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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인생은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다 : 엘리자베스 길버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by Keaton Kim 2019. 1. 20.

 

 

 

인생은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다 : 엘리자베스 길버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이탈리아에 오래된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가난한 남자가 매일 성당에 가서 위대한 성인 앞에서 기도하며 애걸했다.

 

"성자님. 제발, 제발, 제발..... 복권에 당첨되는 은총을 내려주소서."

 

이 탄원은 몇 달간 계속되었다. 마침내 격분한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며, 가난한 남자를 내려다보고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들아. 제발, 제발, 제발..... 복권이나 사거라." (p.268)

 

 

 

책의 주인공 리즈는 30대 초반의 저널리스트입니다. 번듯한 남편도 있고, 안정적인 직장도 있고, 뉴욕에 집도 있습니다. 주위에서 보면 꽤나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근데 정작 본인은 하나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커녕 사는 게 고통입니다. 결혼 생활은 삐걱거리기 시작하여 결국 남편과 헤어지기로 결심했고, 지리한 이혼 과정은 그녀를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차가운 욕실 바닥에 엎드려 눈물과 콧물을 쏟아내며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울부짖습니다.

 

 

 

현실을 둘러싼 불행이 없어지도록 기도만 해서는 안된다는 걸 알고 있는 리즈는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진정한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복권에 당첨되려면 복권을 사야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 책은 그녀가 1년간 체험한 이탈리아와 인도,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탈리에서는 신나게 먹.고. 인도에서는 뜨겁게 기.도.하.고.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자유롭게 사.랑.합.니.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을 회복하고 그동안 몰랐던 행복을 발견하게 됩니다.

 

 

 

 

 

 

리즈가 이탈리아를 선택한 이유는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위해서에요. 이탈리아어를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 건 아니지만, 왜 있잖아요, 외국어를 공부하다 보면 그냥 소리내어 읽는 것으로도 마냥 좋고,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하나하나 알아가는 게 기쁨이 되는 그런 순수한 재미 말이죠. 리즈에게 리즈에게 이탈리아어는 그런 언어였습니다.

 

 

 

또한 이탈리아의 맛에 감동합니다. 아주 신나게 먹습니다. 전에는 몸에 좋은 유기농 뭐 이런 거만 가려 먹었는데, 이탈리아에 와서는 사람의 혼을 빼놓는 피자와 엄청난 양의 치즈, 아이스크림, 파스타, 빵, 와인, 쵸콜릿 등 가리지 않고 먹습니다. 살은 좀 (많이) 쪘지만,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반짝이는 눈과 깨끗한 피부와 행복하고 건강한 얼굴을 발견하게 됩니다. 저런 표정을 보는 건 아주 오랜만이라고 하네요.

 

 

 

로마의 여러 유적지에도 가봅니다. 그 중에서 특히 아우구스테움이 인상적입니다. 이곳은 로마에서 가장 사연 많은 장소로 꼽히는 곳인데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자신의 유골을 안장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왕국이 몰락하여 폐허가 되고, 다시 요새가 되고, 포도밭으로 변했다가 정원, 투우장, 창고, 그리고 콘스트 홀로 쓰임새가 바뀌고 결국 다시 원래의 용도로 돌아옵니다. 그걸 보며 과거에 자신이 누구였고, 어떤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었는지에 관한 미련을 버리게 됩니다. 자신은 누군가의 위대한 기념물이었을 수 있지만, 내일은 화약 창고가 될지도 모릅니다. 끊임없는 변화의 물결에 맞춰 준비해야 하는게 인생이라고 리즈는 생각합니다.

 

 

 

로마에서 가장 적막하고 외로운 곳, 아우구스테움.

사진 출처 : https://junghyejin.tistory.com/entry/20130602%EB%A1%9C%EB%A7%88-%EC%97%AC%ED%96%89-%EC%85%8B%EC%A7%B8%EB%82%A0Ostia-AnticaCaserma-dei-Vigili

 

 

 

이탈리아 여행에 이어 리즈는 인도로 갑니다. 여행이 아니라 명상을 하기 위해서인데요, 아쉬람이라는 곳의 명상 학교에 들어갑니다. 근데, 이 명상이란게 쉽지 않습니다. 남들은 잘 하는 것 같은데, 리즈는 14분을 넘기기가 힘듭니다. 또, 머리 속에는 무슨 생각들이 그리 많은지.... 내내 나와 나의 마음이 싸우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 조금씩 나아집니다.

