그 어려움 속에서 나라를 구한 수많은 영웅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고, 정말 아무것도 안한 넘들을 대접함으로써, 우리나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제대로 짤라 버린, 망했어야 될 왕이고 왕조입니다.
# 6.
조선 왕중에서 킹 오브 카사노바는 역시 숙종이다. 마누라 많기로는 태종이나 성종이, 애를 많이 낳기로는 태종, 세종, 성종이, 첩 사랑으로는 연산군이 이름 좀 내놓는다고 할 수 있지만, 숙종에 따라가려면 한참이다.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라이벌은 지금도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레파토리다.
물론 희빈 장씨 장옥정은 졸라 이뻤다. 책에서는 머 그닥...... ㅎㅎㅎ 이거는 박시백 작가의 그림에 문제가 있다. 장희빈 뿐만 아니라 영조의 엄마인 최무수리를 비롯 여러 여인들에게 사랑을 나눠줬다. 궁녀들은 임금에게 사랑받기 위해 존재하고 임금은 마땅히 많은 궁녀들을 사랑해야 한다. 임금답다. ㅋㅋㅋ 어느 글에서 숙종의 최대 업적은 영조를 낳은 거라고. 왜? 영조가 있어서 정조가 있으니까.
그 봐..... 장희빈, 별로 안예쁘다니까!!! 근데 실제로는 졸라 이뻤댑니다. 이쁜 것들 좋아하는 건 남자의 본성이고 숙종은 이 본성에 아주 충실했습니다.
# 7.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 같은 시대를 살았던 위대한 인물들이다. 근데 사실은 이 두분에 대해서 잘 모른다. 천원짜리 지폐와 오천원짜리 지폐에 나오는 인물 정도. 그러나 퇴계 선생은 도산서원이라는 시대에 남을 만한 걸작을 남겨서 오래 회자되지만 율곡 선생은 그러질 못하다. 지금의 평가 역시도 그러하고.......
하지만, 책에는 율곡 선생이 퇴계 선생보다 훨씬 비중있게 나온다. 실제로 공부도 퇴계 선생보다 더 잘했다. 퇴계는 벼슬도 했긴 했지만 그 보다 학자의 면모가 더 강했다. 율곡은 옳다고 여기는 것을 실행하려고 했던 혁명가에 가까웠다. 선조 밑에서 그게 가능하겠냐마는. 율곡을 보는 눈이 책을 읽고 바뀌었다. 아니 무지에서 벗어났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옳겠다. 조선왕조실록 독후감 중의 하나는 율곡 이이의 재발견이다.
이황 + 조광조 = 율곡 이이. 한마디로 빽이 없어서 제대로 평가를 못 받았댑니다.
무엇보다 세상을 뜨겁게 사랑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 좋아지고 흥미가 생깁니다. 개인적으로 정약용을 조선 신하 랭킹 1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랭킹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율곡에 대해 공부를 좀 더 해볼 요량입니다.
# 8.
우리가 일본보다 더 일찍 개화를 할 수 있었던 타이밍이 여러번 있었다. 고종에 와서도 결국 제대로 하지 못했던 개화를 병자호란이 끝나고 할 수 있었던 절호의 챤스가 있었으니, 바로 소현세자다. 삼전도의 굴욕 이후 볼모로 심양으로 끌려갔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그 중 소현세자는 명나라가 몰락하는 과정을 제대로 보았으며 서양 문물이 어떤 의미를 가진고 있다는 것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 시절의 제대로 된 진보주의라 하겠다.
그러나 8년만에 돌아와서 두달만에 죽었다. 병인지 독살인지 여태 분분하다. 멀 분분해. 딱 보면 알지. 독살 맞다. 인조 나쁜 시키..... 서양의 우수한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여 보다 강한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소현세자의 열망은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 쿠데타로 광해군으로 부터 왕위를 뺏은 인조는 그 자리를 유지하느라 언제나 전전긍긍했다. 지 보다 똑똑한 아들을 눈뜨고는 못 보겠지. 그리고는 소현의 가족은 다 몰살시킨다. 인조가 선조에 버금가는 못난 왕이라는 건 삼전도의 굴욕보다 소현세자의 죽음에서 더 명확하게 나타난다.
역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가정은, 정조가 5년만 더 살았더라면.... 에서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더라면.... 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쓰벌 인조 시키가 더 나쁜 넘으로 보였습니다. 선조가 멍청하고 졸렬하고 나쁜 시키라면, 인조는 멍청하고 악랄하고 나쁜 시킵니다.
# 9.
조선의 왕 오브 왕은 역시 전반전은 세종, 후반전은 정조다. 뛰어난 인물들을 모으고 쓸 줄 알았고, 신하를 존중했으며 그렇다고 그들에게 휘둘리지도 않았다. 세종이 좀 더 큰 업적을 남기고 위대하다는 평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정조에게 더 애착이 간다. 가장 큰 차이는 개혁의 연속성이 아닐까.
세종 뒤에는, 자질로 보면 세종보다 더 뛰어나다는 문종이 있었고 세조도 어리석은 왕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조 뒤에는 너무 어려서 수렴청정을 해야 했던 순조가 있었고, 정순황후가 있었다. 아들이 너무 어리고, 그래서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할매 정순왕후가 실질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이어받는다고 하면 미리 어떤 조치를 해야했지 않았을까. (책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완전 무식한 악녀 정순황후의 모습이 아니라 나름 생각이 있는 할매로 그려졌다.)
우리 역사가 이랬으면 하는 것 가운데 가장 아쉬운 가정이 '정조가 만약 5년만 더 살았더라면' 이라고 한다. 아마도 역사의 흐름속에서 우리가 융성할 기회였다. 이 가정이 역설적으로 정조가 세종에 비해서 떨어지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이상과 개혁을 이어갈 세력을 미리 만들지 못하고 급하게 세상을 떠난 것, 바로 그것이 정조와 세종의 차이점이 아닐까.
조선에서 가장 준비된 왕..... 세종이라구여? 정조라구여? 아닙니다. 문종입니다. 세종의 정신을 잘 계승했습니다.
조선 전기의 왕들에 비해 후기의 왕들은 아무래도 자질면에서 많이 떨어진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정조가 더 뛰어나게 보입니다. 실제로도 단연 뛰어났구요. 이서진의 이산이 자꾸 겹칩니다.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 된 우리만화입니다. 잘 나가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이 조선왕조실록을 그리기 시작해서 완간에 이르기까지 13년이 걸렸댑니다. 작가의 인간 승리에 박수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읽히고 널리 알리겠습니다. 이런 좋은 책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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