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호러물이 남기는 여운 :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
십오년도 더 전에, 일본 히로시마에서 히로시마 대학교를 지을 때였습니다. 룸메이트인 나미키라는 녀석이 있었는데, 이 녀석이 정말 재미있다고 추천하던 만화가 있었습니다. 잠깐 보니 그림체도 영 시로오또(초짜라는 말의 일본어)가 그린 것 같고, 사람 손이 막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 되는,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쟝르여서 뭐 대충 넘어갔습니다.
근데 그 만화가 자꾸 레이다에 잡혔습니다. 옛날처럼 그렇게 만화를 많이 읽지는 않지만, 만화에 대한 관심은 여전해서, 내가 잘 모르는 새로운 만화, 혹은 예전부터 명작이라고 불리우지만 미처 내가 읽지 못했던 만화, 그런 만화에 대해서는 언제라도 안테나를 쭈삣 세우고 있었던 참이었는데, 이 기생수 寄生獸라는 만화는 읽지 않고서는 만화광이라는 자존심을 심하게 긁어 버리는 그런 만화였습니다.
악마에 가장 가까운 생물은 인.간.이라..... 기생수의 입을 빌려 작가가 하고픈 말이다.
일단, 이야기의 소재 자체가 무척이나 특이합니다. 외계 생명체라고 하기도 머하고 기생곤충이라고 하기도 머한 그런 생명체가 인간에 빌붙어 살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주인공은 신이치와 신이치의 팔에 붙어 사는 기생수 오른쪽이(기생수의 이름이다. 원작에는 미기라는 이름인데, 오른쪽이라는 일본어이다.)입니다. 오호... 이런 거 재미있어. 옛날에 했던 전격Z작전의 마이클과 키트가 생각난다능.....ㅎㅎ
요 둘이서 같이 함 잘 살아보겠다고 서로를 관찰하면서 소통하고 싸우고, 그리고 다른 나쁜 기생수들과도 한판 붙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스토리는 전개가 됩니다. 마지막은 역시 주인공 VS 최강 기생수의 한판 승부가 펼쳐집니다.
그림체가 심상치 않다. 머냐 넌??? 그야말로 괴물이다. B급 호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캐릭터들이 많이 나온다.
여러 기생수가 나온다. 인간을 무조건 죽이는 넘, 인간하고 같이 잘 사는 넘, 인간을 탐구하여 인간을 넘어볼라고 하는 넘..... 저 언니 (역시 기생수다)는 졸라 똑똑하고 전투력도 무지 높은 언니인데, 좀 허무하게 죽는다. 인상깊은 캐릭터였다.
주인공의 여친이시다. 질 안 좋은 기생수가 등장하고, 질 안 좋은 인간이 등장한다. 마지막 장면인데, 기생수보다 훨씬 질 나쁜 인간이 등장해서 주인공 여친을 위협한다. 인간이나 기생수나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인간이야말로 지구를 좀먹는 기생충!! 이라고 일갈하시는 기생수 대장님이시다. 여기서 기막힌 반전이 나온다. 제일 인상적었던 장면이다.
19금 만화이다. 잔인하고 역겨운 장면도 많이 나온다. 어찌보면 그런 디테일을 묘사해서 더 작품으로 여겨지는지도 모르겠다. 초3짜리 작은 아들래미도 재미있다고 본다. 아이의 눈에는 이 만화가 어떻게 비춰질지 궁금하다.
오른쪽이 라는 기생수의 눈으로 바라 본 인간의 모습,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끔찍한 사건으로 주인공 신이치가 변화되는 모습, 웬지 모르게 스토리와 비슷한 그림체, 정말 다양하게 출연해주시는 기생수의 여러 캐릭터들..... 이런 여러가지 요소들이 만화를 재미있게 해줍니다. 머... 이런 거 다 무시하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봐도 재미있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먹는 삼계탕의 닭이 40일 정도된 영계인데,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고 빨리 자라게 하는 약이 함유된 사료를 먹여서 수명이 20년인 닭을 40일만에 키운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으로 치면 돌도 안된 아이가 초등학생 덩치 이상으로 사육된다는 꼴입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사육된다고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닭은 인.간.에 의해 그렇게 사육되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이 책이 그냥 단순한 이야기에 과감한 장면만 있었다면 사람들 입에 그렇게 오르내리는 작품이 되진 못했을 겁니다. 그 살벌한 스토리안에는 결국 기생수와 인간의 공존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과 다른 생물과의 공존입니다.
'인간의 수가 반으로 준다면 얼마나 많은 숲이 살아남을까? 인간이 100분의 1로 준다면 인간이 쏟아내는 독도 100분의 1이 될까....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 책의 서두에 나오는 말입니다. 한번쯤은 생각해 볼 화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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