 

 

 

명상 학교 친구 리처드가 말합니다. "매일 무슨 옷을 입을까 고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슨 생각을 할까 고르는 법도 배워야 해. 그건 네가 얼마든지 기를 수 있는 힘이야." 리즈는 명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머리와 마음을 쉬게 하기'가 가능해진 것이죠. 이전엔 자신의 마음과 늘 싸웠으나 이젠 타협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엄격한 수행을 통해 지난 시절의 자신과 그리고 남편을 용서하게 됩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이탈리아 친구가 했던 질문, 로마의 단어는 섹스인데 네 단어는 무엇이냐에 대한 해답을 찾습니다. 그 단어는 산크리트어 안테바신, '경계에 있는 자'였습니다. 리즈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고민했는습니다. 하지만 작가, 아내, 여행가, 요기, 금욕주의자, 연인, 이들 가운데 완벽한 딱 한 가지만 될 수 없습니다. 어느 쪽에서 속하지 않는 안테바신, 새로움이라는 놀랍고 두려운 숲 근처의 끊임없이 이동하는 경계에 사는 학생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아쉬람은 수행자들이 모여 사는 집, 혹은 수행자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그곳을 방문하여 지침에 따라 명상 수행을 하며 마음을 쉬게 하는 곳을 뜻한다.

사진 출처 : http://www.theuniv.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83

 

 

 

마지막 여행지는 인도네시아 발리입니다. 여행을 떠날 때 리즈의 목표는 '인생의 균형 찾기'였습니다. 발리의 우붓에서 그녀는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늙은 주술사를 만나 인생에 관한 충고를 듣기도 하며, 현지 치료사 와얀과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됩니다. (와얀은 그의 딸과 함께 살 집이 절실했는데, 리즈가 자신의 지인들에게 모금을 해 집도 사주었다.) 또다른 친구 유데이와 함께 발리 일주 자동차 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남편과의 이혼 이후 그녀는 다시는 사랑을 못할거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의심하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이곳 우붓에서 새로운 사랑을 만납니다. 친구 와얀은 "사랑에 빠져 가끔씩 균형을 잃는 게 균형 잡힌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충고를 해주기도 합니다. 리즈는 1년의 여행을 통해 행복해졌고, 건강해졌으며, 균형 잡힌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발리의 우붓은 발리 예술의 중심지이자 계단식 논과 계곡, 정글 등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책으로 더 유명해졌다고.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isangcouple&logNo=220538259091

 

 

 

이 책은 영화로 만들어져서 더 유명한데요, 줄리아 로버츠가 주인공 역을 맡았습니다. 책 속의 이탈리아 모습과 인도 아쉬람, 발리의 우봇의 모습이 궁금해서 바로 영화를 찾아보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머리 속에 그렸던 모습과 비슷한 것도 있고 전혀 다른 곳도 있네요. 저는 아쉬람의 명상 수련이 예전 무협 만화에 보면 고수들이 동굴에서 하는 수련을 상상했는데요, 그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영화는 배경의 장소를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내용은 솔직히 조금 실망했습니다. 책 속 리즈의 이야기가 영화 속 줄리아 로버츠의 이야기보다 훨씬 재미있고 풍성했습니다. 더 천진난만하고, 명랑하고, 농담도 잘하고, 사랑스럽구요. (그렇다고 영화의 줄리아 로버츠가 안 예쁘다는 절대 아닙니다.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나 여행을 하면서 깨닫는 것이 그리 구체적이지 않았습니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누구나 그런 때가 있습니다. 여태 열심히 살아왔는데,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완전 엉망진창이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생각해봐도 딱히 잘 모르겠고. SNS를 비롯해서 접하는 사람들을 엄청 많이 늘었는데 늘 외롭습니다. 그래서 이 현실에서 벗어나길 꿈꿉니다.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할거야 라고 매일 다짐하기도 합니다.

 

 

 

서두에서 복권에 당첨되려면 복권을 사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일상 탈출을 꿈꾸지만 그걸 실현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뉴욕에 사는 나름 잘나가는 30대 초반의 저널리스트라고 해서 그게 쉬웠겠습니까. 그런데 리즈는 과감히 실행합니다. 자기 삶에 능동적인 여성입니다. 자신을 찾는 여행에서 자신을 찾을지 못찾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걸 알려면 일단 첫걸음을 떼야 합니다. 리즈는 그걸 해냈습니다. 

 

 

 

책은 해피엔딩입니다. 그녀는 1년의 여행을 통해 이전보다 행복하고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찾았습니다. 내면의 자신과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자신의 삶에 나은 영향을 주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을 정말 솔직하고 맛깔나는 문체로 재미있게 들려줍니다. 저자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유머와 통찰력을 가진 아주 매력적인 작가입니다.

 

 

 

자아 찾기에 성공한 작가는 그 후에 쭉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았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같은 말은 동화 속에나 나오는 말입니다. 낯선 여행을 통해 자신을 되찾았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유통기한이 있을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것은 다시 일상이 되고 예전에 고민했던 것들과 다시 부딪히게 되겠죠. 그럼 다시 고민하고.... 계속 반복될 겁니다. 인생은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