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강연을 다니는 저자 : 이국환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
내가 들은 인생 조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친정어머니가 시집간 딸에게 해주는 말이었다. 탁자가 서너 개에 불과한 국밥을 파는 작은 식당이었다. 무람없이 밥을 먹는 딸의 표정은 어두웠고, 심각한 고민으로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듯했다. 친정어머니는 천천히 국물을 뜨며 묵묵히 딸의 말을 듣기만 했다. 한참을 듣고 있던 어머니가 나직하게 말했다. "인생 살아보니 짧더라.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라." 어머니의 조언은 짧고 명료했다. 문득 돌아본 어머니의 담담한 말투보다 회한에 찬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는 정작 후회 없이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았을까? (p.22)
위의 글은 <낙타, 사자, 어린아이>편에 나온다. 여기에서는 니체의 글을 인용하여 인생을 낙타, 사자, 어린아이에 비유한다. 낙타는 의무와 희생으로 점철된 삶이다. 등짐을 지고 묵묵히 사막을 걷는 낙타처럼 부담과 의무에 매여 사는 삶, 자신의 선택이 아닌 세상이 정해준 기준대로 사는 삶이다.
니체는 낙타의 짐을 벗고 '자유 의지'를 상징하는 사자가 되라고 강조한다. 여기서 사자로 넘어가는 과정은 엄청난 고뇌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사자는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자유의 댓가는 혹독하다. 사자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한다. 그렇게 사자가 됐다 하더라도 사자의 자유는 완전하지 못하다. 누군가가 만든 기준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지만,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마지막 단계는 어린아이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타인의 욕망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의 욕망이다. 즐거운 놀이를 하는 기분으로 현재에 몰입하여 자신의 가치를 만들어낸다. 낙타의 의무를 직시하고 사자의 자유를 존중하며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인생, 이게 니체가, 그리고 저자가 말하는 인생이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용기를 짜내어 낙타에서 벗어났다. 이제 겨우 사자가 되었는데, 거친 초원에 홀로 남긴 어린 사자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불안에 가득한 눈빛을 하고 있다. "아, 괜히 사자 한다고 했나. 낙타였으면 그래도 먹을 거 걱정은 없는데. 다시 낙타로 돌아갈까. 오늘은 어떻게 주린 배를 채우나. 또 하이에나가 몰려 오네. 아, 불안하고 피곤하다." 이러면서 뭘 해야 될지도 모른채 그저 어슬렁거린다. 지금은 단지 사자에 적응하는 과정이며 많이 힘들지라도 나중엔 초원을 쌩쌩 누비는 늠름한 사자가 될 거라고 위로하며. 그리고 언젠가는 사자에서 내 욕망에 충실한 어린아이처럼 될 거라고 생각하며.
친정어머니는 니체를 알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건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시집간 딸에게 한 말은 어린아이의 삶을 살아라는 말이다. '인생 짧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라.' 이 말이 마음 깊은 곳의 어느 곳을 툭하고 건드렸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동네 책방 <생의 한가운데>에서 진행한 이국환 작가의 강의를 들었다. 처음 꺼낸 이야기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나오는 하층 계급이었다. 불만 없는 하층 계급의 인간을 만드는 건 무척 간단한데, 책과 꽃을 멀리 하게 하면 된다고 했다. 책은 이해가 되지만 꽃은 의외였다. 여기서 꽃은 인간의 낭만을 상징했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꽃이 있어 인간은 낭만이 생기고 그 낭만에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낭만주의자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책에는 40여 편의 짧은 에세이가 실려 있다. 한 편 읽는 데 5분이 걸렸다. 작가는 한 편의 에세이를 쓰는 데 2주가 걸렸다고 했다. 2주에 걸쳐 쓴 글인데 행간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5분에 걸쳐 읽은 나는 행간에 있는 의미를 얼마나 이해했을까. 이런 자리에서 작가는 글 안에 숨어 있는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준다. 나는 그저 받아 먹으면 된다. 저자를 직접 만나 그가 하는 말을 듣는 이유다.
강의 도중에 아내와 함께 왔다고 했다. 아내는 여기 주위를 산책하고 있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책에 나온 어떤 글보다, 강연의 어떤 말보다 저자가 멋있어 보였다. 신뢰가 갔다. 저자가 좋아졌다. 그러면서 아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요령으로 언어를 조심해서 사용하고, 생활의 중심이 아내가 되게 하라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내게 절실했다.
'수처작주隨處作主'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불교 용어다. 카르페 디엠, 일기일회 등과 통하는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말하며 이 단어를 들었다. 늘 생각은 하지만 실천은 멀다. 하지만 좋은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나는 조금 치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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