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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한국)

누구나 그저 조금씩 외로운 것뿐이야 : 윤대녕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by Keaton Kim 2018. 11. 4.

 

 

 

누구나 그저 조금씩 외로운 것뿐이야 : 윤대녕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누구나 그저 조금씩 외로운 것뿐이야.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때로 불안할 때가 있는 것처럼.

이젠 스스로 불안을 잠재우는 수밖에 없어.

안타깝지만, 그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야.

 

 

 

 

 

 

# 윤대녕

 

내가 읽은 윤대녕의 첫 소설은 <정육점 여인에게서>다. 제목이 거시기 해서 기억한다. 꽤 오래 전이라 내용은 머리 속에 남아있지 않지만, 특유의 분위기가 은근했다. 좌충우돌하는 서사는 없지만 몽환적이고 담담하면서 쓸쓸하고 아련한 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언어낚시통신>, <남쪽 계단을 보라>, <대설주의보> 등을 비롯한 여러 소설을 읽었다. 가장 최근에 읽은 것은 도시 난민의 사랑을 다룬 <피에로들의 집>이다. 며칠 전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를 발견했는데, 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바로 집어들었다. 윤대녕 소설이니.

 

 

 

# 존재의 시원

 

일상으로부터의 탈주를 시도하는 윤대녕의 주인공들은 "지느러미를 끌고 천천히" 현실을 거슬러올라 존재의 시원을 찾아간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주, 존재의 시원을 찾아가는 머나먼 도정을 그려내는 윤대녕의 소설이 현실 도피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역사를 신화적 상징의 거울에 비춰서 이야기할 수도 있다." 고 말한다.

 

그는 이어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하는 원형을 통해 우주적 질서와 존재의 순수성을 환기시키고 싶다.'고 덧붙인다. 1990년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징후의 하나인 윤대녕 소설의 주인공은 여전히 존재의 시원을 찾아가는 길 위에 서 있다. (글 인용 : 다음백과 윤대녕)

 

 

시원始原은 사물이나 현상 따위가 비롯되는 처음이라는 뜻이다. 존재의 시원은,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잉태한 그곳이라는 뜻일까. 먼저 떠오르는 건 엄마의 자궁이다. 

 

이 소설에서도 바닷물과 양수의 성분이 비슷하다며 바다는 생명이 잉태한 근원의 곳이라고 귀뜸한다. 주인공 영빈이 남쪽 바다로 간 것도 그러한 연유다.

 

 

 

# 호랑이

 

그 넘은 고독과 불안이 엄습할 때마다 나타났다. 낡은 핵연료봉 폐기 탱크에서 웅크리고 있었고, 바이러스가 걸린 컴퓨터 하드웨어 속에도 있었다. 너울이 이는 바다에서도 호랭이는 나타났다.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아무 때나 슬그머니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던 넘이다.

 

막연한 불안감, 자책, 살의나 분노, 굶주림, 아니면 또다른 나를 상징하는 환영. 누구나 자신의 품에 호랑이 한 마리쯤은 함께 산다. 형상만 다를 뿐.

 

 

 

# 상처입은 사람들

 

주인공은 모두 지난 날 아픈 상처를 가졌다. 80년대 운동권의 학생들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프락치로 몰리고, 결백을 밝히기 위해 영빈의 형은 자살한다. 형의 죽음으로 아버지와도 갈라서게 되었다. 어머니는 암으로 죽고 아버지는 뇌졸증에 걸려 요양병원에 누워 있다.

 

예기치 못한 어머니의 일탈로 가정이 일그러진 해연(海燕, 바다 제비)은 결국 아버지도 바다에서 잃고 버림 받을까 조심스럽다. 물건에 대한 집착과 폭식으로 정신적 허기를 채운다.

 

한국인 할머니를 둔 히데코와 사기사와 메구무(1968~2004, 실존 인물, 스스로 목을 메달아 생을 마감했다. 친할머니가 한국인인 것을 알게 되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그린 그녀의 소설 <진짜 여름>이 궁금해졌다)도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다.

 

 

 

# 글은 아파야 나온다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소설에 나오는 네 명의 인물 모두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글을 아파야 나온다. 본래 글이란 그런 것이다. 주인공들은 글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며 절망을 극복한다. 그렇게 나온 글은 짙다.

 

 

 

# 1994년 10월 21일

 

거대 도시 한복판에 있는 한강 다리가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실제로 일어났다. 시내버스 기사는 붕괴 지점을 발견하고 최대한 급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이미 늦었다. 버스는 뒤집어지면서 추락했다. 기사 1명과 승객 30명이 타고 있었는데 무려 29명이 죽었다. 생존자는 단 2명. 사고 발생 시간이 아침 출근, 등교 시간이라 학생들을 비롯해 직장인, 교사 등 희생자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 현장에서 영빈과 해연은 마주쳤다. 두 사람은 간발의 차로 죽음을 피했지만, 이후 다시 만날때까지 더 많은 트라우마를 쌓으며 피폐해져 간다.

 

그로부터 20년 후 훨씬 더 큰 비극이 일어난다. 인천과 제주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승객 474명 중 304명이 죽었고 그 중 250명은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이었다.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 사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갈까. 내면 깊숙한 곳에 생겨난 그들의 트라우마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 사람을 괴롭히고 힘들게 할까.

 

이들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들도 문학에서 많이 나올거다. 지금도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어느 때가 되면 봇물 터지듯 나오지 않겠나. 상처는 드러나야 낫는다.

 

 

 

# 돗돔

 

해연의 아버지가 잡으려 했던 전설의 물고기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크기가 2미터나 되는 엄청난 놈이다. 로또 수준이다.

 

주인공 영빈도 제주도에 내려와 낚시에 몰두한다. 치유의 방법이자 고행의 수단이다. 영빈이 오랫동안 낚시를 하고 70센티의 돌돔을 낚아 올린 후 그를 도로 돌려주는 순간 영빈을 괴롭히던 호랑이는 사라진다. 상처는 치유되었다.

 

 

 

# 살아간다는 거

 

그게 뭐라고 그리 힘들까.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며 살면 되는 걸. 얼마나 오래 산다고. 그게 왜 그리 힘들까. 상처를 지닌 사람들은 그게 더 힘들까? 소설 속 해연과 영빈이 잘 되어 정말 다행이다. 

 

 

 

# 작가의 말

 

"81학번 386세대(작가도 책의 주인공 영빈도 62년생 81학번이다)가 지난 이십여 년의 과거를 고통스럽게 회고하면서 기록한 정직한 성찰의 기록이다." 라고 문학평론가 장영우는 이 책을 평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2년 동안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소설을 다 쓰고 서울로 올라간 뒤 제주의 폭풍우가 그립다고 했다. 제주에 있을 시절의 '거칠음', 언제든 내 안의 호랑이와 대적할 수 있는 그 힘을 회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지도 속이 갑갑해서 바다로 갔겄지. 바람 쐬러. 사람이건 동물이건 외로우면 바다로 가게 되어 있어. 바다는 원래 그런 곳이야. 우리가 태어난 그 곳. 존재의 시원.

 

책을 다 읽고 나니 갑자기 미역이 먹고 싶어졌다. 바다에서 갓 건져올린 싱싱한 미역을 새빨간 초고추장에 찍어 한 입 먹으면, 외로움 따윈 떨쳐내고 호랭이든 뭐든 정면으로 마주할 의욕이 생길 것 같다. 기장 장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