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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야기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 쓴다 : 이기주 <언어의 온도>

by Keaton Kim 2020. 5. 18.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 쓴다 : 이기주 <언어의 온도> 

 

 

 

1.

극지에 사는 이누이트들은 분노를 현명하게 다스린다. 아니 놓아준다. 그들은 화가 치밀어 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걷는다고 한다. 언제까지? 분노의 감정이 스스륵 가라앉을 때까지.

 

그리고 충분히 멀리 왔다 싶으면 그 자리에 긴 막대기 하나를 꽂아두고 온다. 미움, 원망, 서러움으로 얽히고 설킨,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지도 모르는 지나치게 뜨거운 감정을 그곳에 남겨두고 돌아오는 것이다. (p.231)

 

 

 

2.

어쩌면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도착'이 아니라 '과정'인지 모른다. 그래서 난 장거리 이동을 할 대 비행기보다는 열차에 몸을 싣는 편이다. 기차를 타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찬찬히 응시할 수 있다. 이동의 과정을 음미하면서 멀어지는 것과 가까워지는 것을, 길과 산과 들판이 내게 오는 것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어디 여행뿐이랴. 인간의 감정이 그렇고 관계가 그러한듯하다. 돌이켜보면 날 누군가에게 데려간 것도, 언제나 도착이 아닌 과정이었다. 스침과 흩어짐이 날 그 사람에게 안내했던 것 같다. (p.251)

 

 

 

3.

이처럼 꽉 채우지 않고 일부러 내용을 덜어낸 듯한 마무리가 감동을 더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미국인 장교 헨리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 캐서린을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그녀는 출산 도중 아기와 함께 숨을 거둔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덤덤하다 못해 초라하다. 하지만 절절하기 그지없다.

 

'난 비를 맞으며 호텔을 향해 걸었다.'

 

소설을 덮기 직전, 나는 이 부분에 밑줄을 박박 그어가며 몇 번이고 소리 내어 읽었다. 그리고 전율했다. (p.207)

 

 

 

4.

사과의 한자를 살펴보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사과의 사謝에는 본래 '면하다' 혹은 '끝내다'라는 의미가 있다. 과過는 지난 과오다. 지난 일을 끝내고 사태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행위가 바로 사과인 것이다.

 

먹는 사과의 당도가 중요하듯, 말로 사는 사과 역시 그 순도가 중요하다. 사과의 질을 떨어뜨리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하지만'이다. '~하지만'에는 '내 책임만 있는 게 아니라 네 책임도 있어' 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런 사과는 어쩔 수 없이 하는 사과, 책임 회피를 위한 변명으로 변질되고 만다.

 

사과에 '하지만'이 스며드는 순간, 사과의 진정성은 증발한다. (p.54)

 

 

 

5.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p.25)

 

 

 

6.

그리움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닿을 수 없는 인연을 향한 아쉬움, 하늘로 떠나보낸 부모와 자식에 대한 애틋한 마음,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은 마음 속에 너무 깊게 박혀 있어서 제거할 방도가 없다.

 

채 아물지 않은 그리움은 가슴을 헤집고 돌아다니기 마련이다. 그러다 그리움의 활동 반경이 유독 커지는 날이면, 우린 한 줌 눈물을 닦아내며 일기장 같은 은밀한 공간에 문장을 적거나, 책 귀퉁이에 낙서를 끼적거린다. 그렇게라도 그리움을 쏟아내야 하기에. 그래야 견딜 수 있기에.... (p.116)

 

 

 

7.

엉덩이력과 필력은 비례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종일 앉아 있다 보면,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는 단 하나의 문장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거의 실패한다. 머릿속에 잠복해 있던 단어가 문장으로 변하는 순간 물 밖으로 나온 생선처럼 신선함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글을 쓰는 작업은 실패할 줄 알면서도 시도하는 과정,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적지를 찾아 나서는 행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p.135)

 

 

 

8.

"당신인교? 환자가 잠 안 자고 뭐 해요?"

 

병상에 있는 남편에게서 걸려온 전화인 게 분명했다. 난 바로 뒤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통화 내용을 엿듣게 됐다. 오래전 일이지만, 그녀가 남편에게 읊조린 한마디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녀는 꽤 긴 통화를 마치면서 뭔가를 고백하듯 말했다.

 

"그래요, 당신이 곁에 있어 참 다행인 것 같아요. 나도 당신 덕분에 버티고 있나 봐요."

 

아니 환자의 보호자가 환자 덕분에 버틴다니, 무슨 말이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번쩍하고 머리를 스치는 글귀가 있었다. 애지욕기생愛之欲其生이란 말이 퍼뜩 떠올랐다.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끔 한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짐작건대, 그녀는 남편에게 틈틈이 전화를 걸어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진심 어린 말로 사랑을 고백할 것이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의 아픔을 어루만질 것이 분명하다. (p.109)

 

 

 

 

 

 

작가가 '여자' 아냐? 글이 어쩜 이리 섬세하고 우아하냐. 남자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글 안나오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아주 훤칠한 남자ㅅㄲ 사진이 나왔다. 글 잘 쓰는 것도 배 아픈데 사진을 보니..... 에휴, 안 보는 게 더 나았다. 눈까지 버렸다.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8년 정도 기자 생활을 했단다. 한때는 대통령 연설문을 작성하기도 하는 등 잘나갔댄다. 지금은 '말글터'라는 출판사를 혼자 운영하고 있고 점심을 먹은 후엔 피아노도 친댄다. 우찌 작가가 되었냐고 묻자 기자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써온 글의 물고가 터졌다고 했다. 역시.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근데 이 에세이는 글빨만 뛰어난 게 아니다. 현란한 글솜씨로 유혹하는 책이 아니다. 사람과 사물과 그리고 그 연결 고리를 자세히, 그리고 따뜻하게 보는 눈이 있다. 지하철에서 다른 이의 통화를 듣고, 다른 사람들은 재미없어 하는 영화를 보고, 누구나 흘려버리는 책의 한 구절을 가지고, 사람들은 잘 생각하지 않는 말의 어원을 따뜻한 눈으로 자세히 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베스트셀러는 아무렇게나 되는 게 아니다.

 

 

 

책 표지에 '쓸모를 다해 버려졌거나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 쓴다.'고 적혀 있다. 그런 것들이 우리를 자극한다(저 글을 읽자마자 사랑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사랑이 그렇나 보다). 금방 다 읽어버렸다. 또 책을 편다. 눈길 닿는 데로 읽는다. 다시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