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의 위로 : 유재현의 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언제부터 인도차이나가 내 마음속에 기댈 곳이 되었을까요? 또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인도차이나에 가본 거라곤 막내 녀석이랑 둘이 앙코르와트에 며칠 다녀온 게 다인데요. 참 알 수 없는 일지지만, 인도차이나의 여러 나라들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혼자서 세계 여행의 루트를 그리는 공상을 하자면, 잠시 잊은 이웃 대만, 잉카의 고대 문명 페루의 마추픽추, 안나푸르나가 있는 네팔, 인도 북부의 라다크, 친구 야신이 사는 방글라데시의 슬픈 해변 콕스 바자르, 몽고의 더 넓은 초원인 중국 후룬베이얼과 만저우리, 고려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러시아 이르쿠츠크와 울란우데, 페르시아의 고도 바그다드 까페의 이라크 바그다드, 우즈벡의 푸른 심장 사마르칸트 등 퍼뜩 머리속에 떠오르는 곳이 몇 곳 됩니다. 그 중에서도 가 보기를 가장 손꼽는 곳은 역시 인도차이나의 여러나라들입니다.
굳이 연유를 따지고 보면 아마도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황석영 선생의 무기의 그늘, 박영한 선새의 머나먼 쏭바강, 김훈의 공무도하, 그리고 가깝게는 친구 갑수의 책인 목요일의 루앙프라방... 모두 인도차이나의 여러 나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무도하에 나오는 후에라는 여성이 내 머리 속에 있는 모든 베트남인이고, 갑수의 책에서 본 루앙프라방은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라오스의 모습입니다.
한때,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가해자 편에 가담했던 우리가 뒤늦게나마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대상은 인도차이나 민중이다. 그래야 우리는 전쟁으로 연결되었던 인도차이나와 한반도의 과거를 극복하고 인도차이나와 아시아, 세계의 평화라는 대의 라래 미래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 P 8 책머리에
위의 인용한 책머리의 소개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단순한 인도차이나의 가이드북이 아닙니다. 인도차이나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서술한 슬픈 글이기도 하면서, 또한 매혹적인 인도차이나의 여러 문화와 유적을 소개했습니다. 저자의 약력이 좀 이색적인데요, 이 아자씨, 한마디로 빨갱이입니다. 학생운동을 하다 학교에서 짤리고, 그 후 민청련 등에서 활동도 한 아주 골수 빨갱이입니다. ㅋㅋㅋ 책에서 저자가 베트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주 잘 드러난 대목이 있습니다.
나는 남자였고 어디서나 좀 더 많은 것을 보기를 원했기 때문에 어디에나 있게 마련인 유곽따위의 장소를 마다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때 내게 베트남은 초행길이었고 내 머리와 가슴을 가득 채웠던 것은 소련조차 몰락한 이 지구에 몇 남지 않은 공산주의의 나라 베트남이었으며, 1975년 이 땅에서 제국주의 미국을 패퇴시킨 바로 그 베트남이었다. - P 100
나에게 여자를 권하지 말라구 이넘들아! 여기는 그 위대한 베트남이라구!!! 하는 저자의 절규가 들립니다. ㅋㅋ
인도차이나는 한반도와 많이 닮아 있다 라고 얘기하는데, 특히나 베트남은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 (프랑스하고 한판 붙음), 2차 인도차이나 전쟁 (세계 최강 미국과 한판 붙음. 실제는 미국을 등에 업은 남베트남과 공산 세력인 북베트남의 전쟁), 그리고 3차 (이번엔 중국이닷!)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그 참혹함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온 것 등.... 그래서 책 곳곳에 슬픈 상처들이 남아 있습니다.
구찌가 남긴 것은 미국과 싸워 이긴 용맹스러운 전사들의 영웅적인 활약과 초인적인 의지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참극과 맞서야 했던 인간들의 비명과 고통, 공포와 절망이 밴 터널의 끝없이 이어진 바닥과 벽이었다. - P 69
2차 인도차이나 전쟁, 일명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만의 전쟁이 아니라 인도차이나의 전쟁이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네이팜탄에 불타고 폭탄에 찢겨가거나 주린 배를 움켜쥐고 스러져간 억울한 영혼들에 대해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은 폴포트가 아니라 인도차이나에서 살인적인 전쟁 깡패짓을 서슴없이 자행했던 미국이다. - P 206
글 전반에 걸쳐 비극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도차이나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담뿍 묻어나는 표현도 곳곳에 있습니다. 라오스에 대한 그의 평도 참 따뜻합니다. 내가 상상하고 있는 라오스와 똑 같습니다. 이 첫줄만 읽어도 마음은 벌써 라오스에 가 있습니다.
무시무시하게 뜨거운 날을 골라 위엥찬(비엔티안)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도시는 아늑하고 평화롭고 한적하며 사람들의 얼굴에는 순박한 기운이 가득 번져 있다. 인도차이나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느리며 가장 소박하다고 평가받는 나라가 라오스이다. 또 공산주의국가이면서도 불교의 나라로 불릴 만큼 종교색이 강한 나라이기도 하다. 상식의 눈으로 보기에 만만치 않은 나라. 인도차이나에서 수수께끼같은 나라가 있다면 라오스일 것이다. - P 286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Vientiane 을 저자는 굳이 위엥찬이라고 썼습니다. 다른 지명이나 인명표기도 그 나라 발음에 가깝게 인용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베트남을 중국인들은 월남 越南 이라고 쓰고 위에난 이라고 읽습니다. 그 위에난의 영어식 표현이 베트남 Vietnam 입니다. 역시 한자 문화권입니다. 웬지 그 쪽 나라 언어도 배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ㅎㅎ
우리의 현대사를 보면서, 빨리 잘 살게 되었지만, 그 희생이 너무 크다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좀 덜 잘 살더라도, 소박하고 인심 넉넉하고, 다양한 가치관으로 살았으면 하는게 바램입니다.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인도차이나의 그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을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내가 위로 받을 수 있을거라 여기는 것도 그런 이유이지 싶습니다.
그럼... 주말에는 예쁜 프랑스 여배우 까뜨린느 드뇌브와 린당 팜, 그리고 그 보다 더 아름다운 베트남 하룽베이가 나오는 영화 인도차이나를 보는 걸루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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