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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선생의 책도 나의 답사도 아직 현재 진행형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10 서울편 1, 2>

by Keaton Kim 2018. 12. 8.

 

 

 

선생의 책도 나의 답사도 아직 현재 진행형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10 서울편 1, 2>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처음에 이 책이 나왔을때 손에 들고 남도에 갔던 게 벌써 이십여 년 전입니다. 아직 아내가 되기 전의 아내에게 꼬임을 당해 땅끝마을에 다녀오고, 강진땅을 둘러보고 영랑 생가에 가고 해태식당에 밥을 먹었더랬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남도에서 제주로 남한강으로, 울나라 땅을 굽이굽이 돌고 금강산도 보고 일본을 거쳐 이제 서울편이 나왔습니다. 유홍준 교수도 강진과 해남 땅끝에서 시작한지 햇수로 25년 만에 한양에 입성하자니 감회가 새롭다고 하셨습니다. 덩달아 이 책을 읽는 저도 지날 날이 새롭게 떠오릅니다. 

 

 

알면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위의 저 구절을 온전히 실감해주는 것이 유홍준 교수의 책이었습니다. 문화재를 볼 줄 몰라하던 내게 여기가서 딱 이렇게 보면 돼! 라고 친절히 가르쳐 주었고, 유교수가 본 그 대로 보려고 애썼습니다. 그의 책을 따라 참 많이도 다녔습니다. 심지어 일본까지 갔으니 유교수 구라의 위력은 대단하지요.

 

 

 

책은 나오자마자 바로 사두었으나 아껴 읽을라고 고이 모셔다 두었다가 이제 읽었습니다. 서울편 1권의 제목은 <만천명월 주인옹 萬川明月 主人翁>입니다. 창덕궁 후원의 정자인 존덕정에 있는 정조가 쓴 문장인데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이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냇물은 백성을 뜻하고 달은 자신을 뜻하는데 백성의 얼굴에 비치는 군주의 모습이 부끄럽지 않게 하겠다는 통치자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종묘와 창덕궁 그리고 창경궁을 다뤘습니다. 

 

 

 

2권은 <유주학선 무주학물 有酒學仙 無酒學佛>이라는 제목인데,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운다는 말입니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다는 뜻으로, 저자가 이제 나이도 먹고 연륜도 쌓여서 우리 땅의 아름다움을 느긋하게 말하는 걸 표현한다고 썼습니다. 서울의 성곽인 한양도성과 그 주변에 있는 왕가와 양반의 별서, 덕수궁과 동관왕묘, 그리고 성균관을 소개했습니다.

 

 

 

 

서울편 1권은 종묘에서 시작한다. 이집트 하트셉수트 여왕의 장제전, 그리스의 파르테논, 로마의 판테온, 중국의 천단, 일본의 이세신궁 등의 세계 대표 신전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리나라 대표 문화유산이라고 유교수는 강조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 토요일 자유관람이 아니면 지정된 시간에 다른 이들과 함께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돌아야 한다. 나는 건축에 대해 더 알고 싶은데 해설사는 종묘의 제례에 설명을 더 할애해서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종묘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려면 늦가을 토요일 오후나 눈 내린 겨울 아침에 자유관람으로 하라고 권한다. 선생이 말씀하시는 때에 혼자 가서 종묘를 보면 어떤 감흥이 들지 몹시 궁금하다.

 

 

  

 

서울편에 나오는 문화유산의 대부분은 건축물이다. 주로 궁궐 건축을 다룬다. 다른 어떤 문화재보다 건축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간다. 청덕궁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의 미학을 구현해놓은 대표적인 궁궐이라고 소개했다.

 

사진은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이다. 인자하게 정치해라는 뜻이다. 경복궁의 정전은 근정전으로 부지런히 백성을 돌봐라는 말이고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은 밝게 백성을 돌봐라는 뜻이다.

