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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그곳엔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요? 그렇담 정말 가볼 만하겠군요 : 오소희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by Keaton Kim 2019. 5. 3.

 

 

 

그곳엔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요? 그렇담 정말 가볼 만하겠군요 : 오소희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라오스라는 나라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건 친구 갑수 <목요일의 루앙 프라방>이라는 책을 만나고부터 입니다. 그 속에 펼쳐진 라오스는 천국 그 자체였습니다. 오죽했으면 몽상가들의 마지막 피난처라고 했겠습니까. 그 뒤로 라오스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차리는 게 꿈이 되었고, 그 꿈을 지인들에게 떠벌리기도 했습니다.

 

 

 

베트남의 메콩강, 태국의 카오산로드, 미얀마의 바칸,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그리고 라오스와 같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여러 나라들은 가보기 전에는 죽지 못하는 저의 버킷리스트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아껴두고픈 곳은 역시 라오스입니다. 가난하지만 낙천적이고, 욕망에 대한 집착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 말이죠. 일상에서 잠시 멈춰선다면 저에게 그곳은 라오스입니다.

 

 

 

 

 

 

썽떼우 출발하기

 

 

제아무리 시간 내 도착해도 썽떼우는 이미 80% 정도 차 있다.

그리고 절대, 절대 서두르지 않으면서 200% 찰 때까지 기다린다.

지붕, 발받침, 좌석 밑 할 것 없이

짐과 사람이 쟁여지다 못해 튕겨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이미 타고 있는 로컬들에게 몇 시에 출발하느냐고 물으면

다들 "낸들 아나요" 하는 얼굴로 뚝뚝 기사와 꼭 닮은

조용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대체로 해가 쨍쨍한 날이기 마련이다

바람 한 점 없는 썽떼우 안은 금방 달아오른다.

아이가 "언제 떠나는 거야?"를 백 번쯤 묻는다.

아이에게 "나도 잘 모르겠어"를 백 번쯤 반복하면서,

그사이 되지도 않는 현지어로 사람들과 너스레를 떤다.

이미 꽤 오래 전부터 엉덩이와 무릎을 꼭 붙이고 앉은

친밀한 사이이기에

푼수를 떨어도 부끄러울 일은 없다.

내가 한마디 하면 그들은 썽떼우가 떠나갈 듯 웃는다.

 

 

그러고 나면 눈만 마주쳐도 계속 웃는다.

버스가 떠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웃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200%가 다 채워지면

마지막으로 걸음이 느린 꼬부랑 할머니가 두어 분 더 탄다.

할머니의 출현과 함께 놀랍고도 신속하게 짐과 엉덩이가 조금씩 이동하고

할머니는 천연덕스러움을 넘어선 당당함으로

기적처럼 만들어진 자리에 앉는다.

할머니야말로 정말 출발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

 

 

그러고도 더.

가다가 누군가 길에서 손을 흔들면 썽떼우는 또 서고

그 누군가는 어떻게든 타고야 만다.

 

 

신기한 일이다.

공간에 대한 침범과 약탁이 상대방에 대한 적의로 이어지는 법이 없다.

아무도 "이제 만원이니 그만 태워요!"라고 운전사에게 소리치지 않는다.

아무도 짜증을 내거나 불편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엔 그토록 넓은 자리가 있기에

기네스북의 기록을 돌파하듯이 끝없는 인원이 썽떼우를 파고들어도

화수분처럼 새로운 자리가 계속해서 솟아나는 듯했다. (p.42)

 

 

 

여행지에서 이 작가의 시선은 언제나 사람을 향해 있습니다. 그곳의 풍경, 건축물, 문화유산 뭐 이런 것들은 모두 조연입니다. 책의 주연은 오직 라오스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의 글은 사랑을 담뿍 담아 현지인들을 바라보는 눈에서 나옵니다. 비좁아 터져나가는 버스 안을 그린 풍경입니다. 저 같으면 좁아 터져 죽을 뻔했다 라고 한 문장 뱉어낸 것으로 끝날텐데 저자는 이런 식으로 묘사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저자는 이런 시선을 타고 났을까요? 아니면 후천적 수련으로 만들진 것일까요?  

 

 

 

어쩌면 어린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기에 더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는 대부분을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했습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아이의 눈에 맞춰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출처 : https://www.appilogue.kr/2843796

 

 

 

여행의 힘

 

 

그것이 여행의 힘이겠지요.

여행이란,

의도적으로 길을 잃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행위니까요.

 

 

그러나 당신이 이들의 불우함으로부터 당신의 자리가 우월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친다면

여행의 힘은 오래가지 못할 거예요.

당신보다 양적으로 더 우월한 자들은 세상의 저편에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이들의 존재가 쉽게 당신을 일으켜 세웠듯

그들의 존재는 또 쉽게 당신을 넘어드리겠지요.

 

 

당신의 질문은 그 너머에 있어야 해요.

내 삶은 어찌하여 훨씬 더 나은 조건 속에서도 초조해 하는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원하는가.

쉽게 지치고 자신과 불화하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이에요.

 

 

진정한 여행의 힘, 그것이 주는 깨달음이란,

떠나 있을 동안만 당신을 부축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당신을 부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해요. (p.173)

 

 

 

우리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도, 평화로운 몸짓으로 삶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들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시선은 자신으로 향합니다. 그들을 바라보며 내 맘 속의 욕망을 진단합니다. 그리고 작은 위로를 받습니다. 그렇게 받은 위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도 큰 힘이 되겠지요. 이 작가의 여행 방법입니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photos/U4Oox4_zYLA

 

 

 

라오스에 다녀온 후 블로그에 글을 올려 다음 여행지인 미얀마에 가지고 갈 헌옷과 학용품을 모읍니다. 그것들을 박스에 꼼꼼하게 챙겨 다시 출발합니다. 그런 뒷 이야기가 에필로그에 실려 있습니다. 아무나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책의 인쇄로 가난한 나라의 도서관을 짓는다는 작가의 전작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참 사람을 좌절하게 만들 정도로 대단합니다. 제대로 사시는 분입니다.

 

 

 

책이 나오고 10년이 흘렀습니다. 아무것도 없다고 했던 루앙프라방에 한국 간판이 심심찮게 보일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드나듭니다. 제목에서도 말했듯이 욕망이 멈추는 그 곳도 변했겠지요. 책에 나와 있는 라오스는 이미 과거의 라오스가 되어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갈 때까지만 그대로 있어줘~~ 라고 외치지만, 그것도 저의 욕심입니다. 그러나 라오스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따뜻한 시선만 가지고 간다면 라오스는 언제라도 같을 겁니다.

 

 

 

고2 아들 녀석이 이달 말에 라오스에 간다고 합니다. 학교 아이들과 함께요. 쓰헙, 나의 로망인데 니가 먼저 가는구나. 준비는 많이 했냐? 이 책 한번 읽어봐! 하고 갑수의 책과 이 책을 던져주었습니다. 쓰윽 한번 보더니 건성으로 알겠다고 합니다. 나갔다 돌아오니 아들 녀석은 없고 책만 덩그러이 방바닥을 굴러다닙니다. 아이의 눈에 비친 라오스가 궁금해집니다. 다녀오면 물어볼게 많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