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길을 잃었다면 아프리카로 : 오소희 <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여행에도 단계가 있다.
1단계, 새로운 곳에 가서도 거울을 보듯 '나'만을 보는 것.
2단계, 나를 떠나 '그곳'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3단계, 그곳에 있는 것들과 '관계'를 맺는 것.
4단계, 내 것을 나누어 그곳을 더 아름답게 하는 것.
1단계에 있는 여행자는 불만이 많다. 음식은 입에 맞지 않고, 잠자리는 불편하며, 내 습관과 취향이 무시되는 것이 불쾌하다. "역시 김치만한 음식이 없고 한국만큼 편리한 곳이 없어." 투덜대며 집으로 돌아와, 투자한 비용과 남겨진 추억 사이를 저울질한다. 누군가 "여행이 어땠어?" 라고 물으면, 추억을 부풀리고 목소리를 높이며 간신히 저울의 균형을 맞추게 된다.
2단계에 있는 여행자는 비로소 눈물을 흘린다. 한국에 '없는' 건축물에 전율하고, 한국에 '없는' 그림 앞에서 목울대가 뜨거워진다. 그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고 느낀다. 박물관으로, 식당으로, 새로운 풍광 속으로 바쁜 걸음을 걷는다. 때로 궤도를 이탈하여 짜릿함에 빠지고, 때로 고달프게 지친 발을 씻는다. 그래도 그는 아직 다 못 보았다고, 볼 것이 많다고 느낀다. 현실에 지칠 때마다 지도를 펴고 '다음엔 어디에 갈까?' 궁리하곤 한다.
3단계의 여행자는 먼저 말을 건다. 미술관의 그림보다 앞에 서 있는 로컬의 눈빛이 마음을 사로잡는 까닭이다. 로컬이 가꿔놓은 작은 화단을 힐끔거리고, 집주인이 아끼는 화초에 대해 설명하기라도 시작하면 아예 철퍼덕 주저앉는다. 그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국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의 균등한 요소'들에 감동받는다. 이 세상 어디에 가도 노동하는 아버지의 손이 있고, 어머니의 부드러운 가슴이 있고, 우는 아이를 달래는 불 위의 수프가 있는 마음에 하루하루가 경건해진다. 고단한 발걸음은 이제 기도가 된다.
4단계의 여행자는 행동한다. 지구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 수혈을 아끼지 않은 지구를 위해서 적으나마 자신의 피를 보태고 싶어진다. 그는 이미 세상의 많은 불행과 행복을 보았다. 더 가지려는 자는 불행했고 나누려는 자는 행복했다. 그는 기도를 넘어서서 집을 짓기 시작한다. 아픈 아이를 씻겨주고 그 집에 들인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삶의 균등한 요소'들이 그중 어느 하나의 결핍이나 과잉으로 누군가의 생에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남기지 않도록, 그의 손은 기꺼이 내밀어져 있다. 제자리에서일 수도 있고, 또다른 여행지에서일 수도 있다. 이제 그는 지구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떠나도 떠나지 않은 것이고, 떠나지 않아도 떠난 것이다. (p.546 에필로그 중에서)
서점엘 갔습니다. 각양각색의 책들이 나를 봐 달라고 반짝거립니다. 이넘저넘 보다 보면 어느새 여행 코너 앞에서 뒤적이고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여행에 대해 별로 목말라하지도 않고 여행을 갈 여유라고는 거의 없는데 말이죠.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뭔가가 나를 잡아끌었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번엔 아프리카에 관한 책입니다. 일상이 고달플수록 더 먼 곳, 더 현실적이지 않은 곳을 찾습니다.
책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순전히 제목에 혹해서 산 책인데, 혹하고 읽을 만한 책이 아니더군요. 아프리카는 만랩의 여행자들만 가는 곳인줄 알았는데, 38살의 아줌마가 겁도 없이 말라리아 접종도 않고 초등학교 입학이 코 앞인 아들과 함께 아프리카로 떠납니다. 바이올린과 축구공 그리고 그곳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들고서요. 배낭 여행을 하기엔, 더우기 그 여행지가 아프라카라고 한다면, 아이가 너무 어린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건 완전 기우였습니다. 이 아줌마는 아이가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무렵부터 아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녔다고 합니다. 이 아줌마, 간이 얼마나 큰거야!