 

 

 

 

가족들을 찍은 사진인데, 훌쩍 다 자라버린 지금의 아이들에 비해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사진 속 아이들을 보니 시간이란 넘이 지나간 자리가 확 와닿는다.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라 맘이 부풀어서 왔는데 재미없는 궁궐에 와서 싫은 표정이 역력하다. 들이는 "아빠 이게 머여요?" 하는 듯 하다. 나는 좋기만 하던데....ㅋㅋ

 

 

 

 

창덕궁의 편전 즉 업무를 보던 희정당이다. 내전인 대조전이 안채라면 희정당은 사랑채라고 한다. 그래서 장중하고 화려하다. 캐노피까지 달렸다. 순종 때 자동차가 문앞까지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창덕궁에서 왕과 왕비의 침실인 대조전. 큰 것을 만든다는 뜻이다. 왕자를 만들어라고 강요하는 이름이다ㅋㅋ. 용마루(지붕 맨 꼭대기에 있는 수평한 마루)가 없는 것이 특징인데 임금이 용이라 필요없다고.

 

 

 

 

대조전은 정면 9칸짜리 아주 큰 건물이다. 침실이면 좀 비밀스럽고 자그마해야 되는 거 아닌가. 혹시 각 방에 빈이나 무수리들이??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지겹다. 그래도 궁궐의 댓돌에 앉아 쉬는 게 어디냐. 

 

 

 

 

그리고 낙선재다. 영친왕과 아내 이방자 여사, 동생 덕혜옹주, 아들 이구 선생의 마지막을 지킨 곳이다. 다 알고 있는 역사인데 이 책에서 다시 읽으니 또 울컥한다. 그 질곡의 역사를 다 견딘 낙선재를 천천히 바라보며 오래 앉아있었다. 아래 사이트에 들어가면 창덕궁 낙선재에 대한 글이 있는데 조선 마지막 왕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있다. 예전에 썼던 글이다.

 

http://keatonkim.tistory.com/entry/%EC%96%B4%EB%94%94%EA%B9%8C%EC%A7%80-%EA%B0%80%EB%B4%A4%EB%8B%88-%EC%9A%B8%EB%82%98%EB%9D%BC-%EA%B1%B4%EC%B6%95%EB%AC%BC-6-%EC%9A%B0%EB%A6%AC-%EB%8C%80%ED%91%9C-%EB%AC%B8%ED%99%94%EC%9C%A0%EC%82%B0?category=620969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 극찬하는 창덕궁 후원. 왕의 데이트 장소다. 그 중에서도 백미인 부용지와 부용정, 그리고 규장각 주합루와 영화당. 책에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사진을 실었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아름답긴 한데 역시 사람이 많다. 아무도 없는 고즈늑한 이 정원을 걷는 왕의 기분을 상상해본다.

 

부용정을 배경으로 한 막내 녀석이다.

 

 

 

 

창덕궁 후원은 정자들이 누가 더 아름답냐고 서로 뽐내는 듯 하다. 정자의 경연장이라 해도 될 만큼 많은 정자가 있다. 구본준은 <마음을 품은 집>에서 여배우같이 화사한 부용정, 부채꼴의 관람정, 공예품같은 승재정, 왕실의 품격을 보여주는 존덕정, 주위와 가장 잘 어우러지는 소요정, 가장 화려한 정자 청의정, 가장 우아한 정자 태극정, 떼어내서 가져가고픈 최고의 정자 애련정이라고 했다. 오래전에 그 책을 들고 후원을 찾았더랬다.

 

사진은 부채꼴 모양의 공예적이고 장식적인 정자 관람정이다.

 

 

 

 

효명세자가 그의 아버지인 순조를 위해 지었다는 연경당이다. 낙선재가 선비집 사랑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연경당은 양반가의 전통 저택이라고 소개했다. 효명세자는 참 똑똑했다고 하는데 왕에 오르지도 못하고 22살로 마감했다. 총명하고 기개가 있는 친구들은 왜 다들 그런지. 낙선재를 지은 헌종이 효명의 아들이다.

