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면 우리 시대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 이안 부루마 <0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세계는 단순하게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막대한 유럽 영토와 아시아의 많은 지역이 파괴되었고, 나치와 파시즘은 몰락했으며 식민 국가를 포함한 상당수 지역에서 과거의 정권은 도덕적으로 파산했다. 이 모든 것이 완전히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강화했다. 1945년은 백지 상태였던 것이다. 역사는 폐기될 것이었고, 어떤 것도 가능했다. 그래서 런던에 망명 중이던 독일 사회민주주자들은 "독일 0년"이라는 글귀를 만들었다. (p.316)
1945년은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해입니다. 일본이 패망하여 식민 지배에서 해방을 맞이한 해입니다. 기쁨의 순간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찾아왔습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죽고, 수많은 도시가 폐허가 될 정도로 파괴되었고, 사람들을 큰 고통으로 몰아넣은 전쟁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세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요? 마냥 기쁨만 넘쳤을까요?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가족들과 이전처럼 행복하게 지냈을까요? 전쟁을 일으킨 나쁜 넘들은 모두 벌을 받았고 정의는 실현되었을까요?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후의 삶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아시아 연구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이안 부르마는 1945년에 시간을 고정시키고 공간여행을 합니다. 독일의 집단수용소에서부터 시작하여 영국과 프랑스, 폴란드, 러시아의 모스크바의 도시와 사람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자세하게 보여줍니다. 그의 시선은 유럽에서 인도차이나 반도의 여러나라, 베트남, 한반도와 일본을 지납니다. 이 책 <0년>은 전쟁이 끝난 뒤의 사람들의 모습을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현실감이 있게 전달합니다.
폐허
베를린에서 성매매 여성은 폐허의 생쥐로 통했다. 폐허가 된 도시를 헤매면서 돈 몇 푼과 음식, 담배를 줄 수 있는 군인을 찾아 돌아다닌다는 의미였다. 이제 막 사춘기를 들어선 일부 소녀들은 검은손이 운영하는 사창가에서 몸을 팔았다. (p.65)
복수
한스 그라프 폰 렌도르프는 옛 동프로이센의 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도시는 1945년 소련 군대가 점령했을 때 칼리닌그라드로 개칭되어 지금은 러시아 도시다. 그의 일기에서 소련 군대가 인근 주류 공장을 습격한 뒤 완전히 취한 상태로 비틀거리면서 병실에 들어와 노소는 물론, 간호사, 환자 할 것 없이 보이는 대로 여성들을 어떻게 성폭행했는지를 명석하고도 매우 종교적인 어조로 묘사하고 있다. 일부 여성들은 너무 심하게 다쳐서 거의 의식을 잃을 정도였다. 또 일부는 차라리 총으로 쏴달라고 애원했지만, 이런 자비는 여성들이 수차례 폭행당하기 전에는 베풀어지지 않았고, 소련군은 그런 처형이 대부분 불필요하다고 여겼다. (p.117)
귀향
전쟁이 끝나고 유대인 난민이 돌아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솔로몬 숀펠트 박사가 1945년 12월 폴란드의 유대인 생존자들을 조사했는데,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폴란드 유대인들은 아우슈비츠에서의 죽음이 다른 어떤 곳보다도 가장 인도적이었다는 데 동의했다." 인도적이라니! (p.219)
반전
1948년 기시 노부스케(만주국의 세운 일본 관료, 전범)는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고 도쿄 수가모 교도소에서 석방되었다. 기시는 수감 기간에 우익 정치인들, 조직폭력단의 옛 친구들과 연락을 유지했다. 이 중 일부는 감옥 방을 함께 쓰기도 했다. 1949년 상공성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통상산업성이 들어왔는데, 1960~1970년대 일본의 경제 기적을 뒷받침한 가장 강력한 정부기관이었다. 1957년 기시는 총리로 선출되었다. (p.340)
한국에 상륙한 미국
일본이 항복하고 몇 주 뒤 미군이 마침내 인천항에 상륙했을 때, 미군은 한국과 한민족의 열정에 대한 어떤 단서도 알지 못한 상태였다. 존 하지 중장은 단지 인근 일본 오키나와 섬에 주둔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책임자로 뽑힌 인물이었다. 하지의 정치고문 역시 하지보다 한국을 더 안다고 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한국어 한 마디를 못했다. (p.343)
미군정의 선택
공산주의자들의 의도에 대한 불신 때문에 미군정은 영어를 할 수 있거나 미국 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옛 엘리트 계급의 보수적 인사들에게 크게 의존했다. 그들은 미래 한국 정부를 이끌 인사를 미국에서 데려왔는데, 그는 논쟁의 여지 없는 민족주의자이지만 확고한 반공주의적 견해도 가지고 있었다. 하버드와 프린스턴 대학에서 교육받은 기독교인 이승만이었다. (p.346)
2차 세계대전기간 유럽 대륙에서 독일과의 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임박한 시점인 1945년 2월 흑해 연안에 있는 소련 휴양지 얄타에서 연합국 수뇌부가 모여 전후 세계질서를 논의한 회담인 얄타회담의 빅3의 모습이다. 왼쪽부터 처칠, 루즈벨트 그리고 스탈린이다. 독일의 분할 점령, 러일전쟁에서 잃은 소련의 영토 회복, 외몽고의 독립 인정 등이 논의되었다.
사진 출처 : http://ttalgi21.khan.kr/3989
야마시타 도모유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육군의 장군이며 싱가폴을 침공하고 타이와 말레이 침공 계획을 마련했다. 사진은 1946년 마닐라 군사법정에서 선서하고 모습이다. 필리핀 민간인을 잔혹하게 죽인 마닐라 대학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교수형에 처해졌다.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pzkpfw3485/2242249
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뉴욕의 타임스퀘어 쏟아져 나왔다. 군인들은 영웅이었으며 시민들은 환호했다. 한 수병이 간호사와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고 이 사진은 종전의 기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진이 되었다. 미쿡에 가면 딱 이 자세의 동상도 많다.
사진 출처 : https://www.huffingtonpost.kr/2016/09/11/story_n_11959848.html
최소한 과거의 실수가 미래에 비슷한 실수를 방지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역사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며, 그러려고 노력하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 시대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 (프롤로그 중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1945년 전쟁이 끝난 뒤의 모습은 시궁창 그 자체입니다. 야만의 시대가 종지부를 찍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세월을 견뎌냈는지 보여줍니다. 전쟁으로 고통받던 이들은 전쟁이 끝났음에 잠깐 희망을 가지기고 하지만, 그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한반도입니다.
정작 패전국인 일본은 국가가 나뉘지도 않았는데 한반도는 반쪽으로 갈라집니다. 일본을 대신해서 미군정이 들어서지만, 그들은 정작 한국인의 정서에 대해선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일본은 독립국의 지위를 얻습니다. 전쟁의 일급 전범 혐의로 체포된 기시 노부스케는 감옥에서 풀려나 오히려 전성기를 맞게 되고 일본의 총리까지 됩니다. 이 책의 옮긴이는 에필로그에서 한반도는 1945년 그 '0년'이 낳은 질서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면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0년'에 세계 곳곳에서, 특히 한반도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고, 또 그 일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쁜 넘들은 벌을 받고 해방을 맞은 사람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 라는 해피엔딩을 기대한 건 초딩 수준의 발상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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