탄자니아의 달에살람을 시작으로 잔지바, 펨바, 마라냐 호수를 거쳐 세렝게티로, 우간다의 엔테베와 캄팔라, 진자와 부뇨니 호수에 이르는 여정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민낯을 담아냈습니다. 기쁜 아프리카, 여유있는 아프리카, 걱정이 없는 아프리카, 슬픈 아프리카, 아픈 아프라카를 있는 그대로, 그만의 정갈한 문장으로 표현했습니다. 환상 속 기대의 아프리카가 책을 다 읽은 후에는 현실과 일상의 아프리카가 되었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제일 처음 배우는 한국어가 '빨리빨리' 라고 했던가. 탄자니아에 온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스와힐리어는 아마도 '폴레폴레 (천천히천천히)' 일 것이다.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보채는 조짐을 보이면 탄자니아인들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키듯이 "폴레폴레!" 라고 이른다. (p.19)
아까 똥무더기를 피해갈 수 있도록 길을 알려주었던 할아버지도 하루 일과를 마치신 모양이다. 괭이를 어깨에 올리고 마을 입구에서서 우리 일행을 바라보신다. 중빈을 턱으로 가리킨다.
'자네 아들?'
'네'
내가 끄덕한다. 그가 다시 깊게 끄덕한다.
'잘했군'
나고 깊게 끄덕한다.
'네, 행복하네요.'
소리가 없어도 통하는 대화. 사람으로 태어나 갈팡질팡하면서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다보면 절로 깨치게 되는 사람됨의 소박한 행복. 그것에 대해 나누는 인류 공통의 대화. 나는 그가 사라지기 전, 그의 얼굴 가득한 모방할 수 없는 온유함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p.184)
인터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여행을 하면 나중에 기억이 나지 않을 텐데요?"
그러면 나는 대답한다.
"중요한 것은 기억이 아니라 태도예요. 자신을 열어야 할 순간에 열어버리는 것, 그래보는 것, 그럼으로써 열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중요하지요. 오늘 머문 이곳의 지명과 이곳에 있던 아름다운 성곽 따위는 잊어도 좋아요. 그러나 오늘 열어본 경험은 '태도'가 되어 퇴적층처럼 정직하게 쌓일 겁니다. 그 태도는 앞으로 아이가 살아가면서 '지금 이것이 삶이다' 라고 느끼는 순간, 질질 끌지 않고, 미뤄두지 않고, 자신을 통째로 던져 '확 살아버릴' 줄 알게 하겠죠. 그러한 경험 없이 성인이 되면, 반쯤 죽은 듯 살게 됩니다. 일상의 노예가 되지요. 저는 생명으로 자식을 이 세상에 데려왔으니,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p.235)
동아프리카에서 나는 샤워한 물을 받아 빨래를 했다. 빨래한 물로 다시 변기물을 내렸다. 그때마다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진작에 이러지 않아 미안하다. 흐르는 물로 설거지를 해서, 두 번 세 번 머리를 행궈서 미안하다. 이제 막 달리게 된 서너 살짜리 아이가 5리터짜리 물통을 머리에 이고 먼지가 뽀얀 길을 한정 없이 걸어갈 때마다, 참회하는 기분이 들지 않고서 그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런 아이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메마른 땅에서 꽃보다 더 흔했다. (p.262)
수잔이 말을 멈추자, 다시 음악이 파고 들었다. 밤새 똑같은 선정적인 창밖의 풍경과, 밤새 똑같은 선정적인 음악 속에서 전기료보다 적은 월급을 위해 졸린 나날을 견디는 청춘..... 수잔은 말했다.
"나는 그냥 피곤할 뿐이에요. 낮과 밤이 뒤바뀐 채 보내는 하루하루에 지쳤을 뿐이에요. 부뇨니 호수 같은 델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요. 여행은 돌아오는 거잖아. 난 돌아오고 싶지 않아요. 도망치고 싶어. 이곳이 아닌, 아주 아주 먼 곳으로." (p.427)
누가 누구를 가여워하는가. 어리석은 자여, 네 모자란 잣대로 나를 재려들지 마라. 내가 벌여놓은 이 풍광 속에서 너는 그저 뜨겁게 잠시 머물다 가라. (p.514)
모든 여행마다 배터리가 방전되고 충전되는 주기가 있다. 방전될 때 여행자는 길 잃은 미아가 되고 충전될 때 이름 없는 철학자가 된다. 동아프리카의 주기는 유난히 짧았다. 감격의 눈물이 흐르는 신의 정원과 피로한 창녀의 춤, 고원의 푸른 내음과 용광로처럼 들끓는 먼지, 시계가 멈춰버린 여유와 단돈 2500원에 목숨을 내던지는 제리캔맨, 아이의 토사물을 견디는 형제애와 눈도 깜짝 하지 않고 하는 거짓말, 마음을 씻어주는 호수와 호숫물에 담근 피 흘리는 발.....