 

러시아 설계자 사바친이 만들어줬다고 하는 캐노피다. 강릉에 있는 선교장의 열화당에서 비슷한게 있다.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조화를 넓이다'는 뜻이라고 한다. 경복궁의 정문은 광화문, 창덕궁의 정문은 '돈화문', 경희궁의 정문은 '흥화문'이다. 화化자 돌림이다.

 

 

 

 

홍화문을 들어서면 금천을 가로지르는 옥천교를 만나게 되는데, 이게 성종 시절 창건된 모습 그대로 라고 한다. 박석을 깐 어도가 나, 궁궐이요 한다.

 

 

 

 

창경궁 정전인 명정전이다. 울나라 궁궐 정전 중에 가장 오래되었다. 1616년 광해군 시절에 만들어진 건물이니 벌써 400년이 넘었다. 명정전은 오래되기도 했거니와 단층 건물이고 정전 치고는 소박해서 정감이 간다.

 

 

 

 

오후 햇살이 좋아서 사무실 땡땡이 치고 창경궁을 찾았다. 서울 궁궐은 다 좋지만 나는 창경궁이 젤루 좋더라. 언제든 내 맘대로 쉽게 들어갈 수 있고 사람도 많지 않다. 몇 번인가 갔더랬는데 한산하고 고풍스러운 것이 그냥 걷기에 딱 좋다. 사진 속의 나는 젊구나.

 

 

 

 

춘당지 부근에 있는 흔히 보기 어렵다는 백송이다. 소나문데 하얗다. 신기방기하다. 궁궐의 숲길을 걷는 건 최고의 트래킹이다. 산티아고 안부럽다.

 

 

 

 

그래서 창경궁 맨 안쪽 끝에 있는 식물원(대온실)까지 걷는다. 창경궁이 창경苑으로 바뀌는 시기(1909)에 일본넘들이 지었다.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그랑 팔레를 배꼈다는 카더라 통신이.... 

 

 

 

 

최근에는 암센터 옥상에 생긴 행복정원에서 보는 창경궁 조망이 끝내준다고 책에 나와 있던데. 걷는 김에 서울대병원 안에도 올라가서 사진의 대한의원 본관 건물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예전에 한국은행 건물과 동양척식회사 사옥과 더불어 조선 3대 건물이라고 불렸던, 아주 당당하고 아름다운 우리 건축물이다.

 

 

 

 

 

 

서울편 2권의 시작은 한양도성이다. 이 성은 방어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폼으로 쌓았다. 그니까 한양은 조선의 수도고 한양도성은 수도를 표시하는 이정표인 거다.

 

프랑스의 한 건축가는 한양도성을 보고 Uncontrolled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건축은 공간을 컨트롤할 수밖에 없는데 한국의 건축과 성곽을 보면 컨트롤한 것 같지가 않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그렇다. 한양도성은 우리의 산과 들과 한몸이다. 낙산 쪽의 산성이 나는 특히 좋던데. 야트막한 산에 딱 붙이 있는 성곽의 모습이 언컨트롤드 했다.

 

사진은 남산 공원에서 남산을 가로질러 남대문까지 이어지는 성곽이다. 최근에 쌓은 티가 팍팍 나지만 그게 무슨 대수냐. 꼬리를 잇는 성곽만으로 반갑다. 이게 이어져서 저기 보이는 남대문까지 연결되어야 하는데 짤렸다.

 

 

 

 

한양도성 중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되어있는 구간이라는 숙정문에서 창의문까지 걸었더랬다. 두시간 정도의 트레킹 코스다. 유영호의 <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라는 책에 도성을 걷는 재미를 소개했다. 그 책을 끼고 한양 도성을 걸어다녔더랬다.  

 

한양도성은 그 둘레가 약 18Km다. 옛 사람들이 말하길 아침에 출발해서 천천히 돌며 구경하면 저녁에 도착한다고 하는데. 한번은 꼭 해볼 작정이다.

