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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이야기

매순간 있는 힘껏 사랑하라 : 정혜윤 <앞으로 올 사랑>

by Keaton Kim 2021. 6. 27.

 

고래를 사랑하는 영화 감독은 일본의 포경 허용 지역으로 취재를 갑니다. 그 지역 경찰과 사람들은 이 이방인을 경계하고 위협합니다. 그런데 그 삼엄한 경계 속에서 그가 본 것은 돌고래를 집단으로 죽이는 겁니다. 아니, 왜? 그 이유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참치를 많이 잡으려고, 그래서 참치의 포식자인 돌고래를 살육한 겁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감독은 수산업의 이면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쉽게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이 바다의 생명들을 위협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실제 바다 쓰레기의 대부분은 어업 폐기물이라고 합니다. 쓰고 버린 그물이 가장 치명적이라는 거죠.

 

바다의 여러 생명체들은 이제 얼마 못가 멸종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해질 운명입니다. 바로 인간때문입니다. 마구잡이로 모든 물고기를 잡아버리는 인간의 욕심때문입니다. 오직 돈을 벌려고 대형 선박을 가진 대기업에서 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잡아버립니다. 다음 세대, 혹은 다음 다음 세대에는 물고기가 무지 귀한 음식이 될지도 모릅니다. 물고기의 입장에서 재앙이고, 작은 어촌 입장에서도 재앙입니다. 지속 가능한 수산업은 없습니다.

 

한마디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보는 내내 힘들었습니다.

 

 

 

 

저 다큐를 굳이 찾아본 이유는 누군가의 강력한 추천때문입니다. 얼마전 정혜윤 작가가 동네 책방 <생의 한가운데>를 방문했습니다. 작가는 이 다큐를 꼭 보기를 권했습니다. 작가는 이책 <앞으로 올 사랑>에서 에볼라와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왜 생기는지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 다큐에서도 작가의 시각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인간의 이기심입니다.

 

책의 부제는 <디스토피아 시대의 열 가지 사랑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을 과감하게 디스토피아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중세의 흑사병이 돌던 시대와 비교합니다. 그리고 당시 젊은 남녀가 흑사병을 피해 외딴 곳으로 가서 삶의 유희를 나누던 이야기를 쓴 <데카메론>의 형식을 따서 이 책을 구성했습니다. 그 이야기의 구성은 이렇습니다. (저자는 <데카메론>을 두고 흑사병 시대의 <천일야화>라 했습니다. 꽤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읽어봐야겠습니다.)

 

 

첫째 날, 각자 좋아하는 이야기

둘째 날, 쓴맛을 본 뒤 결실을 맺는 이야기

세째 날, 오랫동안 열망하던 것을 손에 넣는 이야기

넷째 날, 불행한 결말로 끝나는 사랑 이야기

다섯째 날, 역경을 딛고 행복한 결론에 이르는 사랑 이야기

여섯째 날, 날카로운 통찰로 위기를 모면하는 이야기

일곱째 날, 골려먹는 이야기

여덟째 날, 농담이든 뭐든 재미난 이야기

아홉째 날, 각자 좋아하는 이야기

마지막 날, 관대한 마음으로 모험을 행하는 이야기

 

 

 

 

퍼퍼위

 

나는 인디언들이 잃어버린 단어 하나를 기억하고 있다. 퍼퍼위. 아메리카 원주민의 말인데, 퍼퍼위는 '버섯을 밤중에 땅에서 밀어올리는 힘'을 뜻하는 단어다. 내가 이 단어를 발견한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출신의 로빈 윌 키머러가 쓴 <향모를 땋으며>라는 책에서였다. 이 단어를 만든 사람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생명을 만드는 에너지가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이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 더 잘 살 수 있다.

 

키머러가 만난 그녀 부족에서 증조할머니뻘 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원주민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언어는 그냥 말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담겨 있는 문화다. 인디언들이 사라질 때 세상(자연)을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식 하나가 사라져갔다. 가끔 아침 출근길에 공원에서 '퍼퍼위' 하고 한번 속으로 속삭여본다. 밤새 생명을 키운 보이지 않는 힘에 조금 더 가까이 있고 싶어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힘들과 함께 힘을 낸다. (p.211)

 

정혜윤의 시국 선언

 

나는 정혜윤이고 오늘 나는 박쥐다. 나는 니파,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5천만 년 전에 지금 이 모습이 되었다. 내가 인간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라 인간이 나에게로 왔다. 그 뒤로 많은 것이 파괴되었다. 나는 서식지에 애정이 있었다. 고향을 떠날 때마다 마지막으로 한번 돌아보지 않기란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내가 혐오의 대상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니파 바이러스 때는 110만 마리의 돼지가 사살되었다. 사스 때는 사향고양기가 끓는 물에 던져졌다. 코로나 때는 밍크롸 천갑산이 죽임을 당했다. 나는 돼지와 사향고양이와 밍크와 천갑산을 통해 세상을 이해했다. 인간은 책임 전가의 왕이다. 나는 인간의 눈에는 혐오의 대상일 뿐이지만 그러나 내가 무엇에 대해 책임져야 할지는 내가 결정한다.

 

며칠 전 새벽 나는 내 종족들의 곁을 떠나왔다. 내가 사랑했던 밤꽃들의 향을 마지막으로 맡았다. 철새들이 길을 찾는 북극성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길을 잃지 않기를 바라고 올바른 길을 가길 바란다. 나는 내 본성을 거슬러 환한 대낮에 여기에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나는 죽는다. 그러나 돼지와 사향고양이와 천갑산과 밍크와 그리고 다른 동물 누구도 더는 건드리지 마라!" (p.222)

 

 

 

 

작가 정혜윤은 라디오 피디입니다. 저는 첨 듣는 이름이었습니다.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세월호, 대구 지하철, 쌍용차의 노동자,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그들이 이야기를 책으로, 다큐로, 팟캐스트로 알렸습니다.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작가 특유의 감수성이 어디서 생겼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코로나가 활발했던 이유로 그들은 그 와중에 키스와 섹스를 계속 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방역이 잘 되는 이유가 키스를 안해서 그렇다는 우스갯 이야기가 책에 나옵니다. 코로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도 멀리 해야 하는 스킨쉽의 단절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건 소통의 단절로 이어집니다. 이런 시대지만 작가는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낀다고 강조했습니다. 지금이야 말로 사랑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코로나는 자연이 우리에게 말하는 일종의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지구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작은 신호를 보냈으나 인간이 무시하길래 이번에는 무지막지하게 커다란 경고를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부터 할 수 있는 걸 생각해봅니다. 생수 안마시고 물 끊여 마시기, 어느 정도 거리는 걸어다니기, 가능한 한 육고기 물고기 덜먹기, 꼭 필요한 옷, 음식만 사기, 좀 덜 쓰고 살기, 그리고 있는 힘껏 사랑하며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