아프리카는 특유의 생명력으로 몇 번이나 배터리가 과열될 만큼 에너지를 채워주었다가도 또 특유의 만만치 않음으로 배터리를 방전시켰다. 매력이 넘치지만 다루기 힘든 애인처럼, 가장 아름다움과 가장 고달픔을 숨차게 번갈아 보여주었던 것이다. 찬란한 자연 속에 놓인 극빈이란, 여행자를 꼭 끌어안았다가 서슴없이 내치는 일이었다. (p.521)
작가 오소희와 그의 아들 중빈이다. 36개월 된 아들을 데리고 터키를 여행하고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라는 책을 썼고, 라오스를 다녀오고는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를 썼다. 이 책 이후에 남미를 여행한 책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을 출간했다. 모두 아들과 함께 한 여행이었다.
사진 출처 : https://news.v.daum.net/v/20170408030350629?d=y
중동에서 일할 때 아랍넘들한테 무시낄라? 라고 물어보면 그들은 웃으며 무시낄라! 라고 대답을 했더랬습니다. 일하고 있는 거 문제 없지? 응, 문제 없어. 뭐 이런 뜻입니다. 하쿠나 마타타도 그런 뜻의 스와힐리어라고 합니다. 문제 없다는 기본적인 뜻에서 '난또데모나루사' 즉 뭐 어떻게든 될거야 괜찮아 이런 말로 쓰인다고 하는군요. 아프리카 여행에 꼭 필요한 말이겠지요.
아프리카가 무슨 뒷동산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갈 만한 곳은 아닐겁니다. 그리고 아프리카에 간다고 이런 정제된 문장이 나오는 건 더욱 아닐겁니다. 보고 듣고 만지고 경험한 자의 내공과 함께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어우러져야 나오는 글입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자신의 문장으로 책을 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이 아줌마는 책의 인세로 제 3세계 국가들에 도서관을 짓는 댑니다. 벌써 몇 군덴가 지어졌습니다. 인간적으로 무릎 힘이 쫙쫙 빠지는 좌절감을 맛보게 하는 무서운 아줌마입니다.
왜 여태 작가 오소희를 몰랐을까요. 작가의 블로그에 들어가봤습니다. 여전히 글을 쓰고 책을 내고, 여러 봉사 활동을 하고, 요즘엔 엄마들과 함께 하는 상담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아프리카를 여행하던, 아프리카 아이들과 축구공 하나로 친구가 되고 기꺼이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웃던 그 코흘리개 꼬마는, 벌써 다 자라 대학엘 들어갔고 그의 이름으로 된 책도 냈다고 나와 있습니다. 역시나. 흐뭇한 웃음이 나오는 한편, 작가와 그 아들의 행보가 너무 남달라서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작가가 에필로그에 쓴 '여행의 단계'를 서두에 적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1단계에서 4단계까지 모두 고르게 체험할 수 있어서, 어느 단계의 여행자이든 아프리카에 가면 평범해진다고 말합니다. 한낱 일상에 지쳐 떠난 자도, 사파리의 낭만을 꿈꾸며 떠난 자도 말이죠.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곳엔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요? 그렇담 정말 가볼 만하겠군요 : 오소희 <욕망이 멈추는 곳, 라오스> (0) | 2019.05.03 |
---|---|
인생은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다 : 엘리자베스 길버트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0) | 2019.01.20 |
선생의 책도 나의 답사도 아직 현재 진행형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10 서울편 1, 2> (0) | 2018.12.08 |
스케치북과 함께한 한 청년의 통과의례 : 리모 김현길 <시간을 멈추는 드로잉> (0) | 2018.11.01 |
내 생애 아드리아 바닷가를 볼 수 있을까? : 이정흠 <오후 5시 동유럽의 골목을 걷다> (2) | 2018.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