 

 

 

 

성을 따라 가다보면 경복궁이 기가 막히게 잘 보이는 곳이 있다. 아, 여긴 경복궁의 뒷동산이구나. 정식 이름은 백악인데 경복궁의 주산이다. 좌청룡이 인왕산이고 우백호가 낙산이다. 검은 정복의 청년들 시선을 피해 경복궁의 모습을 한컷 찍었는데 사진은 그닥이다. 여기서 보면 이순신 장군의 뒤통수도 보일 정도로 정말 끝내주는 조망이었는데.....

 

 

 

 

유교수는 덕수궁을 보고 유기적인 궁궐의 체제가 사라진 채 마치 '궁궐 공원'처럼 남아 있다고 했다. 그렇지, 건축이라는 건 시간에 따라 바뀌고 세상에 따라 바뀌는 거다.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바뀌었다 다시 창경궁이 된 것처럼. 지금의 덕수궁은 궁궐이라기보다 공원이라는 저자의 말이 설득력이 있다.

 

주말에 사무실에 나온 내가 처량해져 바람이나 쐴까 해서 근처의 덕수궁을 찾았는데 모두 쌍쌍이 와서 더 처량해졌다능..... 에잇 몽땅 망해라.

 

덕수궁 미술관 계단에서 바라본 정전 중화전의 모습이다.

 

 

 

 

덕수궁의 여러 건물들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건물인 석어당이다. 단청이 없어서 그런가 운치가 있다. 당당하지만 위압스럽지 않고 품위가 있지만 포근하다. 선조가 피난갔다가 궁궐이 불에 다 타버려 갈 데가 없어 왔다는 월산대군의 집 건물이 바로 석어당이지 싶다. 1904년 대화재로 소실되었다가 곧바로 복원되었다. 그래도 무려 백년이나 된 건물이다.

 

 

 

 

고종은 쪽바리들이 하도 갈구니까 경복궁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잠시 거처를 옮겼다가 덕수궁으로 옮겨왔다. 하긴 아내가 살해당한 경복궁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겠지. 그 때 덕수궁의 건물은 석어당과 즉조당 딸랑 두 채였다고 한다. 덕수궁의 뿌리가 되는 건물이다.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배운 아관파전의 아관이다. 아관은 러시아 공사관이다. 러시아인 사바친이 설계했다. 지금은 첨탑 부분만 남아 있는데 당시에는 서울에서 가장 큰 서양식 건물이었다고 한다. 

 

옛날 사진을 찾아보니 진짜 크고 화려하다. 공사관이면 지금으로 치면 대사관쯤 되는 건물인데 당시에도 외국 공관으로서는 위세가 대단했다고 한다. 불곰국 전성시댄가..... 

 

 

 

 

덕수궁의 상징이자 대한제국의 상징인 석조전이다. 영국의 건축가 하딩이 설계했다. 진짜 폼 난다. 대한제국도 석조전처럼 폼 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고종은 대한제국을 상징할 만한 건축물을 만들게 했는데 정작 사용도 못해보고 왕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대한제국은 결코 맥없이 쓰러진 나라가 아니라 외세에서 독립된 근대국가로 나아가고자 안간힘을 썼고, 그 증거가 바로 이 덕수궁이라고 유교수는 말했다.

 

저 멋진 석조전과 애처롭게 쓰러져간 대한제국의 대비가 씁쓸해서 오래 보고 있었다.

 

 

 

 

덕수궁 미술관이다. 종로의 천도교 교당을 지은 나카무라 요시헤이의 설계로 지었다. 석조전을 이왕가 박물관으로 사용하니 배가 아픈 일제가 이 건물을 짓고 미술관을 옮겼다. 안에 들어가보고 싶었으나 유료였다. 장중하긴 하나 왠지 새침떼기 같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보내던 시절 고종은 커피를 알게 되었다.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은 여기서도 조용히 커피 마실 곳이 있었으면 해서 근처에 얼쩡거리던 러시아 건축가 사바친을 시켜 커피숍을 만들었다. 정관헌이다. 조용히 관조하는 건물이라는 뜻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커피숍 되시겠다.

 

콩다방 별다방에 버금가는 기둥의 장식이 볼만하다.

