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때문에 산에 오르는 걸까에 대한 해답 : 다니구치 지로의 신들의 봉우리
영화 '히말라야'를 봤습니다. 실화를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나오는 사람의 이름도 실존 인물 그대로를 썼습니다. 히말라야에서 그대로 산이 되어버린 후배 '박무택'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는 대장 '엄홍길'과 그의 일당 이야기입니다.
어느 강연장에서 청중이 엄홍길에게 묻습니다. 가장 위대한 등반은 어떤 거냐고. 엄홍길은 말합니다. 박무택이 설맹으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어 죽어갈 때, 아무도 박무택을 구하러 가지 않는 상황에서 친구 박정복(김인권)이 자기가 죽을 줄을 알면서도 박무택을 찾아가서 상황을 살피고, 같이 경치를 구경하고, 죽음을 잘 맞이하도록 도와주고, 베이스캠프에 연락을 하고, 홀로 내려오면서 결국 죽을을 맞이한, 아무도 알아주진 않지만, 그것이야 말로 한국 등반사에 길이 남을 아름다운 등반이라고........
떠벌.... 황정민이 그 대사를 하면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는 계속 울면서 봤습니다. 옆에서 같이 보던 마눌이 다 커서 운다고 혀를 찼지만, 개의치 않고 계속 울었습니다. 애들 셋 해서 다섯식구가 봤는데 운 사람은 저 밖에 없더군요. 이런 무심한 것들!!!
엄대장과 무택이의 둘만의 비박 장면. 저게 사람 할 짓인가. 그들은 이미 산에 미친 것들이다. ㅋㅋㅋ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박무택이와 친구 박정복. 무택이 역의 쓰레기도 볼 만 했지만 박정복 역할의 김인권은 역시나 김인권이었다. 충분히 살 수 있었음에도, 자책감으로 평생을 사는 것보다 같이 죽는 것을 택한 박정복이. 대단하고 부럽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히말라야에는 못 올라 가더라도 사진의 저 장면은 한번 해보고 싶다. 근데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언제하느냐가 문제지. 너무 늙기 전에 해야 된다.
Because It is There
지구에서 제일 높은 산 에베레스트에 누가 제일 먼저 올랐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입니다. 공식적으로는 1953년 뉴질랜드 등반가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셀파 텐징 노르게이 라고 나옵니다. 공식적으로는요.
근데 히말라야의 유령이라 불리는 이가 있습니다. 산에 왜 오르는가 라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Beause it is there' 이라는 무지 성의없고 게으른 대답을 한 영국 등반가인 조지 맬러리와 앤드루 어빙입니다. 내가 ㄹㅆㄹ에 가는 이유는 언니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떠벌ㅋㅋㅋ
힐러리가 오르기 무려 30년 전인 1924년 맬러리와 어빙은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출발합니다. 그리고 정상 200m 앞에서 정상으로 올라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다른 대원에 의해 관측된 이후로 그들은 영영 사라지게 됩니다. 나중에 발견되었는데, 내려오는 도중에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왔는지, 아니면 중간에 발길을 돌렸는지는 오직 그 두사람만이 압니다. 그리고 둘은 히말라야의 유령이 되었습니다.
이런~~~ 다들 서울역에 갔다 놔도 안 빠질 부랑자 포스이시다. 1921년 영국 에베레스트 등정대의 모습이다. 뒷열 가장 오른쪽이 조지 맬러리. 사진 출처 : 나무위키
그런데 그 맬러리가 에베레스트에 가지고 간 카메라가 70년이 지난 1993년에 카트만두의 어느 골동품상에서 우연히 발견됩니다. 이를 손에 넣은 사진작가이자 등반가 후카미치는 이 카메라가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 왔을까, 카메라의 출처를 알면 맬러리의 미스터리를 풀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의문에 추적을 시작하고 비르카산이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숨기며 살아가는 일본의 전설적인 등반가 조지 하부를 만나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천재적인 클라이머였지만 지나친 열의와 타협을 모르는 성격때문에 일본 산악계에서는 아웃사이더로 이젠 잊혀져 간 조지 하부는, 그러나 여전히 식지 않는, 아니 오히려 더 뜨거워진 열정으로 동계 에베레스트 남서벽 무산소 단독 초등이라는 인생을 건 목표를 세우고 준비하고 그리고 실행합니다.
남서벽에서 직등으로 정상에 올라가는 하부의 사진을 후카미치는 뜨거운 마음으로 카메라에 담습니다. 정상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하부는 카메라에서 사라집니다. 그리곤 돌아오지 않습니다. 마치 에베레스트의 유령이 된 맬러라와 어빙처럼.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신들의 봉우리'는 산에 미친 사나이들의 열정, 조지 맬러리의 카메라로 시작하는 미스테리, 정말 실감나는 그림 등으로 인해 대단한 흡입력으로 읽힙니다. 단순히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그 안에 담긴 메세지가 상당하여 무작정 책장을 넘길 수 없이 만듭니다. 왜 산에 오르는가. 산사이들에게 인생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되나.... 너무 무겁나요??? 무겁지만 재미있습니다.
자료를 검색하면서 자꾸 밟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화 히말라야의 주인공 엄홍길 대장과 쌍벽을 이루는 박영석 대장입니다. 신들의 봉우리에서 조지 하부가 올랐던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아 루트를 개척하고, 히말라야 14좌 완등, 7대륙 꼭지점 완등, 남극점과 북극점을 완등하고 결국 안나푸르나에서 영원히 산이 되어 버린 사나이입니다. (그의 시신은 아직도 찾지 못했습니다. 조지 맬러리의 시신을 찾는데 75년 걸렸는데, 박영석 대장의 시신도 못찾으리는 법은 없죠.)
조지 맬러리와 엄홍길 허영호 박영석, 그리고 하부 조지. 그들에게 산이란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런 열정을 가질 까요? 산에서 발견하는 내면 깊숙히 있는 자신과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눌까요? 책은 그런 질문에 어렴풋하게 나마 답을 줍니다. 히말라야를 보고 눈물을 흘린 이들에게는 꼭 한번 읽어 볼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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