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이야기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겠다 : 이수은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by 개락당 대표 2024. 12. 24.

 

20년을 다니던 회사를 뛰쳐 나온 건 이렇게 살려고 했던 게 아니다. 

 

늘 바쁘다. 휴일도 없이 일하는데, 아침에 출근을 해서 적어도 12시간 이상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데,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책 읽을 시간, 글을 쓸 시간, 사색을 할 시간, 나의 미래를 생각할 시간이 없다. 그저 앞에 닥친 일만 해내기 급급했다. 5년 전 회사를 나올 때 상상했던 모습은 아닐터. 

 

차분하게 지난 일과를 둘러본다. 어떤 것들이 나의 여유를 빼앗아가고 있는지, 나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지. 나쁜 습관, 나쁜 생각을 추려내 과감히 쓰레기통에 버리기로 한다. 실천 가능한 것부터 실행한다.

 

첫 번째는 바둑이다. 적게는 하루 삼십 분, 많게는 두 시간을 쓴다. 바로 끊는다. 두 번째는 쇼츠다. 다른 영상들은 정보라도 주지, 쇼츠는 순전히 도파민이다. 틈만 나면 보고, 자기 전에 보고, 보면서 잠든다. 이것도 끊는다. 그런데 이넘은 손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도무지 끊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의식적으로 안보려고 해야 한다. 하루에 30분 안쪽에서 끝낸다.

 

아침에 규칙적으로 9시 이전에는 출근하자. 사무실에서 밤 늦게까지 있는 때도 많지만, 그래도 일정한 시간에 출근을 하자. 아침에 일찍 나오면 의외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20년을 넘게 새벽에 출근하지 않았던가. 내 마음대로 출근하는 것이 자영업자의 큰 영예이지만, 이제 누릴 만큼 누렸다. 

 

일주일에 책 한 권 이상 읽고, 글 한편 이상 쓰자. 개인 블로그 외에 회사 블로그도 일주일에 한 편 이상 글을 쓰자. 어렵지 않다. 그 바쁜 회사 생활하면서도 계속 했던 일이다. 바둑 안두고 쇼츠 안보면 그만한 시간이 생긴다. 일도 좀 더 타이트하게 하면 시간을 만들 수 있다. 

 

운동하고 먹는 습관을 바로 잡자. 운동은 매일 하고 있으니 괜찮다. 문제는 먹는 것이다. 단 것을 줄이고, 7시 이후로는 먹지 않는다. 밤에 과자 먹으면서 쇼츠 보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지만, 이걸 깨지 못하면 달라지지 않는다. 소중한 시간을 들여 열심히 운동해봤자 밤에 새우깡 한 봉지면 말짱 도루묵이다. 

 

식구들과 같이 밥 먹자. 들이가 집에 와 있는 지금, 몇 년 만에 자식이 둘이나 있다. 강이가 졸업하고 오면 셋이 다 모이는 거다. 그 시간은 오직 잠깐이다. 아니 셋이서 다 함께 생활하는 건 이번이 이제 마지막이다. 곧 떠날 애들이다. 함께 특별한 이벤트오 하면 좋겠지만, 기본은 밥 먹는 거다. 다섯 식구가 함께 모여 밥을 준비하고, 함께 먹고, 함께 정리하는 거, 다음이 없다라는 생각으로 하자. 이것 또한 어렵지 않다. 아이들도 나도 함께 먹는 거 좋아하니. 약간의 시간 조절 노력만 하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상은 작은 일에 감사하자. 아이들이 집에 와서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내가 건강하게 지내고 있음에 감사하고, 식구들 모두 각자의 할일에 잘 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찾아뵐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 그리고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 나의 주위에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과 소통하며 기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읽고 쓰고 운동하고 함께 먹고 감사하는 거다. 단순하다. 집중하자. 내 삶의 정수다.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겠다.

 

 

 

 

책은 누군가의 마음 속에 있던 이야기를 부피와 무게와 두께를 가진 물질로 바꿔 놓은 것이다. 책에는 남들의 목소리와 남들의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어떤 때는 냄새도 맡아지고 맛도 느껴진다. 아프기도 하고 시원할 때도 있고 지긋지긋한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책을 많이 읽으면 아무와 만나지 않아도 온 세상을 겪은 것처럼 힘들고 웃기도 무섭고 신나고 짜릿하다가 슬퍼 죽을 것 같다. 독서의 실용적 효능이라는 것은 믿지 않지만, 책을 읽고 있는 동안만은 내 마음이 세상의 수많은 마음들과 만나는 너른 광장에 서 있음을 발견한다. (258쪽 작가의 말 중에서)

 

 

고전을 좋아하는 출판사 편집자가 쓴 책이다. 작가는 고전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데, 그 방법을 찾다가 상황별로 맞춤 책을 제안해보면 어떨까 해서 쓴 책이다. 예를 들자면, 사표 쓰기 전에 읽는 책으로 <달과 6펜스>, <변신>, <레미제라블>을 추천했다. 응? 사표를 쓰기 전에 그 어려운 카프카의 <변신>을 읽으라구? 게다가 <레미제라블>은 다섯 권짜리야, 이 사람아.... 라고 했는데, 읽지 못해 사표를 쓰지 못하는 걸 노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이 책들을 꼽은 이유에 그 이유도 들어간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 맞는 책 쉰 두 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작가의 글빨에 빠져 한번 읽어봐야겠는걸 이라고 생각한 책의 리스트를 정리해본다. 

 

- 새로 시작하고 싶을 때 :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 긴 여행을 떠날 때 : 올가 토카르추크 <방랑자들>

-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 커트 보니것 <제5도살장>

-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질 때 : 브라이언 그린 <엘러건트 유니버스>

- 금요일인데 약속이 없을 때 : 마거릿 에트우드 <인간 종말 리포트>

 

 

위에 비장하게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겠다"라고 적었다. 50이 넘어가면서 삶은 점점 어렵다.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는 나이라더니, 개구라다.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진다. 부모는 늙고 형제는 병들고 가족은 떠나가고 돈은 없다. 그래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적었다. 

 

나의 결심이자 선언이다. 실천만이 남았다. 정세랑의 책부터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