 

 

 

 

중명전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1907년에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곳이라고도 한다. 유교수는 대한제국의 모든 아픔과 불굴의 사투를 증언하는 건물이라고 강하게 표현했다.

 

 

 

 

광해군은 조선을 궁궐의 왕국으로 만들 생각이었는지 인왕산 밑에 인경궁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궁궐과 경덕궁을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경궁은 지어지자 마자 인조반정 때 불타버린 창덕궁의 복원에 사용되었고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인경궁 건물은 청기와 건물이 많았는데 창덕궁의 신정전은 인경궁 건물을 헐어 옮긴 것이라 지금도 청기와 건물이라고. 그럼 신정전의 기와가 광해군 시절의 기와라고? 올ㅋ

 

경덕궁은 아직 남아 있는데 지금의 경희궁이다. 사진은 경희궁의 정문이 흥화문이다. 일제시대에 박문사에 팔려 절의 정문이 되었다가 신라호텔의 정문으로도 사용되었으며 돌아돌아 지금의 자리에 세워진 비운의 문이다.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 예전에 있던 경희궁은 현재 동국대학교에 있고 이 건물은 최근에 복원된 숭정전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 블로그 건축이야기에 실린 <궁궐의 건축 백년의 침묵> 편을 참고하시면 된다. 바람과 같았던 조선 궁궐의 영욕의 세월에 대한 책이다.

 

 

 

 

지하철 1호선을 타면 자주 만나는 동묘앞 역. 동묘의 동관왕묘의 준말이다. 관왕은 관우를 말한다. 그러니까 동쪽에 있는 관우의 사당이다. 공자를 모신 문묘에 대한 무묘라고 한다. 명나라가 관왕이 효험이 좋으니 너거들도 사당을 만들어라 해서 만들었다고.

 

관왕묘는 지금도 남원 안동 성주 등에 남아 있다고 한다.

 

 

 

 

벽체를 벽돌로 쌓았다. 외부에 둘려 있는 열주가 특이하다. 전체적으로 사당으로서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조선 어디에도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다.... 라고 책에 쓰여 있다. 저 벽돌벽만 봐도 중국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안을 빼꼼히 들여다 봤더만 수염이 긴 동상이 있다. 관우가 맞는 갑다. 중국에서 근무할 시절 이런 관우 사당을 많이 봤다. 그 동네는 공자보다 오히려 관우였다. 그 관우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게 헐~ 신기했다.

 

사실 볼거리는 동묘 주위에 더 많다. 벼룩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나왔는지 무척이나 궁금한 물건들이 그보다 더 정체가 궁금한 주인들에 의해 팔린다. 사람 구경하기 딱 좋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싫어합니다. 탁한 공기, 붐비는 지하철, 막히는 차, 어딜가도 많은 사람들.... 하지만 가볼 만한 곳이 무지 많습니다. 600년이란 시간동안 한 나라의 수도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 지위를 이어가고 있는 이 도시에는 역사의 온기가 아직도 따끈한 건축물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아주 치명적인 매력입니다. 서울의 건축물을 소개하는 책을 옆구리에 끼고 발품을 팔아 여기저기를 다녔습니다. 사연 가득한 건축물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다녔던 서울의 궁궐과 도성 주위의 여러 곳들을 다시 챙겨보았습니다. 그 때 찍었던 사진들도 소환했습니다. 이젠 가물거리는 건물에 대한 사연을 유교수의 책이 상기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못 가본 곳도 많네요. 흥선대원군 별서인 석파정과 성균관 명륜당의 은행나무는 꼭 어슬렁거리고 싶습니다. 서울을 소개하는 유교수의 책은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인사동과 북촌, 성북동, 그리고 한강과 북한산을 담은 3권과 4권을 구상중이라고 합니다. 선생의 책을 들고 우리 땅을 답사하는 나의 여정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집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연을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읽고 난 뒤에 보는 우리 건축물의 모습은 전에 보이는 것과는 같지 않을 겁니다. 더 예뻐 보일 겁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애정이 생긴다는 말은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